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같이 보안 선서…정보요원의 보안의식은 생명 ● ‘조직을 배신하지 않는다’가 정보요원 첫째 덕목 ● 흑색, 백색, 회색으로 갈라질 요원들 ● 신새벽 지리산 정상에서 외치는 ‘충성서약’ ● 음지맨들의 건배사 “남북통일의 밑거름이 되기 위하여…” ● 공수교육과 해양교육을 하는 이유? ‘자기애를 죽여라’ ● 고스톱에서 화장술까지, 막걸리에서 와인까지 ● 국정원은 국정원장도 감시한다 ● 국정원 4대 학맥은 고려대·서울대·연세대·한국외대 ● 성공한 공작은 묻히고, 실패한 공작은 드러난다 |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올라 ‘충성 서약’을 하는 국정원 신임요원들.
애초 국정원 측은 백무동에서 바로 장터목으로 오를 것을 권유했다. 신임요원들은 젊어서 2박3일간 종주할 수 있으나, 기자는 ‘연로’해 힘들 터니 장터목 대피소에서 하룻밤만 자는 1박2일의 산행을 권한 것이다. 지리산 종주의 백미는 노고단에서 장터목까지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을 밟는 것이다. 장터목으로 바로 올라가라면 이것을 포기하라는 것인데 이를 받아들이면 ‘산꾼’이 아니다.
더욱이 종주를 하지 못하면 신임요원들과 교감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기자생활보다 더 오래 한 것이 등산이다”라고 우긴 끝에 노고단 합류를 허가받았다.
신임요원 30%가 여성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을 땐 신임요원들이 저녁 준비를 마침 다음이었다. 땀을 식힐 겨를도 없이 맛있는 ‘산(山)밥’과 ‘산찌개’가 차려졌다. 도대체 어떤 젊은이들이 국정원에 들어갈까. 밥을 먹으며 힐끔힐끔 살펴봤지만, 이렇다 할 특색을 발견하지 못했다. 눈에 띄는 것은 여성의 비율이 예상보다 높다는 정도였다.
여성들의 경쟁력이 참으로 대단한 시대다. ‘동아일보’ 등 중앙언론사 입사시험에서 최종 면접에 올라오는 여성의 비율은 70%에 육박한다. 국정원은 여성들이 좋아하지 않는 수사관을 많이 뽑기에 그나마 여성 합격자가 적은 편이라고 한다.
대자연의 품에 안긴 ‘풋내기 스파이’들은 들떠 있었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빠, 빨리 와~.” 기자가 대학 다닐 땐 여학생이 남자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는데, 요즘 여대생들은 ‘오빠’를 부활시켰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횟수도 잦아졌다. 완전히 MT 분위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보안을 위해 대학연합 등산단체 이름으로 대피소를 예약했다고 한다.
국정원 신임요원들은 ‘훈육관(訓育官)’의 통제를 받는다. 훈육관은 신임요원 교육에 있어 절대적인 존재인데, 그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술하기로 한다. 저녁 8시가 넘자 추위와 함께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왔다. 별이 총총한 것이 내일 날씨는 좋을 듯했다. 신임들은 헤드랜턴을 켜놓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불빛이 돌아다녀 어디에선가 ‘남녀상열지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8시30분, 훈육관이 이들을 집합시켰다. 그제야 이들이 여느 청년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웬만한 대학 산악회 이상으로 재빨리 모여들어 오(伍)와 열(列)을 맞췄다. 이들을 바닥에 앉힌 훈육관은 일장 연설을 한 뒤 기자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기자는 인사말을 길게 했다.
공작에 의한 남북통일
지리산 종주에 앞서 노고단 대피소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국정원 신임요원들.
우리 민족은 여러 번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전쟁에서 져 피지배 신세가 된 것입니다. 몽골의 고려 지배와 청나라의 조선 침공이 그랬습니다. 한나라와 당나라의 공격으로 사라진 고조선과 고구려처럼 역사에서 사라진 나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 일본의 조선 침략입니다. 일본은 청나라, 러시아와는 전쟁을 해서 이겼지만, 우리와는 싸우지도 않고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조선의 지도층은 청나라와 러시아를 이긴 일본에 겁을 먹고 일본의 공갈과 매수, 협박에 속아 나라를 넘겼습니다. 전쟁도 하지 않고 나라를 내준 한일합방을 저는 5000년 민족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배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일본이 전쟁을 하지도 않고 우리를 굴복시킨 방법을 북한에 적용시키자는 것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펼친 햇볕정책은 김정일 정권에 연명할 기회를 줬고 ‘이렇게 하면 남한이 돈을 갖다주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한결 여유를 가진 북한은 핵실험을 하는 기회까지 가졌습니다.
저는 두 정권이 펼친 햇볕정책으로는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공작(工作)을 통한 통일입니다. 미국 CIA가 ‘정보차장’과 ‘공작차장’제로 운영되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정일 정권이 붕괴하도록 유도하고, 김정일 독재를 무너뜨린 북한 주민들이 한국과 한 나라를 이뤄 발전을 도모하자는 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전쟁을 겪지 않고 민족역량을 증폭시키면서 평화통일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인’ 김정일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김정일이 하야하면 북한에서는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가 전쟁하지 않고 통일할 수 있는 적기이고, 그때 여러분은 최일선에 서야 할 것입니다. 국정원의 역량은 주변국들이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하도록 하는 데 집중돼야 합니다. 북한 내부 모순을 극대화해 북한 내부로부터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는 힘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통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국정원은 CIA처럼 외부를 향한 공작과 정보활동에 전념하는 정보기관이 돼야 합니다….”
기자는 말을 끊고 어둠에 묻힌 이들을 둘러봤다. 불빛이 기자를 향하고 있었기에 이들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본다 한 들 이들이 무슨 반응을 보일 것인가.
“지난 1주일간 저는 일본을 돌아다녔고 서울에 돌아온 다음날인 어제는 안동까지 당일치기로 차를 몰고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한걸음 늦게 여러분이 올라온 코스로 노고단에 올랐습니다. 내일도 저는 여러분과 똑같이 걸을 것입니다. 저보다 늦게 장터목에 도착하는 사람에겐 오리걸음을 시킬 것이니 각오하십시오….”
농담이 싱거웠는지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이 들려왔다.
“통일의 밑거름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동행한 국정원 기성직원과 훈육관, 남녀 학생장들과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기자는 여간해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 땀을 흘렸기 때문인지 술술 넘어가,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기분이 좋아진 기자가 “남북통일을 위하여!”라고 건배하자, 이들은 “남북통일의 밑거름이 되기 위하여!”라고 답배를 했다. 밑거름이 되기 위하여? 기자가 ‘양지(陽地)맨’이라면, 이들은 ‘음지(陰地)맨’인가? 척척 죽이 맞아 돌아가는 것 같았다.
청춘 남녀들도 삼삼오오로 나뉘어 건배를 했다. 그러나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를 지리산의 전부로 알면 큰 착각이다. 내일 저녁엔 결코 이런 여유를 부리지 못할 것이다. ‘위장 세척’은 노고단 관리자가 소등을 선언한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군대 내무반 같은 마루에서 담요 한 장을 깔고 촘촘하게 끼여 자는 칼잠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한데, 국정원 직원 두 명이 신나게 ‘콧나발’을 불었다. 술김에 졸도하듯 깜빡 잔 순간을 제외하곤 드르렁거리다 툭 끊어지는 불안한 반주 때문에 애써 눈만 감고 있었다. 귀도 감을 수 있는 재주가 있으면 좋으련만….
대형 태극기 펼쳐 들고
빗줄기는 굵어졌다. 우비의 어깻죽지를 때린 큰 빗방울이 귓가를 크게 울렸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안개, 끝없는 어둠, 몸을 조여오는 우비, 조심해서 살펴봐야 보이는 앞길, 그리고 도처의 낭떠러지.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천왕봉 밑에는 천왕봉으로 오르는 돌문인 ‘통천문(通天門)’이 있다. 통천문에 이르는 철 계단을 오르자 비로소 사방이 트이고 밝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통천문부터는 계속 바윗길이라 짙은 안개에서는 길을 놓치기 십상이다. 지리산을 안다고 하는 기자도 두어 번 길을 헤맸으니 초행인 신임들은 더욱 불안했을 것이다. 5시10분쯤 기자는 천왕봉 정상을 찾았다. 오른 것이 아니라 안개 속에서 헤매다 찾아낸 것이다.
잠시 후 일출 시간이 되자 헤드랜턴을 밝힌 신임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천왕봉 일출을 보기엔 이들의 적공이 아직 크게 부족한 모양이다. 천왕봉 정상은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좁다.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하지 않으면 실족한다.
