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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기 변호사의 골프생각

나바타니(Navatanee) 라운딩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나바타니(Navatanee) 라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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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칠십(七十)이 종심소욕(從心所欲)이로되 불유구(不踰矩)니라” 했다던 공자의 경지를 이해한 것으로 생각했다. 즉 마음대로 행동하나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취지의 이 말씀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의 경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고, 그것은 수년간 면벽좌불 수행으로 득도했다는 고승대덕들이 누리는 자유라고 생각했다. 골프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시바스의 태도가 그런 고승대덕들의 수행자세와 흡사하다고 여겼다.

이런 까닭에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모처럼의 여행이, 그런 이들이 누리는 자유에 버금가는 자유를 구가할 수 있어야 하거나 적어도 거기에 이르기 위한 시도는 되어야지, 여행 가이드에게 끌려다니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어느 친구가 권하던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이나 인도 여행은 비록 골프를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언젠가 한번은 시도할 참이다.

첫날 티오프 시간은 아침 7시2분. 새벽 1시가 넘어 여장을 푼 나는 잠자리에 들자마자 다시 일어나 아침식사도 못한 채 로비로 내려와 도어맨에게 택시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택시 한 대가 멈춰섰다. 목적지가 나바타니 골프장이라고 말하고 미터기에 표시되는 요금을 내겠다고 했더니 안 가겠다면서 지나가버렸다. 도어맨이 너무 이른 아침이라 미터 요금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의를 줬다. 어쩔 수 없이 500바트 달라고 하는 것을 300바트로 깎아달라고 했다가 결국 400바트를 주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그러나 차를 탈 때 나바타니를 잘 안다고 하던 택시 기사는 7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여전히 헤매고 있었다. 설상가상 기사는 영어를 못하고 나는 태국어를 단 한마디도 못했기에 의사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참다 못해 손짓으로 차를 세우고 다른 택시 기사에게 길을 물으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티오프 시간이 훨씬 지난 8시 가까이 되어서야 ‘1975 Golf World Cub Site’라 씌어진 입간판을 찾았다. 나바타니의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월드컵 골프와 ‘나카무라 사건’



나바타니 골프장은 195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월드컵골프대회를 개최하기 위해(이 때문에 초창기에는 ‘캐나다컵대회’라고 했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라는 골프설계자에게 의뢰해 만든 코스다. 그는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을 리모델링할 때 참여한 인물로, 그보다 훨씬 이전에 강원도 평창의 용평골프장을 설계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1994년 스키장으로 널리 알려진 캐나다 밴쿠버 인근 휘슬러의 샤토휘슬러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마친 후 읽은 ‘Golf by Design’이란 책의 저술가로서, 직접 만나 골프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호감을 갖고 있는 설계자다.

나바타니에서 열렸다는 ‘The World Cub of Golf’ 대회를 이야기하자면 일본에서 열린 1957년 대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57년 10월, ‘골프의 올림픽’이라 일컬어지던 월드컵골프대회가 세계 30개국 대표선수 2명씩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대회장으로 선발된 골프장은 사이타마현의 가스미가세키(霞が關)CC. 당시 일본에서 가장 안정된 샷을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오노 고이치와 한 조를 이룬 나카무라 도라키치는, 우승후보로 지목되던 미국의 샘 스니드, 지미 데마르트 등과 경쟁해 승리함으로써 일본에 영예를 안겼을 뿐 아니라 개인전에서도 우승했다. 1915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나카무라 도라키치는 158cm, 65kg의 작은 체구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집에서 멀지 않은 호도가야CC에서 캐디로 일했다. 월드컵골프대회에서 나카무라가 우승한 것은 ‘뉴욕타임스가 ‘기적!’이라고 쓸 만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였다.

나카무라의 우승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골프 열기가 고조되고 골프장이 우후죽순처럼 건설되는 골프붐이 일었다. 1940년 일본에는 41곳의 골프코스가 있었고, 골프 인구는 약 11만이었다. 그러던 것이 1957년이 지나자 골프장은 116군데, 골프장 이용자수는 연 185만명에 달했다. 1962년에는 골프장이 195곳으로 늘어났고, 1973년에는 103곳, 1974년에는 154곳, 1975년에는 166곳, 1976년에는 135곳의 코스가 조성됐다. 1973년부터 1976년까지 4년간 매년 100곳 이상 코스가 조성된 것이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빈터에서 나카무라의 폼을 흉내 내는 소동이 벌어졌다. ‘귀족의 전유물’이던 골프가 대중화하는 ‘시민혁명’이 불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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