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입력2007-07-05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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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마을’ 제주도에 바람같이 사는 부부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그리워하던 젊은 부부는 어느 날 도시를 떠났고 산골을 떠났고 섬에 잠시 정착했다. 삶은 선택할수록 더 풍부해지는 것일까. 선택은 우주의 빅뱅처럼 일순간 삶의 좁은 벽을 툭 터뜨리고, 또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개를 자식처럼 키우는 박장 부부. 이제는 아기를 가질 마음이 생겼단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고 흥미롭다. 한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삶이 있는 반면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삶도 있다. 한마을에서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지만 꿈꾸는 삶은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올 농사철에는 평소 안 하던 짓을 해보았다. 뜬금없이 제주도로 2박3일 여행을 다녀온 거다. 아내가 발단이었다. 제주에 있는 보물섬 공동육아 협동조합에서 아내한테 강의를 부탁했기 때문. 공동육아는 학부모와 교사가 협동조합을 만들어 아이들을 함께 길러가는 교육공동체다. 장소는 대부분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놀게 하기 위해 마당이 있는 집과 가까이에 산이 있는 곳으로 정한다. 아이들 끼니와 참도 우리 농산물로, 그것도 제철식품으로 해 먹이려 한다. 아내는 자신과 여러 모로 잘 맞는 곳이니 가고 싶어 했고, 먼 길 가는 데 나랑 함께 가길 바랐다.

    나 역시 제주도 하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몇 있다. 먼저 떠오른 사람이 우리 마을에 살다가 저 멀리 제주도로 이사 간 젊은 부부. 그리고 세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우리처럼 집에서 키우는 경이네. 제주도는 우리가 1983년에 신혼여행을 갔던 곳이다. 25년 만에 다시 한번 가보자는 아내의 청을 어찌 뿌리칠 수 있겠는가.

    바람 같은 ‘박장 부부’

    산골에서 제주도로 가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둘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 끝에 아내는 강의를 하고 나는 인터뷰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은 오랜만에 아내와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의논을 하다 보니 작은애가 따라가고 싶어 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제주도가 궁금하고, 비행기도 타보고, 경이네도 만나고 싶었나보다.



    나는 가끔 땅에 매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곡식에 매이고, 풀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논농사가 시작되고 나면 논에 물이 잘 드는지, 논두렁에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아침저녁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떤 논 주인은 며칠이고 돌아보지 않아도 벼가 잘 자라는 게 신기할 정도다. 가끔은 내가 땅과 곡식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한번쯤 나를 돌아보고 싶다.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삶이란 무얼까. 나도 훌쩍 떠나는 게 가능할까. 논두렁에 앉아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노라면 저 비행기에서 보는 나는 어떨까. 이래저래 가슴이 설렌다.

    여행을 가려니 우선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한창 모내기 준비를 해야 하는 때. 예전에는 내가 손수 경운기로 논을 갈고, 써레질을 하고, 논을 반반하게 고르는 일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장님네 트랙터 힘을 빌렸다. 경운기로 하면 이틀쯤 걸릴 일을 트랙터로 하니까 반나절도 채 안 돼 모내기 준비가 끝났다. 이참에 제주도를 다녀와 모내기를 하면 되리라.

    2003년에 우리 마을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이사 오기 전부터 마을에 소문이 돌았는데, 그건 이들이 젊은 신혼부부였기 때문이다. 아직 산골 추위가 가시기 전인 어느 날, 젊은 부부가 이사 왔다고 떡을 돌리며 인사를 왔다. 박범준(朴範埈·35)과 장길연(張吉燕·33) 부부.

    별명은 ‘벙글’과 ‘바스락’이란다. 벙글이라면 기분 좋게 웃는 모양이 떠오른다. 벙글은 학창시절 별명이었는데 나중에야 알고 보니 영어 단어 bungle(어처구니없는 실수)의 뜻도 자신과 썩 잘 맞는다고 했다. 바스락은 작게 꼼지락거리며 움직일 때 나는 소리가 좋아, 이를 별명으로 했단다. 이들은 자신들 성을 따, ‘박장 부부’라 불리는 걸 좋아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인사를 건네고 보니 박장 부부는 최고의 엘리트였다. 벙글은 서울대를, 바스락은 카이스트를 나왔다. 이들은 산골 생활에 차츰 적응해갔다. 봄이라지만 어느 순간 눈으로 뒤덮이기도 하는 산골. 뒷간을 써야 하고, 비만 오면 비포장 길이 움푹 패고, 여름 장마에 온 세상이 풀천지가 되는 걸 겪어야 했으리라.

