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한우농가에서 축사를 소독하고 있다.
민·관·군이 합심해 총력을 기울인 끝에 구제역은 비로소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AI)가 올해 봄까지 꾸준히 발병하면서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한때 축산물 소비가 위축되기도 했다. 이에 더해 한·미 및 한·EU 자유무역협정(FTA)과 국제화, 개방화에 따른 국제 곡물가격 상승, 가축분뇨 해양배출 금지, 환경·동물복지 규제 강화 등으로 축산농가의 어려움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그 사이 사육가축 마릿수도 크게 늘어 축산물 가격이 하락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국가적으론 8년간 유지해온 ‘구제역 백신접종 청정국 지위’마저 잃어 축산물 수출 길까지 막히면서 축산농가의 시름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구제역 백신접종 청정국 지위를 얻으려면 2년간 구제역 미발생, 1년간 바이러스 부재 증명, 정기적인 구제역 백신 접종 등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요구하는 7가지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이들 요건을 모두 갖춰 심사 중이며, 내년 5월 열릴 OIE 총회에서 청정국 지위를 다시 회복할 게 확실시된다. 그렇지만 한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겨울을 예고하며 불어오는 찬바람은 축산농가에는 곧 ‘빨간불’이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고온다습한 여름철엔 맥을 못 춘다. 하지만 9월 이후 기온이 내려가고 습도가 낮아지면서 선선한 바람까지 불면 바이러스가 퍼지기 쉬운 환경이 조성돼 구제역 발생 위험성이 높아진다.
찬바람=구제역 경고등
그렇다면 축산업 현장에서 방역활동은 어떻게 이뤄질까. 11월 1일, 국내 가축질병 방역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평택축산농협 축산기술지원단을 찾아 나섰다. 경기 평택시 안중읍 안중리, 고즈넉한 숲 가운데 넓은 터에 자리한 축산기술지원단 건물은 잿빛 철제 가건물이라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준다. 건물 외벽 곳곳에 이런 문구까지 붙여놓아 살풍경하기까지 하다. ‘방역상 출입통제. 용무가 있으신 분은 아래 전화로 연락바랍니다. 1588-40XX’.
건물 입구로 들어서는데, ‘출입자 소독실’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소독실은 공중전화 부스만한 투명 밀폐 공간. 사방에서 뿌려지는 소독약이 10여 초간 기자와 소지품을 소독한다. 이미 축산기술지원단 건물 진입로를 들어서자마자 취재차량을 차량용 고정식 소독시설로 ‘샤워’한 터. 소독에 또 소독이라, 과연 ‘방역전쟁’의 첨병답다.
“요즘 방역활동이 한창이라 눈코 뜰 새 없습니다. 축산농가의 대규모 다두(多頭)사육이 보편화하면서 구제역뿐 아니라 브루셀라병, 우결핵 같은 세균성 가축전염병 위험도 상존해서요. 사람과 차량도 바이러스나 세균의 매개체가 되므로 철저한 소독은 필수죠.”
축산기술지원단 정병대(49) 단장은 “소독 일정이 바쁘니 우선 낙농가부터 둘러보자”고 재촉했다. 다음 날인 11월 2일이 평택축산농협 창립 제45주년 기념일이라 더 그런 듯했다.
평택축산농협 축산기술지원단 건물(왼쪽)과 출입자 소독실.
축산기술지원단 직원은 단장을 포함해 18명. 각기 동물병원, 축산컨설팅(낙농, 한우, 양돈, 양계), 집유(集乳), 유우(乳牛)능력 검정 등 4개 파트로 나뉘어 일한다. 이들을 이끄는 수장인 정 단장은 평택이 고향이다. 깐깐해 보이는 첫인상. 이날 동행한 농협중앙회 축산컨설팅부 방역위생팀 권우섭 차장은 “정 단장은 건국대 축산학과 출신으로, 경력 20년이 넘은 축산 베테랑”이라며 “전국 각지에서 자문해 올 만큼 축산 컨설팅 전문가로 통한다”고 슬쩍 치켜세운다. 농협중앙회가 왜 굳이 평택축산농협을 취재 대상으로 권했는지 알 것 같다.
