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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 우수작

차고 나면 기우는 달

  • 유희인

차고 나면 기우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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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나면 기우는 달
시어머니는 신문을 읽으실 때마다 정치면, 사회면을 보고 분개하시며 당신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다고 하셨다. 하시는 말씀은 너무나 당연하고 지당하였으며 다른 사람에게서 잘못된 점이 보이면 늘 지적하고 점검하고 바로잡아주려고 하셨다.

외식을 하러 나가서도 우리보다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식사가 먼저 나오면 종업원을 불러 식당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시키고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올라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그렇게 하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가 자주 고장 난다고 나무랐다.

그런 시어머니를 보고 큰아들이 말했다.

“이 사회에 할머니 같은 분이 꼭 필요하기는 한데 집안 식구가 그러면 좀 골치 아프지.”

하시는 말씀도 언제나 옳고 당신도 나름대로의 원칙을 지키시며 산다. 하지만 사람들이 시어머니께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실제로 내가 시어머니를 모시는 8년 동안 큰 시숙이 세 번, 작은 시숙이 두 번, 시누이가 한 번 온 게 전부이고 열 명이 넘는 손자, 손녀들은 안부전화 한 통도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아이들은 왜 자기 할머니에게 전화도 하지 않는 걸까요?”

“그걸 왜 내게 물어보냐?”

남편이 설명하기엔 너무 뿌리가 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자신을 한번 돌아볼 만도 한데 시어머니는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 법이라며 “모두가 날 외면하여도 나는 주님만 따라가리”라는 찬송을 부르셨다.

막강한 시어머니

성당에서 야유회를 가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떠난다고 해서 새벽부터 부지런히 준비하고 강을 건너 청담동 성당에 도착하자 야유회를 위해 대절한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버스에 올라가서 앉을자리를 찾는데 마침 비어 있는 자리에 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시어머니는 가방이 놓인 좌석 옆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물으셨다.

“여기 자리 있소?”

“누가 올 건데요.”

“그 ‘누가’가 여기 왔수다.”

그 아주머니는 함께 앉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미리 자리를 맡아놓은 모양이지만 먼저 오는 순서대로 앉는 게 상식이라고 믿는 시어머니에게는 통할 리가 없다. 시어머니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 아주머니가 머뭇거리자 시어머니가 호통을 쳤다.

“가방 치우시오! 가방이 야유회비 냈습니까?”

이런 일도 있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에 또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일본에 다녀오셨다. 시어머니가 비행기 안에서 식사 중이셨는데 앞사람이 먼저 식사를 마쳤는지 좌석을 뒤로 젖히더란다. 식사 중이던 시어머니가 그 사람을 나무랐다.

“의자 바로 세우시오. 당신은 예의도 상식도 없습니까? 내가 식사 중이란 말입니다.”

시어머니에게 무안을 당한 그 남자 분은 의자를 바로 세우더니 스튜어디스를 불러 위스키를 주문하더란다. 시어머니는 그 사람이 맨정신에는 말을 못하고 있다가 술김에 행패를 부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어서 다시 앞에 앉은 남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술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사람이니 당신이 정 술을 마시고 싶거든 저기 있는 빈자리로 가시오.”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술 마시는 사람을 피해 시어머니가 빈자리로 옮겨갔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남편은 자기네는 왕족이라서 당당함이 피 속에 흐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김해 김씨는 가야의 김수로왕 후손이기 때문에 왕족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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