충성서약, 결의문 낭독
조심조심 움직여 조별로 사진을 찍은 이들은 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전체가 모여들어 단체사진을 찍으려 했다. 그 모습을 찍기 위해 기자는 아래로 내려갔는데, 거리가 너무 가까워 전체가 파인더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안개와 빗줄기 때문에 사진기는 제대로 초점을 잡지 못했다. 그런데도 기성직원은 쫓아 내려와 “신임들의 얼굴이 나오게 찍으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했다.
신임들은 태극기를 중심으로 모여들어 모종의 의식을 준비했다.
“하나, 우리는 조국 수호의 사명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 우리는 업무에 정진하고, 국민에 봉사하며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 우리는 지리산을 완주했던 도전정신과 패기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 우리는 산행의 고통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게 했던 동료애를 평생 지켜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그 유명한 국정원의 충성서약이다. 공작은 공작관으로 불리는 국정원 직원만 하는 게 아니다. 특정 지역과 업무에 해박한 민간인도 참여할 수 있다. 정보나 공작 활동을 위해 일시적으로 국정원과 관계하는 사람을 ‘에이전트’라고 한다. 에이전트도 충성서약을 한다.
예일대의 해골단, 1980년대 ‘언더(under)’로 불린 주사파 대학생들이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한 것과 유사한 의식이 국정원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국정원 신임들은 동기 모임 이름을 만든다. 이번 기수는 ○○○으로 정했다는데, 이들은 ○○○이 들어간 버클이나 운동복 등을 만들어 입는다. 이들은 ○○○ 명의의 결의문도 낭독했다.
“우리 ○○○은 2008년 5월○일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한반도 오천년의 찬란한 역사를 계승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정보요원으로서, 다음 덕목을 가슴에 새기고 지킬 것을 엄숙히 다짐한다.
○○○은 하나, 조국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헌신과 용기, 둘, 주어진 소임을 끝까지 다하는 성실성과 사명감, 셋,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조국을 선진국으로 이끌 열정과 도전정신, 넷, 조국의 신(新) 성장동력으로 기능할 창의성과 전문성, 다섯, 산행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한 동기들과 평생 동고동락하며 하나로 뭉치는 동기애를 실천한다.
이를 통해 ○○○은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후손들에게 보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강건한 국익수호의 초석이 될 것을 다짐한다.”
국정원은 끊임없이 신임들을 ‘세뇌’하고 있었다. ‘보안을 지켜라’ ‘국가를 위해 충성하라’는 요구를 반복해 이를 신념화하는 것이다. 일반인은 비슷한 세뇌를 20대 초반 군에 입대했을 때 저도 모르게 경험한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를 위한 죽음을 요구하는 군가를 부르는 것이다.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로 시작해 ‘깨끗이 피고 질 무궁화 꽃이다’로 끝나는 군가는 부를 때마다 참으로 찬란한 죽음을 요구한다는 느낌을 준다. 군 복무를 마친 신임들은 ‘깨끗이 피고 질 무궁화 꽃이다’라는 소절을 다른 형식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장터목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출발했기에 천왕봉에서 행동식으로 아침을 먹으려 했다. 그러나 차가운 비로 인해 손이 오그라들 정도로 몸이 식어 있었다. 의식을 치르느라 천왕봉에 너무 오래 머문것이다. 배고픔보다는 추위가 더 고통스럽기에 바로 하산길에 들어갔다. 로타리 산장 대피소로 내려가는 가파른 하산길에서 마침내 비는 폭우로 변했다.
오전 10시쯤 중산리로 빠져나온 일행은 대오를 짜서 포장된 길을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힘든 산행을 끝낸 탓인지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국정원 신임들은 정말 ‘고만고만’하다. 아주 잘생긴 사람도 없고 못생긴 사람도 없다. 키가 훌쩍 큰 사람도 없고 아주 작은 사람도 없다. 한국인 표준보다 조금 더 잘난 것 같은 그런 젊은이들이다.
국가정보대학원 본청 최초 공개
대오 속에 파묻힌 느낌을 주는 ‘작은 키’는 여성 신임들이다. 그들은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지리산 종주를 해냈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버스를 타기 전 전부 등산화를 벗어 양말을 짰다. 속옷도 완전히 젖었을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행한 기성직원은 기자가 찍은 사진을 보자고 했다. ‘보안은 지켜준다’고 약속했으므로 사진을 하나하나 보여줬다. 그는 얼굴이 나온 것, 전체 인원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지우라고 요구했다. 부아가 치밀었지만 위험지역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요원후보들인지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국가정보대학원은 국정원 신임 직원을 교육시키는 국정원 산하 기관이다. 부근 도로의 이정표에는 이 대학원 방향이 적혀 있지만 도로에선 입구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학원 정문은 좌우에서 내려온 산자락이 앞을 막아준 곳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 산행을 마친 1주일 후 기자는 새벽같이 이곳을 방문했다. 기자로서는 최초의 방문자라고 했다.
오전 5시50분쯤 도착해 잠시 시설을 구경하는데 운동복 차림의 신임들이 몰려나왔다. 오전 점호를 겸해 운동을 하러 나온 것이다. 운동복을 입고 이들 뒤에 서자,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부터 ‘보안선서’까지 의식을 끝내고 스트레칭을 한 후 운동장을 다섯 바퀴 뛰었다. 2㎞를 뛴 것인데 이것으로 아침운동을 마치고 일과 준비에 들어갔다.
훈육관은 아침 운동을 세게 하면 수업 때 졸기 때문에 운동은 오후에 많이 시킨다고 말했다. 신임들은 합숙소를 떠나 본청에서 식사를 하고 수업을 한다. 합숙소가 있는 곳에서 본청으로 이동하려면 가운데를 가르고 내려오는 산줄기를 건너야 한다. 그런데 이 산줄기는 유지되고 있었다. 산줄기를 잘라 길을 내지 않고 터널을 뚫어 길을 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안내를 받아 본청에 도착하자 기성직원은 “이곳은 대통령도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이곳은 신임들이 교육을 받는 곳이다. 외부인을 출입시켰다가 아는 신임을 만나면 정보가 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왜 출입시켰는가”라고 물으니 “취재를 위한 특별 케이스다. 지리산에서 신임들과 사흘을 겪었으니 지켜줄 것은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라고 답했다.
버거운 상대들
국정원에 들어오는 모든 신임요원은 국가정보대학원에 입교해 교육을 받는다. 7급 공채 직원은 물론이고 9급 합격자로 채용된 직원, 고시 합격자로 5급으로 임용된 요원, 특수 업무에 종사하기 위해 특채한 요원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는다.
본청에서는 바로 식당으로 안내됐다. 식판을 들고 와서 먹으려고 하는데, 검은 양복 차림의 신임들이 몰려와 밥을 들고는 그들의 자리로 갔다. 사관생도처럼 직각 식사는 하지 않고 자유롭게 밥을 먹었다. 기성직원은 “이들은 장교가 될 사람이 아니다. 일반인과 섞여서 정보활동을 할 요원들이니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반인은 국정원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신출귀몰한 존재로 여기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신출귀몰한 존재가 되기 위해 이들은 거친 경쟁을 겪는다. 첩보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하게 형성된다. 이러한 첩보를 낚아채려면 만만찮은 상대와 경쟁해야 한다.
국정원의 해외파트는 외교부보다 먼저 첩보를 입수해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 해외파트의 라이벌인 외교부의 공무원은 대부분 외무고시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외시 출신은 영리한 만큼 현명하게 첩보를 빼낼 줄 안다. 국정원 해외파트 요원은 외시 출신 외교관과 경쟁관계에 놓이는 것이다.
백색으로 파견된 요원은 주재국 정보기관 요원과도 기 싸움을 펼쳐야 한다. 상대는 쉽게 정보를 주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기브 앤드 테이크, 순식간에 이뤄지는 거래에서 밑지지 않으려면 능통한 외국어 실력과 주재국 사정을 꿰뚫는 해박함, 그리고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능란함이 있어야 한다.
국내 파트 근무자도 버거운 상대와 경쟁한다. 첫째로는 가장 광범위한 정보망을 갖고 있는 경찰과의 경쟁에서 이겨야한다. 요즘 경찰대학 입학시험 합격 점수는 서울대에 필적하는데, 이러한 경찰대 출신이 경찰의 중추를 장악하고 있다. 읍면동 단위까지 뻗어 있는 지구대를 갖고 있는 경찰보다 국정원이 먼저 그리고 정확한 정보를 수집 분석해야 한다.
국내 정보의 상당량은 행정부처에서 생산되는데, 이 정책 정보를 만드는 이는 대부분 행정고시 합격자들이다. 똑똑함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행시 출신을 상대로 정책 정보를 따지려면, 국정원 요원들의 정보력은 이들을 넘어서야 한다.
