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스트엔 규정 대신 관행만 존재…최고법무책임자 둘 것
- 민영화는 재원 다양성 확보하려는 ‘햇볕정책’
- 애국심? 그건 ‘주인 없는 조직’에서 돈 유용하기 위한 트릭
- 카이스트가 한국경제에 어떤 극적 효과 가져다줬나?
- 내 개혁의 모델은 캘리포니아주립대
- 과학자의 연구활동은 자신과 유명세 위한 것
●1950년 미국 캘리포니아 비세일리아 출생. <br>●UC버클리대 학사(수학·물리학), MIT대 석·박사(물리학) <br>●1979~82년 벨 연구소,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 근무<br>●1982년 노벨상 수상 논문이 된 ‘양자분수홀 효과’ 발표<br>●1998년 노벨물리학상 공동수상<br>●現 스탠퍼드대 교수(휴직 중), 카이스트 총장
1년 반 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국에 온 로버트 러플린(55) 한국과학기술원(이하 ‘카이스트’·KAIST) 총장이 바로 그 차이를 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취임 직후 “탈산업사회에 접어든 한국의 변화에 걸맞게 카이스트를 환골탈태시키겠다”고 장담했지만, “카이스트의 설립이념을 훼손하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학내 구성원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쳤다. 학내 반발이 ‘러플린의 진단엔 동의하지만 처방이 틀렸다’는 건지, 아니면 ‘진단 자체가 틀렸다’는 건지는 불확실하지만. 러플린 총장은 결국 ‘카이스트 사립화 논쟁’ 이후 심각한 내상을 입고 한 발짝 물러선 형국이다.
일요일인 10월2일 오후 3시. 기자가 대전시 유성구 카이스트 북문 쪽에 자리잡은 총장 관사에 도착했을 때 러플린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땀을 흠뻑 흘린 뒤 피아노를 연주하며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어 비서가 휴일에도 측근에서 보좌하길 바라는 한국식 상관은 아니었다. 직접 냉장고를 뒤져 얼마 남지 않은 포도주스를 꺼내놓고는 “차가 많이 막혔냐?”고 말문을 열었다. 행락철의 휴일,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까지 가는 데 무려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는 “고속도로 정체를 예측할 수 없어 오가는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다”고 했다. ‘지방대학’ 총장의 고충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까.
당초 인터뷰의 방향을 ‘이론물리학자가 본 한국과 아시아’라는 거대 담론으로 정했지만, 대화는 시종 ‘카이스트 개혁’이란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카이스트 총장으로 취임한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간의 업적이라면 어떤 게 있습니까.
“1년 반이 조금 모자란 1년4개월입니다. 약간 지체됐지만, 무엇이 해답인지 알게 된 게 큰 성과예요. 세계적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 카이스트의 고질은 형편없는 과학 실력도, 학생이나 교수의 낮은 역량도 아닙니다. 정답은 경제적 측면에 있었어요.”
-그건 세계의 모든 대학이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 아닌가요?
“물론 보편적인 문제죠. 하지만 한국만의 독특한 문제가 있더군요. 그것은 바로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가 없다는 점이고, 그것이 바로 나의 키워드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정치에 의한 지배란 결코 문서화하지 않겠다는 뜻과 상통합니다. 흔적을 남기면 누군가의 견제를 받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문서에 의존하기보다는 여론이나 투표, 혹은 전통에 의해 옳고 그름을 결정짓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한국적 의미에서 ‘불법’은 정치적 해석이지 정해진 규칙을 어겼다는 것이 아니더군요. 서구에선 뭐든지 문서화·제도화합니다. 그간 카이스트엔 법에 의한 지배나 문서화된 룰이 없었어요. 있다 해도 허점투성이였어요.”
‘법에 의한 지배’ 실종
-어떻게 그것을 깨닫게 됐습니까.
“몇 가지 사건이 있었어요. 올봄에 저의 신간(‘새로운 우주·A Different Universe’) 출간을 위해 공식 업무를 겸해 2주간 미국 여행을 떠났어요. 이 여행에 조수와 동행했는데, 그에 대한 급여가 문제가 됐습니다. 돌아와 보니 ‘총장이 정부 돈을 유용했다’는 루머가 퍼져 있더군요. 그러나 나는 여행 전에 경비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확인했어요. 알고 보니 아무런 규칙이 없어 책임을 논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올여름 전국적인 문제가 된 ‘대학 연구실의 연구비 유용’에 대한 국회의 감사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문제는 있지만 법을 어긴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더군요.”
