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흔적없는 미아 700명, 미인가시설 3000곳에 분산 수용 의혹!

  • 글: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사진: 지재만 기자

    입력2005-05-24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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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적없는 미아 700명, 미인가시설 3000곳에 분산 수용 의혹!
    올해 초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출한 유부녀 김모씨는 동거 중인 남자를 붙잡기 위해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김씨로부터 수천만원의 사례금을 약속받고 고용된 심부름센터 직원은 주택가에서 생후 70일된 아기를 안고 길을 가던 주부를 납치해 아기를 김씨에게 넘겨주고 엄마는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 아기를 넘겨받은 김씨는 버젓이 제 자식인 것처럼 속여 7개월여 동안 키웠다.

    “도연아, 너무 보고 싶다”

    이 소식을 듣고 머리끝이 쭈뼛 서는 섬뜩함과 충격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들이 있다.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 수년째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는 미아 부모들이다.

    5년 전 동네 놀이터에서 딸 준원이(당시 6세)를 잃은 최용진(44·전국미아실종자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대표)씨는 “우리 준원이도 누군가 몰래 데려가 기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선 지난 5년간 전국의 수많은 보호시설을 찾아다녔는데 흔적조차 없을 리 없다”며 침통해했다.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이른 아침부터 나들이 인파로 붐비는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엔 두 개의 표정이 공존했다.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각양각색으로 펼쳐지는 행사에 한껏 들떠 있는 한편에서 미아 부모들은 아이의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든 채 나들이 나온 가족들의 눈길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서울 동부경찰서가 마련한 ‘미아보호소 설치 및 미아방지용 이름표 달아주기’ 행사에 참석한 ‘전국미아실종자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회장·나주봉, 이하 ‘시민의 모임’) 회원 20여 명은 본 행사가 끝나자 전단지를 나눠주며 미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사랑하는 나의 딸 예지야! 꿈속에서도 만나보고 싶은데, 예지야, 우리 딸아, 제발 엄마 품으로 돌아와다오. 어느 하늘 아래 있는 거니, 예지야!’ ‘도연아, 너무 보고 싶구나. 불쌍한 내 아들아, 꼭 살아 있어야 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내 인생의 전부인 내 아들 하늘아! 정부는 내 아들을 찾아내라. 선진국에서 미아 실종이 웬 말이냐?’….

    피켓에 쓰인 글귀들이다. 행사에 참석한 세 살짜리 여자아이는 언니의 사진이 붙은 피켓을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사랑해”라고 말해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우리나라에선 2001년 이후 해마다 3000여 명의 미아가 발생하고, 48시간 이내에 부모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동이 20명 안팎에 이른다. 경찰청 미아찾기센터(센터장·박홍식 경감)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한 해 평균 3300여 명의 미아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부모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미발견 미아는 2000년 7명, 2001년 6명, 2002년 9명, 2003년 5명, 2004년 1명으로 줄었다. 한편 2003년부터 집계한 장애 미아(정신지체자, 치매 노인 포함)는 2003년 1809명에서 2004년 5196명으로 1년 만에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여태 찾지 못한 장애 미아는 2003년 16명, 2004년 92명에 달했다.

    아이들은 깊은 산속에도 있다

    보건복지부가 위탁 운영하는 한국복지재단 산하 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소장·정경웅)에 따르면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집계된 장기 미아 수는 총 680명에 이른다. 반면 경찰청이 집계한 같은 기간의 장기 미아 수는 126명. 이를 중심으로 지난 1년간 일제 수사에 나선 경찰은 지금까지 70명의 미아를 발견해 부모 품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56명은 아직 장기 미아로 남아 있다.

    두 기관의 장기 미아 집계수치가 차이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미아찾기센터 박홍식 센터장은 “경찰청은 장애 미아를 제외한 정상 미아 기준을 8세 이하 아동으로 규정하는 반면 보건복지부 위탁기관은 아동복지법에 근거를 두고 18세 미만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 박은숙 팀장은 “장기 미아 680명 중 현재 부모가 아이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경우는 180여 명이다. 나머지 부모는 미아 발생 신고 이후 연락이 두절되거나 아이 찾기를 포기한 경우로 보인다”며 안타까워했다.

