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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마지막회

소설가 김인숙

통속성과 진정성의 줄타기 끝에 ‘제국의 뒷길’에서 마주친 문학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소설가 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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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로 어려울 때, 사람마다 취하는 포즈가 다르다. 난 힘들면 아무 데도 못 간다. 힘들 때 어딜 가면 더 힘들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상책이다. 그 힘든 생각이 너무 무거워 내려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려놓으려 해도 힘이 필요한데 겨우 버티는 수준이다. 더 두려운 건 내려놓으면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기러기처럼 훨훨 떠났다.

“중국 다롄(大連)에 가서 지낸 최초의 1년은 내 생에 제일 행복한 시기 중 한 시절입니다. 생이 저에게 준 휴가 같았어요. 난생 처음인 곳에 가서 새로운 것도 보고 신기한 경험도 하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하지만 1년을 넘기고 2년이 되어 가면 그 신선함이 진부함으로 바뀌고, 결국 같은 일상이 되지요. 그럼 다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새로 도착한 곳에서 2년을 못 넘겨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어 지루해져버리기 때문이지요. 언젠가 황석영 선생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혹시 습관적으로 외국에 나가는 건 아닐까.

“아니에요. 그렇게 자주 나가진 않아요. 1993년에 호주로 가서 1년 반 정도 있었어요. 그땐 가족문제 때문에 아주 힘겨웠던 시절이었지요.”



남편과 헤어질 무렵이다. 그는 이혼이라는 고통의 과정을 거쳤다. 그 이유는 묻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가 보기에 전형적인 서울사람이다. 그간 작가들로부터 시골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재미를 본 나는 툭, 하니 걸렸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이 추억이 많은 것은 고향이 서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추억이 없다. 추억이 있던 자리는 모두 고층건물이 올라갔다. 그 자리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

아버지의 부재

추억이란 흙이 있는 자리에 자라는 풀이거나 꽃이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니 흙에 대해서 유년시절에 대해서는 별로 쓸 게 없겠네, 싶은 마음이었다. 과연 그럴까. 그는 활짝 웃었다.

“유년시절 사진을 보면, 모르는 얼굴들과 찍은 사진들이 있어요. 어머니가 하숙집을 했는데, 그때 하숙을 하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지요.”

소설가 김인숙
하숙집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3남2녀의 가장이 돼버린 어머니가 생활의 방편으로 선택한 일이다. 그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그에게는 없다. 그래서 그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아버지에 대한 흙과 그 흙에서 피어난 추억이 없다.

“35세가 넘어서야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인이 의료사고인 걸 알았어요. 주사를 잘못 맞아 돌아가셨는데, 그때 아버지의 비명소리가 매우 강렬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정하게 하지는 않았어요. 아버지가 멋쟁이여서 어머니 속이 상하셨겠지요. 하지만 큰오빠는 아버지를 아주 멋있는 분으로 추억하고 있었어요. 한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서로의 입장에 따라서 달리 각인되어 있지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상처도 없어요. 저에게 아버진 처음부터 없었던 거죠.”

혹시 내가 아버지를 어린 시절에 잃었다는 말을 듣고 눈빛이 흔들렸을까, 그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만 말했다. 그가 기억을 하든 안 하든, 상처가 있든 없든, 아버지의 부재는 그녀에게 문학을 할 자리를 내면에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른다. 그 빈 공간은 어린 그의 무의식에 자리 잡았고, 그것은 글쓰기로 이어진다.

그는 고교 3학년 시절 만해백일장에 나가 시 부문에서 장원을 했다. 학생시절, 문학보다는 공부에 몰두했을 것이다. 그 보상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의 표현대로 깡마른 여자아이, 화장을 짙게 하고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 발랄한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생이 되었다.

작가 김인숙의 등단과정은 어린 푸이가 울면서 황제가 되기 위해 궁으로 끌려가는 모습과 닮았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관문이 그의 등단 모습이다. 당시 대학 1학년, 그것도 방송국 피디를 꿈꾸는 소녀가 자신이 원하는 학교의 신문방송학과를 다니던 중에 덜컥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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