-한국에선 일상적인 얘기입니다.
“문제는 재산권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다는 겁니다. 카이스트 어디서나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있어요. 자산이나 지급관행, 심지어 인사에 이르기까지 명문화된 규정은 없고 단지 관행만이 존재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립대 총장들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더군요. 모 대학 총장은 교수가 정부 지원금으로 연구장비를 샀는데, 장비를 캠퍼스가 아닌 엉뚱한 부지에 들일 연구시설을 짓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답니다. 조사해보니 그 교수 소유의 땅이었대요. 더 놀라운 사실은 그에게 책임을 지울 만한 어떤 법적 근거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카이스트 에 ‘제너럴 카운슬(최고법무책임자·CLO)’ 제도를 만들 생각입니다. 학교의 자산을 보호하고 무엇이 합법적인 일인지를 따지고, 또한 총장과 이사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그 책무죠.”
-‘주인 없는 조직’의 폐해가 무엇이던가요.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선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그 돈은 룰에 따라 써야 해요. 주인 없는 돈이란 부패의 다른 표현입니다. 몇 해 전 카이스트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에서도 폐해를 찾을 수 있겠네요. 당시 사고로 한 학생이 죽고 다른 한 학생은 다리를 잃었어요. 피해자들은 보험금을 상회하는 보상금을 요구했는데, 놀랍게도 카이스트는 대가를 치를 만한 어떤 자산도 없었어요. 돈 없는 학교는 학생의 안전은 물론 대학 자체도 지켜낼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네요.
“하지만 카이스트엔 돈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요. 만일 정 기자가 교수라면 그저 돈을 줍기만 하면 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카이스트는 돈에 대한 규칙을 서둘러 정해야 해요. 오너십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대학의 재산이 어디 있는지 관심도 없고, 그것을 아는 사람이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거죠.”
‘오너십’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신뢰는 있을 텐데요.
“놀랍게도 카이스트의 자산에 대한 세부적인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개발위원회나 이사회는 내게 그 같은 보고서를 가져오지도 않았어요. 또 다른 예는 기성회비 운영에서 찾을 수 있어요. 한국 대학들은 이 돈을 수업료에서 분리해 징수하잖아요(카이스트 학부생은 수업료는 전액 면제받지만 1년에 약 70만원의 기성회비를 납부한다. 이 돈은 학교 운영비로 쓰인다-편집자). 나는 애당초 그것이 학비의 일종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카이스트 설치법에 따르면 대학은 학부생에게서 학비를 징수할 수 없게 돼 있더군요. 만일 대학이 이 돈을 잘못 사용한다면 불법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는 이 돈도 ‘제너럴 카운슬’이 감독하게 할 생각입니다.”
-결국 총장께서 주장했던 카이스트의 사립화로 연결되는 건가요.
“그 논쟁은 상당부분 잘못 알려졌어요. 카이스트는 정부(과학기술부) 소유이기 때문에 내가 자산 문제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몇몇 교수가 내 뜻을 왜곡했어요. 민영화(privatization)라는 게 곧 자산을 팔고 직원을 해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재원의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거죠. 향후 정부는 카이스트에 쏟을 지원을 줄이는 대신 학생들로부터 그 재원을 충당할 수도 있어요. 이것은 세계적 추세로 서울대마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적절한 투자가 필요한데, 카이스트가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결국은 정부와 학생 모두에게서 버림받을 수 있어요.”
-카이스트가 그간 ‘법에 의한 지배’가 없어서 개혁을 못한 건가요, 아니면 그것이 최종 목표인가요.
“물론 그것은 내 목표입니다. 누구나 개혁을 싫어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미세한 조정이나 수리에 불과합니다. 진짜 개혁은 한국인에 의해서만 가능하겠죠. 나는 사람을 교체하거나 커리큘럼을 바꾸자고 하지 않습니다. 카이스트의 궁극적 변화는 경제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교육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똑똑하고 영리한 학부모들의 욕구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개혁이 진짜 개혁이겠지요.”
