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MB계의 박근혜계 ‘씨 말리기’ 전말

“親朴 빠진 곳엔 親李, 親李 빠진 곳엔 新親李”

  •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입력2008-04-08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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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대 총선 공천에서 한나라당의 대대적인 물갈이는 일찌감치 예고됐다. 10년 만에 집권한 데다 대선 과정에서 능력 있는 정치 신인이 다수 공급됐기에 현역 의원 상당수가 바뀔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공천 ‘뚜껑’을 열어본 결과 실제로 큰 폭의 ‘물갈이’가 단행됐다. 그러나 현역 의원의 교체 비율은 예상을 밑돌았다. 그러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한 ‘친박계’ 다수가 ‘친이계’ 인사로 바뀌는 ‘계파 물갈이’ 공천이 뚜렷했다.
    MB계의 박근혜계 ‘씨 말리기’ 전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월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식의 공천으로는 앞으로 선거가 끝나더라도 당이 화합하기 힘든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지역구 245개 가운데 3월14일 현재까지 한나라당이 공천을 확정한 224곳(최고위원회의에서 보류시킨 8곳 포함)의 내정자를 분석해보면 현역 의원 탈락률은 30% 수준이다. 이는 역대 총선의 한나라당 현역 의원 교체율과 비슷하다. 그러나 성향을 따져보면 계파에 따라 큰 편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친(親)박근혜계 현역 의원 공천 탈락률이 50%에 달한 반면, 친(親)이명박계의 탈락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현역 탈락자(불출마 선언 5명 제외) 가운데 친이계가 18명, 친박계는 16명으로 수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4명은 중립 성향이다. 그러나 경선 당시 친박계 의원의 숫자가 훨씬 적었다는 점에서, 현역 교체가 주로 이들을 겨냥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막바지에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현역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 수는 과반을 조금 넘는 130~140명 수준이었다. 공천이 확정된 224명 중에는 친이계가 147명으로 전체 내정자의 3분의 2인 65.6%를 차지했다.

    이에 반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이들은 80~90명이지만, 공천이 확정된 친박계는 18.8%인 42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중립성향이다. 지역구 공천에 이어 비례대표 공천까지 마무리되고 나면 친이계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총선 공천에 나타난 ‘친이 약진, 친박 쇠퇴’ 현상은 당내 역학구도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한나라당이 사실상 ‘MB(이명박)당’으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총선 공천은 친박계 인사를 고사(枯死)시키고 그 자리에 친이계의 씨를 뿌리는 과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나라당 = MB당’ 굳어지나?

    한나라당 지도부와 공천심사위원회는 “전국적으로 친이와 친박의 현역 의원 공천 탈락률이 비슷한데 무슨 근거로 ‘박근혜 죽이기’라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한다. 그러면서 영남권 공천 결과를 제시한다. 영남권에서 재공천을 받지 못한 현역 의원 15명의 성향을 분석해보면 친이 대 친박, 그리고 중립 의원의 분포가 10대 10대 5로 절묘하게 균형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현역 의원 대신 공천을 받은 인사들 중엔 친이 성향이 많다. 친이를 빼낸 지역은 새로운 친이로 대체됐고, 친박을 빼낸 자리에도 친이를 투입한 것이다.

    현역 친이 의원 대신 새로운 친이로 바뀐 대표적 지역이 부산 동래와 사상구다. 이재웅 의원(부산 동래)을 제친 오세경 변호사는 대선 때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에서 ‘다스팀장’을 맡아 제기된 각종 의혹들을 법률적으로 방어한 공신 중 하나이고, 권철현 의원(부산 사상)을 대신해 공천을 따낸 장제원 경남정보대학장도 이명박 후보 외곽조직 선진국민연대의 교육문화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차남이기도 하다.

    10명의 친박 현역 의원이 쫓겨난 선거구에도 친이 계열이 상당수 입성했다. 경북 고령-성주-칠곡에서는 친박 이인기 의원과 친이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이 피를 말리는 2파전을 벌였다. 그러나 뚜껑이 열리자 공천 신청도 하지 않은 석호익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이 전략 공천됐다. 지역 언론에서조차 “석호익이 누구냐”며 의외의 인물 출현에 당황스러워했다. 지역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의원과 주 회장 중 누구를 택해도 후유증이 심각할 것 같아 중립 성향의 IT 전문가를 발탁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석 원장이 경선 때부터 이명박 후보의 IT 분야 정책개발에 참여해온 ‘숨은 MB맨’이란 사실이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MB계의 박근혜계 ‘씨 말리기’ 전말

    박근혜 전 대표는 총선 공천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을 철석같이 믿었던 듯하다. 2월25일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 축하 외빈초청 만찬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구 달서 을 공천을 받은 권용범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는 친이 진영의 신예로 3선의 이해봉 의원을 꺾었다. 뉴라이트 측에서는 권 대표를 포함해 공천을 희망하는 뉴라이트 출신 명단을 정권 핵심에 전달했다는 말도 들린다.