오전 11시. 정 단장과 도착한 곳은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대지목장’. 이곳도 입구부터 차량 소독을 빠뜨리지 않는다. 5초가량 소독 후 차에서 나와 차문을 닫자 채 마르지 않은 소독약이 손에 묻는다. 방문객용 대인 소독실도 갖춰져 있다. 대체 오늘 하루 몇 번이나 소독약 세례를 받으려나. 살짝 찌푸려진 미간을 눈치 챘는지 정 단장이 몇 마디 한다.
“사람이나 차량 소독 모두 같은 성분의 국가공인 약품을 써요. 물로 1000~ 1300배 희석한 구연산 제제라 인체엔 무해합니다. 피부에 닿아도 괜찮아요. 저는 10년 이상 소독약과 살았어요. 다만 차량용 소독약은 좀 더 강해서 자주 노출될수록 차가 빨리 부식되죠. 언더코팅을 안 하면 더해요. 여러 축산농가를 돌아다니다보니 제 차 하부도 부식돼 얼마 전 바꿨습니다.”
대지목장 대표는 정효섭(62) 씨. 그가 면적 1623㎡(약 492평) 규모의 축사에서 사육하는 젖소는 68마리. 하루 평균 1200kg의 우유를 생산해 유가공업체로 직송한다. 1981년 젖소 송아지 3마리로 시작한 낙농업. 이젠 걸어서 10분 거리인 집에서 PC 모니터나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젖소들의 발정, 분만 등 동태와 도난 여부를 느긋하게 지켜볼 여유가 생길 정도가 됐다. 목장 정문과 사육장 쪽에 6개의 CCTV를 가동 중이기 때문이다.
대지목장은 자체 소독시설도 알차게 갖췄다. 차량·대인 소독시설 외에 사육장 안개 분무시설과 휴대용 연막 소독기까지 구비했다. 정 씨는 “소독약 성분이 인근 논밭의 작물로 유입될까 우려되는 농번기를 제외하면 거의 연중 소독시설을 가동한다”며 “상시 소독을 해온 덕분인지 30년 넘게 농장을 운영하면서도 다행히 가축전염병 피해를 본 적이 없다”고 흐뭇해했다.
텔레토비와 람보
정 씨가 한번 눈여겨보라면서 안개 분무시설을 작동시킨다. 그가 농장 사무실 옆 창고에서 분무시설 스위치를 켜자 축사 천장에 설치된 파이프라인에서 소독약이 2분간 안개비처럼 흩뿌린다. 3분 쉬고 2분 가동, 그리고 반복. 여름철엔 물을 이렇게 뿌려 젖소들의 더위를 식혀준다.
이제 축사 연막 소독을 할 차례다. 방역복부터 입는다. 모자가 달린 상하 일체형 옷을 초심자가 빨리 입고 벗기란 수월치 않다. 새하얀 방역복을 입고 모자를 덮어쓰고 고무 재질 위생장화도 갈아 신는다. 목장갑과 마스크도 낀다. 장화 겉에 투명한 1회용 위생 비닐장화까지 덧신으니 방역복이 그리 두껍지 않은데도 괜히 몸놀림이 둔한 듯한 느낌이다. 하필 대책 없이 큰 사이즈람? 체구가 작은 편인 기자에겐 방역복의 배 부위가 한없이 남아돌아 불룩해 보인다. ‘이건 웬 텔레토비? 텔레토비에 흰색은 없는데….’
사진기자가 배 부위를 좀 접어 넣을 수 있도록 속에 입은 상의 하나를 벗으란다. 취재수첩과 필기구, 지갑 등속이 호주머니에 들어 있어서 더 불룩했던 모양이다. 벗고 나니 좀 낫다. 사진기자가 엄지를 치켜세운다. ‘OK’란다. 마스크 탓에 대화가 힘들지만 인기 상종가인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유행어로 묻고 싶다. ‘맞나?’