-카이스트 구성원은 카이스트의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고용된 미국인’인 총장께선 애국심 같은 한국적 정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옛 소련과 비슷한 상황인데요…. 애국심은 사실 핑계에 가깝습니다. 돈을 유용하기 위한 일종의 트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의 돈’이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어요. ‘내 돈’ 아니면 ‘당신 돈’일 뿐입니다.”
-결국 카이스트에 오너십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군요.
“그래요. 애국심과 사회주의를 혼동해선 곤란합니다. 애국이란 자신의 나라를 사랑한다는 의미지만, 사회주의는 자신이 지급해야 할 것을 누군가가 대신해주길 바라는 시스템이에요. ‘카이스트의 주인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해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누군가 대신해서 소유권을 만들어냈고 결국 그 덕에 돈을 벌고 있지요. 그 돈이 어디로 가지요? 나도 몰라요. 이사회에 보고되지 않을뿐더러 회계도 부정확하기 때문이죠. 어길 법이 없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겠지만, 외국인인 나는 이 음지에 환한 햇볕정책을 취하고 싶을 뿐이에요.”
-한국에서 소유구조가 진일보한 대학을 찾았습니까.
“못 찾았습니다. 대다수 한국 대학은 일본식 경영모델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실력자의 지시에 좌지우지되는 것으로 보아….”
고립 상태라는 것 잘 안다
-그렇다면 러플린 총장이 추구하는 개혁은 미국의 어느 대학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까.
“나는 카이스트 경영시스템을 캘리포니아주립대(UC)에 맞추고 있어요. 이 대학은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대학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내 모델은 MIT(매사추세츠공대)와 UC의 혼합일 수도 있어요.”
-카이스트 교수들은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바랍니다.
“글쎄요. 이렇게 설명해봅시다. 교수들은 대개 민주적 의사결정을 원합니다. 그러나 자기 돈 없이 외치는 민주주의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정부를 지지하기 때문에 세금을 내고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가의 의결권은 국회에 있지요. 따라서 민주적 의사결정은 국회에서 이뤄집니다. 만일 카이스트가 국회의 동의 없이 혼자 민주주의를 하겠다면 예산을 삭감당할 수도 있고, 심한 경우 학교가 폐쇄될 수도 있어요.”
-지금 총장께선 카이스트 내에서 고립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물론이죠. 예상했던 바예요. 한국 사람은 예의가 바릅니다. 그렇지만 경제원리는 한국인에게 그리 친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현재의 갈등을 반기는 측면도 있어요. 난 투표로 선출된 게 아니라 정부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기 때문에 교수들은 나의 행동을 독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내년에 2년 임기가 끝납니다. 임기 연장을 할 건가요.
“이런 질문엔 의도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있어요. 이것은 명예나 의미와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내년도 예산에 대한 (구두)약속을 받았는데, 그 예산을 직접 보기 전엔 답하지 않을 겁니다.”
-정부의 의지 유무를 확인하고 싶은 거군요.
“정확한 표현이에요. 많은 금액이 협상 테이블에 놓여 있을 때, 상대방에게 카드를 다 보여줄 수는 없는 거죠.”
제조업은 다른 나라에 넘겨도 된다
러플린 총장은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기자에게 전자피아노 연주를 들려줬다. 자작곡의 제목은 ‘미들킹덤(Middle Kingdom)’. 그는 낯선 땅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산악자전거와 음악으로 푼다고 했다. 이론물리학을 전공하고 인터넷 혁명의 고향인 스탠퍼드대에서 제자들을 키워냈기 때문인지 IT업계는 물론 예술 방면에도 날카로운 식견을 지녔다.
‘부자는 현명하다’는 논리로 무장한 그의 투자행태는 어떨까. 그는 지금껏 번 돈 대부분을 미국 캘리포니아와 중국 상하이의 부동산에 투자했다고 한다. 농부의 후손답게 금융보다는 부동산을 선호한단다. 한국에도 투자하고 싶지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투자 억제 정책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과 같이 한국에 투자하고 싶은 외국인의 의욕을 꺾는 부동산 정책이라는 푸념이다.
-한국경제에 대해 몇 가지 묻겠습니다. 한국경제의 강점은 제조업과 첨단업종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추세가 얼마나 유지될까요.
