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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⑭

‘우회적 접근’이 주는 교훈

병법의 대가 손빈, 라이벌의 간휼을 이겨내다

  • 박동운 언론인

‘우회적 접근’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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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빈은 한때 라이벌인 방연의 모함으로 배신을 당하고 위기에 몰렸으나 두 차례의 대전투를 치르면서 이를 극복해냈다. 자고로 질투심에 불타는 동문이나 동향은 멀리하는 게 이롭다.
‘우회적 접근’이 주는 교훈
질투심은 추잡하고 해롭다. 그러나 경쟁심은 고상하고 이로울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가르쳤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다. 정치학자에다 수사학(修辭學)의 대가이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겨레의 착하고 훌륭한 선비들에게 주의를 환기하고자 한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일부 동문(同門), 동향(同鄕)이나 수양이 안 된 친구라면 결단코 멀리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여기 소개하는 병법의 대가 손빈(孫?)만 해도, 젊어서 순진할 때 질투심에 불타는 동문을 간단히 믿었다가 크게 봉변당한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따르면 명성이나 권세를 좇는 야심가일수록 자기와 동등한 출신이라 생각하던 사람의 평판이 자자해지거나 지위가 높아지면 질투심이 심해진다고 했다. 야심만 컸지 지능이나 학식이 부족하니, 결국은 야비한 수단과 방법으로 상대를 깎아내려서 다시 동등하게 만들어야만 안심한다는 꼴이다.

손빈의 선조로는 제(齊)나라를 탈출해 오(吳)나라로 가서 병법의 대가로 명성을 떨친 손무(孫武)가 돋보인다. 그의 후손인 손빈은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착했으며 독서를 즐겼다고 한다. 자라서 훌륭한 스승을 찾게 됐는데, 때마침 솔깃한 소문이 식자들 사이에 자자했다. 귀곡(鬼谷)이라는 험준한 심산유곡에, 어디서 왔는지 점잖은 선비가 홀로 찾아들어 주변을 살피고는 은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명을 밝히지 않아 사람들은 그저 ‘귀곡선생’이라고 불렀다. 경력은 모르겠으나 정치와 군사에 관한 소양이 해박하고 심오하며, 난세의 철학을 터득하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했다. 처음엔 고독을 즐기는 듯 보였으나, 차츰 난세를 수습할 영재를 만나면 골라서 교육한 다음 세상으로 돌려보낸다는 평판이 있었다. 바로 손빈이 찾던 스승이었다.

구름이 넘나드는 깊은 골짜기를 더듬어 찾아 올라간 손빈을 눈여겨본 귀곡선생은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거의 때를 같이해 위(魏)나라의 방연(龐涓)이라는 젊은이도 찾아와서 함께 병법을 공부하게 됐다. 그런데 방연은 영리하면서도 질투심이 강했다.



귀곡선생은 제자들을 평등하게 다루면서도 자연스레 손빈에게 더 큰 기대를 걸었다. 손빈 쪽이 더 현명하고 착했기 때문이다. 기억력과 두뇌 회전에 별 차이가 없는 듯해도 성정이 착해야만 미래에 대한 통찰이 공정할 수 있다. 영리하면 동작은 빠를 수 있어도 통찰력에서 뒤지게 된다. 또 착해야만 덕망이 높을 뿐 아니라 통솔력이 탁월하다. 반대로 질투심에 사로잡히면 간휼(奸譎)과 편견으로 흘러 사람들이 심복하지 않는다.

두 청년은 학업을 마치고 동시에 하산했다. 손빈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편 방연은 위나라로 귀국하자 재빨리 구직운동을 벌여 등용됐으며, 장군으로 승진했다. 위나라 혜왕(惠王) 때의 일이다.

당시의 제나라는 손빈의 조국이지만 군주인 환공이 우매한 탓에 국정이 문란해져 선비들이 희망을 걸기 어려웠다. 때마침 위나라의 방연에게서 초청의 친서가 날아왔다. 위나라 혜왕이 어진 사람을 예우하고 선비에게 겸손하니, 즉 예현하사(禮賢下士)할 줄 아니 이곳에 와보지 않겠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손빈은 응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방연의 모함과 손빈의 탈출

하지만 그러한 결심은 신중을 결(缺)하고 경솔에 가까운 것이었다. 지혜로운 사람도 한두 번 실수는 하게 마련이다. 손빈은 믿어서는 안 될 사람을 믿었던 것이다. 인간의 보편적 약점이지만, 만사가 여의치 않을수록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또 신중함을 잃고 쉽게 ‘희망적 관측’에 쏠리기 쉽다.

동시에 착한 사람의 약점이지만, ‘선의적 해석’이라는 것도 있다. 정직한 자기를 기준으로 삼아 타인의 마음을 추측하다 판단이 어긋나는 것이다. 이번의 경우, 방연의 초대장은 질투심에서 비롯된 간휼한 모략이었다. 자기보다 우수한 잠재적 라이벌을 없애버려야 안심이 된다는 악랄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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