    이들 부부가 살던 집은 우리 마을에서도 가장 외딴 집으로 집주인이 손수 지은 집이다. 웃바람은 세고, 목욕실조차 따로 없었지만, 자연과 함께하려던 이에게는 맞춤한 집이었을 테다. 이 집과 거기 딸린 전답을 박장 부부는 1년에 단돈 50만원을 주고 빌렸다.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문을 다는 일에 대해 의견 차이가 나자, 바스락의 자세와 표정이 무겁다. “여자들은 정서적인 공감을 중요시한단 말이에요!”

    우리 마을에 사는 동안 벙글은 텃밭 농사를 조금 짓고 컴퓨터 교육이라든지 번역, 그리고 글쓰기를 주로 했고, 바스락은 자신의 건강을 돌보며 마을에서 가까운 ‘푸른꿈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천연염색을 가르쳤다. 그러니 우리 식구와는 자주 만날 일이 없었다. 2년 동안 한마을에 살면서 내가 이들 부부를 만난 기억이라고는 두세 번 정도. 퇴비 만드는 법을 알고 싶다며 부부가 우리 집을 찾아온 것과 우리 식구가 이 부부에게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만난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박장 부부는 ‘인간극장’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 부부가 일류대를 나온 데다 젊고, 인상도 맑고, 말도 똑 부러지게 잘하니 방송에서 탐을 낼 만도 했다. 주제도 ‘느리게 사는 행복’으로 도시를 갓 떠난 사람이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었단다. 지금도 그렇지만 웰빙이니 로하스니 하는 건 이제는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흐름을 형성할 정도가 아닌가.

    아무튼 이 방송은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그 여세를 몰아 그동안 산골 생활을 하면서 써둔 글을 모아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책을 냈다. 방송과 책을 보고 사람들이 마을로 얼마나 많이 찾아오는지. 한동안은 마을 전체가 도시에서 오는 손님들로 복잡할 정도였다. 박장 부부와는 제법 떨어져 사는 우리마저 이 집을 찾는 손님들로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으니. 박장 부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불편을 드린 걸 사과하는 뜻으로 이웃집을 돌며 다시 인사를 해야 했다.

    상황이 그러하니 정작 본인들은 찾아오는 손님들로 말 못할 고생을 했다. 찾아오겠다고 연락이라도 하고 오는 사람은 아주 점잖고 예의바른 경우. 이른 아침에도 불쑥 마당으로 들어서고, 늦은 밤에도 문을 두드린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안방까지 들어와 기념사진을 함께 찍자고도 한단다.

    예기치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이 오다 보니 오해도 많았고 비난도 적지 않게 받았다. 방송과 다르다든가 멀리서 찾아간 손님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느냐든가. 선물을 일방적으로 보내놓고 나중에는 돌려받겠다고 해프닝을 벌인 사람도 있었다.

    고등어와 보리밥

    방송을 타기로 한 건 자신들의 선택이지만 방송에 나오는 장면은 그들의 손을 벗어났으니. 방송을 타면서 연예인에 버금가게 유명세를 탔지만 사생활을 보호할 만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집은 울도 담도 없는 집이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자기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을 가지고 사람을 만난다. 상대방을 자신이 잘 안다고 여겨 거리감이 없다고 느낀다.

    박장 부부는 더는 이곳에서 살기가 어려울 정도가 됐다. 사람에 치이고 지쳐, 집을 떠나 친지네 집을 전전했다. 그러더니 지난해 봄, 이사를 간다고 우리 식구한테 불쑥 인사를 하고는 바람처럼 떠났다. 남쪽 광양 어딘가로 간다는 거다.

    그러더니 올봄에 다시 제주도로 옮겼단다. 이곳에서 하는 일도 예전과 달랐다. ‘바람도서관’이란 이름의 작은 도서관을 열고, 손님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바람 스테이’도 준비했단다. 정말 바람 같은 친구들이고, 자유로운 젊은이다. 우리 마을에 살다가 떠나간 이웃이 여럿이지만 새삼 박장 부부가 보고 싶다.

