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서평

함께 살지 않으면 함께 죽는다! ‘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 글: 심경호 고려대 교수·한문학sim1223@korea.ac.kr

함께 살지 않으면 함께 죽는다! ‘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2/2
부족 문화 짓밟는 문명

하지만 이런 섬뜩한 이야기를 전하는 저자의 말투는 고발이나 폭로의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문명과 도시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성토하려는 노골적인 의도도 없다. 현학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박학하고, 분석적이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내는 저자의 차분함은 문명이 처한 위기의 해법을 제시하는 대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의 해법 자체가 요란스럽지 않고 무척 차분하다. 문명과 야만, 글로벌과 로컬은 서로 대립하기보다 필요성을 인정하고 각각 제 몫을 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는 혼자 출발하는 법이 없다. 자신의 트럭 가득 사람들이 올라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늘한 해질녘이 되면 길을 떠난다. 차비를 받아 용돈을 챙기려고? 운전사가 자비로운 사람이라서? 아니다. 운전사에게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얻어 타는 사람은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트럭 운전사는 그들을 더 필요로 한다. 이들이 트럭을 밀어주어야 모래언덕과 구덩이를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없으면 운전사는 절대로 사막을 건너가지 못한다.”

여기서 트럭을 문명으로, 사막을 야만으로 보면 알기 쉽다. 문명이 야만을 올바로 상대하려면 트럭이라는 기계의 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트럭은 강하지만 그 강함만으로는 사막의 부드러운 모래언덕을 넘을 수 없다. 문명이 앞길을 헤쳐 나가려면 문명 자체의 동력 외에 트럭에 올라타는 사람들로 상징되는 부족 문화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상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서로 의지하는 것이 바로 문명과 야만의 올바른 역할 분담이다. 그런데 현재 문명의 위기는 바로 문명을 생존하게 해주는 부족 문화를 문명이 짓밟는다는 데 있다.



문명을 무기가 아닌 도구로!

글로벌화와 로컬화의 대세는 잘잘못을 따진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문명은 갈수록 글로벌화하고 야만은 갈수록 로컬화한다. 이 흐름이 언젠가 멈추고 양자가 바람직스러운 균형을 이룬다면 문명은 존속할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문명은 야만을 파멸시키는 동시에 그 자체도 파멸될 것이다.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라.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켜라.”

2500년 전의 노자(老子)와 50년 전의 비트겐슈타인이 한 말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는 딜레마를 보여준다는 점에 공통분모가 있다. 그러나 노자는 도(道)를 말할 수 없다 하면서도 말했으며, 비트겐슈타인은 침묵을 지키라면서도 말했다. 야만과 문명의 관계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환경의 일부이면서도 환경을 제어할 수 있는 특이한 존재다. 문명에도 이런 관계를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문명은 야만을 사납게 다스리고 윽박지르면서 발전해왔지만, 지금이라도 사하라 사막을 오가는 트럭 운전사의 지혜를 깨우친다면 야만이 문명의 생존에 필수적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의 손에 문명이라는 무기가 쥐어졌다면 그걸 팽개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기보다 그 무기를 도구로 바꿔 문명에 주어진 본래의 자정 능력을 소생시키는 게 올바른 길이 아닐까.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신동아 2005년 7월호

2/2
글: 심경호 고려대 교수·한문학sim1223@korea.ac.kr
목록 닫기

함께 살지 않으면 함께 죽는다! ‘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댓글 창 닫기

2020/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