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자유화가 실시된 게 1989년이니 어언 19년의 세월이 흘렀고, 주머니 사정도 나아진 데다 세계가 이웃이 된 글로벌 시대를 맞았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서점의 에세이 코너에나 진열되던 여행서가 이제는 어엿하게 독립 매대를 차지하고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여행 매대 표시판에는 ‘떠난 그곳에서 시간을 놓다’라는, ‘히피의 여행바이러스’(박혜영, 넥서스)에 나오는 카피까지 달아놓았다.
여행서적의 원조 격인 가이드북은 꾸준히 인기가 있다. 과거부터 명성을 얻어온 ‘세계를 가다’ ‘론리플래닛’ 시리즈부터 국내 필진이나 출판사가 엮은 토종 브랜드 가이드북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다루는 국가나 도시도 가히 세계를 아우를 정도가 됐다. 그만큼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는 증거다.
여행서 흐름 이끄는 30대 여성
최근 5년 동안 발간된 여행서를 통해 여행 트렌드를 살펴보니 해외여행 하면 모두 1순위로 삼던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을 벗어나 이제는 독일(이상은 ‘삶은…여행 이상은 in Berlin’), 이탈리아(권삼윤 ‘이탈리아,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다’), 터키(오소희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그리스(권삼윤 ‘꿈꾸는 여유, 그리스’), 스페인(김지영 ‘멈추지 않는 유혹, 스페인’, 손미나 ‘스페인 너는 자유다’), 체코(최미선 ‘한 권으로 끝내는 퍼펙트 프라하’) 등 유럽의 다양한 나라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 전통적으로 강세이던 중국, 일본뿐 아니라 이제는 인도, 베트남(이지상 ‘호찌민과 시클로’, 최수진 ‘베트남 그림여행’), 라오스(오소희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등을 대상으로 한 여행서가 등장했고, 아프리카, 호주, 중남미(박민우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박정석 ‘쉬 트래블스 1’) 등이 독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여행서의 저자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고 연령대는 30대가 대부분이다. 직업을 보면 잡지사 에디터나 전직 기자, 작가, 패션 디자이너, 요리 전문가로 다양하다. 이들은 여행비를 감당할 정도의 경제력도 있고, 독신의 경우 생활이 자유로워서인지 여행을 쉬이 떠난다.
그중에는 11년간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여행을 떠난 젊은 여성도 있다. 스스로는 백수의 길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서른셋 나에게 선물한 여행’(라비다로까)의 저자 양윤정은 시집갈 때 쓰려고 모은 적금을 털어 더블린에서 뉴욕까지 여행하면서 온전히 혼자 설 수 있었다며 여행은 자신에게 선물이었다고 고백한다. 아나운서이던 손미나도 스페인 연수를 다녀온 뒤 ‘스페인, 너는 자유다’(웅진닷컴)를 내고 자유인이 돼 후속편 ‘태양의 여행자’(삼성출판사)까지 펴냈다.
30대 젊은 여성들은 감성이 풍부하고 세상을 보는 나름의 눈을 가졌기에 현지인의 일상적 삶이나 생활문화, 대중문화를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이는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여행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무작정 부딪치는 경우도 있다. 정숙영은 ‘노플랜 사차원 유럽여행’(부키)에서 여행 중에 부딪힌 어려운 상황을 임기응변으로 슬기롭게 헤쳐 나갔는데 이는 여성의 침착성이 제때 작동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