    박종근(대구 달서 갑) 의원을 침몰시킨 홍지만 전 SBS 앵커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정두언 의원과 친분이 두텁다. 경북 군위-의성-청송에서 김재원 의원을 밀어낸 김동호 변호사는 이 대통령과 이재오 의원이 차례로 회장을 지낸 6·3 동지회 회원이다.

    친이가 전국적으로 약진한 가운데 특히 영남권에서의 친박 밀어내기는 정치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한나라당의 텃밭에서 친이가 득세했다는 것은 곧 당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친박계 ‘씨 말리기’ 작업은 치밀하게 짜인 각본에 따른 것처럼 대선 이후 매우 조직적으로 전개돼왔다. 경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 대변인을 맡았다가 이번 공천에서 낙천한 김재원 의원은 “총기난사 공천”이라고 일갈했다.

    친이, 7월 당권 경쟁 우위 확보

    이명박 대통령 핵심 측근들이 영남지역 물갈이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것은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선 당시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명박 후보는 영남의 5개 시·도(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에서 모두 박근혜 후보에게 졌다. 대구를 제외한 4곳에서의 표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대구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68.3%의 몰표를 받았다.

    친이 진영은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원인을 선거인단을 장악한 현역 의원들의 ‘친박’ 성향 때문으로 판단했다. 공천에서의 현역 교체가 단순히 친박 의원을 몰아내는 차원을 넘어 친이로 대체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갈이 공천을 통해 친이 계열이 한나라당 주류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함으로써 7월 당권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3월14일 서울 역삼동 한 일식집에서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박종근·이해봉·이인기·김태환·유기준·김재원·엄호성 의원과 저녁을 함께 했다. 3시간 동안 이어진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이명박 대통령을) 너무 믿었다. 이럴 줄 정말 몰랐다” “여러분이 앞으로 (무소속 출마 등) 무엇을 하든지 적극 돕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영남권 공천 발표를 하루 앞둔 3월12일에도 박 전 대표는 “이렇게 잘못된 공천이 있을 수 있느냐”며 “대통령에게 분명히 말했다. 기준을 갖고 공정하게 공천이 꼭 이뤄져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약속했다. 지금은 국민도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것이고, 그렇다면 (이 대통령과의) 신뢰는 깨지는 것 아니냐”며 분노했다.

    영남권 공천 발표 직후 한나라당을 탈당한 친박 계열의 좌장 김무성 의원도 기자회견에서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이번 공천은 청와대가 기획한 밀지(密旨)공천”이라며 “청와대 결재를 받는 공천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번 공천만큼 무원칙적으로 진행된 공천이 없다. 이재오·이방호가 공천개혁을 빙자해 ‘박근혜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박 전 대표나 김 의원 모두 새 정권 실세들이 미리 구도를 잡고 친박 몰살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즉 이번 한나라당 공천은 막후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휘를 받아 이재오 의원이 총감독을 맡고, 이방호 사무총장을 비롯한 공천심사위원들을 전면에 세운 ‘박근혜 죽이기’ 드라마라는 것이다.

    대선 이후 지금까지의 공천 갈등 전개 과정을 되짚어보면 친박 진영이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의구심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가에서는 친이 진영의 조직적 공세에 친박 측이 제대로 방어를 못하자 “이러다 친박이 전멸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친박 진영의 한 관계자도 “어, 어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탄식했다.

    “어, 어…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MB계의 박근혜계 ‘씨 말리기’ 전말

    공천 갈등이 증폭됐던 2월1일 친박근혜계 의원, 당원협의회위원장 등이 여의도 대하빌딩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박근혜 죽이기’의 첫 징후는 대선 직후 포착됐다. 대선 이틀 뒤 정권 창출의 핵심 인사들로 구성된 ‘6인회의’ 멤버였던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이 한 방송에 출연, “대권-당권 분리 원칙을 당·정 일체화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새 정부가 강력한 힘을 갖고 안정적으로 출발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에 힘이 모아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청와대에 권력이 쏠리면 쏠릴수록 당내 친박 인사들의 힘이 약화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당시 강재섭 대표와 친박 의원들이 크게 반발하자 이명박 당선인이 직접 나서 “그런 논의는 적절하지 않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후에도 친이 진영은 “총선 공천은 2월25일 대통령 취임 후에 하는 것이 좋겠다”며 불씨를 이어갔다. 친박 진영은 “총선 직전까지 공천을 최대한 늦춰 탈락자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 아니냐”며 바짝 긴장했는데, 당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공천 쓰나미가 들이닥쳤지만 친박 인사들에겐 마땅한 피신처가 없다. 새로운 당을 만들거나 다른 정치 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할 시간도 부족하다. 결국 개별적으로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하는 외통수에 몰린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측근들의 정치생명이 줄줄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음에도 거취 문제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 참모는 “마음 같아서야 당장 엎어버리고 싶다”면서도 “막상 액션을 취하려니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취임식 뒤 공천’ 얘기가 처음 제기됐을 때 박 전 대표도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며 의구심을 표시했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몇 차례 단독 면담 이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뭔가 약속을 받았낸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박 전 대표가 영남 물갈이 공천 직후 “대통령을 믿었는데”라고 말한 것도 그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적전분열로 자멸한 친박 진영

