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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박경철의 증시 뒷담화 5

루머에 속고 테마에 멍든 당신, ‘스토리’ 중심에 누가 있는지 보라

  • 박경철 의사, 안동신세계병원장 donodonsu@naver.com

루머에 속고 테마에 멍든 당신, ‘스토리’ 중심에 누가 있는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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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어디에서나 ‘스토리텔링’이 유행이다. 스토리가 없는 콘텐츠는 소비자로부터 버림받는다는 말도 나온다. 주식시장에도 ‘테마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런데 주식시장의 테마엔 마(魔)가 끼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의 ‘시골의사’는 시장에 등장하는 테마가 대개 신기루이거나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루머에 속고 테마에 멍드는 투자자는 언제나 개미라는 것. 그는, 주식시장 영원불변의 테마는 오직 ‘실적’ 그 자체뿐이라고 말한다.
루머에 속고 테마에 멍든 당신, ‘스토리’ 중심에 누가 있는지 보라
인류 역사에서 개인보다 사회가, 인성(人性)보다 신성(神性)이 늘 우선시되던 암흑의 시기가 있었다. 이른바 중세 시대. 하지만 대중의 시선이 신성에서 인간성으로 눈길을 주기 시작했을 때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사회와 문화 모두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음악, 미술, 문학에서 인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쏟아졌고, 기계·활자 문명에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그러나 만사가 다 좋을 수는 없는 법. 인간성이 꽃피던 이 시기를 기점으로 ‘루머’라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슬 퍼런 신의 계율이 머릿속에 각인된 중세, 거짓말은 10계명 중 제8계명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사소한 거짓말도 지옥에 이르게 하는 죄악으로 생각되던 당시 분위기에서 인간성에 대한 자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벼운 거짓말’을 신성에 대한 ‘딴죽 걸기’처럼 여기는 풍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곧 시대적 유행이 됐다.

당시 이탈리아에 피에트로 아레티노라는 저널리스트가 있었다.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발달한 출판·인쇄문화를 발판으로 한 쪽짜리 ‘소식지’를 발행했다. 여기에는 궁정과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던 위선, 타락, 매수 등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그뿐 아니었다. 그는 추기경의 비행이나 추문들에 관한 풍자시를 소식지에 함께 게재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인기 절정의 존재가 됐다.

이런 대중적 지지는 초기에 그를 권력과 갈등하고 길항하는 처지에 서게 했지만, 그를 제거하기 위한 귀족의 음모와 노력이 실패로 끝나면서 소식지는 오히려 그가 권력을 잡고 귀족들과 거래를 시도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소식지를 억압했던 교황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카를 5세 황제, 프랑스 왕 프란츠 1세 등은 그가 만들어내는 가공할 정보와 전파의 힘에 굴복해 뇌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결국 그의 입을 막기 위한 소극적 대응을 뛰어넘어 대중으로부터 우호적인 평가를 얻기 위해 그와 ‘적극적 타협’까지 시도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언론의 위력을 이용한 사람이었으며, 루머의 속성을 이용하고 또 그것을 이용해 부와 권력을 축적한 최초의 사람이 됐다. 이것이 바로 루머의 효시다



뼈아픈 새롬기술 테마

주식시장의 역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식시장은 ‘루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테마’라 불리는 주식시장의 유행 역시 이런 루머의 행로를 따른다. 주가란 ‘미래가치를 현재 가치로 할인한 개념’이라는 면에서 미래가치는 원래부터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운 원죄를 안고 있다.

미국에서 제록스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장할 무렵만 해도 이들이 지금처럼 엄청난 지배력을 갖게 될지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제록스나 마이크로소프트가 테마를 이뤘을 때 그 미래가치를 과소평가한 투자자들은 땅을 쳤고, 다행히 그 가치를 인정한 투자자들은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9년 말 IT 버블이 무너진 후 사람들은 테마와 루머의 경계 사이에서 좌절했다. 테마주인 다음은 살아남았고, 루머주로 판명 난 새롬은 무너졌다. 당시 IT 테마의 핵심기업이던 ‘새롬기술’과 관련해선 이런 일화가 있다.

새롬기술에 자금을 투자한 펀드매니저가 어느 날 새롬기술 근처를 지나다 회사를 방문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의 기업탐방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정상적인 회사들은 대개 이들을 환대한다. 새롬기술은 당시 컴퓨터를 이용해 전세계의 통신망을 연결하는 인터넷 무선전화 기술을 개발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롬기술은 이 펀드매니저의 방문 요청을 완강히 거절했다. 의아하게 여긴 펀드매니저가 입구를 가로막는 수위를 밀치고 회사 안으로 들어가자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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