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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5

경의선 제7호 특급열차 뭉칫돈 도난사건

달리는 열차, 철통 보안 뚫고 벌어진 희대의 ‘완전범죄’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경의선 제7호 특급열차 뭉칫돈 도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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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차에서 베개 파는 소년은 경성역 출발 직후 삼등실 객차에서 철도원 제복을 입고 차장 완장을 찬 낯선 사람을 보았는데, 귀중품 화차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열차가 금촌역에 정차하자 바람결같이 사라져 버렸다고 증언했다. 수사본부인 개성경찰서는 돌연 활기를 띠고 그 차장 복장을 한 인물의 거취에 대해 엄밀한 수사를 개시했다는데 그 자가 혹은 범인이 아닌가 하여 추측이 구구하다 한다. (‘의문의 2만원 거처’, ‘동아일보’ 1930년 10월10일자)


경의선 제7호 특급열차 뭉칫돈 도난사건

고가 사치품을 사들이다 2만원 도난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받아 곤욕을 치른 오산역 역무원 김영환의 사연을 실은 ‘동아일보’ 1931년 9월1일자.

베개 파는 소년이 보았다는 차장 복장의 인물이 진짜 차장이었는지 가짜 차장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제7호 특급열차 승무원들끼리도 ‘차장 복장을 한 낯선 사내를 보았다’ ‘보지 못했다’ 증언이 엇갈렸다. 보았다는 승무원들도 증언하는 인상착의가 제각각이어서 몽타주조차 만들 수 없었다. 내부자의 범행이 아니라면, 2만원을 훔쳐간 범인은 베개 파는 소년이 보았다는 차장 복장을 한 인물일 것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오키모토가 너무 늦게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은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고도 문제의 인물을 찾을 길이 막막했다.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치자, 오키모토와 홍인상을 향한 의혹의 눈초리는 더욱 따가워졌다. 다른 승무원들은 사건 발생 이튿날 모두 풀려났지만 오키모토와 홍인상, 금촌역에서 복제열쇠를 처음 발견한 이태운 등 세 사람은 개성경찰서에 계속 유치돼 강도 높은 신문을 받았다.

개성경찰서는 오키모토 전무차장과 홍인상 귀중품 화차 전담승무원을 유력한 혐의자로 인치하고 엄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개성경찰서 오키타 형사와 이 형사는 어떠한 단서를 잡았는지 지난 8일 오후 4시 상경하여 경성역에 머물고 있는 하루타 열차구장을 비밀리에 조사하고 오키모토와 홍인상의 가택을 수색한 후 경기도 형사과를 방문해 노무라 형사과장과 오랫동안 협의한 후 9일 새벽 돌아갔다. 아직까지 사라진 2만원의 행방에 대해서는 분실인지 도난인지조차 명백하지 못하고 혐의자도 개성경찰서에서 조사 중인 오키모토와 홍인상 이외에는 없다고 한다. (‘의문의 2만원 거처’, ‘동아일보’ 1930년 10월10일자)


사라진 2만원의 소유주인 식산은행은 조선화재회사에 보험을 들어두었기 때문에 현금을 찾건 못 찾건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범행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이번 사건으로 신용을 잃은 조선철도주식회사와 수사에 진전을 보지 못해 무능함을 드러낸 경찰이었다. 2만원이면 한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범죄자가 절도한 돈으로 부귀영화를 누린다면 법질서가 문란해지고 모방범죄가 기승을 부릴 게 불을 보듯 뻔했다.



10월11일 밤, 나흘 전 2만원 도난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제7호 특급열차에서 우려했던 모방범죄가 발생했다.

지난 11일 밤, 현금 6880원(100원권 68매, 10원권 8매)을 휴대하고 제7호 특급열차편으로 신의주로 돌아가던 청부업자 후쿠자와가 삼등침대차에서 자고 있다가 식당차에 잠깐 다녀와서돈을 넣어두었던 주머니를 만져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후쿠자와가 전무차장에게 분실 사실을 알리자 전무차장은 즉시 신막경찰서에 신고했다.

열차가 2만원 도난 사건이 발생한 제7호 특급열차요, 지역이 역시 개성 부근이어서 혹시 동일 계통의 범행이 아닌가 하여 경기도 경찰부 형사과는 철로 주변과 각지의 역을 엄밀히 경계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이번에는 기어이 범인을 체포하고자 예하 각 경찰서에 수사를 독려했다.

신의주경찰서는 피해자 후쿠자와를 추가로 조사하고 용의자로 서너 명을 인치하고 문초 중이다. 후쿠자와의 직업과 평상시 품행으로 미루어보아 허위고발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없지 않다. (‘제7열차에서 6000원 또 분실’, ‘동아일보’ 1930년 10월15일자)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고 모방범죄까지 발생하자 경찰은 더욱 초조해졌다. 존재 자체가 불분명하고 몽타주조차 만들지 못한, 차장 복장을 한 인물을 추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경기도 경찰부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매일같이 8~9명의 전·현직 승무원을 소환해 사건 당일 행적을 조사했지만 아무런 혐의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마지막 기대를 걸 곳은 사건 발생 이후 줄곧 개성경찰서에 유치 중인 오키모토, 홍인상, 이태운 세 사람뿐이었다.

사건 발생 아흐레째 되던 10월15일, 수사책임자 노무라 형사과장은 개성경찰서에서 경기도 경찰부로 수사본부를 옮기고, 오키모토, 홍인상, 이태운 세 사람을 경성으로 호송해 직접 신문했다. 세 사람이 새로운 내용을 진술하면 고등과 미와 경부가 경성역으로 달려가 승무원을 상대로 일일이 확인했다. 한동안 승무원들은 고된 일과에다 경찰 조사까지 이중고에 시달렸다. 조그마한 꼬투리라도 잡기 위해 사력을 다해 수사했지만, 세 사람의 혐의점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이태운과 오키모토는 사건 발생 열흘 후인 10월16일 석방됐고 홍인상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10월19일 풀려났다.

경찰은 오키모토가 자리를 비운 13분간 홍인상이 잠든 것이 아니라 범인이 뿌린 마취약 냄새를 맡고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히 잠든 것이라면 범인이 금고문을 열고 2만원을 꺼내갈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오키모토와 홍인상은 형사처분은 면했지만, 직무 태만을 사유로 나란히 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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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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