    미아 부모들이 추정하는 장기 미아 수는 정부기관 통계와 차이가 크다.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미아 부모들이 전국에 산재한 미인가 보호시설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다. 아마 3000곳쯤 될 것이다. 그런데 미인가 시설 대부분은 무연고 아동에 대한 신상카드를 센터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있다. 강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파악한 미신고 아동보호시설은 130개에 불과하다. 우리가 파악한 수치와 큰 차이가 있다. 파악되지 않은 미신고 시설에 수용된 아동이 얼마나 많겠는가. 깊은 산속의 종교시설 같은 곳에서 보호하는 아동은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복지시설과 관련한 보건복지부 통계는 다음과 같다. 신고 시설의 경우 전국 279개 아동보호시설에서 1만8818명이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시설 238개소에는 1만8759명, 정신요양원 55개소에는 1만2624명이 있다. 2004년 4월 파악한 미신고 시설은 총 1200개소. 이 가운데 아동보호시설은 131개로 1620명의 아동이 이곳에 있다. 이 밖에 미인가 장애인시설 392개소에 7371명, 정신요양원 19개소에 718명이 있다.

    미아 최준원양의 아버지 최용진씨는 “최근 미아 상봉 사례를 보면 보호시설이나 요양원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며 “아이를 불법으로 입양해 기르다 발견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씨에 따르면, 문제는 개인이 양육할 목적으로 미아를 데려다 기르는 경우 절대 그 양상이 드러나지 않는 데 있다는 것. 그는 지난해 미아 불법 양육자 자수기간에 신고한 10여 명의 사람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확신했다.

    눈앞에 두고도 못 찾아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십수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미아 사진을 뿌려온 부모들을 비롯해 정부기관과 기업,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된 수많은 아이가 마치 증발한 것처럼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주봉 회장의 분석은 이렇다.

    “시설에 들어온 아이의 신원을 작성할 때 담당자가 임의로 판단해 아이의 나이나 이름이 전혀 엉뚱하게 기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아는 물론 초등학생쯤 돼도 집을 잃을 당시의 충격으로 이름과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설 담당자가 이런 아이들을 상대로 옷차림이나 행색만 보고 고아나 버려진 아이로 기록하면 미아 신고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아홉 살 난 딸이 실종된 지 10년 만에 가족 앞에 나타나 극적으로 상봉한 신모(48)씨. 경찰에 신고하고 전국을 찾아 헤맸지만 딸을 찾지 못했던 신씨는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를 알게 됐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는 혹시나 하고 들어갔는데, 그 사이트에서 어릴 때 모습 그대로인 딸의 얼굴을 찾아냈다. 사진과 함께 ‘무연고 아동’으로 등록돼 있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너무나 놀라 심장이 뛰었다. 그런데 옆에 적힌 신상을 보니까 아이 이름만 같고 나이나 전화번호, 학교, 실종 장소 같은 기록은 모두 달랐다.”

    혹시 얼굴이 비슷한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센터에 전화를 걸고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시설로 달려간 신씨. 그는 한눈에 자신의 딸을 알아봤지만 열아홉 살의 처녀로 훌쩍 커버린 딸은 신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빠’ 소리도 하지 않다가 나중에 유전자 검사 결과가 밝혀지자 그때서야 ‘아빠’라고 불렀다. 가슴이 미어졌다.”

    신씨를 놀라게 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와 떨어진 딸이 어떻게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집 전화번호도 모르는지, 다니던 학교와 살던 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를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다 자랐을 아이가 집으로 전화 한 통 하지 않아서 처음엔 아이가 어디선가 우리보다 더 좋은 가정, 더 좋은 사람을 만나 돌아오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 있는 곳이 더 편해서 우리를 찾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미아가 될 때의 충격으로 자신의 이름만 빼고 부모 이름, 학교, 전화번호 등 신상과 관련한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신씨는 “아무리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는 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찾지 않으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이내 현실에 적응한다. 그 때문에 되도록 빨리 아이를 찾아야 한다. 인가시설이든 미인가시설이든 무연고 아동에 대한 유전자 검사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세 이하 아동만을 미아로 분류하는 법률 규정도 바뀌어야 한다.”

