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때 스페인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적은 있지만 중남미 국가에는 처음 가보는 거예요.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일하러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고 흥분돼요. 가보고 싶은 나라들을 다 다녀보고 싶어요. 또 틈틈이 중남미 미술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공부해볼 계획입니다.”
덕성여대 스페인어과 졸업 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박씨의 원래 꿈은 전문 번역가가 되는 것이었다. 동화책 두 권을 번역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교부 유급 인턴으로 채용된 후 스페인어로 된 각종 자료 수집, 서신 번역, 국제 포럼 연설문 작성, 주요 인사 통역 등을 담당하며 시야를 세계로 넓혔다.
“주 업무는 업데이트되지 않은 통상자료를 그 나라 통계청이나 중앙은행 홈페이지에서 찾아 정리하는 거예요. 큰 행사가 있으면 행사 준비에 전념하고요.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남미를 순방할 때 남미 관련 자료란 자료는 모두 찾아 정리해 넘겼죠. 요즘은 5월21일 국빈 방문하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맞이에 정신없이 바빴어요.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지만, 스페인어와 비슷해 웬만큼 읽고 쓸 수 있거든요.”
박씨는 페루 국회의원들이 방한했을 때 통역을 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 페루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고 한다. 외신에서 그 뉴스를 봤을 때 마치 친지에게 좋은 일이 생긴 듯 무척 기뻤다고. 또 그들 중 한 명과는 페루의 국민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샤를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좋아하는 작가지만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아 아쉬웠는데, 한 의원이 그 작가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라고 해 무척 반가웠어요. 그런데 그 작가를 보는 시각이 저와 좀 달라 장시간 ‘논쟁’을 벌였죠. 아주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스페인어 원서 무작정 읽어
지금은 원어민 수준에 가깝게 스페인어를 구사하지만 박씨는 대학 입학 전까지 스페인어를 공부한 적이 전혀 없었다. 학부제로 대학에 들어온 후 입문 강의를 들은 것이 스페인어와의 첫 만남이었다. 영어는 지긋지긋하게 싫었는데, 이상하게도 스페인어는 쉽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스페인어로 된 동화책부터 집어들었다. 조금씩 실력이 나아질수록 아동용에서 청소년용으로 옮겨갔고, 스페인어를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까지 읽게 됐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대학에 들어와 접한 스페인 문학이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사실 언어만 배울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스페인어 원서를 많이 읽을 필요는 없었죠. 스페인 문학은 현실과 상상,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 ‘마술적 사실주의’ 경향을 보여요. 또 남미를 포함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워낙 많은 만큼 훌륭한 작가도, 뛰어난 작품도 많죠.”
문학작품을 읽어 실력을 쌓은 박씨는 1년간 스페인 마드리드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오픈 마인드’에 말하기 좋아하고 정열적이며 잘 노는 스페인 사람들과 사귀는 것은 말을 배우기에 더없이 좋았다. 게다가 그가 다닌 대학 부설 어학원에는 유럽 각지에서 온 학생이 많았는데, 그들의 ‘고향’으로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때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도 이메일이나 전화로 연락한다. 또 대학 때 복수전공한 서양미술사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스페인어 위성방송을 들으며 언어 감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외교부 인턴을 하면서 외교 문서나 국제회의에서 사용하는 ‘고급 언어’를 익힐 수 있었다.
현대종합상사에 근무하는 아버지는 박씨가 어릴 때부터 “영어는 기본이고, 외국어 하나쯤은 더 할 줄 알아야 국제무대에서 살아남는다”며 “외국인 친구도 많이 사귀고 여행도 많이 다녀라”고 충고했다. 아버지는 지금도 박씨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끔 힘 닿는 데까지 도와준다.
“제가 아는 스페인어 원어민은 ‘세상 어디를 가나 스페인어를 쓰는데, 영어를 왜 배우냐’고 했어요.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그만큼 대단해요. 그 얘기를 듣고 우리말을 소홀하게 여겨온 저 자신을 반성했죠. 사실 한국어를 잘해야 외국어도 잘할 수 있어요.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해야 세계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고요. 앞으로 어떤 일을 맡든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