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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사람 공부, 이웃 이야기6

거침없이 마음을 열자, 아버지 자리 찾고 웃음도 찾고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거침없이 마음을 열자, 아버지 자리 찾고 웃음도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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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킨 실타래는 풀리고’

거침없이  마음을 열자, 아버지 자리 찾고 웃음도 찾고

가족이 함께 땀 흘려 만든 농구장. 양손이와 책벌레가 농구를 하고 있다.

양손이는 초등학교도 다 마치지 않고 학교를 그만뒀다. 양손이보다 1년 먼저 책벌레가 학교를 그만뒀다. 책벌레는 양손이와 달리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고, 집에서도 잘 지냈다. 양손이는 집에서 지냈지만 틱 현상과 짜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더 심해지는 듯했다.

“그 무렵 우리 양손이가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저는 참 마음이 아팠어요. 몸이 약하니까, 기분이 붕 떴다가 가라앉았다가 하거든요. 정말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공부를 아주 힘들어하고 시간을 무기력하게 보내는 거예요. 나중에는 아이가 밤낮을 바꾸고 싶어하더라고요. 그런 생활을 한 보름쯤 했나. 그러니까 몸이 더 나빠져요. 짜증도 더 내고. 마냥 자유롭게 내버려둘 수만은 없겠더라고요. 여러 가지 시도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부부 싸움도 많이 했어요.”

이렇게 혼돈으로 빠져들자 초록손이는 급기야 양손이를 위해 1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원푸리 역시 아이를 달래기도 하고 혼도 내보았지만 앞이 안 보였다. 1년 가까이 공부를 손놓고 있는 아이를 보다 못한 원푸리가 양손이에게 새로운 제안을 한다.

“공부를 안 하려면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농사일을 할래? 집짓기를 할래?”



그러자 양손이는 선선히 집짓기를 해 보겠단다. 여기서 집짓기는 한 세 평쯤 되는 아주 작은 구들집이다. 아이가 일을 하면 얼마나 할까. 그런데 막상 제 아버지랑 일을 같이 하자 아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초록손이는 아이가 일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하루에 여섯 시간씩이나 일을 했어요. 어떨 때는 추운데도 아이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일을 하니까 내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아이는 어떻게든 견디더라고요. 그렇지만 집이 완성돼가면서 달라지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우선 밤에 잠을 푹 자요. 차츰 얼굴도 밝아지고. 나중에는 희한하게도 아버지와 친해지더라고요. 양손이는 서울 살 때부터 제 아버지를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집짓기를 같이 하면서는 부자 사이가 부쩍 좋아지는 거예요. 공정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얼마나 보기 좋던지.

그러면서 뭔가 양손이에게 엉킨 실타래가 풀어지는 느낌이 오는 거예요. 건강도 많이 좋아지고, 정서도 안정되고, 얼굴도 환해지고. 잘 웃고, 질문도 적극적으로 하고, 키도 쑥쑥 크고. ‘내가 전에는 이걸 못 들었는데 오늘은 들었다’며 자랑스럽게 말을 하고. 일하면서 자기 힘에 대한 자부심을 계속 느끼더라고요. 그렇게 두 달 정도 집을 지어갔는데 그동안 아이가 확 크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일하면서 만족감을 얻고 자기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으니 너무 고마웠죠.”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이렇게 자신감을 얻은 양손이는 다른 일에도 부쩍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공부도 하고 싶다며 미뤄둔 초등학교 책을 꺼내 한달음에 다 해버린다. 자신이 공부를 싫어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당시 양손이가 쓴 일기 제목이 한동안 ‘공부’였을 정도로 아이는 공부를 다시 느낀다. 그때 일기 한 토막.

공부 습관이 확실하게 붙은 거 같다.

일요일 지나고 월요일 되니까 바로 공부 시작해서 지금 공부가 다 끝났다.

이제 스타크래프트하는 것만 남았는데 기뻐서 죽을 지경이다. ㅋㅋ

이렇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던 적이 첨이라 기쁘고 신기할 정도다.


양손이는 올해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친다. 공부에 자신감이 붙자 내친 김에 “내년 4월에 고입 검시 보고, 바로 8월에 고졸 검시 볼까?” 그런다. 이제는 누구도 양손이가 공부를 싫어하던 아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공부든 일이든 오래 하기가 어렵다. 하고 싶은 것들은 과정도 좋고, 그 성과도 오래간다. 똑같은 공부인데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로 바뀌니 그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했다. 학교를 넘어서니 학년도 교과서도 다 넘어서게 된다. 한 가지 자신감은 또 다른 자신감을 불러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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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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