    최용진씨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때 미아가 된 아이가 17세 때 부모를 만났는데, 당시 아이는 경기도 파주의 한 시설에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곳에 네 번이나 갔는데 아들을 못 찾았다. 이름과 나이가 다 바뀌어 있다 보니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찾으러 가도 신상카드 열람만 가능할 뿐 아이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 신상카드에 사진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미인가 시설은 신상카드도 보여주지 않고 문 밖에서 쫓아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흔적없는 미아 700명, 미인가시설 3000곳에 분산 수용 의혹!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 구내. 앵벌이들의 집결장소인 이곳에서 조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전철에 태워 보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당시 부모를 만난 아이는 “초등학생 때는 겁에 질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다 커서 생각났지만, 그때는 ‘부모가 날 버렸는데 원래 이름으로 바꾸면 뭐하나’ 하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지난 5월 초 국회를 통과한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대상을 넓혀 실종신고 당시 14세 미만 아동과 나이에 상관없이 정신지체나 발달장애,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인가 시설과 미인가 시설을 구분하지 않고 무연고 아동 신고를 강제했다.

    범죄에 연루되는 미아들

    최근 우리 사회에선 미아 부모들이 끝끝내 피하고 싶은 상황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실종된 미아가 어느 날 변사체로 발견되어 부모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언론에 보도된 18세 미만 실종미아 사체 발견 사례만 20건이다. 특히 2년 전 잇따라 발생한 포천 여중생 엄모(당시 15세)양 납치 살해 사건과 부천 초등생 윤모(당시 13세)·송모(당시 12세)군 살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지난해에는 실종 당시 네 살이던 이모군의 변사체가 8년 만에 경기 안산 소재 한 유치원의 정화조에 거꾸로 처박힌 채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8년간 암흑 속에 묻혀 영원히 실종될 뻔했던 아이는 ‘천만다행’으로 청소 도중 정화조가 막히는 바람에 발견됐다.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발견된 두 10대 여학생 사체는 더 끔찍했다. 15세 여중생 조모양은 성폭행을 당한 뒤 목졸려 살해된 시신으로 국도변에서 발견됐다. 18세 여고생 오모양은 얼굴이 불타고 하의가 반쯤 벗겨져 모래에 반쯤 덮인 상태로 발견됐다.

    실종 미아 사체 발견 소식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미아 부모들은 가슴이 오그라든다. “아이를 영영 못 찾는 게 아닌가 싶을 때는 시신이라도 나왔으면 하다가도, 막상 어디서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발 내 아이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 된다”는 것.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는 장기 미아를 두고 관련 기관이나 부모가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약취, 유괴 또는 납치에 의해 사라진 아이들이 각종 범행에 이용되거나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발생한 ‘앵벌이 사건’은 이런 우려를 사실로 입증해 보였다.

    2002년 1월 당시 11세의 나이로 미술학원에 간다며 집을 나선 김모양은 실종 2년여 만에 자신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딸이 어느 날 불쑥 눈앞에 나타나자 김양의 어머니는 말문이 막혔다. 수사 결과 김양은 스님으로 위장한 김모씨에게 칼로 위협당해 끌려가 돈벌이 도구로 이용됐다. 사건을 담당한 대전 둔산경찰서 형사계 김용욱 반장은 “범인 김씨는 자신에게 여자가 생겨 아이가 부담스러워지자 몰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아이를 버스에 태워 보냈다. 이때도 아이에게 절대 어디서 버스를 탔는지 말을 못하게 할 만큼 지능적이었다”고 말한다.

    김씨에게 끌려간 김양은 대전 소재 원룸에 감금되어 머리를 빡빡 깎이고 승복이 입혀진 채 전국 곳곳을 다니며 김씨가 그린 달마도를 팔아야 했다. 어느 날 김씨의 학대와 구타를 견디다 못한 김양이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곧바로 붙잡힌 김양은 심한 매질과 함께 ‘산에 묻어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후 김양은 김씨가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온 후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며 힘들어하던 김양은 현재 학교에 다니며 악몽 같은 지난 기억을 지우려 애쓰고 있다.

    1년 넘게 정신과 치료

    낯선 사람에게 유괴 또는 납치되어 온갖 학대에 시달리다 집으로 돌아온 사례는 또 있다.