전문 정보기관과의 경쟁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기무사는 국방 정보에 경쟁력이 있고, 경제 정보는 금융감독원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구조조정본부 등으로 불리는 대기업 지주조직의 정보망도 무시할 수 없는 라이벌이다.
이따금 언론도 국정원을 뒤흔들어놓는다. 국정원도 모르는 특종을 날리거나 국정원 내부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민완기자들은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다. 언론보도보다 늦은 정보조직이라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낫다. 쟁쟁한 경쟁자들보다 앞서려면 이들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반복해서 받아야 한다. 신출귀몰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확실히 우세를 점할 수 있는 쪽은 대북(對北)이다. 국정원은 위성정보를 수집하는데다, 신호정보(SIGINT)를 전문으로 다루는 ○○○부대와 영상정보(IMINT)와 인간정보(HUMINT)에 집중하는 정보사로부터 대북 정보를 받으므로 대북 정보에서는 통일부를 앞설 수 있다.
그러나 대북활동에 있어 국정원의 경쟁자는 통일부가 아니라 일본의 내각조사실, 미국의 CIA, 중국의 국가안전부, 러시아의 SVR이다. 여러 가지 위장 부서 명칭으로 나오는 북한 공작기관 요원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6자회담에서는 6개국 정보기관 요원이 만나서 벌이는 또 하나의 혈투가 있다.
유능한 정보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담력이 있어야 한다. 담력을 갖추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니 신임을 상대로 한 전반기 교육의 상당부분은 체력 증강에 집중된다. 유능한 정보요원이 되는 또 하나의 조건은 ‘빵빵한’ 실력이다. 국가정보대학원은 이러한 것을 가르치는 곳이다. 중요한 것은 실무부서에서 익히겠지만 일반적인 것은 이 대학원에서 마스터해야 한다.
이들은 두 개의 수업을 공개했다. 원어민이 하는 중국어와 영어 수업이었다. 중국어는 기초 과정이었고 영어는 미국의 정치 상황을 설명하는 시사적인 수업이었다. 정보학 강의를 참관하고 싶었는데 그것은 보안 대상이란다.
첩보 가설에서 시나리오 만든다
정보는 수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처음 수집한 정보는 정보가 아니라 첩보(information)다. 이러한 첩보를 기존 정보와 비교해 진위를 판단한 후, 틀림없다고 내놓은 것이 정보(intelligence)다. 첩보를 가공해 정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분석(analysis)이라고 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분석관(analyst)이라고 한다. 기자는 분석 과정이 매우 궁금했는데 국정원 측은 분석을 담당하는 교수를 불러 ‘맛보기’만 시켜줬다.
처음 첩보를 접한 분석관은 첩보를 토대로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이른바 ‘첩보 가설’을 만드는 것이다. 첩보 가설은 여러 개 만들어질 수 있는데 이러한 가설을 그 후 들어오는 첩보에 더해보면 보다 사실에 가까운 가설이 만들진다. 그리고 이 가설을 토대로 사태는 이렇게 진행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만든다. 이 시나리오 역시 계속 들어오는 첩보를 토대로 수정, 보완해가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정보다.
분석관 가운데 일부는 김정일의 행적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김정일의 걸음걸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동거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을 면밀하게 측정해 김정일 건강에 대한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를 검증한 후 ‘김정일 건강은 이렇다’라는 시나리오(정보)를 내놓는다.
수업을 참관하는 것에 기자가 만족해하지 않는다고 생각됐는지 기성직원은 화제를 정신교육 쪽으로 돌렸다. 국가정보대학원에 입교한 신임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은 국립현충원이다. 현충원 지하에는 시신을 찾지 못한 군인들의 명패를 보관하는 위패봉안관이 있다. 신임은 이곳에 찾아가 헌화하고 분양하는데 이때 분위기가 매우 숙연하다고 한다. 그리고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도 견학한다.
국정원에는 일반인도 방문할 수 있는 안보전시관이 있는데 이 전시관 한쪽에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순직 국가정보원 요원들을 추모하며’라는 제목 밑에 48개의 별을 새긴 돌이 있다. 48개의 별은 창설 이후 순직한 국정원 요원의 숫자다. 이들은 음지의 전사자이기에 죽고 나서도 이름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국정원은 원훈(院訓)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든 ‘정보는 국력이다’에서 애초의 것인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복귀시켜야 한다.
신임은 국정원의 보국탑도 참배한다. 국정원의 남문에서 동문으로 이어지는 길옆에는 ‘보국위민(保國爲民)’이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글귀를 새긴 기념비가 있는데, 보국탑은 그 위쪽에 있다. 보국탑 안쪽에는 ‘조국의 내일 위해 한 알 씨앗으로 겨레의 가슴에 묻힌 고귀한 영혼이여!’로 시작해 ‘아름다운 통일조국 영원히 비춰라’로 끝나는 ‘조국을 위한 맹세’가 새겨져 있다.
보국탑에 모신 위패
그리고 이 맹세문 건너에 순직한 48명의 이름을 오석(烏石)에 새긴 위패봉안관 이 있다. 오석의 상당부분은 반질반질한 평면으로 남아 있는데 이 평면은 또 다른 순직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공간이다. 48명의 실명 가운데 기자가 알아본 것은 1996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백색 요원으로 근무하다 처참하게 타살된 시체로 발견된 최덕근 영사의 이름이었다. 러시아 경찰은 아직도 최 영사 살해범을 잡지 못했다.
자본주의권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는 007 제임스 본드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는 실존 인물이 아니고 영국의 유능한 정보원을 토대로 만든 영화 속 인물이다. 사회주의권에서 가장 유명한 정보원은 구 소련의 리하르트 조르게다.
정보원은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데, 조르게는 조국 소련을 구했다는 이유로 모스크바에 동상까지 세워졌다. 그리고 그가 ‘결정타’를 먹인 일본에서는 2003년 ‘스파이 조르게’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NHK가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다.
조르게는 1895년, 지금은 소련에서 독립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인, 어머니는 러시아인이었다. 그는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독일로 건너가 살다가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3번이나 부상하고 의병제대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에서는 공산주의가 팽창했는데 공산주의 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우파 독재로 등장한 것이 바로 히틀러의 나치당이다.
독일 청년 조르게는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1926년 그는 모스크바에서 국제공산당 중앙위원이 되고 이후 신분을 감춘 채 공산주의를 위한 첩보원으로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을 돌아다녔다. 아버지의 조국을 버리고 어머니의 조국이자 사상의 조국인 소련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1930년 그는 기자 신분을 가진 일본인 공산주의자 오자키 호스미를 만나는데, 이듬해 그로부터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기 위해 만주사변을 일으킬 것이라는 중요한 첩보를 얻었다. 1933년 오자키는 일본으로 돌아가 총리실에서 촉탁으로 근무하게 됐다.
1938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무혈 합병하고 이어 체코를 협박해 게르만인이 많이 사는 체코의 주테덴 지방도 무혈 합병했다. 이렇게 되자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이고 공산종주국을 자부하던 소련이 독일의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1939년 히틀러는 그를 두려워하는 소련을 상대로 ‘두 나라는 싸우지 말자’는 독소(獨蘇)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공작원 조르게
그러고는 바로 폴란드를 침공했는데 이때 소련도 함께 침공해 양국은 폴란드를 나눠 가졌다. 폴란드는 영국 프랑스와 방위조약을 맺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자, 히틀러는 재빨리 기갑부대를 투입하는 전격전을 펼쳐 개전 보름만에 파리를 함락하는 쾌거를 올렸다.
히틀러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기에 전세계에 반공을 확산하고자 했다. 1937년 독일은 공산주의 운동으로 골머리를 앓던 이탈리아, 일본과 ‘방공(防共)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1940년 이 동맹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켰다. 반공을 모토로 내건 히틀러가 주변국을 침략해 전세계가 전쟁 분위기로 치닫던 시기, 조르게는 공산주의자라는 신분을 감추고 독일의 언론사에 들어갔다.
조르게는 일본어 등 5개국어에 능통했다. 1938년 그는 독일 언론사의 합동 특파원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옛 전우 오자키를 만났다. 전운은 동북아에서도 감돌았다.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은 1937년부터 중국을 공격하고 있었다(중일전쟁). 일본은 자국이 필요로 하는 자원 조달을 방해하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1941년 4월13일 일본은 소련과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중립조약을 맺었다. 일본은 소련과는 싸우지 않고 중국과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장악하고 있는 동남아 쪽으로 전선을 확대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 처지에서 본 일본은 반공주의가 매우 강하고 1905년 러일전쟁에서 패배를 안겨준 대적(大敵)이었다. 중립조약을 맺었다고 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한 치도 방심할 수 없었다.
