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대통령 의전(儀典)에서 배우는 협상 성공 전략

  • 정현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8-10-02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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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경제 대통령’ 대체 이미지 찾는 청와대 대통령실
    • 이라크 총리 방한시 현대중공업 발전기 구매 전략적 유도
    • 의전 시나리오인 행사 코드명은 3급 비밀
    • 예포 21발은 대통령, 19발은 국회의장·대법원장 상징
    대통령 의전(儀典)에서 배우는 협상 성공 전략

    8월25일 한국을 국빈방문한 후진타오(왼쪽에서 세 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청와대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대통령 의전(儀典) 담당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전이 최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의전에 대한 얘기가 외부에서 들리는 순간은 곧 이들이 뭔가 실수를 저질렀거나 사고가 생긴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종종 의전 이슈가 화제에 오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8월9일 베이징올림픽 여자 핸드볼 경기를 관전하면서 중앙의 태극문양과 가장자리 4괘의 위아래가 모두 뒤집힌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해 의전 문제가 국민적 화제로 떠올랐다. 그 경위를 놓고 누군가 일부러 거꾸로 제작된 태극기를 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추측도 나왔지만, 사전에 이를 챙기지 못한 의전 담당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이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최근 대통령 의전과 관련해 여러 가지 실수가 있다는 부분을 일과성으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의전상의 실수는 대내외적으로 대통령의 이미지에 커다란 손실을 가져온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적 손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7월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유치 최종 라운드에서 빚어진 의전 실수가 그런 경우다.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프레젠테이션에서 영어와 불어를 사용하며 열정적으로 소치 지원을 역설했고, 이런 푸틴의 모습에 IOC위원들이 감복하는 분위기였다. 이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한국의 프레젠테이션이 이어졌다. 한국의 프레젠테이션(60분간) 마지막 부분에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이 예고돼 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2분간 짧은 연설문을 읽었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한 기업인은 “사전에 대통령의 연설이 영어가 아닌 한국어임을 알렸어야 했다. IOC위원들 가운데는 갑자기 동시통역을 듣기 위해 리시버를 끼느라 부산했고, 아예 끼지 않은 위원들도 있었다. 노 대통령의 말을 놓쳐 제대로 듣지 못한 위원이 많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영어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사전에 의전상의 시나리오가 제대로 조율되지 않아 아쉬웠던 한 사례다.



    이처럼 의전은 단순한 격식에 그치지 않는다. 외교통상부에서 최근까지 의전총괄담당관으로 있던 문승현 북미1과장은 “의전이 좌석 배치나 하고 만찬 준비나 하는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이를 외교 전략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그래서 각국 의전 담당자들은 서로 자국 정상이 언론에 잘 노출되도록 얼굴 붉힐 정도로 밀고 당긴다. 의전적으로 잘 조율된 행사는 결국 우리나라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의전(儀典)에서 배우는 협상 성공 전략

    이명박 대통령이 8월9일 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 경기에서 ‘거꾸로’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따라서 의전 담당자들은 대통령 이미지를 한층 더 높이기 위해 치열한 물밑 노력을 기울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현장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비행기 문이 열리고 김 대통령이 트랩을 내려가기 전 먼 산을 5초간 응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각 언론에도 소개된 이 장면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감회를 적절히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의전 담당자들이 PI(Presidential Image 혹은 Identity)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PI란 최고 경영자의 이미지를 기업 이미지 구축과 관리에 활용하는 경영학 용어로 이를 대통령 의전에 활용한 것이다.

    대통령 의전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김창범 비서관)과 외교통상부 의전장실(박석환 의전장)이 맡는다. 의전비서관실은 대통령의 동선(動線)을 주로 챙긴다. 의전비서관실 안에는 대통령 면담과 오찬, 임명장 수여식 등을 담당하는 본관의전팀과 청와대 밖과 영빈관 행사, 사전답사와 경호 협의 등을 맡는 국내의전팀, 해외 각국과의 의전 문제를 맡는 외교의전팀이 있다. 외교부 의전장실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과 협의하면서 대통령 동선뿐 아니라 자동차 수행원, 상대 의전팀과의 문제, 헤드테이블이나 국기 배치 등 세밀한 부분들을 챙긴다.

    이들의 업무는 허드렛일에서부터 의전 기획까지 포괄되기 때문에 ‘전천후’ 능력을 선보이는 인재들로 구성된다. 밤샘 작업을 하는 경우도 예사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전담당자들의 고초는 각국 의전 담당자들끼리 이해한다. 문승현 과장은 “정상회담 등에서 서로 자국에 유리한 의전을 수행하기 위해 피 튀기는 머리싸움과 몸싸움을 하지만 행사를 무사히 끝내고 나면 서로 얼싸안고 ‘우린 진정한 친구요(You´re my buddy)’라고 외친다”고 말했다.

    의전은 크게 보면 의전 담당자들만의 업무는 아니다. 대통령실 전 직원과 관계된 일이다. 그래서 의전 행사를 준비하려면 의전비서관실뿐 아니라 정무, 경호, 대변인실, 관계부처까지 다 동원된다. 그들의 임무는 오직 하나, 대통령의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좋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 정책, 행동, 얼굴 등 모든 것이 쌓여서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최근 청와대도 이 대통령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박형준 홍보기획관을 중심으로 효율적인 PI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미국산 쇠고기 파문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경제대통령’ 이미지가 손상되면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이미지 마련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국내의 PI 작업은 정밀하지 못했고, 이를 전략적 차원에서 다루지도 못했다.

    박 홍보기획관은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책 메시지 비주얼 등 PI를 구성하는 여러 부분을 통합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심은 ‘MB다움’을 회복하는 데 있다. 치밀하고, 조직적이고, 추진력 있고 성과로 보여주는 이미지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부자만이 아닌 서민을 위한 대통령 이미지 형성도 중요하다. 국가 이미지(NI) 업그레이드 작업도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경제대통령’으로 굳어진 이 대통령의 이미지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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