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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우승 80주년 특별기획

총도, 칼도 없이 민족명예 위해 싸워보라!

마라톤 개척자 권태하의 ‘스포츠 독립운동’

  • 김희찬 | ‘아이들의 하늘’ 주비위원회 간사 gomappa10@gmail.com

총도, 칼도 없이 민족명예 위해 싸워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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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만능 코치’
  • ● 손기정보다 4년 앞서 올림픽 마라톤 출전
  • ● 충주만세운동 불발…“마라톤으로 세계 제패하자”
  • ● “일본에 당한 멸시에 저항”
총도, 칼도 없이 민족명예 위해 싸워보라!

1932년 LA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출전한 권태하 선수(오른쪽).

1시간 12분의 질주 끝에 반환점을 막 돌아 나오는데 귓전을 따갑게 스치는 고함소리는 분명 우리말이었다. “기정아! 4분 전에 자바라가 달아났어. 비스마르크 언덕에서 그놈 잡아야 돼.” 언제 어떻게 그곳에 와 있었는지 권태하 선배가 벼락같은 고함을 지르며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퍼붓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 나는 권 선배의 말대로 비스마르크 언덕에서 자바라를 제치고 선두에 나섰다.

-손기정, ‘그때 그 일들’, 동아일보 1976년 1월 1일자




올해는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지, 그리고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동아일보가 정간되고 ‘신동아’가 폐간된 지 꼬박 80년이 되는 해다. 울분의 시절, 손기정의 금메달과 그의 가슴팍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의 기개는 움츠렸던 민족혼을 일깨웠다.

그러나 여기 잊힌 사람이 있다. 손기정보다 4년 앞선 1932년 한국인 마라토너 최초로 올림픽(미국 LA올림픽)에 출전했고, 일찍이 손기정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격려했으며, 미국에서 익힌 선진 마라톤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했고 1936년 베를린으로 건너가 현장에서 손기정, 남승룡 선수를 적극 지원한 권태하(權泰夏·1906~1971)다. 권태하의 고향(충북 충주) 후배이자 육상 동료로 역시 베를린에서 손기정, 남승룡 선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정상희(鄭商熙·1907~1981)도 그와 함께 잊힌 인물이다.

손기정·남승룡 지원작전

일본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조선인 선수를 여럿 출전시킬 생각이 없었다. 일본은 4년 전 LA올림픽 마라톤에 일본인 쓰다(津田)와 조선인 권태하, 김은배 세 선수를 출전시켰는데, 쓰다가 5위에 그치자 그 패인을 두 조선인 선수에게 돌렸다. 두 선수가 일본의 작전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1936년 5월 일본은 베를린 본선에 나갈 3명의 선수 선발과 관련해 ‘손기정은 지난해 세계기록을 경신했으므로 최종 선발전에서 2위를 해도 출전시키지만, 남승룡은 1위를 못하면 탈락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회의에 참석한 정상희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손기정과 남승룡이 머물던 숙소로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방법은 하나일세.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남군이 1등, 손군이 2등을 해야만 하네.”

최종선발전. 두 선수는 최선을 다했다. 손기정은 속도를 늦췄다, 높였다 하며 일본 선수들의 페이스를 무너뜨렸다. 결국 남승룡이 1위, 손기정이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다시 2명의 일본 선수를 포함해 4명을 베를린 현지에 파견한 뒤 그곳에서 재차 예선을 치러 본선에 나갈 최종 3명을 가리겠다고 말을 바꿨다.

문제는 또 있었다. 4년 전 LA올림픽 마라톤 실패 책임을 조선인에게 씌운 쓰다가 마라톤 코치였다. 이에 당시 만주에 머물던 권태하가 원거리 사격에 나선다. 그는 ‘실력 있는 전문 코치가 없고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가 부족한 것이 4년 전 마라톤 실패 원인’이라는 장편의 글을 일본 신문에 기고해 여론을 몰아갔다. 또한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일본 최초로 금메달을 딴 오다 미키오 아사히신문 체육부장을 설득한 끝에 쓰다를 코치에서 해임시킨다. 베를린 출발 2주 전이었다.

정상희는 ‘조선육상경기협회’ 명예비서 자격으로 베를린에 공식 파견됐다. 권태하는 개인 자격으로 만주에서 베를린으로 날아왔다. 둘은 한 달간 합숙하며 마라톤 우승을 위해 손기정과 남승룡에게 헌신한다.

예상됐지만, 베를린 현지에서 두 선수에 대한 일본의 차별은 심했다. 치료를 핑계로 일본인 선수를 데리고 나가 일본 음식을 먹여가며 따로 연습시키는가 하면, 현지 예선에서 일본 선수 시오아쿠는 반칙까지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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