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GNP 2만달러’ 신기루를 넘어, ‘인류 공동생존’을 향해

희망찬 국가·기업을 위한 새 경영 패러다임

  • 글: 김성훈 중앙대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입력2004-12-24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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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사이에도 수없이 많은 ‘제3의 길’이 있고, 무역자유화와 보호주의의 양극단 사이에도 수백수천의 방도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0과 1을 다양하게 배합하면 수천수만의 윈-윈 전략을 창출할 수 있음을 고민하지 않았다. 21세기 상생(live and let live)의 원칙은 흑이냐 백이냐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 이 둘을 아우를 수 있는 제3의 길을 도출하는 것이다.
    ‘GNP 2만달러’ 신기루를 넘어, ‘인류 공동생존’을 향해

    2004년 3월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유엔환경계획(UNEP) 제8차 특별총회에서 고건 대통령권한대행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21세기 세계인의 화두는 이제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소모적인 이념논쟁이 아니다. 탈이념적인 새로운 사조로서 지속 가능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문제가 토론주제로 등장한 지 이미 오래 다. 지구상에 1인당 국민소득(GNP) 지표를 국정목표로 삼는 정부는 러시아와 대한민국 정도로, 대부분의 선진국은 단순한 GNP를 넘어 복지·환경·경제 지표를 통합해 삶의 질을 나타내는 광의의 ‘녹색 GNP’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1965년 레이첼 카슨 여사의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이 출판되면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생태계 파괴문제에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됐고, 1972년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로 자원, 환경, 공해, 무기, 인구 문제가 관심의 대상이 됐다. 마침내 1987년 유엔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는 ‘우리의 공통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를 채택했고 1992년 ‘리우 환경정상회의’, 2002년 ‘요하네스버그 환경정상회의’ 등에서 국가별 지속가능성 의제와 기구의 창설·운영을 제안하고 점검하기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교토의정서를 비롯한 각종 국제환경협약기구(Conventions)가 창설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국가와 기업의 사회경제적 혹은 생태환경적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문제는 일상의 화두가 됐다. 이를 실천하지 않는 정부와 기업은 더 이상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책의 흐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천년기업과 만년정부

    이에 따라 세계화를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일류 기업들은 전통적인 재무제표식 경영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기업경영의 투명성, 윤리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환경생태계 지속성에 대한 기여도 등을 한데 묶어 기업의 사회경제적·환경생태적 지속가능성 보고활동을 자발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영리만을 추구하던 기업활동이 단순히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기여도 증대에 머물지 않고, 그 외연을 넓혀 사회와 환경생태계에 대한 공헌도를 높임으로써 주주와 고객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정부, 기업,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하여금 개별기업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공헌하고 있는지 평가하게 하고 그 결과에 기초하여 기업(혹은 제품)을 선택하게 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기업은 그에 부합하는 기업이미지와 기업정체성(CI)을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시키려는 노력에 힘을 쏟고 있다. 2004년 현재 세계 100대 기업 중 51개, ‘글로벌 포천 250’ 기업의 45%, 총 42개국 1200여 기업과 기관이 1997년 유엔환경계획(UNEP) 산하 ‘Global Reporting Initiative(GRI)’와 ‘CERES’가 공동으로 작성한 지침서에 따라 자발적으로 기업별 지속 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하고 외부기관의 검증을 받아 대외에 발표하고 있다.

    2004년 10월 포스코의 지속 가능성 보고서를 검증한 호주의 회계감사 용역기관 Ernst & Young에 따르면, 매년 지속가능성 보고활동에 참여하는 세계 주요기업 대표의 94%가 이 활동을 통해 기업의 영업활동에 공적 이익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G1000(세계 1000대 기업) CEO들도 각종 지속가능 관련 계획을 실행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기업이윤이 희생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주주들의 주식가치가 높아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5년 동안 주주 참여 지속가능성 기업활동을 전개한 기업들의 평균 주식가치는 일반기업(19%)의 두 배가 넘는 43% 상승했다.

    그에 따라 미국이나 영국 같은 주요 선진국 정부도 삶의 질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를 개발하는 한편, 기업들에게 연차보고서의 일부로 환경과 사회적 리스크(risks)를 조사해 공표할 것을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필립스는 세계 각지의 5만여 협력사에 지속가능성 실천 보고활동을 권장하고 그에 따라 사업계약을 맺거나 갱신하고 있다. 그 결과 유럽에서는 윤리경영기금이 크게 늘어나 지속가능성 참여기업들의 신규 내부 투자자금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2조달러에 달하는 포트폴리오 자산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에 연계되고 있다.