    ‘당·정 일체화’ 논란 이후 ‘취임 뒤 공천’을 관철시킨 친이 진영은 급기야 ‘영남 40% 물갈이론’을 들고 나왔다. 이방호 사무총장이 총대를 멨다. 박 전 대표는 대선 이후 처음으로 친박 의원은 물론 핵심 측근들을 한데 모아 “밀실 공천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지만 이미 칼자루는 친이 진영에 넘어간 상태였다.

    서울 여의도 정가에 이른바 ‘공천 살생부’가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공천 탈락 예상자를 적어놓은 살생부는 여러 종류가 나돌면서 계속 업데이트됐다. 수도권 공천자가 속속 발표되는 동안 살생부의 내용은 꽤 적중했다. 살생부에 한번도 이름이 오르지 않은 인사들은 대부분 공천됐지만, 여러 살생부에 공통으로 들어 있던 이들은 모두 탈락했다.

    살생부가 여의도 정가에 살포되면서 당내 공천 갈등도 깊어갔다. 공천심사위원 구성을 놓고 친이-친박 간 힘겨루기가 벌어졌고, 부패 전력자는 공천신청 자체를 못하게 한 공직후보 선출규정 3조2항을 둘러싸고 크게 충돌했다. 이 과정에 친박 의원 35명이 동반 탈당을 결의하고, 강재섭 대표가 칩거에 들어가는 사태도 발생했다. 그러나 친박 진영은 끝장을 보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판을 크게 벌여놓고도 뒷수습을 제대로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무성을 MB보다 싫어해”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친이 진영이 우리 목을 조여오고 있다는 것을 왜 몰랐겠느냐”며 “충분히 위기를 감지하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적전 분열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친이 진영이 선제공격을 할 때마다 방어에만 급급했던 이유가 친박 내부 갈등 때문이란 것이다. 그가 들려준 친박 진영 속사정은 이렇다.

    “‘친박’이라고 하면 내부가 하나로 똘똘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주류로 부상한 친이 진영과 화해해야 한다는 ‘주화파’와, 차기를 다시 노리기 위해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주전파’로 나뉜다. 친이 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거나 다른 이유로 공천에 자신 있는 의원들은 주화파였고, 정권 실세에게 미운털이 박힌 사람은 주전파였다. 양쪽은 친이 측의 선제공격으로 전선이 형성될 때마다 티격태격했다. 서로 자신들의 입장만 앞세워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는 바람에 도중에 맥없이 꺾이곤 했다. 패자들이 똘똘 뭉쳐도 승자 독식을 막기 어려운 법인데 이렇게 내부가 분열돼 있으니 뭘 하겠나. 승자가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을 넋 놓고 지켜보는 수밖에….”

    친박 내부 갈등은 매우 심각했던 것 같다. 김무성 의원 세력이 친박 내부 여론을 주도해나간 반면, 일부 현역 의원은 김 의원의 대응 방식에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 측 모 의원은 “나는 한나라당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였다”고 주변에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고 한다. 또 ‘친박 진영의 어느 의원은 김무성 의원을 MB보다 더 싫어한다’는 말도 들린다.

    친박 진영이 공천 대학살을 당하고도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데는 시간이 촉박했다는 물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결속력이 예전만 못한 점도 하나의 요인인 셈이다.

    영남권 친박 현역 의원들이 무더기 탈락하자 박 전 대표의 한 참모는 “대표가 결심만 하면 당장 여소야대가 된다”고 호언했다. 박 전 대표가 탈당해서 깃발을 들면 순식간에 그 밑으로 사람이 모여 큰 세력이 되고, 결국 총선 때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을 저지하는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란 얘기였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표가 깃발만 들면)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친박 의원 가운데서도 절반은 공천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넘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됐던 친이 진영의 거듭된 공격에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말마따나 ‘공천 학살’을 당한 친박 진영이, ‘박근혜 전 대표가 결심하면 단일 대오를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공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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