이왕 구긴 스타일. 정 씨에게서 기관총처럼 생긴 휴대용 연막 소독기도 받아 든다. 시동을 거니 이내 뿌연 연기가 한가득 분사된다. 축사 가운데로 난 널찍한 통로를 저벅저벅 걸으며 좌우의 축사 구조물과 바닥을 향해 한껏 연기를 내뿜는다. 30년 전 할리우드 영화 ‘람보’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위장복 대신 방역복, 전투화 대신 위생장화, M60 기관총 대신 연막 소독기. 자신을 쫓는 경찰관 대신 파리, 모기 등 해충을 적(敵)으로 삼는다는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젖소 축사에서 연막 소독을 하는 기자. 안개 분무시설(오른쪽).
소독을 시작한 지 20분쯤 흘렀을까. 재미가 좀 붙으려는데, 정 씨가 그만하란다. 한 번에 장시간 소독하면 젖소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축산 지킴이’ 공동방제단
축산농가들이 모두 대지목장처럼 일정 규모를 갖춘 건 아니다. 그래서 농협중앙회는 공동방제단 사업을 벌이고 있다. 자체 방역이 미흡한 전업농 규모 이하 소규모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무료소독을 실시해 가축전염병 발병과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공동방제단 설립의 직접적 계기는 역시 구제역 파동이다. 농협은 지난해 3월 전국 15개 시·도, 205개 시·군의 116개 지역 축협에 공동방제단 400개 반을 창설해 방역 및 예찰 활동에 뛰어들었다. 일종의 ‘방역 선봉대’인 셈. 공동방제단의 소독지원 대상 농가는 소·사슴·염소 10마리, 돼지 500마리, 닭 3000마리, 오리 2000마리 미만인 경우다. 해당 농가는 전국적으로 13만1000개소에 달한다.
공동방제단 운영은 시·군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략 대상 농가 320개소를 기준으로 1개의 방제단을 편성한다. 1개 방제단은 방역요원 1명과 전기충전식 소독장비를 갖춘 소독차 1대로 구성된다. 따라서 전국의 공동방제단 규모는 방역요원 400명, 소독차 400대에 달한다. 1명이 농가 소독과 소독차 운전(1종 보통 면허)을 병행하니 숙련도를 요하고 노동 강도도 센 편이다. 게다가 자신이 담당하는 농가들의 속사정까지 꿰고 있어야 하니 신경 쓸 일도 적지 않아 고충이 크다. 또한 소독 후엔 농가에 비치된 소독실시기록부에 소독실시 상황을 기록하고, 3일 이내에 국가동물방역통합시스템(KAHIS)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구제역과 고병원성 AI 같은 악성 가축질병이 연중 발생하는 국가를 우리 국민이 방문하거나 그 나라의 자국민 또한 우리나라를 수시로 드나드는 시대다. 그런 만큼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체와 같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방역활동에 대한 점검도 철저하다. 해당 시장·군수는 분기 단위로 방제단별 대상 농가 2개소 이상을 무작위로 선택 방문해 소독실시기록부 확인 등을 통해 소독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 그 결과 소독 미실시 현황이 적발되면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의한 과태료 처분을 하게 돼 있다.
방역요원 대다수는 해당 시·군청에서 방역 업무를 담당하다 정년퇴직한 사람들. 이들은 각자 하루에 담당구역 내 18~25개 축산농가를 순환 방문하면서 소독차로 축사와 그 주변을 상시 소독한다. 이밖에도 농협은 ‘전국 일제 소독의 날’도 연 15회 지정하고 있다. 혹서기, 혹한기, 우기를 감안하면 공동방제단이 사실상 연간 소독 가능한 일수는 180일 정도다.
‘나홀로 소독’에 운전까지
평택축산농협도 기존 조직과 별도의 소규모 공동방제단을 운영한다. 1명의 방역요원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9시간 동안 소독하는 농가는 20~25개소. 정 단장에 따르면, 평택 관내 전체 축산농가 1000여 개소 중 5분의 1가량인 200여 개소가 공동방제단의 소독지원 대상 농가다. 정 단장은 “평택지역의 경우 공동방제단이 소규모 농가 순환 방문 상시 소독을 연 13.3회 실시하며, 해당 농가들을 18개 조로 나눠 소독한다”고 말했다.
축산기술지원단의 업무는 방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각종 축산 컨설팅도 제공해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한다. 특히 가축 진료는 중요한 컨설팅 활동 중 하나다.