    특히 널리 알려진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에 채택되는 기업은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한국의 삼성SDI가 그중 하나다. 이처럼 기업의 지속가능성 실천활동은 일과성 요식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인 발전과 정체성 확립을 위한 나침반 구실을 하고 있다.

    사과 안 열리는 ‘침묵의 봄’

    요즈음 서울은 해마다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2003년 한 해 동안 서울의 총 일조시간은 1449.7시간으로 하루 평균 3.97시간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 5년 사이 무려 31%나 줄어든 수치로 사과나무가 제대로 자라기 어려운 수준이라 한다. 서울이 바야흐로 ‘어둡고 우울한’ 도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에서 나타나고 있어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사과, 배, 복숭아 등 과실나무에 꽃은 피었으나 착과가 되지 않는 이상징조마저 나타나고 있다.

    최근 들어 부쩍 그 폐해로 인해 주목을 받는 황사현상도 심각하다. 몽골 고비사막과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는 인체와 농축산업, 의료 및 경제분야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 연간 12~97일에 달하는 황사일수의 증가로 조기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2310명이나 되고, 호흡기계통 질환 환자 수는 연간 18만6000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황사피해액도 연간 2000억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세먼지에 의한 대기오염이다. 2003년 크리스마스 무렵, 서울의 대기오염도 지표 가운데 인체에 치명적인 미세먼지 수준은 300ug/㎥을 돌파했다. 2004년 4월에는 황사현상까지 겹쳐 중화학물질로 코팅된 미세먼지 대기오염도가 유난히 심해서 미세먼지 농도가 500을 돌파했다. 선진국 주요도시의 미세먼지 농도수준이 대개 연평균 20∼30이고, 정부 허용기준이 70, 인체 유해허용한도가 150 수준임을 감안할 때 2004년 4월의 미세먼지 농도는 가히 살인적이라 할 수 있다.

    농도도 문제지만 빈도는 더 큰 문제다. 서울의 경우 사흘에 하루꼴로 미세먼지가 심해지고 있다. 대기오염이 심하기로 악명 높은 멕시코시티는 3년 전부터 미세먼지 농도가 150~300 수준을 넘으면 자동차 2부제 운행 또는 전면 운행중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과 서울대 연구팀의 2004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근 급격히 악화되는 대기오염으로 인해 수도권에서만 연간 1만1000명 이상이 조기 사망하고 그 피해액이 최대 1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국립환경연구원이 2004년 분석한 수치를 보면, 서울역 도로변과 정동 창덕여중에서 측정한 대기 중 다이옥신 농도가 울산, 안산 등 공단지역보다 높은 0.671pg(피코그램·1조분의 1그램)과 0.557pg으로 조사됐다. 전국적으로는 시흥시 정왕동(1.946pg)과 인천시 논현동(0.699pg)이 가장 높았다. 또한 2000년까지만 해도 연간 52회 정도 발령되던 오존주의보는 올 들어 100회를 넘어섰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던 경보발령은 이젠 부산, 대구, 울산, 전남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모두가 자동차, 특히 경유차량 증가 및 생활폐기물의 방기(放棄), 공장오염, 농약과용, 환경생태계 파괴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9위인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은 지난 9월 러시아의 가입으로 교토의정서가 2005년부터 발효될 만큼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해졌는데도 으레 그러려니 하며 무감각하다. 환경생태계 지구시계에 나타난 우리나라 환경시계 바늘은 2004년 현재 ‘밤 9시29분’을 가리키고 있다. 파국의 시간(밤 12시)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위험수위 다다른 ‘지속가능성’

    지난 30여 년 동안의 고속압축 경제성장으로 우리나라는 외형상 세계 140여 국가 중 GNP로는 11위, 무역액으로는 13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환경생태계 지속가능성과 사회경제적 지속가능성 면에서 살펴본 국민의 ‘삶의 질’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동의하기 어렵다면 다음과 같은 지수를 살펴보면 된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나라별 환경지속가능성지수(sustainability index)를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136위(2002년)로 최하위권이다.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뜻있는 한국 지성인 136인이 ‘136 포럼’을 결성했겠는가. 뿐만 아니라 국제투명기구가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국가투명도지수는 매년 떨어져 현재는 133개국 중 50위에 올라 있다. 국제사회에서 부정부패의 소지가 아주 높은 나라로 낙인찍힌 것이다.

