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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스승’은 못 돼도 ‘선생’은 되고 싶은데…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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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교육’의 경착륙

“어느 학교 나왔길래 그렇게 가르쳐?” 요즘 교사들의 좌절과 희망

교사 폭행 사건이 발생해도 중재할 만한 법적 기구나 장치가 없다.

교실붕괴는 언제, 왜 시작된 걸까. 교총의 설문조사에서 영화·드라마·오락프로 등 대중매체의 영향(33%)이 교사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학부모의 과잉보호(25.1%)와 공교육에 대한 불신(22.5%)이 그 뒤를 이었다. 학생들의 반항과 교사폭행이 2000년대 들어 심화됐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서울지역 중학교에서 23년째 근무해온 서울 강서구 수명중 교사 김창학씨의 말이다.

“제가 느끼기에는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교사들이 급격히 무기력해졌습니다. 이는 이해찬 장관 시절 주창한 ‘열린 시대 열린 교육’이념 탓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공부만 중요한 게 아니며,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을 가도록 한다는 취지였지요.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 한 체벌을 금지하라는 지침도 내려졌습니다.”

아이들의 숨통을 죄는 억압적인 분위기를 해소하려는 ‘열린 교육’이 연착륙에 실패,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에 따르면 실제 아이를 꾸중하거나 체벌할 때 “인권위에 제소하겠다” “이러면 동영상 찍어 올리겠다”는 등의 반응은 흔한 일이다.

지난 정권의 인권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이에 한몫했다.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율화, 체벌 금지 등의 학교인권 문제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매스컴에서는 과잉체벌의 문제점과 비리교사 실태를 연이어 보도했고, 학생과 학부모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개선의 움직임은 좋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는 과도기를 겪으며 학교 구성원들은 서로 생채기를 냈다. 학교 전반에 걸친 문제였지만 책임의 화살은 교사에게 돌아왔다. 실제로 문제의 상당 부분은 교사의 변화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었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으로 교사의 권위가 급격히 추락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상황을 정화해서 받아들이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아직은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이지요. 두발자유, 체벌 등 매스컴에서 이슈화하는 학교 문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유리한 부분만 취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생활에서 학생에 대한 규제와 체벌 등이 조금이라도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면 ‘이 정도면 신고해도 되겠네’라고 여깁니다.”

학교인권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각이 교실붕괴로 이어진 상황에 대한 김창학씨의 분석이다.

핵가족과 저출산 시대를 맞아 변화한 가정환경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형제자매 없이 귀하게 자란 아이들이 ‘열린 교육’의 특성인 자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가정에서 크게 제재를 받지 않고 자랐습니다. 혼자, 또는 둘인데다가 부모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아 싫은 소리를 들은 경험도 적었고요. 반면 학교환경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변화한 가정환경을 학교환경이 따라잡지 못해 학생과 교사 간의 마찰로 이어진 것이지요.”

학원, 인터넷 등 학교 외에 지식을 구할 곳이 많아진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인천의 한 중학교 여교사는 “과거에는 손으로 오리고 붙이던 것들이 지금은 컴퓨터로 자료를 찾아 내용을 구성해 인쇄하면 끝이다. 아이들 역시 각종 정보기기와 인터넷에 친숙해서 모르는 게 없다. 요즘 아이들은 학습과 관련된 것은 물론 교육계 이슈에도 훤하다. 중학교는 최고 처벌이 권고전학인데, 여러 경로로 얻은 처벌 관련 정보를 통해 그 수준에 미치지 않을 정도로만 나쁜 짓을 하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기죽은 교사들

서울 H중의 여교사 임모씨는 수업 도중 책상에 코를 박고 딴 짓을 하는 학생을 발견했다. 다가가서 보니 아이는 구멍 난 책상 아래에 휴대전화를 놓고 DMB를 보는 데 열중해 있었다. 책상까지 뚫고 수업시간에 오락프로를 보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이를 일으켜 세워 싫은 소리를 했더니 아이는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욕설을 했다.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임씨는 꾹 참았다. 과거에 학부모가 학교와 교육청에 체벌에 대한 항의전화를 한 일이 떠올라서다.

“체벌이 문제가 되면 학교에서는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 ‘좀 참지’ 하는 눈치를 줍니다. 이유와 과정을 불문하고 언론 보도는 ‘교사가 학생을 폭행했다’는 식으로 나오고요. 결과적으로 질타의 대상은 교사라는 걸 알기에 갈등상황은 가능한 한 피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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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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