    군산공항을 출발,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제주공항은 엄청 크고 복잡하다. 수시로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시골에는 어쩌다 다니는 버스조차 텅텅 비기 일쑤인데 마치 이곳에 사람이 다 모인 듯한 착각마저 든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이 왔을까. 내가 이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요즘은 여행이 흔한 세상이다. 볼거리 중심의 관광여행도 많지만 각종 테마 여행도 활발하다.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는 외국 여행은 물론 자신의 내면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많다. 내가 떠나는 여행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람 여행’이다. 사람을 만나고, 그 삶을 이해하고, 삶의 영감을 나누고자 하는 여행. 이번에는 그 여행기를 적어 볼까 한다.

    제주공항에 도착, 어리둥절 둘러보면서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 누군가 손을 흔들며 반긴다. 공동육아 학부모이며 교육이사인 이영숙씨다. 내가 공항에서 마중을 다 받아보다니 기분이 황홀했다. 그리고는 우리 식구에게 점심을 대접한다고 한 식당으로 안내를 했다. 그곳에서 공동육아 학부모이며 이사장님 한 분과 역시 학부모이자 선생님이신 또 한 분이랑 자리를 함께했다. 메뉴는 고등어와 보리밥. 제주도는 논이 거의 없어 보리농사를 많이 짓는단다. 농사 이야기가 나오니 내 입맛도 더 살아나는 듯 맛있다.

    점심을 먹고 아내랑 헤어져 박장 부부가 사는 바람도서관을 찾았다. 그곳은 제주공항에서 택시로 20여 분 거리. 북쪽으로는 멀리 바다가, 남쪽으로는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중산간 ‘전원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삶 같은 여행’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반반 하면서 더 자유로운 삶을 모색하기 위해 부부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주인이랑 반갑게 인사하고 집을 둘러본다. 게스트 하우스로 쓰는 별채(27평)가 있고 살림채 겸 도서관으로 쓰는 본채(33평)가 있다. 본채는 무주에서 살던 집과 견줄 수 없이 크고 세련된 집이다. 이곳 별채는 군데군데 굵은 통나무를 써가며 지은 전원주택으로 널찍한 방에는 에어컨과 신식 욕실이 딸려 있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나무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 청단풍, 비자나무, 동백나무. 주먹만큼 크고 노란 열매가 달린 나무도 있다. 하귤이란다. 제주도는 귤 종류가 많단다. 여름에 많이 먹는 청견이라는 귤도 있다. 우리가 보통 먹는 귤은 씨가 없지만 청견은 씨앗이 있단다. 벙글은 집 안팎을 정리하고 나무를 새로이 옮겨 심는 일을 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바스락을 따라 본채로 들어서니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들어선 듯하다. 실내 장식이며 가구들이 세련돼 보인다. 이 집 부부가 예전에 우리 이웃에 살던 사람인가 싶을 정도다. 내가 낯설어하자, 바스락이 쑥스럽게 웃으며 “원래 있는 것들을 그대로 쓰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한다.

    이들 부부를 만나기 전에 생각한 키워드는 ‘바람 같은 삶’이었다. 이들은 ‘여행 같은 삶’ 또는 ‘삶 같은 여행’을 꿈꾼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고 싶다지만 현실에서는 걸림이 적지 않다. 이들 부부는 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안고 있는데다가 제주도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집 둘레 정리가 덜 된 상태다. 도서관을 하려면 책 정리도 마저 해야 하고 홈페이지(www.baramdo.com)도 더 새롭게 단장해야 한단다.

    바람 같은 삶은 꿈일까, 현실일까. 바람이 되자면 우리가 얼마나 작아져야 하는가. 한없이 작아지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선택이란 말이 자주 나왔다. 바람처럼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사람이 바람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선택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선택은 누가 강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르는 거다. 그렇다면 그 선택이 자유로운 쪽으로 나아가기 위한 또 다른 선택은 뭘까.

    바스락이 던진 답은 ‘선택의 빅뱅’이다. 빅뱅(Big bang)이란 원래 ‘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을 뜻하는 물리학 용어다. ‘선택의 빅뱅’은 한 번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걸 그렇게 말한 거다. 우리가 일상에서 뭔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놓치게 된다. 책을 볼까, 아니면 그 시간에 영화를 볼까 하는 선택이라면 두 가지 다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선택의 빅뱅은 다르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틀이 한번 탁 깨지면서 갑자기 빅뱅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선택의 폭이 열 개만 보였던 게 갑자기 수백 개로 확 늘어난다고나 할까. 선택의 폭이 넓어지니까 예전에는 불안하게만 봤던 것들도 불안하지 않고 다시 예측 가능하면서 안정감 있게 다가오더라고요.”

