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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활동으로 즐기는 자기주도적 삶

‘코끼리와 벼룩’ ‘포트폴리오 인생’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다양한 활동으로 즐기는 자기주도적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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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저작권 대리인은 전업 작가로 성공하는 사람은 100명에 두셋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들먹이며 그를 만류했다. 그는 세인트조지 하우스 학장 시절 윈저성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미래사회를 예측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리를 내주세요. 조직은 젊고 쌩쌩한 친구들에게 맡기세요. 우리는 생각만큼 조직에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랍니다. 대부분은 조직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어요. 세월 덕분에 터득한 지혜가 젊은 활력을 보충해주리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남에게는 쉽게 했지만 이 말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그는 당황했다. 포트폴리오 생활자가 되면 너무 좋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으나 막상 당해보니 기쁘지 않았다. 아직 학교에 다니는 십대 자녀가 둘이나 있고, 런던경영대학원에서 시간제 강의를 맡긴 했지만 벌이는 얼마 되지 않고, 공짜로 살고 있는 사택은 비워줘야 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일을 주는 회사가 없다. 참석해야 하는 회의도, 응답해야 하는 전화와 e메일, 지켜야 할 약속, 목표, 결재, 마감, 평가도 없다. 일정표는 텅 비어 있었다.

직함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체성의 상실이었다. 나를 원하는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마치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정체성의 혼란은 당장 나를 표현해줄 직함이 없다는 점에서도 나타났다. “너를 어떻게 설명할 생각이야? 마냥 ‘전직 학장’이라고 부를 수도 없잖아.” 한 친구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핸디는 이때의 상황을 “묘하게 발가벗은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조직에서 뛰쳐나온 뒤에도 한동안 ‘교수’라는 직함에 집착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직업적인 보호막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정곡을 찔렀다.

“당신은 이제 교수로 일하지 않잖아요. 어쨌든 공식적으로 교수가 아니에요. 나는 항상 내 이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남자들은 왜 이름말고 존재를 설명할 만한 다른 것을 찾는 거죠?”



그랬다. 경영컨설턴트가 거창하게 ‘포트폴리오 인생’이라는 용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대다수 여자는 이미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고 있었다. 회사와 공장 출근과는 전혀 다른 세계. 그 세계에서 각자 자기의 시간표와 우선사항을 정하고, 돈을 받는 일과 기타 일을 적절히 섞어서 하고, 회의나 위원회 일로 구속을 받지 않으며, 다중과업(multi-tasking)이 경영 전문 용어가 아니라 일상의 현실인 세계가 있었다. 아내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현실을 일깨워준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다중과업적 삶을 살아왔어요. 당신은 그걸 ‘포트폴리오 인생’이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난 그걸 ‘생활 꾸려나가기’라고 부르겠어요.”

찰스 핸디는 비로소 그동안 ‘일’에 대해 편협하게 규정했음을 깨달았다. 즉 돈을 받고 하는 일만이 진정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균형 잡힌 일의 포트폴리오를 짜려면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일 취급도 받지 못하지만 인생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가정일, 자원봉사, 학습-까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인생 전체의 사이클로 볼 때 4가지 유형의 일은 단계마다 다르게 편성된다. 핸디는 자신의 인생에서 30대에는 돈 버는 일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물론 그보다 15년 전에는 공부하는 일이 전부였을 것이다. 은퇴 생활자들은 돈 버는 일과 나머지 일을 맞바꾼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을 포기해야만 다른 유형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 훌륭한 포트폴리오 인생이란 이 4가지 유형의 일을 모두 포함하면서 적절히 배합하는 것이다.

전성기는 짧고 인생은 길다

나의 두 어머니는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일의 균형’을 터득했고 실천해 왔다. 돈을 버는 일에 목을 매야 했던 청년기와 장년기를 넘어서자 두 분은 자신의 일에서 공부와 여가, 봉사의 비중을 늘렸다. 그들은 처음부터 어느 조직의 보호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은퇴생활자들이 겪는 소속감의 상실도 없다. 돈 버는 일에 매진해야 했던 젊은 시절부터 포기하지 않은 꿈과 열정이 있었기에 여유로운 삶이 허락되자마자 정체성의 혼란 없이 바로 ‘그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

송별파티에서 찰스 핸디의 동료가 이런 충고를 했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반드시 할 일이 있어야 하네. 안 그러면 은퇴 여파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실제로 그가 세계적인 석유회사 셸에 입사하던 1950년대에 회사 연금규정은 은퇴 후 18개월 동안 연금을 수령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임원들이 퇴사하고 18개월 이내에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은퇴 후 삶은 18개월이 아니라 20년, 30년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전성기는 금세 끝난다. 그래서 누구나 포트폴리오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신동아 200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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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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