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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시대, 윤리는 상식이다

미디어 시대, 윤리는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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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일어난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이 사례와 분석은 미국 제일의 미디어 윤리학자로 평가받는 클리퍼드 크리스천스 교수가 쓴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두 명의 10대가 제임스 벌거라는 두 살배기 어린아이를 납치해서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영국의 TV는 이 10대들의 이름 보도를 금지한 영국 법원의 제한을 지켰다. 그러나 미국의 신문들은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하지만 10대들의 이름을 버젓이 게재했다. 영국 TV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보살핌 정신의 원칙을 지킨 반면 미국 신문들은 진실보도는 정언(定言)명령이라는 원칙을 지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국 TV는 청소년 피의자의 앞날과 그들의 부모에게 충성했고, 미국 신문은 그들의 독자에게 충성한 셈이다.

미디어 종사자에게는 다른 전문직 종사자와 마찬가지로 여러 의무가 있다. 우선 출세보다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즉 스스로에 대한 의무다. 매달 돈을 내고 신문을 구독하고 TV를 시청하는 소비자를 위한 의무를 들 수 있다. 비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업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조직에 몸담은) 언론인은 이 소비자를 위해 일하겠다고 서약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받지 않는, 돈을 내지 않은 다른 사람들까지 생각해야 할 의무도 있다. 공익성은 언론의 첫째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언론인은 다른 전문직종과는 달리 법정의 명령조차 불복할 수 있고 보도포기 종용도 거절할 수 있다. 작업 동료에 대한 의무도 소중하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의무가 으뜸이다. 책임을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로 구분지어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외부의 강제성 정도나 도덕적 법적 규범에 따라서 구분한 것인데, 전자는 언론인이 자발적으로 지는 책임을 말하고, 후자는 시민사회를 포함한 외부세력이 가하는 적절한 강제에 따른 책임을 뜻한다. 이제 미디어는 responsibility가 아닌 accountability의 시대에 돌입했다는 것이 이 같은 구분의 전제라고 여겨진다.

미디어 시대, 윤리는 상식이다
김춘옥

1949년 경기도 김포 출생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프랑스 파리 제3대학 석사 (연극학)·파리 제7대학 박사(언어학)

경향신문·KBS 기자, 코리아헤럴드 부장, 시사저널 국제·문화부장

現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저서 : ‘신문방송, 취재와 보도’ ‘디지털시대의 방송론’ ‘방송저널리즘’ ‘미디어 윤리’(역서)


메릴, 크리스천스, 람베스, 화이트. 미국 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윤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미디어 종사자에게는 전문직의 특성을 내세운 윤리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일반적인 도덕성(general morality) 이 필요하다고. 디지털 혁명으로 시민의 의식은 이미 평준화됐다. 따라서 메시지 전달행위가 전문적인 작업이라는 이유에서 직업상의 잣대로 이뤄져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언론인에게는 직업에 기반한 윤리보다는 시민으로서의 윤리가 반드시 요구된다. 앞에서 사례로 든 두 명의 10대 관련 보도의 경우, 언론의 의무보다는 일반인의, 일반적인 생활에서 흔히 나타나는 ‘상식’ 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종사자라면 진실이 무엇인가, 약속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슴에 새기고 편견을 없애기 위해 세계주의, 페미니즘, 복합문화 등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미려한 문장을 구사하며 수많은 사람을 취재하고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상식 수준의 도덕성이 결여됐다면 그가 보내는 메시지는 공감을 얻기 힘들 것이다.

신동아 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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