    하룻밤에 10만원

    돈 문제도 그렇다. 박장 부부는 이제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이 부쩍 커졌다.

    “돈에 대한 고민은 있지만 돈에 매인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요. 저는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지요. 사기를 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뭔가를 열심히 하면 먹고는 산다고 보거든요. 저는 이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운전을 하거나 건축현장에서 날품을 팔거나.”

    이 집 부부는 결혼하기 전에 각자 나름대로 빅뱅을 경험한다. 벙글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사람관계가 나빠지는 걸 무척 힘들어했다. 직장 밖에서 만났다면 더없이 좋을 사람인데도 좁은 테두리에서 부대끼다 보니 서로 헐뜯고 상처를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몽골 여행을 하면서 빅뱅을 결심한다. 드넓은 초원에서 바람처럼 살아가는 유목민의 모습. 게르라고 하는 유목민 특유의 집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

    바스락의 빅뱅은 좀더 극적이다. 정해진 길을 따라 누구보다 잘 달리던 사람. 초등학교를 또래 아이들보다 1년 일찍 들어갔고, 어렵다는 과학고등학교를 2년 만에 마치고 카이스트에 입학. 누가 봐도 훌륭한 과학자가 돼 나라의 큰 일꾼이 될 사람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서서히 이 길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대학원 공부가 끝날 즈음 방황하기 시작한다.

    “뭔가 이대로 내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버리면 너무나 후회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고민했지요. 졸업을 하느냐 마느냐를. 직장도 이미 서류 면접 다 하고, 합격한 상태였거든요. 졸업하고 가기만 하면 되는데, 가기가 싫은 거예요. 엄청난 혼란이었지요.”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손님들과 대화하는 벙글. 지치고 힘든 현대인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싶단다.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 막막한 상황. 남들이 보면 너무도 이해가 안 되는 짓이지만 졸업을 미루고 다양한 경험을 시도한다. 바스락에게는 대학원 졸업을 미룬 것이 빅뱅이었다고 한다.

    “휴학하고 여러 사람을 만났어요. 졸업을 미루기로 결정하기까지는 엄청난 두려움에 떨었는데, 그렇게 다녀보니까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한 번의 경험이 살아가다가 두려움이 있는 선택을 할 때면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 할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그 다음 선택을 할 때는 조금 고민을 덜 하고 점점 누적돼 이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 정도까지 온 셈이지요(웃음).”

    빅뱅이란 말은 의식의 확장을 가져온다. 박장 부부와 의식의 대폭발을 함께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밤 12시를 넘는다. 쉬이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자야지. 이 집의 하룻밤 숙박료는 10만원이다. 박장 부부와 처음 약속을 잡을 때는 예전에 알던 이웃이라 돈 받는 걸 어려워했다. 별채에 있는 펜션말고 본채에 작은 방이 있는데 거기가 불편하지 않다면 자도 좋다는 의견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하는 얼마만의 여행인가. 이 참에 나도 하룻밤에 10만원짜리 잠을 한번 자보자. 솔직히 우리 같은 촌놈이 제주도 여행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혼자 왔다고 쳐도 왕복 비행기 삯 10여만원에, 공항까지 오고가는 차 기름값에, 공항 주차비를 합치니 여비만도 20만원이다. 여기에다가 펜션 하루 숙박비 10만원과 제주도에서 움직이는 택시비, 끼니 값을 셈하니 1박2일에 드는 값이 얼추 40만원에 달한다. 움직이는 족족 돈이요, 자는 것조차 돈이다 보니 갑자기 돈이 낯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나로서는 일이 아닌 단순한 여행이라면 엄두가 나질 않는다.