    또한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 증가율이 가장 높고(하루 30명), 그중에서도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세계 최고(하루 10명꼴) 수준이다. 이혼율과 청소년 범죄율 역시 최고 수준이며, 교통사고율과 음주사고율도 가장 높은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 노사갈등과 기득권층의 도덕적 해이 및 가치혼란 현상도 심각해서 정치부패와 함께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세계 29위로 떨어뜨리는 쌍두마차 노릇을 맡았다. 기득권층과 지도층일수록 윤리의식이 퇴화하여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실종됨에 따라 상당수 중상층과 보수기득권층은 해외탈출에 나서고 있다. 사회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보수층과 기업이 양산된 결과다.

    우리 경제가 8년 전 1인당 1만달러 소득을 달성한 이래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이면에는, 이렇듯 지역간 계층간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불가역적인 환경생태계 파괴현상으로 국민의 일상적인 먹을거리(식량자급률 세계 최하위권인 27%)와 마실 물(오염도 20~40%), 숨쉬는 공기(서울의 대기오염도 세계 1위), 농약과 화학비료의 남용(세계 1위) 등도 삶의 질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국토의 난개발과 산천 오염의 심화를 부채질하는 개발시대의 국가경영 패러다임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여성 경제학자 조운 로빈슨은 “20세기가 지나기 전에 세계 각국은 무분별한 경제개발정책의 부작용으로 혹심한 빈부격차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환경생태계 오염과 자원고갈 현상에 부딪힐 것”이라며 이른바 ‘시장실패와 정책실패 현상’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 바 있다. 그 예언대로 지금 우리 사회 도처에선 인류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체제의 부산물이다.

    우리 사회가 지난 반세기 ‘한강의 기적’만을 자찬하며 미친 듯 달려온 경제개발과 수출드라이브 정책, 세계화의 이면에는 이렇듯 삶의 질 추락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지고 있다. 고속 경제발전 뒤안길에는 시나브로 레이첼 카슨 여사가 일찍이 경고한 죽음의 계절, ‘침묵의 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2만달러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는 새삼스레 ‘국민소득 2만달러’ 캠페인을 들고 나왔다. 1인당 GNP를 두 배로 늘리기 위해 겪어야 할 더 많은 환경생태·사회경제적 갈등을 해결할 방도는 무엇인지, 또 21세기의 화두인 삶의 질 향상과 지속가능성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 대신 개발주의 시대의 담론과 레토릭만이 난무하고 있다. 지나간 시절의 패러다임에 춤추듯 땅 투기와 난개발, 절대농지와 그린벨트 해제를 부추기는 정부 정책이 공공연히 발표되는가 하면 골프장 입국론마저 등장하는 형국이다.

    학계와 전문가집단도 입만 열면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좋은 단면을 강조하고 있다. 시장경제, 무역자유화, 세계화의 장점을 열거하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앵무새가 따로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누군들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이 좋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문제는 우리나라 학계가 시장경제냐, 반시장경제냐의 양자택일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애덤 스미스류(類)의 시장경제 예정조화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사회적·문화적·생태학적 삶의 질 문제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OECD 국가 중 유독 한국에서만 심화되는 시장실패현상과 경제정의, 사회정의, 환경정의의 실종이 그 결과다.

    (재벌)기업을 성토하는 국민정서가 한국에서만 유독 심한 까닭은 무엇이며, 각종 세계무역협상을 앞두고 자기 심장에 비수를 꽂아가며 항의하는 농민은 왜 한국 농업인뿐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 정부와 학계는 본질적인 원인진단과 처방을 내놓으려 하지 않고 있다. 시장경제, 자유무역의 장점이야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이제는 그 폐해와 부작용을 사전에 막고 줄이는 정책을 펴야 성장이 지속가능함을 깨달아야 할 시점이다. 사회지도층도 만연한 반기업정서 등 국민이 기득권층을 거부하는 원인이 무엇보다 자신들의 공동체의식 결여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실종, 그리고 일방적인 특권의식 때문임을 깨달아야 한다.