이러한 때 국제공산당 비밀 간부인 조르게는 오자키를 통해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첩보를 빼내 이를 타전했다. 그러나 소련은 조르게가 보내온 정보를 신뢰하지 않았다. 일본은 독일의 동맹국이었으므로 독일 정보가 많았다. 조르게는 독일이 독소불가침 조약을 무시하고 1941년 6월20일 소련을 공격하기로 했다는 정보도 타전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 정보도 무시했다.
독일은 날씨 때문에 이보다 이틀 늦은 6월22일 소련을 공격했다. 이때부터 소련은 조르게의 보고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신뢰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르게의 보고가 있었던 덕택에 소련은 독일군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하지는 않았다. 독일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는 소련은 조르게의 보고처럼 일본이 동쪽에서 소련을 공격하지 않길 바랐다. 이때 조르게를 ‘일본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을 공격할 것 같다’는 첩보를 보냈다.
조르게의 보고가 맞기를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는데 1941년 10월18일 조르게가 일본 공안에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공안은 국가 기밀이 새는 것을 알고 방첩활동을 강화하다 조르게에 주목했다. 일본 공안기관이 감시에 들어가자 조르게도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했다.
그는 중국을 거쳐 소련으로 도주할 생각도 했으나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혼자 살던 그는 일본 무희(舞姬)와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밤 그는 무희를 만나러 가려다 한 협조자로부터 “감시자가 가까이에 있다. 도피하라”는 쪽지를 건네받았다. 그는 이 쪽지를 소각했어야 한다. 그러나 애인을 만나야 한다는 마음에 그냥 감으로써 일본 공안은 이 쪽지를 입수했다. 그리고 그를 체포해 이 쪽지를 근거로 취조함으로써 그간 벌인 스파이 활동이 드러나게 되었다.
조르게를 체포한 일본은 계획대로 1941년 12월7일 미국함대가 있는 하와이와 미국의 식민지인 필리핀,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인 말레이시아와 프랑스 식민지인 베트남, 네덜란드 식민지인 인도네시아를 동시에 공격했다. 이때부터 소련은 조르게의 보고가 확실하다고 보고 일본의 공격에 대비해 동부에 배치한 군대를 서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1942년 여름 시작돼 그해 겨울을 넘겨 끝난 스탈린그라드(지금은 볼고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전세(戰勢)를 바꾸다
그리고 이어진 쿠르스크 전차전(1943년 2월)에서 독일 전차군단을 괴멸시킴으로써 결정적 승기를 잡았다. 미국과 영국군이 주도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소련군이 쿠르스크 전투에서 승리해 독일군을 구축(驅逐)하기 시작한 1년4개월 이후 펼쳐진 것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과 맞붙은 일본도 열세에 몰렸는데 이때 조르게는 간첩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944년 일본과 소련은 간첩을 맞교환하자는 논의를 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를 거부했다. 맞교환으로 조르게가 돌아오면 조르게의 보고를 믿지 않음으로써 독일 침공을 허용한 자신의 실수가 드러날까 두려워한 것이다. 맞교환 논의가 중단되자 일본은 조르게와 오자키 등을 처형했다.
그러부터 25년이 흘러 스탈린마저 사라지자 소련은 조르게를 ‘전쟁의 향방을 바꾼 인물’로 평가해 영웅칭호를 내리고 그의 동상을 모스크바에 세웠다.
누가 ‘한국의 조르게’가 될 것인가
조르게는, 가장 유능한 정보원으로 단정할 수는 없으나 동상이 세워지고 영화가 제작됨으로써 가장 유명한 정보원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한국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려면 조르게처럼 유능한 정보요원들이 활약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선 위대한 정보원을 사후에 드러내지만, 자본주의 국가는 죽은 후에도 감춘다. 언론자유가 있는 민주국가에서는 실패한 공작은 드러나나, 성공한 공작은 감춰진다. 1947년 창설된 CIA는 어느 정보기관보다도 많은 공작을 했으나 미국에 ‘정보 영웅’을 없다. 한국언론도 국정원의 실패한 활동은 폭로하나 성공한 활동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기자는 수습교육이 아닌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정보요원도 정보대학원의 교육이 아니라 자기 부서에서 실전을 거듭하면서 만들어질 것이다. 기자는 대개 입사 5년이 지나야 제몫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0년의 경력을 쌓아야 비로소 대찬 특종을 하는 민완기자로 탄생한다. 정보요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0여 년 후, 기자와 함께 지리산을 종주한 이들 가운데 ‘드러나지 않는 조르게’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많은 세월이 흐르면 보국탑의 별로 기록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지휘관은 이름을 남기지만 공작을 성공시킨 정보요원은 영원히 그 이름을 감춘다. 이들은 음지에서 일하고 끝까지 음지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국정원 신임요원들은 11m 높이의 모형탑에서 점프연습을 반복한 후(아래) ‘코끼리’라는 별명의 기구를 타고 300여 m를 올라가 진짜 낙하를 한다.
4시가 넘자 더욱 부산해졌다. 새벽 댓바람에 일어나 설치다 보면 부산한 기운에 휩싸여 물건이 있는 곳을 물으며 떠드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인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는 훈련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일어나 앉으니, 전날 마신 술이 목구멍에서 꼴깍거렸다.
먼저 일어나 앉아 있던 기성직원도 “술이 덜 깼네”라고 중얼거렸다. 술이 깨기엔 너무 일찍 일어난 것이다. ‘오늘은 12~15시간을 걷는다. 기자가 신임요원들에게 뒤처지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저들도 술을 마셨으니 조건은 똑같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정확히 4시10분에 전투식량 비슷한 것으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먹었다기보다는 억지로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4시30분 훈육관이 집합을 명하자 전원 헤드랜턴을 켜고 공터로 몰려들었다. 간단한 지시사항과 함께 몸을 푸는 체조를 한 뒤 훈육관의 통제를 받으며 조별로 출발했다.
상당히 많은 인원이다(국정원 신임요원 수는 보안사항이라 밝히지 않는다). 인원이 많은 만큼 체력이 떨어져 퍼지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선두와 후미 간의 차이도 크게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스타트는 빨랐다. ‘스르륵’ 수풀 속으로 사라지는 뱀처럼 순식간에 등산화 소리만 내며 짙은 어둠이 덮인 숲 속으로 들어갔다.
“지리산 일출이다!”
나뭇잎이 무성한 탓에 여름밤의 산은 매우 어둡다. 등산 경험이 적은 이들은 어둠이 주는 무게를 강하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하지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이라 여명이 트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닭이 울어서 해가 뜨는 것은 아니지만, 산에서는 새가 지저귀면서 먼동이 튼다. 고요를 깨는 새들의 울음이 어둠의 무게도 깨뜨렸다.
5시25분, 선두를 걷던 기자는 돼지령 근처에서 천왕봉 방향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발견하고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천왕봉 일출은 3대에 걸친 적공(積功)이 있어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천왕봉 일출은 아니지만 지리산 능선의 일출도 여간해선 만나기 어렵다. 날씨가 좋아야 하고 해뜨는 시각에 때마침 숲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목에서 꼴깍이던 술기운이 확 사라졌다.
잠시 후 훈육관을 필두로 숲 속을 빠져나온 신임요원들도 “일출이다!”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겨울철 서해의 일몰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름철 지리산의 일출도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린다. 앞에 온 팀은 막 솟아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으나, 마지막 팀은 한 뼘 이상 떠올라 눈이 부신 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참으로 인생은 복불복(福不福)이다.
일출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살아났다. 이 분위기는 예정보다 일찍 경남과 전남·북이 나뉘는 경계선인 삼도봉(三道峰)에 올랐을 때 절정에 달했다. 신임요원들은 배낭에서 먹을 것을 꺼내 나눠 먹고 삼삼오오로 몰려서 사진을 찍었다. 졸업여행 온 듯한 분위기였다.
초보자들은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5~7시간에 걷기에 노고단에서 하룻밤을 잔다. 그리고 7~10시간을 걸어 연하천이나 벽소령 대피소에서 2박을 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을 걸어 장터목 대피소에서 3박을 하고 다음날 천왕봉에 오른 후 하산한다. 국정원 신임요원들은 이를 줄여 1박2일에 가까운 2박3일로 넘으려는 것이다. 이들의 속도는 빨랐다. 9시10분쯤 1착으로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한 기자가 개인적 용무를 마치고 나오자 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져 들어왔다.
