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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37

오천일 살부(殺父)사건

패륜 삼대(三代), 법의 심판에 앞서 천벌을 받다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오천일 살부(殺父)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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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일 살부(殺父)사건

1심과 2심 재판이 열린 평양지방법원과 평양 복심법원.

“혹 단순 절도범의 소행은 아닌가?”

수사 상황을 보고하러 온 전규태 경부보에게 고야마 경부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오명보의 집 안방에는 수천원 상당의 현금과 패물이 흩어져 있었지만, 범인은 일원짜리 지폐 한 장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가슴을 7번이나 찌른 것을 보면 원한에 의한 살인이 분명합니다.”

“범행 도구는 찾았나?”

“아직….”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났는데 뭣들 하고 있는 거야? 당장 범행에 사용된 식칼부터 찾아와!”

고야마 경부가 결재서류로 책상을 내려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규태 경부보는 수사대를 총동원해 범행 장소 30리 이내 지역을 이 잡듯 뒤졌다. 못과 저수지의 물을 퍼내 바닥을 살폈고, 율리면 일대 모든 가구를 호구 조사했다. 하지만 범행에 사용된 식칼도, 뚜렷한 혐의점을 지닌 용의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명보의 장례가 진행된 사흘 동안, 맏상제 오천일은 잠시도 눈을 붙이지 않고 빈소를 지켰다. 밤낮으로 곡을 하다가 수시로 아버지를 부르며 오열했다. 조문객들은 오명보가 세상인심은 잃었어도 자식 하나는 잘 뒀다고 칭찬했다. 장례가 끝난 후 오천일은 아버지 소유의 율리면 일대 5만여 평의 토지를 상속받았고, 얼마 전 자신이 아버지 명의로 일본생명보험회사에 들어둔 생명보험 2만원을 수령했다.

경찰은 몇 달을 두고 떠들썩하게 수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오천일은 상속받은 토지 대부분을 매도하거나 저당잡혔고, 자신이 경영하던 정미소마저 팔아치웠다. 사건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무서워서 못 살겠다”

1932년 2월, 장의걸의 어린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 저수지 빙판에서 썰매를 타고 놀다가 봄기운에 녹은 빙판이 깨져 그만 사고를 당한 것이다. 장의걸은 오천일의 외가 쪽으로 먼 친척이면서 오천일이 경영하던 강남정미소의 고용인이었다. 마흔한 살로 오천일보다 세 살 많았지만 고용인 대 피고용인 관계인데다 어려서부터 한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로 말을 트고 지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장의걸은 매일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의 아내 추학순은 폐경이 지나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애지중지 키우던 외아들을 잃은 것도 슬픈 일이지만, 대가 끊어지게 된 것이 더 비통한 일이었다. 오천일은 3년 전 아버지가 살해당한 이후 무슨 이유에선지 장의걸과 자주 다투고 사이도 멀어졌지만, 아들을 잃은 장의걸을 깊이 동정하며 수시로 만나 위로했다.

하루는 장의걸이 오천일과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했다.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던 추학순이 남편에게 버럭 목에 핏대를 세워 대들었다.

“내가 너와 자식까지 낳고 살지만 사람 죽인 놈하곤 더 이상 무서워서 못 살겠다.”

“아니, 뭐라고?”

“아비가 사람을 죽이니 자식이 대신 벌을 받아 죽은 게 아니냐?”

“누가 듣겠소. 그 이야기는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장의걸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흥분한 아내를 타일렀다.

“아이고, 사람 죽인 놈이 감옥소 가기는 싫은 모양이지?”

장의걸 부부는 밤새 동네가 떠나갈 듯 언성을 높여 싸웠다. 부부싸움은 날마다 이어졌고, 이웃들은 장의걸이 사람을 죽였다고 수군거렸다. 하루는 추학순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여신도 이경재가 추학순에게 조용히 물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야? 당신 남편이 사람을 죽였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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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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