    2002년 7월 집 앞 놀이터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사라진 정모(당시 5세)군은 4개월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정군을 유괴해간 사람은 점을 봐주며 자식 없이 살던 할머니였다. 노부부만 사는 집에 낯선 아이가 나타나자 궁금해하는 방문객에게 할머니는 “손자인데 며느리가 아파서 잠시 와 있다”고 둘러댔다. 외출할 때마다 아이를 방 안에 감금했던 부부는 미아찾기 방송을 통해 정군의 얼굴이 공개되자 불안한 나머지 아이를 유괴한 장소에 데려다놓고 사라졌다. 정군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유괴 당시의 공포와 감금당한 기억으로 분리불안증세를 보여 1년 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서울에서 특수학교에 다니던 장성길(당시 11세)군은 방학 동안 적응훈련을 위해 경기 양평의 한 어린이집에 다녔다. 이곳에서 성길이는 자신을 보살피던 도우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라져 6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자폐아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 윤씨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성길이를 찾아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흔적없는 미아 700명, 미인가시설 3000곳에 분산 수용 의혹!
    “정신병원과 요양원, 장애아 보호시설 등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지만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장애아를 어느 집에서 불법으로 양육할 리도 없고, 어디 외딴 섬 같은 데 끌려가서 강제노역이나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강원도나 어디 깊은 산골 같은 데에서는 개를 대량으로 키우는 곳이 많다. 마을과 떨어져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이런 곳에서 단순노동을 하는 장애인이 많다고 들었다. 염전 같은 곳에도 있다고 한다.”

    나주봉 회장은 “외딴 섬으로 끌려가 멍텅구리배 같은 곳에 잡혀 있는 경우가 있을 것으로 본다. 10여 년 전 내가 미아 찾기에 발벗고 나섰을 때 실제 목격한 경우도 많다. 한동안 새우잡이 배다 뭐다 해서 인신매매로 떠들썩하지 않았나. 요즘은 뜸하긴 하지만 틀림없이 지금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을 것이다.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장애아에 비해 자폐증이나 정신지체를 앓는 장애아는 대체로 힘이 세기 때문에 충분히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발은 있는데 아이들은 없다?

    성길이 어머니 윤씨는 요양원 같은 시설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신원미상의 아이가 수용되면 정부에서 1인당 월 100만원가량의 보조비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상을 공개하지 않고 숨겨두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은 장애아를 둔 윤씨뿐 아니라 실종된 아이의 부모 대부분이 품는 의심이다. 수년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수백명의 미아 부모들이 “미인가 시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길을 터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주봉 회장은 2년 전 경험한 황당한 사례를 털어놓았다.

    “전단지에 나온 실종 미아와 흡사한 아이를 보호시설에서 봤다는 제보자의 말을 듣고 서둘러 찾아갔지만, 시설 원장은 전단지를 내밀자마자 나와 아이 부모를 밀치고 문을 걸어 잠갔다. 원장은, 여기에는 부모가 버린 아이나 어려운 가정에서 잠시 맡긴 아이밖에 없다. 외부인이 들어오면 아이들이 불안해한다고 둘러댔다.

    할 수 없이 가까운 파출소로 가서 경찰관을 대동하고 다시 찾아갔다. 그제야 원장은 마지못해 문을 열어줬는데 수십 켤레의 신발만 남아 있고 그전에 봤던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시설에 없었다. 그 사이 어디로 아이들을 빼돌린 것이다. 그 상황에선 경찰도 뾰족한 수가 없다. 미아 부모들은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

    이에 대해 경찰청 미아찾기센터 박홍식 센터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정부의 관리와 감독을 받지 않는 미신고 시설은 시설의 장이 스스로 개방하지 않는 이상 경찰도 강제로 들어갈 수 없다. 굳이 미아를 확인하려면 영장이 필요한데 그곳에 아이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나 범죄혐의 없이는 영장을 청구할 수 없다. 설사 청구한다 해도 기각당한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해 11월부터 적용되는 법안은 관련 공무원이 필요에 의해 조사할 수 있도록 강제규정을 두고 있다. 만약 규정을 어길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벌을 받는다.”

    지난해 경찰청은 전국 14개 지방경찰청에 장기 미아 추적 전담반을 발족하고, 휴대전화를 활용한 미아 찾기와 DNA를 활용한 미아 찾기, 미아 등 불법 양육자 자수기간을 설정해 신고를 받는 등 장기 미아 추적에 경찰력을 집중해 120여 건에 달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도 단서 하나 없이 수년째 발견되지 않는 장기 미아를 두고 부모들의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인신매매와 장기(臟器) 밀매, 아동 밀매 같은 강력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 지난해 대전을 중심으로 일명 ‘장기 밀매 괴담’이 빠르게 퍼져 관할 경찰서가 진상조사에 나서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초등학생을 납치해 장기를 떼낸 뒤 버렸다”는 소문이 초등학생들 사이에 퍼지면서 부모들이 불안해했지만 조사 결과 해프닝으로 끝났다.

