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9월11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제금융시장이 미국의 주택시장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쉽게 호전되지는 못할 것이다. (금융시장 위기가) 이제 지나갔다고 하는 것은 성급하다. 주식가격이나 환율이 대외적으로 많이 노출돼 있어 전체적으로 변동성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9월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IMF 같은 위기로 경제가 파탄 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피력했지만, IMF체제의 어려움을 겪은 국민의 가슴은 여전히 콩닥거린다.
이런 상황에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며 선 굵은 경제개혁가의 이미지를 남긴, 4선(選) 경력의 김종인(68) 전 의원에게서 한국 경제의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흥미롭게도 그가 경제수석으로 재직하던 시기도 요즘처럼 증시가 요동을 쳤고, 정부가 연이어 특단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던 시기였다. 그 시기를 거치며 그는 인위적 증시 개입과 부동산 경기부양책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를 직접 체험했다.
김 전 의원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위기설이 기본적으로 줏대 없는 경제정책가들에게서 비롯됐음을 지적했다. 또 1960년대식 재벌중심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의 국가경제 운영체제와, 부동산 활성화나 증시 개입 등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반짝 효과를 노리는 정책보다는 낮지만 적정한 성장률을 목표로 한 중장기적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장보다는 양극화 해소에 심혈을 기울이며 국민을 통합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인 김 전 의원은 지난 6월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유인’으로 돌아왔다. 1973~80년 서강대 교수를 거쳐 11대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노태우 정권시절 보건사회복지부 장관, 12대(민정당)·14대(민자당)·17대(새천년민주당) 의원을 지냈다.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경질설이 나돌 때는 후임자로 언론에 하마평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현재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으로 남북 경제통합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그를 9월7일 서울 부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외환경 따지지 않고 환율 개입’
▼ 최근 제기된 금융위기설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사실 최근의 외환위기설은 좀 과장돼 있습니다. 또 요즘 상황을 마치 1997년 IMF체제와 비교해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잘못된 비교입니다. 외환보유액(2400억달러) 자체도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외환위기설이 이렇게 급격하게 번지게 된 동기는 한나라당 등 여권에서 ‘9월 외환 위기설’을 처음 제기했고, 기획재정부 장·차관이 이례적으로 주권 차원에서 환율에 개입해 평가절상이나 절하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시작이었지요.”
▼ 인위적 환율 평가절하가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입니까.
“정부에서는 원화를 평가절하하면 수출에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했어요. 성장을 이끌어가는 요인이 수출 투자 소비 이런 것인데, 국내 투자도 부진하고 소비도 별로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까 수출을 늘려서 성장률을 높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올봄 920원대였던 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한 가지만 본 겁니다. 원화가 평가절하되면 수출업자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수입 가격이 오르게 됩니다. 최근에는 원유가격이나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당시는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던 때입니다. 결국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원화가치까지 떨어지니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굉장히 커졌습니다. 국내 물가가 오르니 서민생활이 충격을 받게 된 거지요.
그렇게 되니까 또 경제팀이 갑자기 안정 위주로 간다고 선언하면서 환율의 평가절상안(案)을 내놓았습니다. 한국은행 총재와 기획재정부 장관이 만나 합의하고, 외환보유고를 풀어 원화 값을 안정시키려고 하자 여기에 일반 투기세력들, 소위 환투기 세력들이 장난을 쳤어요.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채권 만기가 돌아오고, 단기외채가 국제금융시장에서 리볼빙(revolving system·회전결제)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또 국제금융시장이 상당히 경색되면서 외채 차입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됐고, 그 과정에서 외환위기설이 생겨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