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짓는 일 자체를 기획하고 장인들을 불러 모아 팀을 짜며 설계와 시공을 총괄 관리해서 결과에 대해 책임 지는, 집짓기의 총감독 노릇을 하는 이를 부르는 ‘지유(指諭)’라는 명칭이 있다. 신영훈 선생이 평생 해온 일이 바로 그 ‘지유’에 해당하지만, 마침 그의 호가 ‘목수(木壽)’이니 나는 낯선 이름 대신 그냥 친숙하게 ‘큰목수’라고만 부르련다.
둘이 포개 누워도 안 보이게
서울 북촌의 좁다란 골목 끝, 한옥문화원이란 간판이 걸린 집에서 신영훈 선생을 뵈었다. 한옥문화원은 아쉽게도 한옥이 아니지만 댓돌에 신발 벗고 마루로 올라가 왼쪽 문을 여니 선생 계신 사랑방이다. 문과 창을 한식으로 짜서 달고 나무빛이 맑은 이층장 한 점이 등 뒤로 놓였다. 한옥문화원 강좌 중엔 ‘아파트를 한옥처럼’이란 과목도 있다니, 아닌게아니라 아파트에 이런 창호와 목물을 두는 것만으로도 한옥다운 운치를 맛볼 수 있겠구나 싶다. 그는 대뜸 본론에 진입했다.
“저기 창문 앞에 가서 한번 서봐. 어깨 너비랑 딱 맞지? 사람 키와 어깨 너비에 맞춰서 창문 크기를 정하는 거라고. 안방 아랫목에 야트막한 창이 있지? 그 문 높이를 어떻게 정하는 줄 알어? 앉아서 팔굼치를 편하게 얹어놓을 만한 높이라고! 창 아래를 막는 나무를 머름대라고 하는데 머름대의 높이는 어떤 줄 알어? 바닥에 누워도 뜰에서 들여다보이지 않을 만한 높이지. 때로 둘이 포개 누워도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을 높이라고!
하하…. 뭐 그런 거까지 고려했겠나 싶지만 그게 안 그래. 인간이 하는 온갖 일에 편리한 공간이라야 그게 좋은 집이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똑 알맞고 쓸모가 있어야 좋지 할 때마다 불편해서야 쓰것어? 우리 살림집은 집 치수를 사람 치수에 맞춰서 짓는 맞춤집이지. 그러니 싫증이 날 리가 있나. 봐, 문얼굴하고 사람 얼굴이 똑같지? 환하고 정기가 돌잖아? 전에는 한국 사람의 심성이 이렇게 창호 문에 그대로 얼비쳤는데 이제는 문마다 방범창을 쳐대니 나 아닌 남은 다 도둑놈이라는 거지 뭐야.”
처음 듣는 얘기가 많다. 이야기가 쉽고 재미있고 친숙해 무릎 앞으로 바싹 다가앉을 수밖에 없다.
“옛 어른들이 방석을 놓고 그 위에 올라 앉으시는 건 까닭이 있어. 엉덩이는 높고 다리는 아래로 내려오니 절로 허리가 곧게 펴지거든. 갓을 썼으니 벽에 기댈 수도 없지. 한식 두 칸 방엔 맞은편 벽이나 문 외엔 눈앞에 걸릴 게 아무것도 없거든. 한지로 도배한 바닥은 해맑은데 정좌해서 건너편 은은한 벽을 바라보고 있자면 집중력이 절로 생길 거 아냐. 자연 궁리가 깊어지고 생각이 익어가지. 집을 사람이 경박할 수 없도록 만들었어.”
따로 질문할 필요도 없다.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오후 햇살을 받아 신영훈 선생의 낯빛이 과연 장지문처럼 환하다.
“제 집에 살아야 신명이 나지…”
“여자를 계집이라고 하잖아. 그건 욕이 아니거든. ‘계집’이란 ‘제집’이 변해서 된 말이라고. 집이란 게 뭐야? 은밀하고 남을 함부로 들이지 않고 생산을 하는 곳이잖아? 제 몸 안에 제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여자라는 거지. 이렇게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말이 우리말말고 어느 나라에 또 있어? 원시인간은 굴을 파고 살았지. 굴과 집이 뭐가 달라? 굴에는 표정이 없어. 그리고 문도 없지. 집은 저마다 표정이 다 다르거든. 그리고 문이 있어. 문이 뭐야? 들어오지 못할 놈은 못 들어오게 하는 게 문이잖아? 여자에게도 문이 있으니까 집인 거지.”
이 무슨 에로틱한 내용인가 싶어 잠깐 어리둥절하는 새 그는 다시 ‘집’에 관해 종횡무진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쉽고 명료하고 구수하고 유머러스하고 적확하다. 말씨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으며 어조는 시종 침착한데 내용은 때로 울분과 열정에 차오르고 때로 매섭고 때로 통쾌하다. 그와 다섯 시간 넘게 앉아 이야기했다. 1935년생이니 일흔을 넘긴 나이건만 지치는 기색이 전혀 없다. 관심을 끄는 일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는 예술가적 성정과 몰두가 절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