    신장(腎臟) 한 쪽 없이 돌아온 아이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한 제보자에게서 이와 유사하지만 좀더 구체적인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서울에서 10대 중반의 장애 미아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3개월여 만에 몸이 바짝 마른 채로 집에 돌아왔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를 목욕시키면서 옆구리에 난 수술자국을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가 검사해 신장 한 쪽이 없어진 걸 알았다. 어머니는 그 사실을 경찰에 알려야할지 고민하다 혹시 주변에서 범인이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지, 그나마 아이를 살려 보냈으니까 그냥 조용히 덮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신고하지 않았다.”

    우연히 이런 사실을 안 B씨는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사건을 추적, 아이가 다닌 학교와 나이는 알아냈지만 부모는 만나지 못했다. 아이가 돌아온 직후 다른 지방으로 이사한 사실까지만 알아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취재 도중 만난 한 미아 아버지는 아동 해외 밀매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미아 찾기 방송이 나가거나 미아 사진이 인쇄된 전단지가 뿌려지면 한 일주일간 아이를 봤다는 제보가 쏟아진다. 2000년 9월경에 30대 초반의 한 남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서 우리 아이를 봤다는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제보자는 어쩌면 우리 아이가 해외로 팔려나갔을지 모른다고 얘기하면서, 불법 아동밀매 조직이 국내에 있고 루트를 잘 아는 관련 기관 사람들이 연계돼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황당한 얘기로 치부했지만 ‘아이가 요즘 3000만원에 팔리는데 그전까지는 2700만원이었다’는 등 워낙 구체적인 얘기를 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방송에 나와 목소리만으로라도 인터뷰를 해달라, 실종 미아들 행방을 알 수 있게 도와달라고 사정했더니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며 거절했다.”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입양 대상이 미성년자일 경우 반드시 부모의 동의를 얻도록 되어 있지만, 입양특례법이 개정되기 전엔 많은 미아가 ‘고아’로 포장되어 해외로 입양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미아 부모들이 정부에서 입양기관의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사진을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이번에 새로 마련된 법안에서 이 부분이 빠졌다”며 아쉬워했다.

    미아 신고 즉시 초동수사 필요

    최근 경찰청과 SK텔레콤은 지난해부터 실시해온 ‘휴대전화를 활용한 미아 찾기’ 제도를 올해에는 가출 치매노인 찾기로 확대, 시행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이금형 과장은 늦게나마 미아보호법이 통과돼서 다행이라며 새로운 법이 시행되는 올해 말부터 전국에 산재한 요양원을 비롯해 보호시설 등 미인가 시설을 빠짐없이 뒤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유전자검사를 통해 장기 미아를 하루빨리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이 과장은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 대해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밝혔다.

    “정상 미아의 경우 48시간 이내에 부모를 찾지 못하면 일시아동보호소로 보내지는데, 여기서 대부분의 아동이 부모 품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장애 미아를 일시 보호할 시설은 따로 없어 48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장기 보호시설로 보내진다. 그런 까닭에 장애 미아를 찾기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장애 미아를 보호할 일시보호시설이 필요하다. 또 미아 문제는 예방과 관리 못지않게 미아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데 정작 ‘찾기’ 시스템을 전담할 부서 설치가 이번 법안에 빠졌다.”

    도시빈민층 주택가에서 빈발하는 미아 중 장기 미아가 적지 않다. 부모가 모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생계에 매달려 미아 찾기에만 전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부천 여중생 살해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인적이 드문 치안 취약지역에서 발생하는 아동 실종 사건도 적지 않다. 이 지역을 대상으로 미아 예방 차원에서 스쿨버스 제도 도입 등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

    2003년 경기도 광명시 집 근처에서 실종됐던 전모(당시 8세)양은 몇 달 뒤 물웅덩이에서 시신으로 떠올랐다. 당시 “20대 초반 남자와 함께 사라졌다”는 또래 목격자의 진술이 있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아이는 납치 후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양은 이미 2년 전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지만 미아 찾기 인터넷 사이트에는 아직도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미아 부모들은 “실종기간이 길어질수록 아이가 살아 돌아올 확률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기 미아 부모들은 아예 자녀 찾기를 포기한다. 따라서 미아 신고 즉시 철저한 초동수사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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