등산 시작 후 4시간을 넘으면 체력 차이가 드러나 선두와 후미 사이의 간격이 벌어진다. 심하면 30분 이상 차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은 촘촘히 붙어서 쏟아지듯이 도착했다. 대학 졸업 때까진 운동을 전혀 해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여자 신임요원들도 똑같이 들어왔다. 모두 체력이 좋다. 훈육관은 라면을 끓여 먹고 한 시간 후 출발한다고 선언했다.
CIA를 소재로 한 영화 ‘굿 셰퍼드’의 한 장면. CIA 간부로 성장하는 맷 데이먼(오른쪽)은 안젤리나 졸리와 결혼한다. CIA는 두 사람의 결혼생활까지 관리한다.
정보와 공작은 다른 것 같지만 많은 경우 한 사람이 동시에 해야 한다. 첩보를 구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 공작이고, 공작을 하면서 새로운 첩보를 입수한다. 정보원이나 공작원은 때로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육체적 또는 법적으로 거동 불능상태에 놓일 수 있다. 이때 동료들은 ‘그를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상황에 직면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가망이 없는 동료를 버리고 나라도 살아야겠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원초적인 본능이다.
유난히 강조하는 동지애
1996년 9월18일 강릉 안인진리로 침투했다 좌초한 북한 잠수함을 탈출한 북한 공작원 26명은 바로 이런 상황에 봉착했을 것이다. ‘살고 싶은데 살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11명은 청학산에서 집단자살을 했다. ‘예비 공작관’들이 이런 순간을 만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유난히 강조되는 것이 ‘동지애’다.
동지를 사랑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줘야 거꾸로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임에게 동지애는 동기애(同期愛)다. 훈육관은 체력이 약한 여자 신임에게 남자 신임 한 명씩을 붙여주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여자 신임과 함께 종주하라는 특명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대열 후미를 구성할 조(組)에는 특별히 체력이 좋은 신임들만 배치했다. 대열을 유지하려면 후미 조는 종종 뛰어야 한다. 후미 조가 강하게 밀어붙여야 중간에 있는 여자 신임들도 기운을 받아 열심히 걷는다.
날씨는 더워지고 있었다. 전날 밤 일기예보는 남부지방의 최고 기온이 30℃에 이를 것이라 했다. 등산 경험이 많은 기자는 계속 앞쪽에서 헤쳐나갔다. 신임교육이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기자가 힘들어해야 하는데 그 반대이니, 기성직원들은 김이 샌 모양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패(不敗)를 요구받는 것이 기자이듯이, 정보원들도 상황에 밀리지 말 것을 주문받는다.
기성직원들은 다른 것으로 신임들의 훈련 강도를 보여주려 했다. 한 달 전 이들이 치른 공수훈련을 거론한 것이다. 국정원 신임요원 가운데 육군 특전사나 해병대 같은 특수부대 출신자는 극소수다. 국정원의 중요한 입사조건 가운데 하나는 ‘똑똑함’이다. 공부 잘하는, 뒤집어 이야기 하면 ‘체력적으로는 그렇고 그런’ 젊은이들이 주로 입사한다.
낙하산 점프의 핵심은 DZ(Drop Zone)라고 하는 강하지점에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DZ가 아닌 곳은 숲 또는 계곡이거나 도회지여서 위험할 수 있다. 숲으로 떨어져 낙하산이 나무에 걸리면 구해줄 때까지 꼼짝 못하고 매달려 있어야 한다. 낙하산이 떨어지는 속도는 2, 3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속도와 비슷하다. 이런 속도로 울퉁불퉁한 계곡이나 건물이 많은 도회지에 떨어지는 것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위나 건물을 들이박는 것이다.
‘자기를 버려라’
평지 풀밭인 DZ에 떨어지더라도 착지를 잘못하면 발목이 삐거나 부러질 수 있다. 평생 낙하산 탈 일이 없는 정보요원들이 공수교육을 받는 것은 ‘자기애(自己愛)’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보요원과 기자의 또다른 공통점은 ‘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과 ‘많은 것을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무엇을 해오라’는 목표만 주어질 뿐, ‘어떻게 하라’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는 없다. 각자의 실력과 임기응변, 그리고 체력으로 뒤탈 없이 목표를 달성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 ‘무리’다.
국정원은 지방 활동을 위해 성적이 좋은 지방대 출신자도 선발한다. 그러나 근간은 중앙언론사의 경우와 비슷한 이른바 ‘SKY대’ 출신이다. 국정원의 4대 학맥으로는 고려대 서울대 한국외대 연세대가 꼽힌다. 한 기성직원의 설명이다.
“정보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이다. 우리 회사에 입사한 사람은 조국과 국정원, 그리고 사람을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 동료애다. 안전을 지킨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국정원에 입사했다’는 자기애를 깨뜨리지 않으면 보안의식을 갖춘 정보요원을 만들 수 없다.
국정원 신임요원들은 해양훈련을 받는 ‘지옥의 날’에는 하루 밤낮을 개펄에서 뒹굴어야 한다.
기자는 지리산 종주를 끝낸 후 비디오를 통해 신임들이 받은 공수교육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특전교육단의 공수훈련은 ‘Mock Up Tower’, 흔히 ‘막타워’로 발음하는 모형탑 점프로 시작된다. 모형탑에 올라간 교육생은 모형탑 밑의 교관이 “1만(피트)”을 외칠 때 뛰어내려야 한다.
취미로 고공낙하를 하는 사람들은 높은 고도에서 뛰어내려 자유낙하를 즐기다 뒤늦게 낙하산을 펼친다. 그러나 공수요원들은 적진 침투를 대비해 가상 훈련을 하기에 저공낙하를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항공기에 연결된 생명줄이 바로 낙하산을 펼쳐준다. 이때 조심할 것이 ‘산(傘)줄’이 목을 감지 않도록 손으로 목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국화(낙하산)’가 피었는지 살펴야 한다. 국화가 피지 않았으면 최대한 빨리 가슴에 매단 예비낙하산을 펼쳐야 한다.
모형탑 점프에서는 손으로 목을 보호하고 국화가 피었는지 하늘을 본 후 ‘테크라인’이라고 하는 조종줄을 당겨 낙하산의 방향을 조종하는 동작을 반복 연습한다. 모형탑은 가장 많은 사람이 고소공포증을 느낀다는 11m(34피트) 높이에 있다. 군복무 경험이 없는 여자 신임들은 모형탑 점프를 매우 두려워한다. 점프 직후의 동작을 익히는 것이라 와이어를 걸고 하는데도, 11m 높이가 주는 두려움 때문인지 입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면서 엉덩이는 뒤로 뺀다. 특전 부사관 후보생이 이러한 행동을 했다면 훈련조교는 틀림없이 엉덩이를 걷어차 떨어뜨렸을 것이다.
스스로 뛰어내려라
그러나 국정원 신임요원이라면 스스로 뛰어내릴 때까지 기다려준다. 자기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교관은 완벽한 자세로 네 번 점프할 때까지 모형탑 점프를 반복시킨다. 4회 합격을 위해 대부분 20번가량 모형탑 점프를 반복한다.
다음은 모양새 때문에 ‘코끼리’라는 별명이 붙은 기구를 타고 300여m를 올라가 뛰어내리는 것이다. 6명이 탄 기구는 한 사람씩 기구 문을 열고 뛰어내릴 때마다 출렁거리는데, 이는 예상치 못한 공포다. 마지막 강하자는 이 공포를 끝까지 즐긴 후 뛰어내려야 한다. 기구는 와이어를 통해 지상과 연결돼 있다. 기구 낙하에서 주의할 점은 낙하산이 이 와이어에 얽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와이어에 얽히면 낙하산이 오그라들어 강하자는 추락한다.
기구 낙하 다음에는 CH-47(치누크) 헬기나 C-130(허큘리스) 수송기를 타고 나가 세 번 뛰어내린다. 기구는 와이어에 묶여 있으니 뛰어내리면 바로 DZ(Drop Zone)에 착륙하지만, C-130 수송기는 최저일지라도 시속 200㎞로 비행하니 금방 DZ(Drop Zone)를 벗어난다. 따라서 DZ 상공임을 알리는 ‘녹색등’이 번쩍이면 앞뒤를 재지 말고 예정된 순서대로 무조건 뛰어내려야 한다.
그 순간 C-130에 연결된 생명줄이 낙하산을 펼쳐준다. C-130 강하 과정에는 많은 위험이 숨어 있다. 촘촘히 뛰어내리니 금방 펴진 앞 사람의 낙하산 위로 떨어질 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낙하 속도가 떨어져 낙하산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동료 낙하산에서 미끄러져 고속으로 추락한다.
