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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사람 공부, 이웃 이야기 7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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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마을’ 제주도에 바람같이 사는 부부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그리워하던 젊은 부부는 어느 날 도시를 떠났고 산골을 떠났고 섬에 잠시 정착했다. 삶은 선택할수록 더 풍부해지는 것일까. 선택은 우주의 빅뱅처럼 일순간 삶의 좁은 벽을 툭 터뜨리고, 또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개를 자식처럼 키우는 박장 부부. 이제는 아기를 가질 마음이 생겼단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고 흥미롭다. 한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삶이 있는 반면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삶도 있다. 한마을에서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지만 꿈꾸는 삶은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올 농사철에는 평소 안 하던 짓을 해보았다. 뜬금없이 제주도로 2박3일 여행을 다녀온 거다. 아내가 발단이었다. 제주에 있는 보물섬 공동육아 협동조합에서 아내한테 강의를 부탁했기 때문. 공동육아는 학부모와 교사가 협동조합을 만들어 아이들을 함께 길러가는 교육공동체다. 장소는 대부분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놀게 하기 위해 마당이 있는 집과 가까이에 산이 있는 곳으로 정한다. 아이들 끼니와 참도 우리 농산물로, 그것도 제철식품으로 해 먹이려 한다. 아내는 자신과 여러 모로 잘 맞는 곳이니 가고 싶어 했고, 먼 길 가는 데 나랑 함께 가길 바랐다.

나 역시 제주도 하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몇 있다. 먼저 떠오른 사람이 우리 마을에 살다가 저 멀리 제주도로 이사 간 젊은 부부. 그리고 세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우리처럼 집에서 키우는 경이네. 제주도는 우리가 1983년에 신혼여행을 갔던 곳이다. 25년 만에 다시 한번 가보자는 아내의 청을 어찌 뿌리칠 수 있겠는가.

바람 같은 ‘박장 부부’

산골에서 제주도로 가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둘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 끝에 아내는 강의를 하고 나는 인터뷰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은 오랜만에 아내와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의논을 하다 보니 작은애가 따라가고 싶어 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제주도가 궁금하고, 비행기도 타보고, 경이네도 만나고 싶었나보다.



나는 가끔 땅에 매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곡식에 매이고, 풀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논농사가 시작되고 나면 논에 물이 잘 드는지, 논두렁에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아침저녁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떤 논 주인은 며칠이고 돌아보지 않아도 벼가 잘 자라는 게 신기할 정도다. 가끔은 내가 땅과 곡식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한번쯤 나를 돌아보고 싶다.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삶이란 무얼까. 나도 훌쩍 떠나는 게 가능할까. 논두렁에 앉아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노라면 저 비행기에서 보는 나는 어떨까. 이래저래 가슴이 설렌다.

여행을 가려니 우선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한창 모내기 준비를 해야 하는 때. 예전에는 내가 손수 경운기로 논을 갈고, 써레질을 하고, 논을 반반하게 고르는 일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장님네 트랙터 힘을 빌렸다. 경운기로 하면 이틀쯤 걸릴 일을 트랙터로 하니까 반나절도 채 안 돼 모내기 준비가 끝났다. 이참에 제주도를 다녀와 모내기를 하면 되리라.

2003년에 우리 마을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이사 오기 전부터 마을에 소문이 돌았는데, 그건 이들이 젊은 신혼부부였기 때문이다. 아직 산골 추위가 가시기 전인 어느 날, 젊은 부부가 이사 왔다고 떡을 돌리며 인사를 왔다. 박범준(朴範埈·35)과 장길연(張吉燕·33) 부부.

별명은 ‘벙글’과 ‘바스락’이란다. 벙글이라면 기분 좋게 웃는 모양이 떠오른다. 벙글은 학창시절 별명이었는데 나중에야 알고 보니 영어 단어 bungle(어처구니없는 실수)의 뜻도 자신과 썩 잘 맞는다고 했다. 바스락은 작게 꼼지락거리며 움직일 때 나는 소리가 좋아, 이를 별명으로 했단다. 이들은 자신들 성을 따, ‘박장 부부’라 불리는 걸 좋아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인사를 건네고 보니 박장 부부는 최고의 엘리트였다. 벙글은 서울대를, 바스락은 카이스트를 나왔다. 이들은 산골 생활에 차츰 적응해갔다. 봄이라지만 어느 순간 눈으로 뒤덮이기도 하는 산골. 뒷간을 써야 하고, 비만 오면 비포장 길이 움푹 패고, 여름 장마에 온 세상이 풀천지가 되는 걸 겪어야 했으리라.

이들 부부가 살던 집은 우리 마을에서도 가장 외딴 집으로 집주인이 손수 지은 집이다. 웃바람은 세고, 목욕실조차 따로 없었지만, 자연과 함께하려던 이에게는 맞춤한 집이었을 테다. 이 집과 거기 딸린 전답을 박장 부부는 1년에 단돈 50만원을 주고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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