    0과 1사이에 답이 있다

    요컨대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정책이 도입되어 실시될 때마다 혜택을 입는 계층, 해를 입는 계층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힉스의 ‘보상의 원칙(the compensation principle)’과 롤스의 사회적·경제적 ‘최약자 보호원칙’에 바탕을 두고 사회정책을 운용해왔다. 혜택 받는 쪽과 해를 입는 쪽이 공존할 수 있게끔 제도적으로 균형 있게 그 혜택을 조정하고 특별히 피해자를 배려하는 기본원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능률 위주의 자유경쟁에서 탈락한 계층과 소외그룹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기본조건(즉 소득기회와 복지 및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정책적·사회적 배려도 형평성의 기본원칙으로 정착되어왔다. 또한 정책의 혜택을 크게 받은 기업일수록 앞장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약점과 모순점을 보완하는 공익적 기여활동에 참여했다. 앞서 소개한 투명성, 윤리경영,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성에 입각한 GRI 참여활동이 그 중요한 사례다.

    이와 같은 사회적 협약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이른바 만민을 평등하게 잘살게 한다는 사회주의체제를 지구상에서 몰아내는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유독 우리 학계와 경제계는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주의의 장점을 선전할 줄만 알았지 그 단점을 보완해 골고루 더불어 잘사는 지속가능사회 건설의 원칙과 처방을 마련하는 데는 아주 소홀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지속가능한 소비활동 등에 너무 무지했던 것이다.

    지식기반사회의 디지털 경제는 0과 1 사이에 0.1, 0.01 등 수백수천의 숫자가 있음을 인정한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사이에도 수없이 많은 ‘제3의 길’이 있으며, 무역자유화와 보호주의의 양극단 사이에도 수백수천 가지 상생의 방도가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이러한 가능성을 외면해왔다. 0과 1을 다양하게 결합·배열할 경우 수천수만의 윈-윈 전략을 창출할 수 있음을 고민하려 하지 않았다.

    경제성장을 도모하면서도 경제정의를 북돋우고 환경정의를 실천하는 길이 있음을 외면해선 안 된다. 21세기 디지털시대의 윈-윈 방식, 즉 상생(live and let live)의 원칙은 전부냐 전무냐, 또는 흑이냐 백이냐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 이 둘을 아우를 수 있는 제3의 길을 합의해 도출해내야 한다. 그 도출방식은 전통적인 절차민주주의 원칙인 3C, 즉 상식(Common sense), 토론(Conference), 양보와 타협(Compromise)의 정당한 절차를 존중하고 따르는 데 있다.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2004년 6월 현재 미국의 인텔과 제너럴모터스, 프랑스의 르노, 네덜란드의 필립스, 일본의 소니·도시바 등 42개국 1200여개 대기업과 기관이 이미 유엔환경계획(UNEP)의 GRI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상생의 길을 택한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선 2004년 현재 현대자동차와 삼성SDI , 포스코, 외국계 주류기업인 디아지오 등이 첫 삽을 떴고 곧 SK텔레콤이 참여할 것이라 한다. 숫자는 적지만 국제규범의 기업공헌활동에 첫걸음을 내디딘 매우 신선한 사례다. 물론 이보다 훨씬 앞서 사회 지속가능성 발전을 위해 조용히 실천해온 크고 작은 기업들(유한양행, 유한킴벌리, 교보 등)의 공도 적지 않다.

    이러한 변화의 확산은 종국에 각 기업이 국민기업으로서 사회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고 더욱 튼튼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업운영 패러다임의 개요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최근 전경련과 농협중앙회가 앞장서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1사 1농촌’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도 0과 1 사이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극단을 아우르고 그 타협점을 찾는 상생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더불어 함께 잘살자’는 지속가능 사회운동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보인다.

