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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파란의 ‘방랑주먹’ 방배추

“살인 빼고는 안 해본 짓 없고, 북극 빼고는 안 가본 곳 없수다”

  • 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파란의 ‘방랑주먹’ 방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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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의 ‘방랑주먹’ 방배추
“50년 전만 해도 주먹세계가 요즘 같지 않았어. 싸움에 지면 깨끗하게 승복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무조건 형님으로 모셨어. 1대 1로 대결하지 떼거리로 달려들지 않았다고. 영웅끼리 만나서 자웅을 겨룬다고 할까. 삼국지 같은 싸움이고 뒤가 아주 깨끗했어. 요즘은 칼이 발달해서 찌르면 되니까 주먹이고 뭐고 상관없게 돼버렸잖아. 짧은 시간에 세상이 달라지는 건 좋은 게 아냐. 뭐든 천천히 변해야 하는데 말이야.”

주먹 방배추가 싸움에 진 건 지금껏 딱 한 번뿐이다. 17대 1의 불리한 대결이었고 그것도 뒤에서 벽돌로 머리를 후려치는 바람에 정신을 잃어서 그런 거지 정식으로 앞에서 주먹을 휘둘렀다면 결코 질 싸움이 아니었다.

“내가 미련해서 암만 싸움이 불리해져도 도망을 갈 줄 몰라. 도망가는 대신 ‘그래 오늘 내가 죽는 날이구나, 이왕 죽을 바엔 남자답게 멋있게 죽자’는 마음을 딱 먹어. 내가 그렇게 자학적인 구석이 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마음먹고 주먹을 날리면 상대방은 몇 미터 날아가서 뻗어버리는 거지. 우스운 일도 많아. 날 앞에 두고 지가 배추라고 하는 자를 평생 7~8명은 만났을 걸. 꺼덕거리면서 길을 막고 ‘너 나 몰라? 나 배추야!’ 이러는 거야. 합기도, 태권도, 격투기 합해서 20단이 넘는다는 놈도 겁날 게 하나도 없지. 나보다 센 놈이 나를 팔고 다니겠어요?

첨엔 왜 이러십니까, 그러면서 물러서지. 뒷주머니에 포켓북이나 꽂고 다니고 얼굴이 희고 그러니까 내가 무슨 책상물림처럼 보이나 봐. 따귀를 치고 멱살을 잡아뜯고 별짓 다하는 걸 가만 보고 있다 정 참을 수 없으면 주먹을 올리는데…. 그런 코끼리만한 놈들도 단 한 방에 뻥뻥 나가떨어지는 거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거지. 뛰어난 야구선수는 방망이에 공이 맞을 때 홈런인 줄 미리 안다더군. 주먹이 들어가는 감으로 이 놈이 한방에 뻗겠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거든.”

백기완한테 뺨 맞고 친구 돼



백기완 선생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의 핵심이다. 열아홉에 백기완을 만나 지금껏 의기투합하며 지낸다. 자신의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꿔놓은 친구이고 스승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전쟁 끝난 직후 경신고에 다시 가서 역도부를 만들어 건들거리고 다니는데 주변에서 자꾸 백기완이를 만나보래. 찾아갔지. 갔더니 눈깔에 빛이 나면서 쳐다보는데 만만찮아. ‘배추, 너 세다면서? 혼자서 몇 놈이나 자신 있냐?’ 그래. ‘한 열 명은 문제없지’ 했더니 이 자식이 대번에 내 귓방맹이를 올려 붙인단 말야. 조선 천지에 내 또래 중 날 때리는 놈은 아무도 없었거든. 그러면서 ‘너하고 안 놀아. 가, 이 새끼야’ 이런단 말야. 하도 같잖아서 가만 있었더니 목소리를 척 깔면서 ‘임마, 사내자식이 한번 소리를 지르면 삼천만이 울고 웃어야지, 기껏 열댓 명이나 패면서 힘쓴다고? 넌 조자룡이만도 못해, 새끼야’ 이러는 거야.

뭐, 아프지는 않았어. 그저 좀 따끔따끔하고 그랬어. 주먹이 세련되고 힘을 제대로 쓰는 놈 같았으면 내가 반 죽여놨지 그냥 두나. 이런 맹랑하고 괘씸한 놈을 봤나 싶으면서 일단 뒤돌아 나왔어. 그런데 집에 와서 가만 생각해보니 그 말이 옳은 것 같아. 열댓 명이나 패갖고 무슨 소용 있겠냐, 그 말도 옳아. 이튿날 다시 갔지. 가서 꼬리를 내리고 ‘같이 놀자!’고 했지.”

옆에서 본 백기완은 인간이 어찌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콩을 튀겨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먹는 게 밥이고, 책을 읽으며 길을 걷느라 전봇대에 부딪혀 걸핏하면 코피를 흘렸다. 하루에 영어 단어를 100개 외고 수학문제를 100개씩 풀었다. 초등학교 5학년 중퇴 학력으로 영수학원 영어 선생 노릇을 했다. 나이는 한 살 어렸지만 친구라기보다 스승이었다.

백기완과 어울려 학생자진녹화대, 자진계몽대를 조직해 헐벗은 산에 숱한 나무를 심고 송충이를 잡고 농촌계몽을 다니며 청소를 하고 한글을 가르치고 영농법을 강의했다. 그러다 보니 장준하, 함석헌, 계훈제 선생과 만날 일도 자주 생겼고, 전국에 퍼져 있던 반독재·민족운동 하는 사람들과 서로 긴밀히 얽혔다. 돈은 최소한 먹고살 만큼만 벌고 나머지 정열은 모조리 사회에 바치면서 사는 방식에 공감했다.

“난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

방배추 선생은 그때 받아들인 이데올로기를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있다. 평생 노동판에 몸을 굴리며 정신의 연단을 멈추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폐해에 물들지 않으려 애썼다. 돈을 좇지 않고 지위를 탐하지 않는 데 따른 자유를 누렸다. 곤궁했지만 자랑스럽고 소리 높여 다른 사람을 꾸짖어도 부끄러울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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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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