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일 아침 출근길, 우성아파트 사거리에서 버스를 내려 강남역 지하보도까지 200m 남짓, 통칭 ‘강남역 일대’를 걷다보면 이 매장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먼저 우성아파트 사거리에 도착하면 ‘신분당선 지하철 공사 중’ 간판 다음으로 ‘파스쿠찌 6월 입점’이라고 적힌 대형 입간판이 눈길을 끈다. 가로 세로 족히 3m씩은 돼 보인다. 그 바로 옆 배스킨라빈스가 한 달 전 문을 열었다. 시선을 돌리면 파리바게뜨와 던킨도너츠 상호를 확인할 수 있다.
한남대교 방향으로 첫 번째 사거리를 건넌 뒤 건너편 메리츠 빌딩 옆을 보면 또 하나의 던킨도너츠가 있다. 오전 8시인데도 빈 자리가 없다. 고객의 70% 정도는 여성이다. 카운터에는 마치 주유소에서 OK캐시백 카드 내밀 듯 현금과 함께 멤버십 카드를 내고 5% 적립금을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달착지근한 가루 범벅 도너츠도 많이 팔리지만, ‘건강 메뉴’라는 베이글+크림치즈+커피 세트도 꾸준히 팔려 나간다.
다시 사거리를 건너면 파스쿠찌가 보인다. 아침 메뉴가 6000원에 육박해서인지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몇몇 50~60대 신사, 부인들이 그 시간에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우아한 자세로 신문을 읽는 광경은 다소 이국적이다.
파스쿠찌 바로 옆은 파리크라상이다. 파리바게뜨와 비슷하지만 좀더 고급 브랜드빵을 파는 카페형 매장이다. 여기도 1인용 테이블은 만석이다. 일본어도 들리고, 간혹 혼자 온 백인, 흑인도 눈에 띈다. 북적이긴 해도 그리 어수선하지 않다 싶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곳엔 10, 20대가 몇 명 되지 않았다. 이 시간, 건너편 패스트푸드점에선 으레 아침 영어학원 시간에 맞춰 숙제하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최소한 세미 정장을 갖춰 입은 30대들이 파리크라상에서 주로 먹고 있는 음식은 5500원 짜리 프렌치토스트 세트였다. 유기농 식빵을 바나나와 허니소스에 푹 적셔놓고 토마토와 양상추를 올리브소스에다 버무려 내놓은 상품. 가공식품류인 햄이나 참치, 치즈를 전혀 가미하지 않은 게 인상적이다. 대신 갓 구운 베이컨 한 조각을 길게 늘어뜨렸다. 대로변 건너편에는 분홍색과 파란색이 섞인 배스킨라빈스 상호가 눈에 띈다.
삼립과 SPC
SPC라는 이름은 낯설다. 외국계 금융회사나 컨설팅 업체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실상은 62년이나 된 토종기업이다. SPC그룹은 1945년 창업한 모(母)기업 격인 삼립과 1972년 창립한 샤니를 비롯해 파리크라상, 비알코리아 등의 소계열로 이뤄진다. 상위 브랜드인 파리크라상은 1500개의 매장이 있는 대중 브랜드 파리바게뜨와 이탈리아풍 고급 카페 파스쿠찌를 포괄하고 있다. 비알코리아는 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가 주축이다. 파리바게뜨와 파리크라상·파스쿠찌는 자체 브랜드이고, 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는 SPC측이 기술제휴나 지분투자 방식으로 참여한 외국 브랜드다.
창립자인 허창성(許昌成·2003년 작고) 회장이 초기 브랜드인 상미당, 삼립 등을 만들었고, 1970년대부터는 장남인 허영선(許英善)씨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며 ‘삼립 크림빵’ ‘삼립 호빵’ 등 히트상품을 개발해냈다. 당시 100대 기업 순위에 꼬박꼬박 오를 정도로 삼립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콘도, 개발사업으로 무리하게 확장하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다행히 1970년대에 선친으로부터 계열사 ‘태인 샤니’를 물려받은 2남 허영인(許英寅)씨는 경영에 뛰어난 수완을 보였다. 1986년 설립한 파리바게뜨가 고속성장을 거듭했고, 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마저 대박을 터뜨린 덕분에 가업(家業)의 상징과도 같았던 삼립을 2002년에 인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