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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를 국가상징거리로 만들기 위한 제언

“山과 宮을 연결하라, ‘관아(官衙)’를 개방하라”

  • 김도년 성균관대 교수·건축학 dnkim@yurim.skku.ac.kr

세종로를 국가상징거리로 만들기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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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지 않은 세종로

세종로를 국가상징거리로 만들기 위한 제언

2008년부터 바뀌는 세종로의 조감도와 설계도.

그런 세종로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적고 세종로를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다. 세종로에 횡단보도가 설치됐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이래도 되나’ 하는 놀라움이 대부분이었다. 횡단보도가 설치되기 전, 이러한 가능성을 제공한 몇몇 행사가 있었다. 그 하나는 2002 월드컵 응원이었고 또 하나는 어느 해 ‘지구의 날’로 기억된다. ‘힘’으로 상징돼 가기 거북한 장소, 자동차를 위한 16차선 공간이 수많은 시민이 거닐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한 그 몇 시간이 우리가 잊고 있던 세종로 본연의 의미를 되살려준 계기라고 생각한다. 이곳이 세종로로 이름 지어진 이래 처음으로 공공장소 노릇을 제대로 한 게 아닌가 싶다.

이 도시는 한양, 한성, 경성을 거쳐 서울로 이름이 변해왔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의, 서울의 한길로서 세종로의 위상은 그대로 지속됐다. 지금의 세종로는 그 형태는 다를지언정 과거 육조(六曹) 거리인 관아가(官衙街)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의 세종로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길은 아니더라도 백성이 다니는 데 그리 불편하거나 제한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폐쇄적이고 권위적이 되더니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도 세종로와 세종로변의 정부청사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민선 지방자치 시대의 서울시도 ‘열린 서울’ ‘걷기 좋은 도시’라는 극히 당연한 정책목표를 표방했지만 세종로는 여전히 자동차 위주의 도로에 머물렀다.

그러다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던 과거 조선총독부 건물이 단숨에 없어지게 됐다. 그 과정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어쨌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북악과 광화문의 어우러짐은 도시 재생의 촉발제가 됐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경복궁 복원사업과 현재 진행 중인 광화문 제자리 찾기 사업의 추진을 가능케 했다.



그간 진행돼온 문화재청의 광화문 복원사업과 현재의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을 개별 사업만으로만 보면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이들 사업과 함께 그동안 논의돼온 세종로의 선형(線型) 조정과 세종로변 건물들의 향후 처리 등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계획과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이 사업을 서울과 국가의 상징을 재창조하기 위한 기회로 만들 수 있다. 특히 한 시대에 계획된 모든 일을 다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임기 내 완성’과 같은 또 다른 가치가 개입돼 큰일을 그르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베를린의 정체성

국가의 상징가로 조성과 관련된 좋은 사례는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독일 통일 후 ‘유럽의 수도’라는 기치를 들고 나선 베를린의 다차원적인 노력과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베를린을 포함한 역사도시들이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도시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을 만들면서 생각한 원칙은, 도시에는 ‘변하지 않아야 할 것’과 ‘변화해야 할 것’이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함께 사는 장소로서 도시의 중요성과 의미는 ‘변하지 않는 것’에 해당한다. 반면 사는 방법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시설은 시대의 수요와 문명의 발달에 따라 지속적으로 진화한다. 다시 말해서 대화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 가치이지만, 대화의 방법과 수단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봉화(烽火), 파발(擺撥), 편지, 전화, 휴대전화, 인터넷 등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운터 덴 린덴 거리

동독이 관할하던 동베를린은 과거 베를린이 자랑하던 바로크 고도(古都)의 면모가 대부분 사라지고 판상형 아파트와 넓은 차도가 가득한, 우리나라 도시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통일 후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긴 독일은 역사도시로서 베를린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과 새로운 도시기능 확충을 위한 개발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유럽의 수도로서 베를린을 재탄생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과거의 필지 모양을 건물에 반영토록 했다. 두 번째, 구시가지의 건물 높이를 33m로 제한했다. 이는 독일 통일 후 막대한 개발과 건축 수요가 있을지라도 역사도시의 문화적 정체성 확보가 우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한 도시 환경의 수준이 도시 경쟁력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 단기적 수요에 대응하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다차원적인 고려가 장기적 관점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원칙 아래 동베를린 시대의 아파트와 생각 없이 과도하게 넓혀놓은 도로는 점차 옛것을 기반으로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도시의 틀에 맞춰 조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랜 시간과 재원이 소요될지라도 베를린이 지향하는 도시의 모습으로 서서히 탈바꿈해갈 것이다.

특히 베를린에는 ‘보리수나무 길’이라고 하는 국가 상징가로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이 있다. 세종로처럼 수도 기능과 역사문화 자원이 밀집된 지역으로,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활력 넘치는 길이다. 베를린은 이곳을 걷고 싶고 활력 있는 길로 만들기 위해 도시 관리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운터 덴 린덴의 가로변에 늘어선 건물들은 외양과 용도뿐 아니라 간판의 형태, 색채, 크기 등 세세한 사항까지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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