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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유고, 그 후는?

‘北 군부와 특급 채널’ 대북 사업가의 평양발 긴급 리포트

김정일 유고, 그 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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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전 국내외 언론을 장식한 ‘김정일 중병설’과 관련, 북한 권부(權府) 속사정에 정통한 재야(在野) 인사가 ‘신동아’에 글을 보내왔다. 북한에서는 김 위원장 신변에 관한 일이나 그가 직접 챙기는 일을 ‘1호 사안’이라고 부른다. 글쓴이는 ‘1호 사안’을 다루는 것은 곤란하다고 거절했으나, 익명을 전제로 한 기고에는 동의했다.
  • ‘김정일 유고(有故)’는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닥쳐올 일이다. 그 중차대한 사태에 우리는 얼마나 올바르게 대처하고 있는지, 이 글을 통해 되새겨볼 일이다. ‘편집자’
조금 우습다고 해야 할까. 9월 초순에서 중순으로 이어지는 며칠 사이 한반도의 오늘에 대해 생각하자니 든 생각이다. 특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이 퍼지는 광경을 보고 나서부터다. 이건 코미디보다 못한 장면이었다. 정보력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고 제각각이어서 그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가운데 현실적인 대처방안이 보이지 않아서 탈이었다. 누굴 믿어야 할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북한 정보’의 속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 해프닝이었다.

이 일을 거친 결과가 또다시 ‘북한 정보는 역시 안개 속’이라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비극이다. 이 사태를 통해 배우는 게 있어야 하고, 거기서 정책이 나와야 한다. 개입 당사자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분단 현실에서 무작정 이러니저러니 혼자 목청껏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없다.

AP통신, 뉴욕타임스 등이 긴급하게 김 위원장이 뇌졸중을 맞았다는 기사를 타전한 것은 9월9일이었다. 이를 받아 한국 정부에서도 바로 맞장구를 쳐서 “사전에 (첩보로) 알고 있었다”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미 국무부는 대변인을 통해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 와중에 나온 이야기는 꽤 호들갑스러웠다. 6~8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핵 통제 문제가 운위된 것은 약과에 속한다. 한 언론에서는 ‘뇌졸증’과 ‘뇌졸중’마저 구분하지 못하는 기사도 나왔다. 영어 ‘strok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촌극이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손발마비, 언어장애, 호흡곤란 등 신체적 정신적인 병증이 한꺼번에 오는 걸 말한다. 일반적으로 ‘stroke’라는 단어는 뇌졸중을 포함해 다른 형태의 발작(發作)도 포괄하는 표현이다. 이 단어가 가리키는 병증이 아주 넓은 셈이다. 그러고 보면 김 위원장의 과거 병증까지 감안해 꽤 영특한 단어를 상황에 맞게 꺼낸 해외 언론의 재주도 칭찬해줄만하다. 여하튼 그 순간부터 중병설은 대세가 됐다.

상황이 마무리되어가는 추세에 이르자 이런 말도 나왔다. “병이 있었으나 (수술 후) 회복단계다.” 이건 한국 정보기관의 친절한 설명이다. ‘(오래전에 알았으며 지금도) 심각하게 사태에 대비한다’는 청와대의 발언이 나온 뒤 정리단계의 해설쯤 되는 셈이다. 이 말에 따라 사태는 하루 반나절 만에 수그러졌다. 사실이 정말 그런지는 나중에 다시 따져볼 일이다. 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이번 사태가 과연 ‘예상하지 못한 일인지 아닌지’ 하는 점이다. 문제는 바로 이 대목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9월9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60주년 기념일이었다. 한국에서도 ‘건국절’로 한바탕 소란스러운 논쟁을 벌였지만, 분단국가에서 이른바 ‘꺾어지는 해’에 다른 때보다 더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사람 나이 60도 환갑이라 해서 기념하는데, 하물며 제각각 수립한 정부라도 60년이라면 그 의미가 남다르지 않으랴. 그래서 아주 잘 차려진 잔칫상을 기대했더니 ‘주인’이 안 나타나는 상황이 벌어지자 그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 원인은? 그야말로 ‘유고(有故)’, 뭔가 사건이 생긴 사태였다.

소문은 꼬리를 물더니 마침내는 김정일 사후의 후계구도가 어떻다거나 심지어 ‘북(北) 정권, 한국으로 흡수될 수도’라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9월10일 오후 지하철 무가지에 등장한 연합뉴스 인용 기사의 제목이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이 예상한 4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가 그랬다. 각론은 간단하다. 3대째 세습, 군부 통치, 집단지도체제, 그리고 한국으로의 흡수가 4대 시나리오라는 얘기였다.

한마디로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격언이 딱 맞다. 차분하지 않다. 한국만 놓고 보자면 이런 말은 1994년 7월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한 직후 김영삼 정권이 곧바로 ‘북한 즉시 패망론’에 젖어들었던 광경을 떠오르게 한다. 그로 인한 오판이 얼마나 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1994년의 기억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김 위원장은 1942년 2월16일생, 우리 나이로 67세이고 만으로 66세다. 나이가 이쯤 되면 누구도 건강을 장담하기 어렵다. 2005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 때, 2006년 1월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을 평양에서 맞이하던 첫날에도 그의 건강 이야기는 언제나 관측자의 화젯거리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연로해간다는 건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당사자가 직접 “심장병, 당뇨병이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함으로써 그런 병이 있다는 걸 거꾸로 밝힌 적도 있다. 체형만 봐도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부인하기가 어렵고, 여러 차례 특별한 진찰과 검진, 수술을 거친 흔적도 드러났다.

그러나 북한의 현 상황이나 향후, 그 밖의 것들에 관한 말들은 모두 추측일 뿐이다. 오죽했으면 “밀폐된 국가여서 정보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미국 당국에서조차 나왔을까. 그런데도 끊임없이 분석하고, 또 분석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근거는? 그런 건 없다. 제3자가 재검증하기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확실한 정보와 엉터리 정보 소식통이 난무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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