“통계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한국경제는 임금에 대한 비교우위를 점차 잃고 있어요. 특히 중국의 등장 이후 그런 흐름은 더욱 빨라져 한국이 불리한 상황입니다. 일본과 비교한 가격대비 품질은 어떨까요? 역시 코스트는 좀 낮겠지만 그 갭은 빠르게 줄고 있죠. 따라서 5∼6년 안에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상당부분 상쇄될 겁니다. 기술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동안은 한국이 일본을 추격하는 국면이었지만, 이젠 중국이 한국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겠지만 5∼6년 뒤에도 제조업 분야에서 현재와 같은 경쟁력이 유지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총장께선 중국에 커다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압니다.
“중국효과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미래가 거기 있기 때문이죠. 중국은 이미 주변국의 고용을 흡수했을 뿐 아니라 새롭게 창출하고 있어요. 이 점에 대해 걱정하는 한국인이 많은 듯합니다. 1970∼80년대 미국인이 일본과 한국을 보며 걱정했던 것과 유사하죠. 하지만 미국경제는 좋아졌고 오히려 일본이 장기불황을 겪었어요. 단순 제조업의 전이는 자연스러운 것이지, 그리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에요. 수익은 마케팅이나 금융분야에서 창출되거든요. 따라서 제조분야는 다른 나라에 넘겨도 상관없습니다. 혹자는 미국은 대국이라 상관없지만 한국은 위험하다고 반응하기도 해요. 과연 그럴까요? 한국 정부는 억지로라도 자국 노동시장을 보호하고 싶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 한 지인의 가족과 식사를 했어요. 그는 캐나다에서 공학을 전공했고 부산의 큰 장난감 회사에서 일해왔죠. 그는 회사가 중국으로 이전될 것을 알고 자신의 영어능력을 이용해 국제 세일즈 분야로 자리를 옮겼어요. 부산에서 판매 일만 맡고 있죠. 이는 지금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일감은 매우 빠르게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이 나라가 점차 탈산업화하는데, 놀랍게도 한국 사람들은 아직 돈을 벌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이는 이제는 공학뿐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해요.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규칙에 의한 지배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명확해진다면 시장을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부자는 가장 현명한 사람
피아노를 연주하며 휴식을 즐기는 러플린 총장.
“시장에 주목하세요.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우월합니다. 교육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엄밀히 말해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투자인데, 결국 시장에 대한 의사결정의 하나예요.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부모이기 때문에 무엇이 아이에게 가장 효율적인지 알고 있어요. 더 단순하게 말하면 부자는 가장 현명한 사람입니다. 왜냐고요? 바보는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죠. 누군가 돈을 벌었다면 그는 시장을 제대로 읽었다는 의미죠.
미국과 유럽에 뛰어난 엔지니어가 많습니다. 그곳에선 어떻게 교육할까요. 놀랍게도 정부는 교육에 대해 간섭하지 않습니다. 정부의 투자전략은 의약품 같은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집중돼요. 그 까닭은 부모가 아무리 말려도 엔지니어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부모가 의사가 되라고 권해도 마다하는 사람이 실제로 뛰어난 엔지니어입니다. 그들이 바로 제가 원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넓은 그물을 쳐놓고 오로지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이들을 찾아내는 방법이 유일합니다.”
-그것이 카이스트에서 법대생과 예비 의대생을 키우자는 논리로 연결되나요.
“실제로 스탠퍼드 학부생의 3분의 2는 ‘프리로(pre-law)’나 ‘프리메디(pre-medi)’ 학생입니다. 부모가 원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공대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남자 중에는 기술적인 면에 관심을 갖는 집단이 있어요. 그들에게 그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는데, 그런 부류의 학생이 한국에 많아요. 언어적인 면이 조금 부족하지만 똑똑하고 배울 의지가 강한 학생들이죠. 그들이 카이스트의 타깃일 수 있어요.”
-하지만 카이스트는 그간 ‘엔지니어 사관학교’ 역할을 해왔습니다.
“카이스트를 존재하게 했던 구시대 논리는 이제 그 가치가 없어졌어요. 카이스트가 한국경제에 이바지하는 극적인 효과를 입증할 수 있나요? 없다면 카이스트를 폐쇄하거나 바꿔야 해요. 폐쇄하기에 너무 큰 비용이 든다고 생각한다면 바꿔야죠. 정부는 카이스트에 드는 비용을 앞으로는 등록금으로 충당할 수도 있어요. 만약 우파 정권이 들어설 경우엔 예산을 급격히 줄일 수도 있습니다. 준비 없이는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어요.”
