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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외교관이 쓴 韓中 5000년

하늘에서 내려온 자 ‘새벽별 (Chorbon, 졸본)’에 터 잡다

東漢 vs 부여족·선비제국

  • 백범흠 | 駐프랑크푸르트 총영사, 정치학박사

하늘에서 내려온 자 ‘새벽별 (Chorbon, 졸본)’에 터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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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여는 동아시아 역사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고, 고구려가 백제를 잉태했으며, 백제는 왜(倭)와 연결된다. 부여는 494년 고구려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700여 년간 이어지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자  ‘새벽별 (Chorbon, 졸본)’에 터 잡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서 발견된 고구려 무사 벽화 모사도. [·국립중앙박물관]

한(漢)과 조선의 갈등이 첨예화하던 기원전 2~3세기 ‘단군(檀君)’, 즉 ‘텡그리 임금’의 나라 탁리국(橐離國)에서 떨어져 나와 남하한 일단의 무리가 만주 땅 쑹화(松花)강 유역 창춘(長春) 지역의 예족(濊族)을 흡수해 부여를 건국했다.



‘텡그리’ 신봉한 부여

‘탁리’는 ‘텡리 또는 텡그리(Tengri, 하느님)’를 음차한 것으로 부여의 원류는 ‘하늘의 신(하느님)’ 텡그리를 신봉하는 부족이다. 부여는 물론 부여를 기원으로 한 고구려도 ‘하늘의 신’을 섬겼다는 것은 고구려의 시조 추모(鄒牟)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온 해모수(解慕漱)로 알려진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해(解)’는 음차로 우리말 ‘해(태양, 太陽)’를 뜻한다.

부여의 주류를 형성한 부족이 외부에서 이주해왔다는 사실은 부여 건국설화 ‘동명성왕(東明聖王) 이야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동명성왕 설화는 남부 시베리아-북몽골·북만주 일대에 거주하던 부족의 남하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부여는 기원전 107년 한나라에 멸망당한 조선보다 동아시아 역사에 더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고, 고구려에서 백제가 잉태됐으며, 백제는 왜(倭)와 연결된다.

선양(瀋陽)과 창춘 사이에 금강 유역의 ‘부여(扶餘)’와 똑같은 이름의 도시 ‘푸위(扶餘)’가 있다. 왜 금강 유역 부여로부터 북쪽으로 1600㎞ 넘게 떨어진 쑹화(松花)강 유역에 부여라는 도시가 하나 더 있는 걸까.

강원 강릉(江陵)과 경남 함양(咸陽)은 통일신라 이후 중국 후베이(湖北)성 장링(江陵)과 산시(陝西)성 셴양(咸陽)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이는 데 비해 금강 유역 부여는 훗날 부여족의 원류가 되는 탁리국 출신의 한 무리가 남부 시베리아 일대를 출발해 쑹화강과 압록강, 한강을 거쳐 금강 유역까지 수천㎞에 걸친 민족 이동의 결과로 생겨났음이 분명하다. 부여족이 만주 쑹화강 유역과 금강 유역에 각기 ‘부여’라는 이름의 도시를 남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부여는 어떤 나라였을까.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부여는 ‘초기에는 오랫동안 어느 나라에도 패해본 적이 없다 한다.’ 고구려가 융성하기 시작한 3세기 중엽 이전까지 부여는 만주 지역 최강국이었다. 2세기경 부여는 보기(步騎) 7만~8만을 동원해 다링허(大凌河) 유역으로 진출해 동한군(東漢軍)과 싸울 정도였다. 부여는 494년 고구려 문자왕(文咨王)에게 멸망하기까지 고구려, 모용선비(慕容鮮卑), 읍루(挹婁) 등과 싸워가면서 700여 년간 나라를 유지했다.

나라가 멸망한 5세기 이후 부여의 지배층 대부분은 고구려 지역으로 이주했다. 잔류한 부여인들은 오늘날의 하얼빈(哈爾濱)을 중심으로 몽골계 부족과 힘을 합쳐 ‘두막루(豆莫婁)’를 세웠다. 두막루는 300여 년간 나라를 이어가다가 726년 발해 2대왕 대무예(大武藝)에게 멸망당했다. 부여의 흔적은 쑹화강 상류의 백금보-한서2기 문화 및 지린(吉林) 일대 서단산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한무제(漢武帝)의 공격적 대외정책은 북방의 흉노는 물론, 동방의 선비(鮮卑)와 예맥(濊貊), 서방의 저·강(氐羌), 월지(月氏), 남방의 월(越) 등 인근 부족에 큰 영향을 줬다. 문화와 문화, 부족과 부족이 혼화(混化)했으며, 발전이 뒤처지던 다양한 부족이 한나라와 흉노에 자극받아 스스로 나라를 세우는 등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특히 만주와 한반도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기원전 1세기 부여를 이탈한 일단의 무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자(해모수)의 아들’로 알려진 추모를 지도자로 랴오닝(遼寧)성 동남부 압록강 중류 지역으로 남하해 원주민을 흡수한 후 졸본(Chorbon, ‘새벽별’이라는 뜻의 고대 터키어)을 근거로 고구려를 세웠다. 고구려의 수도가 ‘Chorbon’으로 불렸다는 것은 고구려에 투르크적 요소가 포함됐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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