    방은 비교적 잘 정리돼 있고 방구석에 책 몇 권을 비치한 게 눈에 띈다. 표지를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화’. 이들 부부가 꾸리고자 하는 삶과 이 책들이 잘 맞는구나 싶다. 책 내용은 보지 않았지만 뭔가 떠오른 이미지가 있다.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조차 누리기 힘든 세상이다. 휴일이라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가 쉬지 말라고 해서 못 쉬는 게 아니다. 나 역시 따로 휴일을 가져본 지가 참으로 오래됐다. 뭔가를 해야 오히려 마음이 편한 쪽으로 바뀐 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 새소리에 잠이 깼다. “호로로~ 호홋케” 휘파람을 부는 듯한 휘파람새다. 동쪽 창 너머로 붉은 해가 서서히 올라온다. 집을 나와 둘레를 돌아다녀본다. 전원마을답게 집들이 아담하고 잘 지어져 한결 여유 있는 느낌이다. 집 뒤로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조금 지나자 이곳 마을 분들이 길가에 풀을 벤다고 우르르 나와 일을 한다. 벙글도 낫을 들고 풀을 벤다. 벙글은 그동안 산골 생활을 해서 그런지 풀 베는 솜씨가 제법이다.

    바스락은 아침 준비를 한다. 손님에게 간단한 아침을 제공한단다. 그래도 우리식구는 멀리서 찾아온 이웃이라고 단호박수프와 제주도 보리빵을 정성스럽게 마련해주었다. 덕분에 촌놈이 서양식을 먹어보는 호강을 누린다.

    식탁에 앉아 남은 이야기를 마저 나누었다. 바스락은 손으로는 요리를 하면서도 입으로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새가 자연스럽다. 선택의 빅뱅은 우주 팽창과도 같이 무한대로 뻗어간다. 그이는 결혼 문제에 대해서도 그랬다. 예전에는 결혼을 복잡하게 생각했고, 그렇게 따질수록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쪽이었다. 어떤 점에서 세상은 공평하다 싶다. 바스락은 보통 사람이 어려워하는 공부는 쉽게 잘했지만 많은 사람이 쉽게 하는 결혼에 대해서는 아주 어려워했다.

    개에게 위로를 받고…

    그러던 바스락이 결혼을 받아들이는 계기는 뜻밖에도 사랑이 아니었다. 바스락과 연애를 하던 어느 날 벙글이 청혼을 해오자 결혼을 외면하던 바스락이,

    “결혼을 왜 하는 거지요?”

    벙글의 답이 걸작이었다.

    “자유!”

    자유를 위해 결혼을 하다니. 보통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가정에 매인다고 여긴다. 바스락도 그런 점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에 바스락은 결혼을 통해 자유를 잃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제 박장 부부는 결혼을 통해 묶이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이전보다 한결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된다.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경이 아버지가 바다에서 물질하고 나오며 덜덜 떨자, 경이가 “아빠, 거기 가만히 있어. 내가 춥지 않게 해줄게” 하며 수건을 들고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아기에 대한 생각도 그랬다. 결혼 당시만 해도 바스락은 아기를 가질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기가 생기면 갖기로 했단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걸 바스락 자신은 혁명이라고 말했다. 보통 혁명이라면 사회를 근본에서 변혁하는 거지만 개인 삶에서 혁명이란 부자연스럽기만 하던 삶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데 있나보다. 이름 하여 자기혁명이다. 결혼도 아기도 자연스러운 것인데 혁명적으로 ‘선택’한 셈이다.

    바스락이 아기를 거부했던 데는 인연에 대한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자식이란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 인연 중에서도 가장 질긴 인연. 여러 인연 중에서도 자식과의 인연은 가장 힘든 것으로만 느꼈고, 가능하다면 일부러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딱딱한 껍데기를 벗겨내는 데는 치유가 필요하다. 이렇게 사람 공부를 하다 보면 사람마다 치유과정이 참 다르다는 걸 느낀다. 이 집 부부에게는 개가 큰 몫을 차지했다. 이 집은 풍산개 두 마리를 자식처럼 키웠다. 그래서인지 개에 대한 애정이 좀 유별나다.

    “사람 같으면 미안한 짓을 하고 나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잘 못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하려고 해도 쉽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면 감정이 속에서 꼬이기도 하고 쌓이기도 하는데. 동물한테는 그러지 않는 거예요. 감정 표현을 쉽게 해요. 내가 개한테 뭔가 미안한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쉽게 ‘미안해’ 하면서 쓰다듬게 된단 말이지요. 그럼 개는 막 꼬리를 흔들며 기쁘게 받아줘요. 만일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말을 사람한테 했다고 해봐요. ‘야, 너 뭐야? 별 미친 놈 다 있네’(웃음) 그런 소리 듣기 십상이잖아요. 사람한테 치유 에너지를 받자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딱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데 우리로서는 개가 그걸 쉽게 해준 셈이에요. 개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다 보니까 사람에 대해서도 차츰 애정을 표현하는 데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곶자왈 용암동굴

    이 집 부부는 개한테 배우는 것도 많지만 위로도 자주 받는다고 했다. 우리는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이 곧잘 말리는데, 이 집은 개가 그 몫을 담당한단다.

