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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 글: 홍사종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장 sjhong55@hotmail.com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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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상승 욕구를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찾아냈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자가 될 수 없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경제 구조 안에서 부자 될 꿈을 사람들은 로또 복권에서 찾아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로또 광풍은 말도 안 되는 이벤트요, 속임수다. 수백만 분의 1도 안 되는 확률을 가지고 ‘부자 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에 편승하여 가뜩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빈 호주머니를 턴다. 이 사회적 폐단은 ‘어쩌다 한 번 터질 대박’을 향한 사행심리로 매도돼 세간의 혹평을 받지만 로또 복권이라는 출구를 통해 폭발 일보 직전의 사회갈등이 그나마 건전(?)하게 해소되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사실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 봉급생활자가 내 집 마련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연일 폭등하는 집값, 물가, 교육비 부담에 허리 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시민들에게도 꿈은 있다. 부자 되고 싶은 꿈 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꿈은 현실이 아니다. 그 꿈을 구현해내는 데 있어 로또만큼 매력적인 상품이 또 있을까. 로또의 매력은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누구에게나 당첨 기회가 주어진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상품의 마력은 확률이 수백만 분의 1이더라도 분명히 당첨자를 낸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당첨이 안 돼도 타인의 대박 꿈 구현을 보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지속적으로 간직하게 된다. 다행히 이 사업은 매주 계속 시행된다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오늘은 당첨자를 못 내도 모아서 한꺼번에 내는 운영방식도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끌어들인다.

부익부 빈익빈의 빈부 격차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잠깐이나마 잊게 해주는 이 복권 프로젝트야말로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구조가 왜곡된 나라에서는 적합(?)한 상품이 아닐 수 없다.

바꿔 말하자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부자 될 길 없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부여잡을 수 있는 희망의 끈이 로또 복권이라는 뜻이다. 로또 복권 열풍을 망국병이라고 지탄하는 사람들이 먼저 펼쳐야 할 논지는 바로 이 비뚤어진 경제구조를 바로잡는 일임에도 애꿎은 로또는 연일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가 절망한 젊은이들이 신분상승이라는 사회적 욕구의 출구를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찾아낸 것이라면 로또 복권의 탄생과 열풍은 우리 사회의 공정하지 못한 경제구조와 그로 인한 질곡의 삶이 찾아낸 출구다. 아주 묘하게도 노무현 정부와 로또는 비슷한 시기에 태동됐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재미있는 것은 태동의 배경도 같지만 이 시대가 갈급해하는 ‘꿈의 대리 구현’이라는 점에서도 같다. 어두운 사회가 노대통령과 로또 복권을 통해 희망을 찾아낸 것이다. 꿈은 이루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로(盧)’정부의 탄생과 로또는 같은 ‘로’자 돌림이라고 해서 같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로또는 그 자체가 허상에서 출발한 상품이지만 사람들에게 허상을 일깨워줄 일도 없고 실망시킬 일도 없다. 어차피 로또 발행이 계속 이어지는 한 꿈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계속 당첨자를 낼 것이기 때문에 남이 부자의 꿈을 대리 구현해주니 행복하다. 언젠가 나도 당첨될 수 있다는 꿈이 지속되는 한 로또가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일도 없다.

그러나 이 시대의 온갖 아픔과 패배자로서의 설움을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희망 속에 탄생한 노무현 정부는 다르다. 당첨 가능성이 낮았는데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것까지는 로또와 같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하지만 대통령선거는 로또처럼 매번 열리는 행사가 아니다. 젊은이들의 꿈을 먹고 탄생했지만 그 꿈은 구체적 실현을 요구하는, 너무나 냉혹한 현실의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지 벌써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에게 신분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학원 학군 좋은 강남 집값은 천정부지로 높기만 하고 발랄하게 자라나야 할 이 땅의 청년들은 아비규환 입시지옥 속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왕좌왕 경제정책 때문에 청년실업은 더욱 큰 사회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거기다 NEIS 시행 갈등 등 교육정책의 혼선은 온국민을 허탈과 분노에 떨게 했다. 그밖의 정책 혼란을 다 열거해서 무엇하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게 마련이다. 노대통령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한 것을 두고 언론 탓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쩌면 노대통령이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를 강렬히 원했던 젊은 지지자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린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일이다. 그렇긴 해도 이 땅 젊은 그네들의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신동아 200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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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사종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장 sjhong5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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