러플린 총장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카이스트 민영화 방안은 학년당 700명에 불과한 카이스트 학부 정원을 2000명 이상으로 늘리고, 전액 장학생이 아닌 연간 600만원대의 등록금을 받는 것으로 현실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게다가 법대와 예비 의대, 예술대까지 포괄하는 종합대로의 변신을 기획했다.
이에 대해 보직교수 전원이 사퇴하며 “연구중심대학으로 30여 년 쌓아온 카이스트의 정체성이 무너진다”고 극렬하게 반박했다. 1년 전 러플린 총장과 주요 보직교수 사이에서 중재역을 맡았던 C교수를 만나 그의 견해를 들었다. 그는 당시 러플린 총장의 개혁의지를 이해하는 편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러플린 총장은 아직도 카이스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요. 한국의 문화와 현실을 잘 모르는 겁니다. 한국 정부나 교수들이 비전 없는 공대를 육성해야 하는 정서를 이해 못하는 거죠. 엔지니어로서의 사명감을 빼고 사고(思考)한다고나 할까요.”
물론 반대 논리도 적지 않다. 미국에서 오래 일한 교수들이나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벌이는 연구진 사이에는 러플린 총장의 개혁에 대해 심정적 지지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이를테면 국내 대학 교수들은 지나치게 정치화해 있고, 정부의 지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러플린의 두 가지 ‘불행’
그렇다면 젊은 연구진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이자 과학 칼럼니스트인 정재승(33) 박사는 경기과학고를 거쳐 카이스트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카이스트가 배출한 젊은 과학자의 대표 격이다. 러플린 총장과 함께 대중과학저널인 ‘크로스로드(Crossroads)’ 창간(10월1일)을 주도하는 등 돈독한 교분을 쌓아왔다. 정 교수는 “그의 불행은 첫째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대학이 아닌 카이스트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노벨상은 그에게 자신만이 옳다는 고집을 안겨줬고, 그의 신자유주의적인 개혁방법이 특수목적대학인 카이스트에 뿌리내리기 쉽지 않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유능한 학자가 어떻게 오게 됐나요.
“솔직히 말하면 한국 정부가 내게 상당한 연봉을 제안했거든요, 하하. 더구나 한국에서 아주 명예로운 직책이라고 했어요. 실제로 계약금을 보고(한국 정부의 의지를) 의심할 수 없었죠. 지금은 밝힐 수 없지만 언젠가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오게 됐는지에 대해 책을 써볼 예정입니다. 결국 그 제안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팰러앨토(캘리포니아)를 떠나 이곳 대전까지 왔습니다. 거시적 안목에서 말하자면, 나는 이론물리학자인데 미국 정부가 물리학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습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한국 같은 아시아에서 새로운 활로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연구보다 대중적인 글을 많이 쓰고 있는데….
“그래요. 지금은 연구자라기보다 정치가이자 행정가입니다. 한국 정부가 내게 카이스트 총장이 돼달라고 했기 때문이죠. 대중적인 칼럼을 쓰는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인 위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에 기대를 걸고 또 하나의 보스인 대중과 관계를 맺는 통로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제 내 칼럼을 읽는 지적인 독자층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이 내 정적(政敵)을 상대하는 또 하나의 무기라 생각합니다.”
-러플린 총장의 지지자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많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엔 아직 답하기 힘듭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과학기술부가 하고 싶었지만, 결코 할 수 없던 일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성공한다면, 많은 우군이 나타날 겁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는 혼자입니다. 선출된 보스가 아니기 때문이죠.
내 경력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힘든 상황을 많이 겪어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내가 노벨상을 탄 이론에 대해 지도교수는 물론 모두가 틀렸다고 이야기했어요. 내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경로를 통해 출판하는 결단을 내렸고 그로 인해 유명해졌어요. 초기엔 두려움에 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일이 진척되자 지지자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승리하는 편에 서고 싶어하거든요.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한국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카이스트 교수들이 틀렸다는 건가요.