    “개를 키워보니 꼭 구속만이 아니라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걸 경험하겠더라고요. 사랑을 주고 또 되돌려 받는 과정을 겪으면서 사람에게도 그런 본성이 있다는 걸 느끼겠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기를 갖는 것에 용기가 생기데요.”

    박장 부부 삶에서 아기는 또 다른 바람이 돼줄까. 나는 바스락과 맞장구를 치며 우리 경험을 들려주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낸 것도 다 아이들 덕이다. 아이들이 우리 부부에게 글을 쓸 수 있게 했고, 우리가 쓴 글을 아이들이 다시 읽고 일일이 가다듬어주어 책을 낸 것이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도 다 아이들 덕이 아닌가. 올해 모내기조차 학교 다니지 않는 아이 친구들이 우르르 와주어 쉽게 끝이 났으니. 바스락이 휴학을 통해 ‘혼자’ 빅뱅을 경험했다면 우리 식구는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남으로써 식구가 ‘함께’ 빅뱅을 경험한 셈이다.

    바스락과 이야기를 마칠 무렵, 경이네가 차를 끌고 우리 있는 곳으로 왔다. 경이 아버지 허윤석(許允碩·43), 어머니 최복인(崔福仁·37)씨는 제주도 토박이다. 한 사람은 바닷가, 또 한 사람은 한라산 중턱에서 나고, 둘 다 제주도에서 대학을 다녔다. 제주 역사와 삶에 대한 애정이 무척 깊은 분들이다. 아이가 셋인데 모두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경이는 열 살 여자아이다. 오빠 성학(15), 언니 란(12)이랑 한식구다.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성장해가는 가족. 우리 식구랑 만남도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경이네한테 제주도를 느끼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외지인이 다니는 관광코스가 아닌 제주도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제주도의 속살을. 경이네는 일상을 접고 이틀 동안이나 우리 식구를 안내했다.

    소년의 슬픔, 두려움

    제주도 하면 곶자왈과 오름을 보아야 한단다. 우리는 곶자왈 지역으로 유명한 선흘을 먼저 들렀다. 곶자왈, 화산활동으로 빚어진 용암지대로 돌과 굴이 많아 겉보기는 볼품도 없고 농사짓기도 어려운 땅. 하지만 그 역사를 알고 보면 달라진다. 제주도 하면 빠질 수 없는 역사가 4·3항쟁이다. 그때 제주도 사람들이 몸을 피해 숨을 수 있었던 굴이 바로 이곳 곶자왈에 있는 용암동굴이라 했다.

    여기서 잠깐 경이네 블로그에 올라 있는 ‘나의 4·3과 아버지의 4·3’이란 글 일부를 인용해본다.

    “꽁꽁 얼었던 동태가 쑤욱 풀리는 것처럼 온몸의 힘이 빠진다. 우리 시아버지가 4·3을 떠올리며 하시는 말씀이다. 4·3만 생각하면 온몸의 힘이 그렇게 빠지고, 4·3때 목숨을 잃었다 살아나 이미 귀신이 된 몸이라고.아버지에게 4·3은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걱정 없이 살던 14세 소년이 어느 날 갑자기 부모 형제를 잃고 가장이 되는 사건이었고, 밥을 먹다가도 경찰이 온다는 소리에 수저 하나를 들고 어두운 벽장 속으로 숨어 있어야 하는 사건이었고, 소년이 주검을 묻어야 하고, 한꺼번에 총살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고, 소년이 ‘나는 이 숲에서 죽게 될까 아니면 저 길가에서 죽게 될까’ 담담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었고, 소년이 한꺼번에 돌아가신 집안 어른들을 대신하여 큰 양푼이에 수저를 여러 개 꽂아놓고 제사를 지내야 하는 일이었다.아버지는 그때 모두 11분의 가족을 잃으셨다고 한다. (중략) 나는 4·3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4·3은 가슴 속의 응어리다. 내가 그 가슴 속 응어리의 아주 일부분이라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때 4·3을 조금 안다고 해도 될까?”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금능석물원에서 석물원 주인인 장공익 할아버지와 경이네 식구, 그리고 우리 식구가 함께 기념 촬영.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말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4·3. 우리는 말없이 역사의 숨결을 주고받고는 선흘을 지나 ‘오름’을 보러 갔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작은 화산구가 수백 개가 생겼는데, 그걸 제주도 말로 오름이라 한단다. 경이네랑 함께 간 오름은 용눈이 오름. 이 오름은 자그마한 산으로 나무 없이 풀로 뒤덮여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편안하고 포근한 땅. 어찌 보면 쓸모없는 땅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과 위로를 주는 땅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살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자연을 두 눈 가득 담고 김영갑 갤러리로 갔다. 경이 어머니는 “너무 흔하면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르나 봐요. 김영갑 선생님은 제주도 사람들이 제주도의 오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있던 시절, 오름에 반해 제주도에 머물며 사진을 찍다 돌아가시도록 우리는 몰랐으니까요”하며 사진을 보고 또 본다.

