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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하늘소를 닮은 시인 문태준

“시는 가죽나무 같아요, 비릿하고 어두운 울음을 우는…”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장수하늘소를 닮은 시인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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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장수하늘소를 닮은 시인 문태준
그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김천, 정확하게 금릉군 봉산면 태화2리다. 직지사가 있는 황학산을 배경으로 한 태준의 시골집은 산이 크게 들어오는 곳에 있다. 산이 크게 들어온다, 라는 설명을 하면서 두 손으로 산 모양의 제스처를 취한다.

말을 할 때 몸짓이 거의 없는데 그런 동작을 취하는 것으로 보아 그 산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문태준을 자연물에 비교하라면 산 같은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산을 보고 자라면서 그도 그 산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사시사철 변하는 산을 보면, 송충이가 나비로 변하는 것 같은, 장구벌레가 잠자리로 변하는 것 같은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 겨울이 지나고 연초록의 산은 그것이 송충이에서 나비로 변하는 것 같은 황홀함이 있는 것이다. 시도 태어나거나 깨어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모습이 변하면서 태어나는 나비 같은 것인가.

그 산이 보이는 흙담집에 문태준의 가족이 있다. 모두 이 마을의 토박이들이다. 문태준 부친의 형제는 모두 9남매인데, 그 식구들이 모두 그 마을에서 살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결혼하면서 분가할 때 구입한 저수지 밑에 있는 작은 논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인 1977년까지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식구들은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호롱불은 전등과 다르다. 전기는 온통 환하게 밝히기 때문에 좁은 방안은 온통 밝음뿐이다. 하지만 촛불이나 호롱불은 적당히 머물고 있는 어둠의 치마자리를 보여준다. 어미의 품에 드는 새끼처럼 우리는 어둠에서 편안하다.



어둠이 빛 속에 숨어 있다가 걸어 나오는 그림자가 너울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빛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하지만 전등은 모든 것을 밝히기 때문에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 호롱불이나 촛불 아래에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독자도 가끔 그런 정서를 즐기길 바란다. 여럿이 아니라면 혼자라도 촛불을 켜놓고 잠시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덜어내지길 바란다. 그것도 일종의 시를 읽는 것이다.

문태준의 어린 시절에 가물거리는 호롱불 아래엔 꿈틀거리는 누에가 있었다. 그가 살던 흙담으로 만든 집에 방이 두 칸 있었는데 안방에는 잠박(누에치는 것)을 들여놓고 그 방에서 살았다면서 웃었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이 그의 유년시절은 연초록으로 풍성하다. 소년 문태준은 초여름이 되면 뽕잎을 따서 누에를 먹였다.

“누에에게 젖은 뽕잎을 먹이면 안 돼요. 설사를 하거든요. 비가 내려 뽕잎을 따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때 빗방울이 뽕잎에 떨어지면 아주 듣기 좋은 소리가 나요.”

수십년 전에 들었을 그 빗방울소리를 마치 지금 듣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특별한 문학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문학교육을 더 잘 받았다고나 할까. 그는 책에서 배운 것보다 자연에서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갔거나 혹은 그전에 들었을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구쟁이 시골아이인 태준은 그 뽕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시를 쓴다. 그의 시를 읽는 이의 마음은 그래서 촉촉해진다.

아버지는 가난한 살림살이여서 아이들에게 우산이나 우비를 사주지 못했다. 아버지는 못자리용 비닐을 잘라 머리와 허리에 감는 간이 우비를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그 비닐 우비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그것은 소리가 되어 문태준에게 스민다.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마치 잔잔한 음악소리 같았다. 멀리서 들리는 기적소리 같기도 했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자 피곤한 몸에 생기가 돌았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나서의 그런 개운함 같은 것이 온몸에 감돌았다.

극성스러운 염소새끼

“아이들하고 전쟁놀이를 하고 놀 때 쓰는 멋진 나무칼을 갖고 싶어서 아버지를 졸랐지요. 아버지는 목각 재주는 전혀 없는 분이어서, 부엌 부뚜막에 긴 나무를 올려놓고 내가 한쪽 발로 고정해, 낫으로 나무칼 길이로 다듬어준 것이 생각납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유일한 나무칼이었지요.”

나무칼을 들고 동네를 아이들과 어울려 쏘다닌다. 세계 명작동화와 같은 동화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책이라고는 교과서가 전부였다. 공부보다는 놀고, 집안의 농사일을 도왔던 유년시절이다. 마을을 벗어나는 일도 드물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경주에 갔다. 화랑백일장에서 장려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정말일까, 아니면 문학적인 수사인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과서 외에 다른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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