“나는 닥쳐올 ‘추운 겨울’로부터 카이스트를 보호하고 싶을 뿐입니다. 정부가 이런 기관들을 더는 보호하지 않아도 시장이 존재하고 보호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카이스트가 세계적 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겠죠.”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카이스트에 대한 애정도 생겼을 것 같은데….
“사랑을 확인하려는 질문인가요? 허허…. 이것은 비즈니스일 뿐이지 애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에요. 물론 좋아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어요. 카이스트를 존중하고 외국에 가면 언제나 카이스트를 주제로 이야기합니다. 대신 ‘우리는 한가족’이란 식의 표현은 아까 언급한 대로 ‘돈을 유용한다’는 표현의 다른 버전이기 때문에 싫어합니다. 나는 예산과 투명성, 생산성을 원합니다. 서로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허허….”
‘연구중심대학’은 프로파간다
-카이스트 교수들은 자신들은 연구중심으로 가고 싶어하는데, 러플린 총장이 시장질서를 추종할 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연구하는 대학’이란 지극히 당연한 표현이에요. 누구나 알고 있는 정치적 수사이기 때문에 요즘 MIT나 스탠퍼드에서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아요. 나는 스탠퍼드에서 일할 때 독지가가 기부한 돈의 이자에서 연구비를 타낸 것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끌어온 돈으로 연구했어요. 스탠퍼드 기준을 적용한다면 여기 교수들은 모두 해고될 수도 있어요. 결국 미국 대학의 ‘연구중심’이란 의미는 ‘비즈니스 관계’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과학자는 돈을 대는 정부와 건강한 비즈니스 관계를 맺지 못하면 고용이 위협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천재임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할 수는 없습니다. 돈을 낭비하지 않고, 또한 억지로 돈을 버는 연구도 아닌 것. 그것이 카이스트의 장기적인 모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연구중심대학’이라는 구호는 ‘프로파간다(정치구호)’일 뿐인가요.
“맞아요. 프로파간다예요.”
-카이스트 구성원은 카이스트 발전에 관심이 많습니다. 결국엔 방법론적 차이로 보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나는 카이스트의 그 누구보다 더 유명하기 때문에 내 말이 정답에 더 가깝습니다. 직접 ‘구글’로 내 이름을 검색해보세요. 수십만 개의 문서가 나올 걸요.”
-그렇게 (심하게) 표현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그건 내가 더 잘 압니다. 모든 과학자는 유명해지려 해요. 만일 그들에게 ‘그럼 너는 왜 유명하지 못하지?’라고 물으면 천편일률적인 답이 나올 것입니다. 자신은 한국인이고, 정부가 충분히 지원하지 않고…. 내 경우만 해도 정식 직업을 갖기 전에 이미 노벨상을 탄 연구를 해냈어요. 그때는 집 구할 돈이 없어 트레일러에 살면서 연구했습니다. ‘나는 명예를 원치 않고 단지 연구를 좋아할 뿐이야’식의 말은 다 엉터리예요. 유명해지고 싶지만 능력이 없으니 멍청한 기부자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정 기자는 지금 나와 교수들 사이의 갈등 드라마에 관심이 있어 보이는데, 그것은 ‘한국 vs 미국’이라는 문화적 차이라기보다 규율에 관련된 일이고, 결국엔 돈 문제입니다. 카이스트는 그저 사회주의 형식의 대학일 뿐입니다. 중요한 가치를 달성하는 길에 사회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두 갈래가 있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아닌가요?”
“나는 보통 교수보다 좀더 보수적”
-한국에선 요즘 황우석 박사가 화제인데, 과학자가 유명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과학자의 연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확하게 ‘나’를 위한 것이에요. 물론 정부로부터 돈을 받았다면 성과를 내야 하죠. 그건 비즈니스니까요. 하지만 과학자의 진정한 꿈은 자신의 브랜드 네임을 높여서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어요. 대학을 관리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교수들이 유명해지고 싶어하는 태도가 훨씬 유리합니다. 대학에 많은 돈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카이스트에 유명한 학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의 과격한 ‘PR론’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고고한 학자풍에만 기우는 한국적 과잉 겸양보다는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의 ‘솔직함’은 강도를 더해갔다. 그는 1년 전 ‘선진국’인 한국에서의 생활에 크게 만족해하며 ‘아시아 시대’의 도래를 예찬했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에 조금은 변화가 생겼나 보다.