    오후에는 경이네가 사는 제주 서쪽 바닷가를 갔다. 보말을 잡아 죽을 끓여먹자고. 제주도 하면 바다를 빼놓을 수 있겠는가. 아내는 창 밖에 바다만 보여도 바다다! 하고 감탄을 하는데, 우리가 그 바다에서 뭔가를 얻어먹을 수 있다니. 제주도에서는 고둥을 ‘보말’이라고 한다. 경이 아버지는 바닷물에 들어가 큰 보말을 줍고, 성게도 잡고, 미역도 뜯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바위에 붙은 보말을 주워서 경이네 집으로 돌아왔다. 보말죽을 끓여 점심으로 먹었다. 바닷바람을 쐬고 돌아와 뜨뜻하게 끓인 죽 한 대접. 가장 제주도다운 음식을 먹은 기분이었다.

    집착을 벗어나는 여행

    다음날 역시 강행군. 쪽빛 바다와 깨끗한 모래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협재 해수욕장에 잠시 들러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나서 금능석물원을 갔다. 돌조각을 모아놓은 곳인데 작품들이 고상하고 어려운 게 아니라 제주도 삶을 보여주는 것들이라 무척 친숙하게 느껴진다. 똥 싸는 모습이 많다. 사람이 똥을 싸면 돼지가 똥을 받아먹기 위해 반갑게 고개를 쳐드는 모습이라든가, 똥 싸는 엉덩이 모양의 익살스러운 돌의자도 놓여 있다.

    가는 곳마다 볼 게 많았지만 석물원이 넓다 보니 간간이 쉬어가며 보아야 했다. 그러다가 석물원 한 귀퉁이에서 돌을 깎고 있는 한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늘도 없이 뜨거운 뙤약볕 아래 정으로 돌을 깨고 입으로 후 불어 돌가루를 날리신다. 일에 몰입하는 모습. 인사를 건네니 환하게 웃으시며 어디서 왔냐며 우리를 맞아주신다. 몇 가지 질문을 하니 일손을 놓고 편안하게 말씀을 들려주신다. 이분이 바로 이 석물원을 세우신 장공익(張公益·76) 할아버지란다.

    “수십 년 돌을 깎다 보니 재고가 쌓이더라고요. 그게 볼거리가 된다고 해서 그걸 이렇게 늘어놓고 석물원을 열기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저절로 열매를 맺은 거란다. 할아버지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한결같아 보인다. 선 자리에서 거의 평생을 한 가지 일을 해오신 할아버지. 앞으로도 만들고 싶은 작품이 너무나 많다고 웃으신다. 작품 하나하나도 좋았지만 그 어떤 작품과 견줄 수 없이 할아버지 얼굴과 손, 그리고 삶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틀이  한번  탁  깨지면 기회는  빅뱅처럼 확  터지죠”
    김광화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1996년 서울을 떠나 1998년부터 전북 무주에서 자급자족 농사

    정농회 회원

    저서 : ‘아이들은 자연이다’


    제주도에서 보낸 2박3일.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체력이 달려 힘들기도 했지만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여행이 뭘까를 다시 곱씹어보았다. 아주 옛날 사람들에게는 여행이 목숨을 거는 게 아니었을까. 더 나은 삶을 선택하기보다는 배고픔이나 추위 또는 맹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이제 그런 여행은 거의 사라졌다. 삶을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현대인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그 대부분은 그 어떤 집착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 여행으로 떠났지만 땅과 역사와 이웃을 다시 보게 된 여행.

    이제 여행은 특별한 게 아니라 삶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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