소독에 이어 이젠 젖소 초음파 임신 진단 및 처방전 발급을 할 차례. 축산기술지원단 동물병원 소속 이재욱(44) 수의사가 작업복으로 갈아입더니 축사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암컷 젖소의 직장(直腸)에 팔꿈치 위까지 올라오는 비닐 위생장갑을 낀 손을 쑥 집어넣는다. 손엔 초음파 진단기를 쥐었다. 송아지 잉태 여부를 알아보려는 것. 잠시 후 빠져나온 이 수의사 손엔 젖소 대변이 잔뜩 묻어 있다.
1 젖소의 체표면 온도를 측정하는 기자 2 젖소 초음파 임신 진단을 하는 수의사.
축산업 선진화 컨설팅도 제공
대지목장에서 나와 다시 축산기술지원단으로 향한다. 이번엔 소독차를 동원해 직접 무료소독을 해볼 참이다. 공동방제단의 주요 업무다.
축산기술지원단 직원들이 소독차를 준비하는 사이, 잠시 구제역 백신을 살펴봤다. 축산기술지원단 건물 1층에 따로 마련된 구제역 백신 보관 창고엔 커다란 냉장고가 있다. 백신은 그 속에 들어 있다. 냉장고 상단의 액정표시장치에 나타난 온도는 4.0℃. 최적의 백신 상태를 유지해 접종에 만전을 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수의사는 “보관 온도를 항상 4.0℃ 내외로 유지해야 하는데, 백신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여닫다보면 온도가 변할 수밖에 없다”며 “온도 변화를 감지하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실시간 관리 시스템을 2층 사무실 PC를 통해 가동한다”고 설명했다.
축산기술지원단 건물 2층엔 동물병원도 있다. 각종 가축 관련 약품을 비치해뒀는데, 깔끔하게 정돈된 품이 도심의 여느 약국 못지않다.
오후 2시10분. 추수가 끝난 한갓진 논을 가득 메운 까마귀떼와 한들한들 길섶에서 춤추는 코스모스를 번갈아 구경하며 좁고 구불구불한 1차로 농로를 20분 차로 달려 다다른 곳은 평택시 현덕면 대안리의 ‘태성농장’. 120마리를 사육하는 한우농가다. 대문에 ‘구제역 방역 중’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차량 소독은 여기서도 어김없다.
그런데 누가 한우를 순하다고 했던가. 이방인을 보자마자 축사에서 뛰쳐나올 기세로 겅중겅중 뛰며 콧김을 씩씩 내뿜는다. 성정과 체질이 강해 보인다. 고기 맛은 순할지 몰라도.
아까 대지목장의 젖소를 보며 건네던 이 수의사 말이 맞다. “한우는 젖소보다 체구는 작아도 사나워요. 뭐, 저야 젖소에게든, 한우에게든 수없이 걷어차여 시퍼렇게 멍드는 데 이골이 났지만…. 이따가 한우농가에 가면 조심하세요.”
소독 요령은 가축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소의 경우 농장 입구와 축사 주변 등 외부, 축사 내부, 농장 차량 바퀴 등이 소독 대상이다. 다른 가축은 농장 입구, 축사 주변 등 외부, 농장 차량 바퀴 등이다. 소독이 완료되면 농가에 출입한 방역요원의 신발, 호스, 차량 바퀴까지 소독한 뒤 다른 농가로 이동해야 한다. 이른바 차단방역이다. 차단방역은 전염성 질병, 해충, 외래종, 변형생물체의 전파 위험을 줄이기 위한 일련의 예방 조치다. 즉, 농장 내 질병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질병 전파를 차단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일일이 방역복을 갈아입는 것도 일이다. 외부인과 차량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차단방역 현장에선 한번 사용한 방역복과 위생장갑, 비닐 위생장화, 마스크 등을 모조리 폐기하게 돼 있기 때문. 매일같이 방역작업을 해야 하는 방역요원들이 옷 입고 벗기는 패션모델에 뒤처지지 않을 듯싶다.
축사에 갇히다
축산기술지원단 직원이 양돈농가에서 초음파 임신 진단을 하고 있다.