이때 고도가 충분히 확보돼 있으면 낙하산이 다시 펴져 브레이크가 걸린다. 그렇지 못하다면 ‘최악의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동료를 낙하산에 태운 앞 사람도 낙하산이 구겨져 급속도로 추락하므로 위험에 처하긴 마찬가지다. 이따금 특전교육단에서는 낙하산에 동료를 업었다가 젊음을 마친 희생자가 발생한다. 희생된 신임요원은 ‘순직’으로 처리된다. 지리산에서는 죽을 일이 없지만 공수교육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따라서 C-130에서 강하할 때는 테크라인을 당겨 동료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다고 DZ를 벗어날 정도로 멀리 이동해도 안 된다. C-130은 순식간에 낙하산을 뿌리고 사라져간다. C-130이 사라진 허공은 적막 그 자체다. 이 3차원의 공간에서 신임들은 알에서 막 깨어나 바다로 가려는 새끼거북처럼 서툰 솜씨로 사투를 벌인다. 동료가 다가오면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떨어지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1~2분에 불과한 낙하 시간이 이들에게는 1~2년처럼 느껴질 것이다.
“여성 신입이 더 단호”
국정원 신임요원들은 국가정보대학원에 입교한 직후 판문점(위)과 국립현충원을 찾는다. 이들은 현충원의 위패실을 방문할 때 가장 숙연해진다고 한다.
공수훈련에서는 부상자가 속출하나 이번 기수에서는 단 한 사람의 부상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상황을 재빨리 숙지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영리한 사람은 일시적인 담력을 만들 줄 안다. 담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리하는 첫걸음이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무리를 하려면 영리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모형탑 점프에서는 그토록 몸을 사리던 여성 신임들이 기구와 항공기 점프에서는 ‘독을 쓰며’ 제일 먼저 뛰어내린다는 점이다. 여성 신임들은 다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뛰어내려야 산다는 것을 알면 더 단호해지는 것이 여자인가. 행동으로 옮긴다. 기성 직원들은 결정적인 순간엔 여성 신임들의 담력이 돋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연하천에서 한 시간을 쉬고 출발한 다음부터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더위에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지리산에 대해 ‘감’이 있는 기자는 출발할 때의 속도대로 간다면 오후 2시30분쯤 장터목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다(이것은 대단히 빠른 속도다). 그러나 전체 속도가 처지기에 한 시간쯤 늦춰 잡았다.
낮 12시쯤 세상이 자글거리는 와중에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행군 속도는 느려졌지만 선두와 후미 간격이 늘어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체력이 남아 있는 듯했다. 벽소령에서도 비교적 오래 휴식했는데 그 사이 신임요원들은 선탠크림을 꺼내 서로 발라줬다. 이를 본 기성직원이 “요즘은 남자애들도 선탠크림을 바르네. 우리 때는 새카맣게 타도록 내버려뒀는데…”라며 혀를 찼다. 세대차이는 국정원에도 있었다.
화장술과 코디법, 고스톱도 가르쳐
몇몇 신임요원은 대피소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건넸다. 교육생들이 무슨 돈이 있어 대피소의 값비싼 음료수를 사는가 했더니, 이들은 이미 7급으로 임용된 국가 공무원이라 봉급이 나온다고 했다. 국정원은 전년도 8월에 7급 정규사원 공채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합격자를 대상으로 철저한 신원조사를 한 후 연말에 최종합격자를 선발한다.
합격자들은 연초 경기도 판교 신도시 부근에 있는 국가정보대학원에 입교해 체력증강을 주목적으로 한 합숙훈련을 받는다. 초기 4개월간은 주말에도 외출·외박이 허락되지 않는다. 매일 아침 구보를 하고 오후에도 땀을 흘린다. 주말에는 경기도와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른다. 체력은 정보활동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이다. 몇 년 전 훈육관을 지낸 기성직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신임요원들은 요즘 젊은이들처럼 와인을 즐기는 댄디(dandy)한 세대다. 그래서 산으로 끌고 다닐 때는 일부러 도토리묵에 식은 족발, 언 막걸리로 목을 축이게 한다. 너희들은 잘난 사람이 아니다, ‘잘났다’고 하는 네 마음을 비우라는 뜻에서 그들이 접하지 못한 세계를 자꾸 만나게 한다.
정보요원은 빠른 시간 안에 사람을 파고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는 술보다 좋은 수단이 없다. 그래서 술도 가르친다. 폭탄주 전문가를 강사로 모시고 다양한 폭탄주 제조술을 보여준다. 신임에게는 회식도 교육이다. 밤 12시가 넘어 전체 회식이 끝나면 인원점검을 하는데, 이때 한 명이라도 도망친 사람이 있으면 다시 회식을 시작한다. 술자리에서 도망치거나 뻗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도 정보원의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고스톱도 가르친다. 포커와 마이티, 심지어 마작도 원하면 가르친다. 여성 신임에게는 화장술과 코디법도 가르친다. 골프도 맛을 보여준다. 저급문화라고 피해가고 부르주아 문화라고 반감을 갖는 사람은 정보요원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배우처럼 모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탤런트(talent)한 사람이 돼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진 정보원이다.”
국가정보대학원 본청 앞에 있는 기념물(위). 본청은 외부인의 출입이 허가되지 않는다. 신임직원들과 함께 오전 운동을 하기 위해 몸을 푸는 기자.
“국정원 신임들은 돈벌이를 위해 들어오지 않았다고 본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음지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응시했을 것이다. 자기가 아닌 조국,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 일해보겠다는 뜻을 가진 젊은이니 그 뜻을 키워줘야 한다.
신임들은 힘든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해보겠다는 뜻이 있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왔기에 교육 도중에 퇴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10년쯤 전 고시 공부를 하겠다며 일부가 퇴사했고 3년 전에는 여성 신임 한 명이 몸이 아파 퇴사했다. 재작년과 작년, 그리고 금년에는 퇴사자가 없다. 평균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왔으니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처음 체력훈련을 시켜보면, 여성 신임들의 체력은 ‘제로’ 수준이다. 그런데 한두 달 집체훈련을 거듭하면 남자 신임과 똑같이 10㎞ 구보를 해내고 겨울산도 탈 줄 알게 된다.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린다. 하기 싫은 것,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을 해내려면 자기를 극복하는 호연지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수교육도 시키고 지리산 종주도 시키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국정원 직원으로서…”
연하천 이후 일행은 식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초콜릿이나 빵 같은 ‘행동식’으로 때우며 계속 걷기로 한 것이다. 당분이 많은 음식은 에너지를 내는 데 도움을 주지만 가스를 일으킨다. 날씨는 덥고, 배는 부글거리고, 누적된 여독으로 허리가 뻣뻣해져갔다. 옛날엔 안 이랬는데….
벽소령 출발 1시간30여 분 후 선비샘에 도착해 목을 축였다. 그러나 뱃속에 들어간 물은 개울물처럼 흡수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것 같았다. 모두 얼굴이 무표정해 보였다. 길게 몸을 눕히는 사람도 늘어났다. 사진기를 꺼내 드는 사람은 없었다. 지쳤다는 뜻이다. 이제부터는 C-130에서 낙하할 때처럼 자기와의 싸움에 침잠해야 한다. 지쳤다고 아우성치는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몇몇은 동기를 챙기고 기자까지 챙겨주려 했다. 이들은 정말 호연지기를 배우려고 이러는 것일까, 아니면 점수를 잘 따려는 것일까…. 오후 3시의 장터목 도착은 글렀고, 세석대피소 도착은 가능할 것 같았다. 진통제를 먹고 기운을 차린 여성 신임과 그의 짝인 남성 신임을 출발시키고 다시 길을 나섰다. 푹푹 찌는 더위, 지루하고 단조로운 등산길을 걸으며 머릿속이 멍해져갔다.
“나는 자랑스러운 국가정보원의 직원으로서 보안이 나와 우리 원의 생명임을 명심하고 업무상 취득한 내용은 어떠한 경우에도 누설하지 않을 것을 엄숙히 다짐합니다.”
국정원에 입사하면 태극기 앞에서 반드시 이 선서를 해야 한다. 국정원 직원 조회는 국기에 대한 맹세,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애국가 봉창, 국정원가 제창, 그리고 보안선서를 한 후 시작된다. 신임들에게 보안선서는 사실상의 ‘협박문’이다. 이 선서를 하는 순간 엄청난 부담감과 더불어 특수한 기관에 들어왔다는 자부심이 생긴다고 한다.
로버트 드니로가 감독을 맡고 맷 데이먼과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미국 영화 ‘굿 셰퍼드(Good Shepherd)’를 본 적이 있다. 1961년 4월 CIA가 주도한 쿠바의 피그만 공격이 정보 누설로 실패하게 된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다.