-한국에서 경험한 즐거운 일이라면.
“아내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수도승 같은 생활이 썩 즐거울 리는 없죠. 한국에서 즐거운 밤이란 1만5000원으로 불고기와 맥주 한잔, 그리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뿐이에요.”
-맥락을 벗어난 질문이긴 한데 북한에 대해선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자는 공산주의 국가들을 방문해본 적이 있나요?”
-몇몇 나라를 가봤습니다.
“그럼 잘 알고 있겠네요. 공산주의 국가는 다 비슷해요. 북한? 나와 무슨 상관일까요. 단지 그곳 주민이 불쌍할 따름이죠. 그러나 학생들에겐 냉전의 마지막 잔재이고 머지않아 변화가 올 것이니 기회가 있으면 가보라고 권합니다. 나쁜 정부를 갖는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직접 목도하는 것이 좋다고 보기 때문이죠.”
이 대목에 이르러서 그의 성향이 신자유주의자에 가깝다는 정재승 교수의 평가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러플린 총장이 물리학과 생명공학에 대해 놀랄 만큼 뛰어난 식견을 펼쳐 보이는 칼럼니스트란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역사와 철학이 빈곤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것이다. 그는 캘리포니아라는 비옥한 개척지에서 성장해서 오로지 미국이란 강대국의 틀 속에서 그 위상이 정해진 뛰어난 과학자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상당히 보수적인 미국인, 그러니까 신자유주의자라는 편견이 머리를 떠나지 않네요.
“농사 짓던 집안에서 성장한 때문인지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해요.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을 진짜 신자유주의자 집단인 공화당에서 좋아할 리 없어요. 주장과 고집이 너무 세기 때문이죠. 보통의 교수들보다 조금 더 보수적일 뿐이에요.”
-대학에서 활동하는 데는 좀 힘들겠군요.
“맞아요. 대다수 교수는 좌파적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우파였다면 애당초 비즈니스 쪽에 종사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경험상 뛰어난 엔지니어는 대개 보수적입니다. 그들은 ‘정부의 지원은 필요없다, 세계 최고의 제품으로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다’고 믿기 때문이죠. 일종의 자만심인데, 실력 없는 교수들에게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워요.”
-놀랐습니다. 정말 보수적이군요.
“실제로 지난번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아널드 슈왈츠제네거에게 투표했어요, 하하하.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한국엔 더 보수적인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실제로 그들은 놀랄 만큼 광적(crazy)이지 않나요?”
제도적인 카이스트 보호는 불합리
-카이스트의 변화된 모습을 빨리 보고 싶습니다.
“좀 이상하네요. 저널리스트인 당신이 (카이스트와)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요?”
-왜 상관없다는 거죠? 카이스트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있고, 저도 한국인인데요.
“대학을 놓고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반복하건대, 이는 ‘자산 소유에 대한 투명성 결여’로 이어집니다. 인간은 소유권이 없다면 열심히 일하지 않거든요. 따라서 그것을 고쳐야 하고 그게 내 대답입니다.”
-이제 정리하죠. 총장께선 카이스트의 법·제도를 정비해서 홀로서기를 돕겠다는 거군요.
“오너십이 없는 게 잘못이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은 더는 존립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대중은 카이스트 같은 기관에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어요. 어쩌면 ‘제조업을 보호하자’는 논리와 유사해요. 좋아요. 나를 급진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당신의 생각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내 예상이 그렇기 때문이에요. 한국인은 머지않아 카이스트를 보호하는 제도가 더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그런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생기겠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6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났다. 그는 다이어트를 이유로 그 긴 시간을 단 한 잔의 포도주스로 버티는 강한 체력을 과시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멈췄던 연주를 계속했다. 그는 “따로 인사 안 할 테니, 내 연주가 끝나기 전에 알아서 살펴가길 바란다”며 미국식 작별인사를 했다.
그가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의 미국식 사고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그가 지적한 한국 대학의 현실은 뼈아팠지만 그의 논지는 한국인의 머리를 타고 가슴으로 내려가지는 못했다. 그가 어째서 카이스트 구성원과 불필요한 논쟁을 지속하면서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