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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⑥

패업 이룬 楚 장왕, 내실 다진 秦 목공의 공통점

통치자의 눈과 귀로 직접 겪은 인재, 적재적소 중용

  • 박동운 언론인

패업 이룬 楚 장왕, 내실 다진 秦 목공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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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랑캐’라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중원 제패를 꾀한 초나라 장왕은 결국 패업(覇業)을 달성했다. 일개 제후국 군주에 불과하던 진나라의 목공은 중원 한족의 배척에도 불구하고 국력 배양을 이뤄냈다.
  • 그 비결은 손숙오와 백리해라는 유능한 인물의 등용에 있었다.
패업 이룬 楚 장왕, 내실 다진 秦 목공의 공통점
덩치는 큰데 따돌림을 당한다면? 참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그 이유가 ‘남쪽의 야만국’이라고 하니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서둘러 문명 개화와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여, 거꾸로 오만한 중원의 제후국들을 정복하고자 분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로 춘추시대 초(楚)나라 이야기다. 초나라는 장왕(莊王) 때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중원의 패권국으로 등장했다.

중원을 노린 이질적 세력

원래 초나라는 장강(長江) 중류의 비옥하고 광대한 평원(오늘의 후베이성과 후난성 일대)에 자리잡은 나라였다. 그러나 중원(中原)의 한(漢)족과는 민족이 달랐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풍속과 습관이 전혀 달랐으며, 정치와 제도도 동떨어져 있었다. 한족은 그들을 ‘남만(南蠻·남쪽의 야만인)’으로 불렀다.

종족 구성도 다양했는데, 알려진 것만도 60여 개에 달한다. 하기야 중원의 한족도 생리적으로는 혼혈민족이고, 문화적으로는 복합국가다. 그래서 한족의 종합적인 확대판이라 할 현대의 중화민족은 외국인을 볼 때 생리적 특징은 거의 문제삼지 않고, 다만 문화를 중시한다.

그런데 황하 유역의 중원과 장강 유역의 초나라 사이에는 인적 왕래와 문화 교류를 가로막을 만한 자연적 장애가 별로 없었다. 날을 이어 해를 거듭하며 동화작용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런데 문명의 흐름은 도로나 하천을 따라 선진에서 후진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초나라는 남방에 위치하면서도 중원과 교통하는 데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었다. 또 역대 군주들이 국력 증강을 위한 문화교류에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그중 웅거(熊渠)는 군주로 등극한 뒤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 초나라는 중국과 민족을 달리한다. 그들의 칭호와 제도에 구애할 이유가 없다. 앞으로 왕(王)이라 호칭한다.”

당시만 해도 중원에서 주(周) 왕실만이 왕의 칭호를 썼고, 제후국의 군주들은 ‘공(公)’ 칭호에 만족해야 했다. 웅거의 왕(王) 호칭은 매우 이례적이었으나 국내용에 그쳤다.

그후 초의 무왕(武王)이 공언했다.

“지금 중원의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켜 서로 침략하고 학살하고 있다. 우리 초나라는 지금은 소외당하고 있으나 나름의 군대를 가졌다. 그 힘으로 중국의 정치에 참가하련다.”

그러고는 국왕의 칭호를 대외적으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약소국들은 초나라의 무력을 두려워해 대체로 고분고분했다.

한편 수도를 이전한 이후 주 왕실은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장왕의 ‘소리 없는 3년’

초의 장왕이 즉위한 것은 기원전 613년의 일이다. 집권 후 3년간 아무런 정치적 호령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같이 연회를 마련하고는 음악 반주 속에서 만취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포고했는데, ‘감히 임금의 행태를 고치도록 간언하는 자가 있으면 용서 없이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공동체인 나라 꼴이 빗나가는 것을 보다못해, 죽음까지 각오하고 간언하는 동족 신하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오거(伍擧)가 궁중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수수께끼를 말씀 드리고자 참내(參內)했습니다. 새가 언덕 위에 앉아 3년이나 날지도 않고 소리내지도 않습니다. 모두 궁금해하는데 무슨 새일까요?”

장왕이 대답했다.

“그 새는 한번 날아오르면 하늘 높이에 이를 것이다. 한번 소리내면 뭇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러니 오거는 그만 물러가라.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잘 알고 있다.”

그후 수개월이 지났으나 장왕의 음락(飮樂)은 더욱 기승을 부릴 뿐 고쳐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종(蘇從)이 참내하여 간언했다.

장왕 : “그대는 포고를 모르는가?”

소종 : “제 일신을 희생해서라도 전하의 현명을 깨우칠 수만 있다면 본망(本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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