체제 수호할 전사들로 창설된 CIA
영화는 자살한 해군 대령의 아들인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 분)이 예일대에 들어간 1939년에서 시작된다.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예일대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비밀단체 ‘해골단(skull and bones)’이 있다. 세 명의 미국 대통령을 배출한 해골단은 매년 15명만 엄선해서 가입시킨다. 윌슨은 친구의 권유로 가면을 쓰고 나체로 치르는 해골단 가입식에 참여해 여섯 살 때 자신만이 목격한,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아버지의 자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지독한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활약한 영국의 MI-5와 6를 참고해, 1947년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전략군사국)를 토대로 CIA를 창설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해골단은 ‘미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아주 강한 단체였기에 상당수의 단원이 CIA에 들어간다. 윌슨도 CIA에 입사하는데, 이때 이 영화의 감독이자 CIA 막후 창설자인 설리번 장군 역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가 윌슨에게 “유대인과 유색인종은 안 되지만 가톨릭 신자까지는 괜찮다”고 말한다.
국정원 요원으로 활동하다 순직한 사람을 모신 보국탑(왼쪽). 보국탑 안에는 순직자 이름이 적혀 있다(오른쪽 아래). 대외적으로 순직자는 ‘별’로 표시된다. 48명의 순직자를 상징하는 48개의 별이 국정원 안보전시관에 전시돼 있다.(오른쪽 위)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CIA는 매우 뻣뻣했다. 유대인도, 흑인도, 독일계나 러시아계도 뽑지 않았다. 종교는 개신교라야 했고 아주 예외적으로 가톨릭 신자를 받아들였다. 이것이 정보기관이다. 이러한 문화는 국정원에도 존재할 것이다.
CIA는 자체 요원도 ‘미·감(미행 감시)’한다. 정보 누설을 막기 위해서다. 윌슨은 대학시절 청각장애인 여학생을 좋아했다. 그러나 유난히 그를 따른 친구 여동생(안젤리나 졸리 분)과 불장난을 해 임신시키자 바로 그녀와 결혼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눈에 들고자 절실한 노력을 한다.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한 윌슨은 냉전의 최일선인 서독과 중립국인 스웨덴을 무대로 KGB와 ‘암흑의 혈투’를 벌이는 데 전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모처럼 귀국한 그는 첫사랑 청각장애인 여성이 독신으로 살고 있음을 알고 마음이 흔들린다. 첫사랑과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렵 그의 아내는 남편의 잦은 해외 근무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남편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임신시켰기 때문에 결혼했음을 알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이러한 때 아내 앞으로 봉투가 하나가 배달된다. 안에는 청각장애인 여성을 만나는 남편의 사진이 들어 있다. 아내와 지독한 싸움을 치른 후 윌슨은 첫사랑과의 만남을 접는다. 보안을 위해 가족은 물론 첫사랑까지 관리하는 것이 CIA다.
기자는 국정원이 요원들의 사생활도 관리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국정원이 국정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국정원장은 최고의 국가기밀을 다루는 사람이다. 그가 실수하면 중대한 국가기밀이 누설될 수 있기에 자신이 지휘하는 국정원의 감시를 받는다. 이것이 정보의 세계다. 그래서 보안선서는 무겁게 다가온다.
“얼굴 사진 찍지 마라”
보안의식은 지칠수록 약해진다. 등산에만 집중하며 때를 기다려온 기자는 슬슬 신임들에게 접근해 신상 문제를 물어보려고 했다. 국정원 신임 가운데는 고시공부를 하다 들어온 사람이 적지 않다. 국정원의 입사 시험과목은 행정고시 과목과 중복된 것이 많다. “고시공부를 하다 안 되니까 국정원에 들어온 건 아닌가”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기성직원 한 명이 다가와 “개인적인 것은 물어보지 말라”고 제동을 걸었다.
왜 그러느냐고 따지자 그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흑색요원이 돼야 한다. 따라서 이름과 얼굴이 알려져서도 안 되고 신상정보도 알려지면 안 된다”고 했다. 해외로 나가는 정보요원에는 세 종류가 있다. 주재국 정보기관에 ‘한국 정보기관의 요원인데 이러한 직업으로 위장해서 나간다’는 통보를 하고 보내는 ‘백색요원’과, 상대국에 전혀 알려주지 않고 완전히 다른 직업인으로 위장해서 보내는 진짜 공작요원인 ‘흑색요원’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인 ‘회색요원’도 있다. 백색요원은 주재국 정보기관과 협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우리의 국정원에 대응하는 중국 기관은 ‘국가안전부(國安)’다. 1999년 5월27일 국안은 대한항공 선양(瀋陽)지점장 원모씨를 간첩죄 혐의로 체포해 조사했다. 국안이 원씨를 체포한 것은 그가 대한항공 일이 아니라 탈북자를 접촉하는 등 국정원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자는 원씨 사건의 자초지종을 취재한 바 있었다.
대한항공 인사기록에 따르면 원씨는 1989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김포국제공항에 있는 여객운송지점에서 일하다 1992년 퇴사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1998년 재입사해 선양지점장으로 나갔다가 국안에 체포된 것으로 돼 있었다. 원씨는 추방 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왔는데, 추방되기 전 국안은 국정원으로부터 ‘원씨는 국정원 요원이다’는 메모를 받아냈다고 한다.
전세계 정보기관 요원들은 가명을 갖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가명을 만드는 과정엔 한국적 특성이 가미된다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姓)은 여간해선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서는 국정원 직원들에게도 투영돼 성은 그대로 두고 이름만 바꾸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씨, 곽씨, 마씨, 방씨, 선우씨 등 희성(稀姓)인 경우 성도 새로 만든다.
‘햇병아리’들이지만 흑색으로 갈 수 있는 요원이 있다는 말에 기자는 뻘쭘히 물러났다. 그제서야 기성요원들이 체력적인 부담을 무릅써가며 죽어라 하고 기자를 따라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흑색·회색·백색요원
모스크바에 있는 공작원 조르게 동상.
1993년 7월 안기부는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인 시노하라 마사토씨가 국방정보본부에 근무하는 고모 해군 소령으로부터 38건의 군사기밀을 넘겨받은 사실을 포착해 구속했다가 추방한 적이 있다. 소련의 KGB는 1980년대 중반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의 모스크바 특파원인 대닐로프 기자를 간첩혐의로 체포해 미국과 큰 외교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 언론사 특파원은 전형적인 회색의 무대다.
정보는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나간다. 영화 ‘굿 셰퍼드’에서 CIA의 개입으로 첫사랑을 잊고 마음을 추스린 윌슨은 쿠바 침공이라는 거대한 공작을 준비한다. 이때 그의 아들은 대학생으로 성장해 있었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어머니 역할에만 충실하려 애썼다. 뜨거운 맛을 본 윌슨은 집에서 CIA와 교신할 때 항상 비화기(秘話器)를 사용했는데, 이러한 아버지를 아들은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어느 날 집에서 비화기를 붙잡고 쿠바 공격을 논의하던 윌슨은 방 밖에서 인기척이 있자 재빨리 스페인어로 바꿔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문을 열어 아들이 방 바깥에 있었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런데 쿠바 난민들을 동원해서 펼친 피그만 상륙작전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조사 결과, 쿠바는 미국이 쿠바 난민들로 구성된 부대를 피그만에 상륙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CIA는 철저한 내부 감찰을 벌인 끝에 아프리카의 한 호텔에서 KGB에 정보가 건네진 사실을 알아낸다. 윌슨은 아프리카에 간 적이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KGB에 정보를 건네준 인물은 누구일까.
놀랍게도 감찰실은 윌슨의 아들이 아프리카 여인에게 그 정보를 건넨 사실을 밝혀낸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하는 일을 유심히 관찰하다, 아버지가 영어에서 스페인어로 바꿔 말하는 것을 듣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사귀어온 아프리카 출신 애인과 사랑을 나누다 자신이 들은 얘기를 전하는데 그녀는 KGB의 끄나풀이었다. 아들은 그녀와 결혼을 약속했다며 식을 준비한다. 신부는 비행기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날아오는데 그때 누군가가 신부를 비행기 밖으로 밀어낸다. 얼마 후 신부가 비행기 사고로 실종됐다는 소식이 날아오자, 결혼식장에서 초조히 기다리던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눈물을 뿌린다. 이것이 정보기관의 보안이다.
‘지옥의 날’
신임요원의 개인 신상 접근에 실패한 기자는 세석까지 추적추적 앞장서서 걸었다. 세석에 도착한 신임들은 많이 지친 듯 했다. 지리산 산행은 빗속에서 치르는 경우가 더 많다. 지리산 정상부는 늘 비구름을 이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우가 몰아칠 때의 행군은 매우 힘들다. 비가 오면 누울 곳도 앉을 곳도 없고 식사는 행동식으로 때워야 한다. 그리고 매우 춥다.
