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전통 집짓기에는 ‘건축가’가 없다. 경복궁 전경
그렇다. 우리에겐 우리 식의 집짓기 전통이 있었고 그것을 영조(營造), 혹은 조영(造營)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것은 집짓기라는 점에서는 동일할 지 몰라도 분명 건축이 아니었다.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건축의 전통이 우리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게 그거 아니냐고 따지고 든다면 아니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한 예를 들면, 오늘날 걸작으로 꼽히는 종묘나 무량수전을 지은 건축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건물을 지은 목수나 대목(大木)은 있었으되 건축가는 없었다. 우리에겐 작가로서의 건축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구적인 건축의 체제, 혹은 전통 안에서라야 비로소 건축물은 작품이 되고 그것을 만든 이는 예술적 재능을 지닌 건축가로 인정받는 것이다.
건축이라는 한자 조어도 아주 잘된 번역 같지는 않다. 건(建)과 축(築)은 말 그대로 ‘짓는다’는 뜻인데, 그런 뜻의 영어로는 따로 ‘building’이 있다. 명사이기도 하고 동명사이기도 한 ‘빌딩’은 짓는 일, 그리고 그것의 결과물인 건물을 말한다. 그렇다면 ‘architecture’는 무슨 뜻일까. 그것은 라틴어에 연원을 두고 있는데 ‘archi’는 근본, 혹은 으뜸이라는 뜻이고 ‘tecture’의 ‘tec’은(제작의) 기예, 혹은 기술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건축(architecture)은 으뜸가는 기예, 혹은 근본이 되는 제작술이라는 뜻이 된다. 또 건축가(architect)에는 우두머리, 대장이라는 뜻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서구에서 건축이 하나의 의미심장한 술(術·technique)로서 고급한 문화 혹은 예술에 속해 있었으며 건축가를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간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서구에서는 건축(architecture)과 건물(building)을 구분해 사용해온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자의 차이에 대해서는 “링컨 성당은 건축이고 자전거 창고는 건물이다”라는 유명한 언명이 있다. 풀어 말하자면 ‘건축’은 조형적이고 기념비적이며 예술적 질과 가치를 지닌 특별한 건물을 칭하는 것이고, ‘건물’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지어진 평범한 집을 가리킨다. 사실 건축과 건물은 그렇게 똑 부러지게 갈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관습적으로 건축을 건물로부터 분리하여 보고자 했으며 건축을 특권화해 거기에 독특한 지위를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건물’과 ‘건축’은 어떻게 다른가
그래서 건축은 서구에서 조형예술의 범주에 속한다. 미술사 책이 회화, 조각과 더불어 건축을 다루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비해 조선에서의 건축은 공조(工曹)에 속했다. 여기에 두 문화권 사이의 근본적인 시각 차가 있다. 서구의 건축도 근대에 이르러 공학, 곧 근대 기술(technology)의 영향권에 있게 되면서 예술로서의 성격과 기술로서의 성격이 대등한 것으로 변화하지만, 예술에 더 가치를 두고 그것을 건축가 개인의 창조력의 산물로 보려는 입장은 오늘까지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한편 자본주의적 근대사회에서 건축가는 국가로부터 자격을 부여받아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는 전문가가 되었으며, 건축물은 법에 의해 규제되고 관리되는 대상이 되었다. 건축의 제도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사건은 공공 권력이 건축을 자기 지배/보호의 영역으로 편입시켰음을 뜻한다. 여기서 근대 건축의 독특한 두 측면이 드러난다. 건축은 창조적인 예술 행위로 인정받으면서 한편으로 의료나 법률과 같이 지식과 경험을 갖추어야 제공할 수 있는 전문 서비스로 자리매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