에라, 쏘고 보자. 소독기 호스 끝에 붙은 기관단총처럼 생긴 분사기 손잡이를 왼손으로 단단히 거머쥐고 오른손으로 스위치를 힘 있게 누른다. 상당량의 소독약이 포물선을 그리며 소들 바로 앞 축사 바닥으로 쏴아 하고 쏟아진다. 그제야 소들이 좀 주춤한다. 20여 분쯤 소독약을 살포하니 다 달아나고 없다.
축사를 나와선 축산기술지원단 직원 이민우(32) 씨와 함께 소독차 조수석 앞에서 시동, 분사, 정지 단계를 조종할 수 있는 차량 부착용 소독장비로 축사 외부를 향해 원거리 소독약을 살포한다. 일종의 ‘포격’이랄까. 트랙터 바퀴도 샅샅이 소독한다.
농장 대표는 김한용(59) 씨. 과수원에 일하러 간 남편 대신 홀로 농장을 지키던 그의 부인은 “인근 돈사에서 파리가 많이 날아와 자체적으로 연무소독을 자주 해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외부에서 사들여오는 송아지의 경우 수송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호흡기질환에 곧잘 걸리는데, 같은 약을 계속 쓰면 내성이 생기니 새로운 약 좀 개발해줬으면 좋겠다”고 과제 하나를 던진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제6회 ‘한우의 날’. 전 국민이 한우 사랑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제정, 기념하는 날이다. 11월 1일로 정한 건 한우 맛이 최고라는 의미로 으뜸을 뜻하는 숫자 ‘1’이 세 번 겹치기 때문이란다. 1이 네 번 겹치는 11월 11일이 일명 ‘빼빼로데이’에 선점당해서일까. 아무튼 소한테 좋은 일 했다. ‘절대로 병에 걸리지 말고 잘 자라거라’.
‘가축 건강’이 ‘국민 건강’
오후 3시30분. 이어 방문한 곳은 평택시 포승읍 석정리의 양돈농가인 ‘충남농장’. 김철환(61) 씨가 돼지 3000마리를 키우는 곳이다. 바람에 실려 멀리서도 풍겨오는 돼지 분뇨 냄새가 양돈농가임을 단박에 알아채게 한다. 이곳은 이미 자체 소독을 마친 상태. 여기선 축산기술지원단의 막내 직원이자 축산기사인 김진호(24) 씨가 돼지 초음파 임신 진단을 할 거란다. 이 또한 축산 컨설팅 활동이다.
드디어 사진기자 손에 방역복이 들려진다. 이젠 그가 텔레토비가 돼야 할 판. 살짝 찡그린 표정의 사진기자가 이윽고 김 씨와 함께 들어간다, 돈사 속으로. 역시 인생이란 돌고 도는 게다.
농협중앙회가 축산농가를 위해 펼치는 연합 컨설팅은 도(道) 단위로 내외부 전문가를 컨설팅 인력 풀(pool)로 구성해 연합사업단을 조직하고 조합원 농가를 위해 컨설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지역 여건에 따라 축종(畜種)별(한우, 낙농, 양돈, 양계, 기타), 분야별(사양, 질병, 경영, 개량 및 환경, 시설) 인력 풀을 구성해 현장 중심의 찾아가는 농가 맞춤형 컨설팅을 실시한다.
공동방제단의 소독 대상 질병은 구제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고병원성 AI, 돼지열병, 브루셀라병, 우결핵, 뉴캐슬병 등에 각기 유효한 제제를 선정해 철저한 소독을 하는 게 ‘방역의 정석’이다.
바람이 점차 매서워지는 겨울 문턱. 추위도 문제지만, 기온의 급격한 강하로 악성 가축질병 병원체가 활동하기에 적합한 여건이 조성된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목, 황금빛 억새가 일렁이는 논둑길 위를 공동방제단 소독차가 스쳐 지난다. 이젠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가축질병과의 전쟁이 더 이상 축산농가와 방역 관계자들만의 고유 업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충남농장 대표 김씨가 조금 전 툭 던진 한 마디가 귓가를 맴돈다. “스스로 알아서 (방역)해야지, 남이 누가 해주겠어?”
방역은 축산농가의 소중한 재산을 보호할 뿐 아니라, 안전한 축산물 공급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분야다. ‘가축 건강’이 곧 ‘국민 건강’, 또한 ‘우리 건강’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