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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기자의 사람 속으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만화가 박재동

“질투는 나의 힘, 사람은 나의 꿈”

  • 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byeme@donga.com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만화가 박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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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혁의 시대, ‘촌철살인의 한 컷’으로 시사만화의 새 장을 연 사람.
  • 만화방 아들에서 서울대생으로, 열정적 교사에서 만화가까지, 다시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몸 던진, 은발 소년의 자기 옷 벗기.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만화가 박재동
박재동(52)은 손가락이 길다. 곱고 하얀 손가락이다. 그 손으로 종종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여성적인 몸놀림이다. 앞에 종이가 있으면 가만두질 못한다. 입으로는 말을 하고, 손으로는 그림을 그린다. 말과 함께 가는 그림. 그래서 그는 만화가다.

만화가인 그는 ‘한 컷’으로 이름을 얻었다. 1988~96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그의 만평(漫評)은, 슬픈데 웃기고 통쾌하면서 절절했다. 아침나절 그의 만평을 보지 못하면 꼭 해야 할 일을 거른 것처럼 뱃속 한 쪽이 더부룩했다.

“오늘 ‘박재동’ 봤니?”

그렇게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그는 쌈꾼일 거라고, 똑똑해서 거침없는 사람일 거라고 지레 짐작을 했다. 그러다 그를 다시 ‘봤다’. 1991~93년 같은 신문에 연재한 콩트 형식의 만화를 통해서였다. 잘 나가는 사람 얘기는 없고 하나같이 못난 놈, 힘든 인생, 당하는 이들뿐이었다. 분노와 비애가 칸칸이, 꾹꾹 눌려 뭉쳐 있었다. 그런 날은 밥을 먹다가도 문득 마음이 무거웠다. 남들 아픈 것이 이렇게 다 아픈 이는 또 얼마나 사는 게 고단할까.

하지만 비로소 얼굴 마주한 그는 소년 같다. 어리지도 삭지도 않은, 고등학교 딱 1학년. 고민도 열망도 사명감도 정의감도, 자존심과 명예욕까지도 활활 타오르나 얼굴 하얗게 고개 숙인, 내가 누구인지 자꾸 궁금한 2차 성징기의 어린 사내. 더하여 조곤조곤 나직한 부산사투리는 긴 은발, 가는 몸체와 더불어 지나치게 ‘예술’스럽다. 쌈꾼도, 똑똑이도, 날 선 냉소주의자도 아니다. 박재동은 찬(滿) 사람인가, 오히려 빈(空) 사람인가.

‘날것’의 사랑, 열정

1996년 박재동은 신문사를 그만뒀다.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 ‘오돌또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7년. 그는 아직 ‘오돌또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장선우 감독과 손잡고 해보마 했던 또 다른 장편 ‘바리공주’도 돈줄이 막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그렇다고 논 것은 아니다. 1998년 8월부터 1년 동안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박재동의 시사만평’이란 시사 애니메이션을 발표했다. ‘우리만화 발전을 위한 연대모임’의 이사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때는 노무현 대통령을 청소부에 비유한 TV CF를 제작, 당선에 적잖이 기여했다. 최근에는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이라는 두 권짜리 책을 펴냈다. 그 그림들로 서울 소공동 롯데화랑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어쨌거나 그는 자꾸 부끄럽단다. “그렇게 소문 내놓고 아직 ‘오돌또기’를 못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하자” 하니 “쓸만한 게 뭐 있겠느냐”며 또다시 걱정이다. 영상원 수업에 만화·애니메이션, 단체 일까지,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 만날 날들을 골라낸다. 겸손한 듯도 하고 까다로운 듯도 하다. 꼼꼼하고 자기욕심 많은 사람이다, 라고 미리 생각해버린다.

처음 만나 인사하고, 밥 한 술 뜨고, 그의 작업실이 있는 서울 양재동을 향해 가는데 그가 말한다.

“인터뷰 컨셉트를 어떻게 잡았나요. 이왕 하는 것 생산적이면 좋겠다 싶어 생각해 봤는데 ‘열정, 사랑, 콤플렉스’는 어떨까요. 그런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거든요.”

사실 쉰 넘은 이가 열정, 사랑, 콤플렉스를 얘기하는 건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쑥스러운 순간은 그 발설자가 10대, 20대일 때다. 그들의 사랑, 열정, 콤플렉스는 ‘날것’이다. 붉고 뜨겁고 비릿하다. 반면 중년이 입에 담는 그것은 경험으로 탈색된 일종의 ‘장식품’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박재동은 정말 ‘사랑’과 ‘열정’을 담아, 순진해 보일 만큼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자기를 숨길 줄 모르는 사람이다, 라고 또 제멋대로 생각한다.

첫 날 이야기 장소는 작업실 근처 찻집이다. 그의 양손이 번갈아가며, 오른쪽 갈빗대 근처 어딘가를 꾹꾹 누른다. 십이지장 궤양을 앓았다 한다. 담배 끊고 술조차 멀리하는 데도 한번 다친 속은 쉬 달래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에게서 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년(長年)의 징후다.

-쉰이 넘었다는 게 실감나나요.

“아니지요. 언제 벌써 이래 됐나 싶고. 아직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너무 많은데…. 앞으로 하면 되죠. 할 수 있을 거예요.”

박재동은 1952년 생이다. 3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밑으로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가 있다.

-고향이 울산이죠.

“시내에서 20리쯤 떨어진 모랫골이라는 강변 마을이에요. 외갓집은 울산 읍내에 있었고. 친가와 외가를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부친께서 초등학교 교사셨다고요.

“그랬죠. 하지만 오래 못 하셨어요. 폐결핵을 앓은 후 다시 간이 몹시 나빠져, 예순 넘어 돌아가실 때까지 늘 환자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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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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