    “상속세를 더 많이 거둬달라”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본거지인 미국에서도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만 해도 전국적으로 반기업 정서의 파고가 드높았다. 대기업들을 가리켜 ‘강도 귀족들(robber barons)’이라고 했을 정도로 중소기업과 노동자 농민의 원성이 거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윤극대화 행위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기업이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기업활동의 투명성과 이윤 일부의 사회환원, 지속가능한 사회·환경분야에 대한 기여활동(경영방식)이라는 해답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부시 대통령 행정부가 집권 초기 대기업 오너들을 위해 당선 사은의 표시로 재산상속세를 인하해주려 하자,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회장, 인텔의 고든 무어 회장, 국제금융가 조지 소로스 회장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재벌 기업주들이 일제히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심지어 “상속세를 더 많이 거둬 부의 대물림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절세, 탈세, 차떼기의 우리 기업사회 관행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빌 게이츠 부부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4년 동안 세계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과 어린이들을 위해 보유자산 460억달러의 54%에 해당하는 250억달러를 기부했다. 고든 무어 부부는 70억달러를 기부했는데 이는 그들의 보유 자산의 144%나 된다. 현재 가진 재산보다 더 많은 돈을 사회에 기부한 셈이다. IMF 경제위기 때 한국에서도 악명이 높았던 조지 소로스는 자기 재산의 68%인 24억달러를 사회에 내놓았다. 아메리칸센츄리의 창업주 제임스 스토스 부부는 가진 자산의 2.7배에 해당하는 13억4500만달러를 사회공헌기금으로 기증했다. 일찍이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강조한 자본주의의 이상적 모습이다.

    미국 재벌 기업주들의 보편화한 사회공헌 기부정신은 빌 게이츠가 2004년 1월 파리에서 가진 ‘메트로’지와의 인터뷰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우리 부부는 건강·교육·연구 등과 관련해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분야를 잘 알고 있다. 이 분야에 지원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하며, 자기 전재산을 장차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세계 최고 갑부인 이 부부가 밝힌 사후 유산처리 계획이다. 세 자녀에게 도합 1000만달러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자선사업에 쓰겠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너무 많은 돈을 가진 채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그들의 장래에 별로 좋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재벌과 기업인 중에도 훌륭한 모범을 보인 기업인이 있었다. 문제는 그 수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점일 것이다.

    ‘한국판 지속가능한 뉴딜정책’

    새해 새 경영전략을 준비하는 정부와 기업, 특히 2만달러 소득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노무현 정부는 선진국들이 이미 지향하는 녹색GNP 혹은 통합국민회계방식의 정책을 새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책의 수혜자와 피해자를 골고루 배려하며 후손들이 누릴 삶의 질도 함께 고려하는 국가 경영목표와 폭넓은 정책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제 시대는 거시적 문제보다는 미시적 접근, 재무제표식 수익모델(효율·이윤)에 병행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경제·사회·환경정의 목표를 통합하여 실천하는 흐름이 대세를 이루어갈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접근방법은 갈등해소를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고속경제성장 정책의 의지가 강할수록 후세와 후손을 염두에 두는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발전계획을 세워야 한다. 일자리 마련이 긴급할수록 경제도 살리고 환경도 살리며 삶의 질을 높이는 통합적인 사고와 정책이 필요하다. 요즘과 같이 경제가 어렵고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는 투기와 환경파괴적인 방식을 넘어서는, 국민도 살고 기업도 살고 나라도 사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과 뉴딜정책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른바 지속가능한 사회의 건설이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산하와 수풀, 건강한 환경생태계를 보고 감탄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기에 치명타를 입었던 이들 나라의 환경이 오늘날과 같이 되살아난 것은 세계경제공황 무렵 각국 민관이 함께 시작한 공공근로사업을 통해서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930년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시작한 다목적 치산치수사업과 산하의 ‘Conservation’ 사업, 유럽의 자연(숲) 가꾸기 사업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는 이러한 ‘뉴딜’의 근본적인 성격이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한국판 지속가능한 뉴딜정책’의 하나로 새 일자리 창출을 겸한 ‘국토 살리기 국민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정부와 국민, 기업이 합심하여 10년 계획으로 국토대정화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쓰레기에 뒤덮여 생명의 지속성을 위협받고 있는 생태계를 되살리는 공공 프로젝트다. 전국의 산하를 뒤덮고 있는 각종 인공쓰레기를 치우고 국토를 정화하는 대대적인 공공근로사업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국가 만년대계를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전국 주요 산림지역에 광릉수목원과 같은 제2, 제3의 국립 수목원을 개설하고 각 도시와 마을을 푸르게 가꾸기 위한 도시녹화운동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안에는 일자리가 마련되고 환경을 살리며 후손들의 삶도 지키는 1석3조의 효과가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남북한이 서로 협력해 한반도를 푸르게 가꾸는 기반을 확고히 다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우리 세대가 맡아야 할 책무의 상당부분을 이루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통일과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진정한 한국판 뉴딜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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