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도움 안 되는 귀현이의 조언을 무시하고, 한참 고민한 끝에 우리 집 침실과 고급호텔의 결정적인 차이, 두 가지를 찾아냈다. 우선 조명의 차이다. 호텔방은 모두 부분조명이다. 벽의 모서리마다 백열등의 스탠드가 있어, 등의 그림자가 천장까지 길게 늘어진다. 이에 반해 우리 집 침실의 조명은 형광등이다. 오래가고, 밝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형광등은 작업장에서나 쓰는 불빛이다. 사람을 예민하게 하는 각성의 기능을 가진 불빛이다.
20년 전 그녀와 재회하다
독일을 비롯한 북반구 사람들의 집에서는 형광등 불빛을 보기 힘들다. 오후 3시면 컴컴해지는 기나긴 겨울밤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조명은 삶의 질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는다. 백열등 불빛은 아늑한 느낌을 주는데, 이들이 이 조명을 쓴 지는 꽤 오래됐다. 물론 초를 켜던 오래된 습관의 연장이다. 지금도 이들은 흔들리는 촛불의 그림자에 어른거리는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며 산다. 나는 다양한 초를 켜고, 진한 커피와 포도주를 마시며 보냈던 독일의 그 궁상스러운 겨울밤들이 너무도 그립다.

우리 집 침실과 고급호텔의 결정적 차이는 조명과 침대시트 색상에 있다.
조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하얀 침대시트다. 특급호텔의 침대시트는 한결같이 하얀색이다. 막 다림질한 듯한 기분 좋은 까슬까슬함도 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아, 참 좋다’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 침대도 하얀 시트로 바꾸자고 했다. 아내는 황당한 표정으로 한참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다 세탁하고, 매번 하얀 침대보 갈고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
그날 이후로 난 매일 밤 졸랐다. “착하게 살겠다.” 하얀 침대에서는 “정말 열심히 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 정말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꼭 해야 하는 성미를 가진 나는 새벽마다 일어나 왔다갔다했다. 잠든 아내가 깨도록 불을 켜고 부스럭거렸다. 잠을 깨, 졸린 눈으로 도대체 뭐하냐는 아내에게 ‘불면증’이라고 했다. 하얀 침대시트에서는 정말 잠이 잘 올 거라고 했다. 결국 내 월급을 아내의 통장으로 직접 이체한다는 조건으로 하얀 침대시트를 얻어냈다. 요즘 난 하얀 시트에서 잔다. 잠이 정말 잘 온다. 그 깔끔한 하얀색 시트의 느낌이 정말 행복하다. 아, 그리고 … 정말 매번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