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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연세대 퇴임 고별강연

“이념과잉의 시대, 중도개혁으로 ‘불임정치’ 벗어나자”

  • 안병영 연세대 교수·행정학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연세대 퇴임 고별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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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사회적 합의를 창출하기 위한 제도나 관행이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형편이다. 그동안 많이 진척됐다고는 하나 정치개혁이 아직도 중요한 현안이며, 정부형태 및 선거제도 등 기본적 정치제도에 대해서도 아직 저마다 이견이 분분하다. 무엇보다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관행

서구의 몇몇 작은 나라, 예를 들어 스위스나 벨기에, 네덜란드 등은 종교적, 계급적으로, 혹은 인종적으로 이질적이고 단편적인 사회임에도 비례대표제, 연립정부, 상호비토권 및 하위체제의 자율성 같은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이른바 ‘협의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를 발전시켰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기보다 소수자가 참여해 권력을 공유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양식을 제도화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는 지역별, 계층별 혹은 세대별 갈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들 나라에 비해 훨씬 동질적인 정치문화를 갖고 있다. 따라서 보다 적실성 있는 정치제도의 탐색과 관행의 정착이 이뤄지면 우리 사회에서도 합의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주요 생활영역 내에서 이익갈등을 해결하고, 사회적 합의 도출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 및 중재 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주지하듯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노사간, 호은 노사정 간의 사회협약을 통해 임금조정, 사회복지개혁,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사회경제적 난제를 해결하려고 ‘코포라티즘(corporatism)’을 발전시켰다. 일종의 계급타협이라고 할 수 있는 코포라티즘은 지난 세기 서구 산업사회의 위기관리와 복지국가 발전에 있어 불가결의 요소로 간주된다. 우리의 경우도 김대중 정부가 창설한 ‘노사정위원회’가 바로 그 예인데, 노사정 모두 공공성 추구 노력의 부족으로 ‘부동성’의 위기에 허덕이고 있어 안타깝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더라도 사회적 합의형성의 제도와 관행을 계속 만들고, 이를 정성스레 가꾸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구 여러 나라의 경우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노사가, 혹은 보수와 진보가 만나 큰 합의를 일궈낸다. 1938년 스웨덴의 ‘살트쉐바덴’ 협약이나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이 그런 예이다. 이들 여러 나라는 위기에 처하면 이른바 ‘역사적 화해’를 통해 국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대통령의 균심(均心)과 공심(公心)

중도개혁은 타협과 문제해결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모델로서 ‘유연보장(flexicurity)’과 ‘사회투자국가(the social investment state)’가 있다. 이미 언급한 유연보장의 개념은 파트타임 등 불완전 고용을 허용함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한편, 이들에게 실업수당 등 사회급여를 보장하는 형식이다. 그런가 하면 사회투자국가는 신자유주의와 구(舊)사민주의와 구별되는 이른바 ‘제3의 길’로 교육, 직업훈련 등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통해 사회정책의 생산적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경제성장과 사회정책 간의 선순환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국가모형 개념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건강한 중도의 목소리를 키우며 사회적 합의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제도나 관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주요 정치행위자들의 결의와 노력이다.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 사회 내 다수의 시민은 가치지향으로 볼 때 좌우로 펼쳐지는 이념적 스펙트럼의 중간지대에 밀집해 있으리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이들은 양극화의 기세에 눌려, 또 그들을 정치수면 위로 끌어올릴 조직화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주요 정치행위자들이 중간지대로 다가와, 이들 중간집단, 침묵하는 건강한 다수를 정치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의 정치과정에서 대통령의 위치는 실로 막강하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 논의가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은 많이 약화되었다. 대통령은 더 이상 여당의 총재도 아니며, 국회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여 의회를 지배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은 최고 정치지도자로서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고,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가정책의 의제 형성을 주도하며, 국가원수로서 국방과 외교분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중한 자리이다. 민주화 이후 타협의 문화가 부재한 상황에서, 여소야대 국면시 대통령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를 극복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정치지도자도 바로 다름 아닌 대통령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한 정파의 수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로서 사회적 합의 형성에 매진해야 하며, 가능한 한 중도개혁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은 중심을 바르게 잡고, 좌우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 않는 균형된 마음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균심(均心)’과 ‘공심(公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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