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아씨는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저를 ‘바람날 것 같지 않은 여자’로 보는 모양이에요.” 바람날 것 같지 않은 여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녀에 관한 인터뷰의 화두를 이것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바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 피우는 게 중요하다. 세상의 모든 ‘의지’는 곧 ‘금기’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결국 바람을 안 피운 것은 피운 것만큼이나 아슬아슬한 욕망의 빗장이기 때문이다.
대중 역시 그녀의 몸과 마음에서 그러한 코드를 읽어냈으리라. 때론 시대의 희생양으로, 때론 끝까지 가정을 지키는 현모양처로, 때론 대찬 ‘쥐띠 부인’으로 동분서주했던 그녀지만, 대중이 가장 사랑하고 평론가들이 인정한 작품에서 그녀의 역할은 ‘과부’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욕망의 빗장을 질러놓은 그녀의 육체는 대중의 에로티시즘 판타지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위험한 여인, 팜므 파탈의 기운이 없다. 남자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성적 일탈의 유혹을 물리치다가도, 결국에는 강제적이든 자신 안에 있던 욕망의 불씨 때문이든 몸을 허락하는 영화 속 그녀는, 그때부터 역전된 남녀관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발버둥치곤 한다.
그렇게 볼 때 스크린 속의 고은아는 안온한 판타지의 대상이었다. 이를 상징하듯 근대적 사회로 일탈을 시도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그 일탈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채 전근대적 사회로 하염없이 돌아온다. 영화 ‘과부’에서 머슴을 따라 나서지 못하고 다시 사대문 안 깊숙이 봉건적 체제로 회귀하는 그녀를 떠올려보라. 먼 훗날 노인이 되어 우연히 어려서 떠나보낸 아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열녀문 앞에 서서 떠나는 아들의 옷자락 먼지를 털어주는 주인공의 손은 하염없이 떨린다. 그것은 열녀문으로 상징되는 1960, 70년대의 모든 억압을 한 몸에 체화하는 깊은 묵념이자, 한숨을 삭히는 의식(儀式)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의 고은아가 꿈꾸었던 것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서 보여준 강단 있고 신심 깊은 여인이 아니었을까? 그녀 자신이 원했던 이미지는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손이었으나, 대중들이 원했던 것은 판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소복을 입고 나타난 목이 길고 우아한 ‘임자 없는 나룻배’였으리라. 이 불화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그녀, 정숙하고 소박하게 아름다웠으며 동시에 유혹적이었고 단 한번의 성적 일탈로도 소유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여자, 고은아가 존재한다.
고생스러웠던 영화 데뷔
-‘신동아’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고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고민이 많았을 텐데 지방에 다녀오는 바람에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안 그랬으면 인터뷰 약속을 잡아놓고 머리 속으로 마냥 걱정했을 텐데…. 연재 시리즈에 가장 먼저 나서는 게 좀 어색했어요. 중견 배우들을 생각해보면 제가 제일 밑이거든요. 가끔 ‘원로배우’라는 말을 들으면 화들짝 놀라곤 해요. (웃음)”
-영상자료원에서 고은아씨가 출연한 영화를 찾아 봤습니다. 비디오로 출시된 작품은 전부 다시 봤는데, ‘며느리’는 출시되지 않았더군요.
“영상자료원에 비디오 자료가 전부 있던가요? 그나마 참 다행이네요. ‘며느리’는 만든 영화사가 없어져버렸어요. 그래서 출시가 안 됐을 거예요. 제가 출연한 작품이라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가끔 텔레비전을 보다가 케이블채널에서 옛날에 출연했던 작품을 방영 하면 깜짝깜짝 놀래요. 이상해요, 누가 볼까봐 겁도 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