단조로운 산행이 지겨웠는지 기성직원은 지리산 종주 한 달 후 신임들이 받을 해양훈련에 대해 설명했다. 이 훈련은 해군 특수부대 훈련소에 입소해 치러진다. 훈련의 주 도구는 UDT(해군 특수전여단)나 해병대가 자주 사용하는 고무보트 IBS(Inflatable Boat Small)다. IBS 훈련을 받아본 사람은 이 훈련이 얼마나 고된지 잘 안다. 지리산 종주보다 지겹고 단조로운 해양훈련에서 가장 악독한 것은 ‘헬 데이(Hell Day)’, 즉 ‘지옥의 날’ 훈련이다.
군 부대가 있는 곳의 밤은 늘 어둡다. 이 훈련은 취침시간이 막 지난 밤 10시30분쯤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도처에서 폭음이 터지고 경광등을 든 조교들이 뛰어들어와 신임들을 연병장으로 쫓아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임들은 군화 끈을 매기는커녕 웃옷은 들고 바지 지퍼만 겨우 올리면서 달려 나와야 한다.
그리고 원위치를 시켰다가 다시 집합명령을 내리는데 이때는 옷을 제대로 입고 달려 나온다. 군복 위에 구명복을 입는데 구명복의 끈은 사타구니 사이로 돌려서 잘 묶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물에 빠졌을 때 구명복이 벗겨지지 않아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몸놀림은 매우 불편해진다. 더구나 구명복 목 부근이 부풀어 있어, 얼굴은 마치 부푼 구명복 속에 피어난 ‘꽃술’ 같다.
훈련대장은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이라는 고전적 얼차려를 반복시킨다. 그러고는 IBS를 이고 오리걸음으로 바닷가로 나가게 한다. 국정원 신임요원의 30% 가까이는 안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신임요원의 헬 데이 훈련 비디오를 봤는데, 안경 쓴 신임과 여성 신임들이 IBS를 이고 오리걸음을 하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였다. 머리 위에선 150㎏이 넘는 IBS가 짓누르고 다리는 구명복 끈 때문에 잘 움직이지 않는다.
훈련대장과 조교는 걸핏하면 “뒤로 다섯 걸음”을 외쳤다. 이 때문에 이들은 오리보다 훨씬 더디게 바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밀물이 들어온 바다로 나아가 바닷물이 배꼽쯤 차는 깊이로 입수한다. 물결은 잔잔하지만 비디오 라이트가 사라지는 순간 바다는 가공할 어둠에 싸이면서 공포를 가져다줄 것이다. 훈련대장은 별다른 동작 없이 바다에 서 있게 하다 이따금 잠수를 명령한다. 그러나 구명복 때문에 잠수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IBS를 이고 ‘어머니 은혜’ 같은 처량한 노래를 부르게 한다. 세상은 끝없는 어둠이고 여간해선 동이 틀 것 같지 않다. 지겨움과의 싸움이다. 여름이지만 장시간 바닷물에 들어가 있으면 체온이 떨어져 쓰러지는 사람이 나온다. 그러나 악착같이 버텨야 정보요원이다. 날이 밝으면 식사가 나오는데 이때도 IBS를 머리에 인 채 식판을 들고 손으로 집어 먹어야 한다.
다음엔 하루 종일 개펄에서 뒹군다. 조별로 이어달리기를 하거나 재주를 넘는 시합 등으로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다. 그리고 IBS를 타고 나가 노를 젓는데 파도에 밀린 IBS는 나아가지 않는다. 이때 훈련대장이 제의를 한다. 신임 가운데 선수를 뽑아 조교들과 IBS 젓기 시합을 해서 이기면 훈련을 끝내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시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죽어라 노를 젓고 응원을 해보지만, ‘혹시나’는 ‘역시나’. 그리고 다시 개펄 뒹굴기.
이 훈련을 겪은 국정원의 한 직원은 “가장 힘든 것이 해양훈련의 헬 데이다. 그때는 왜 그런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 정보요원으로 활동하며 혼과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하나’라는 일체감을 갖지 않으면 보안의식도 근성도 나오지 않는다. 국가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자부심은 극기훈련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리산 종주는 해양훈련을 위한 체력단련이다. 세석에서부터 장터목까지는 철쭉나무로 덮인 장쾌한 구릉으로,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다. 지친 몸을 일으켜 마지막 도전을 시도했다. 훈육관도 신임들을 일으켜 세워 행군에 나서게 했다.
끊임없이 신임을 독려하는 훈육관은 신임 교육의 중추다. 훈육관은 10여 년의 경력을 가진 직원 가운데에서 선발되는데, 그 선발 과정이 매우 치열하다고 한다.
치열한 훈육관 경쟁
훈육관과 신임의 나이 차이는 삼촌과 조카 사이 비슷하다. 조카를 사랑하는 삼촌은 1년간 이들을 지도하며 영원한 멘토가 된다. 일선 부서에 배치된 신임이 실수를 거듭하면 기성직원들은 ‘누가 훈육관을 했어’라고 욕하고, 잘하면 훈육관을 칭찬한다.
신임 훈육관은 신임 직원 선발 사정이 한창인 전년도 10월에 확정된다. 훈육관 선발 날짜가 임박하면 대상자 그룹에서는 누가 훈육관이 되느냐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원칙적으로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훈육 계획서’를 만들어 제출하는 것으로 그 뜻을 밝힐 수 있다. 하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하기에 훈육관 해당 기수는 동기 투표를 통해 자발적으로 훈육관 후보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국정원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최종적으로 훈육관을 선발한다.
훈육관으로 선발된 사람은 ‘몸만들기’부터 해야 한다. 최초 4개월간은 신임과 똑같이 주말에도 합숙하며 신임들의 체력증강을 도맡기 때문이다. 몸만들기를 하는 틈틈이 전국의 명산을 찾아 신임을 위한 등산코스를 점검한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훈육관 제도를 운영해온 사관학교와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의 연수원, 사법시험 합격자를 가르치는 사법연수원 등을 방문해 신임 교육에 대한 참고자료를 모은다.
훈육관은 신임들이 전문교육을 받는 후반기가 돼야 비로소 합숙에서 해방돼 출퇴근을 한다. 그러나 국가정보대학원이 외진 곳에 있어, 후반기에도 주중에는 대부분 합숙을 한다. 과거에는 국내 파트 출신을 주로 뽑았으나 요즘은 해외 활동의 비중이 높아져 해외 파트에서 훈육관을 뽑기도 한다. 훈육관은 신임에 대해 전권을 행사한다. 국정원의 각 부서는 신임이 각 교육과정에서 받은 성적보다는 훈육관의 평가를 더 중요시한다.
이맘때의 세석과 장터목 사이는 철쭉 군락지로도 유명한데 벌써 철이 지났는지 꽃을 볼 수 없었다. 터벅터벅 걸어서 말안장처럼 잘록한 안부(鞍部)지대에 위치한 장터목에 도착했다. 과거에 지리산 남북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닷새 장을 열었다고 하는 장터목이다. 오후 5시10분 1착으로 도착한 기자가 기다리자 본대가 5시30분쯤 도착했다. 12시간30여 분 만에 장터목에 도착한 것은 잘 걸은 축이다.
안부지대에 위치한 장터목은 항상 바람이 세다. 산을 오래 타다 보면 비 냄새를 맡게 된다.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 기자는 불어오는 바람에서 비릿한 비 냄새를 맡았다. 5~7시간 뒤 제법 많은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잠시 후 휴대전화를 받은 훈육관은 “오늘 밤부터 비가 많이 온다고요?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하고 끊었다. 해가 지자 바람은 더욱 강해졌다.
무거운 분위기 탓인지 아무도 술을 마시자고 하지 않았다. 구석을 차지한 기자는 맨먼저 잠에 떨어졌다. 그러다 자정 무렵 ‘콧나발’ 소리와 후드득거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진짜로 오는구나.’ 신임들도 빗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새벽 2시30분이 되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우비를 꺼내는 등 산행 준비에 들어가 3시30분 전원 우비를 챙겨 입고 공터에 모였다. 빗줄기는 약해졌으나 날씨는 쌀쌀했다. 안개가 피어오를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이겨내려는 듯 훈육관이 이런저런 당부를 했다. 천왕봉은 항상 그 이름만큼 거대한 무게로 다가온다. 새벽 4시 본대는 천왕봉으로 출발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가파른 돌계단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너덜지대다. 크고 작은 바위로 이뤄진 너덜지대에서는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짙거나 어둠이 깊으면 길을 잃기 쉽다. 신경이 곤두섰는지 모두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