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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섭 기자의 아규먼트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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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한강중심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세계 일류도시’를 지향하는 문명사적 변화가 막 시작됐다. 그러나 역사는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도 많다. 서울이라는 국가중심공간의 재편. 그 원칙, 방법, 목표를 논박해볼 긴급성이 있다.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서울 도심 광화문 일대.(좌) 울 강남 청담동의 한 복합문화공간.(우)

①원칙의 부재 | 한강변 초고층 ‘졸작’ 우려

자금성(紫禁城). 이곳이 없다면 중국 베이징 여행의 매력은 절반쯤 감소할 것이다. 명(明)왕조 때 지어진 이 궁궐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 때까지 대대적 복원을 거듭했으니 역사유물로서의 가치가 탁월하다 할 수는 없다. 자금성이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첫째 비결은‘규모’에 있다. 사람들을 사로잡는 건 사방 4km 성곽과 800채에 달하는 건물의 웅장함과 정제된 복잡성이다.

그러나 자금성의 실제 크기는 지하철 한 코스면 지나치는 서울 시내 뉴타운과 비슷할 뿐이다. 결국 ‘규모의 미(美)’란 ‘산술적 규모의 큼’보다는 구조물들을 한 곳에 끌어 모은 ‘집적성(集積性)’에서 나온다. 여기서 전체 덩어리를 구성하는 동질성과 그 안의 이질성을 동시에 표출해내는 것이다.

‘초일류’ 삼성에 실망

집적성은 현대 도시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핵심적 가치다. 이 점은 더 이상의 증명이 필요 없는 악시옴(axiom·공리)이다.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시카고 도심엔 108층 시어스타워(442m) 같은 초고층 빌딩이 50~70층의 고층빌딩, 중층빌딩, 저층빌딩과 함께 수직적, 수평적으로 조화롭게 집적되어 있다. 시카고가 도시 건축물의 바이블로 불리는 이유다. 반면 대만의 101층 타이베이금융센터(509m)는 주변의 낮은 건물들 사이에서 홀로 우뚝 솟아 있다. 도시의 수직적 단절과 분리다. 미학(美學)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타이베이금융센터가 시어스타워보다 더 높다는 ‘높이 경쟁’은 이에 비하면 훨씬 덜 중요하다.



초고층 빌딩 사이에서 이 같은 질적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운이나 우연 때문이 아니다.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현대 도시는 철저히 인공적 조작의 산물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천지개벽”이라며 놀라워했던 중국 상하이 푸둥. 사회주의 중국은 모래밭에 불과했던 이곳을 단 10여 년 만에 ‘아시아의 맨해튼’으로 바꿔놓았다. 건물 하나하나의 높이, 배치가 모두 집적성의 원칙 아래 기획됐다.

한 중국 관리는 “자금성과 푸둥의 마천루는 같은 원리다. 과거와 현대의 중국 지도자들은 ‘세계적 명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은 고층건물의 총 개수에서는 세계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뉴욕과 같은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서울을 서울과 강남으로 나누자

서울 상암동(서울라이트), 잠실(제2롯데월드) 초고층빌딩 조감도. ‘나홀로 초고층’이 여기저기 띄엄띄엄 들어설 경우 오히려 도시경관의 퇴보를 가져올수 있다.

서울 한강변 여러 곳에서 초고층 빌딩 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마포구 상암동의 서울라이트(seoullite·133층·640m·9월 착공),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드림타워(152층·620m·계약 후 추진 중), 뚝섬의 현대차그룹 사옥(110층·550m·제안서 제출), 잠실의 제2롯데월드(112층·555m·정부 최종확정) 등이다.

이들 사업은 타이베이 방식에 더 가깝다. 사업 추진기관이 제시한 조감도를 보면, 도시의 수직적 단절과 분절이 두드러진다. 높이 경쟁만 홍보하고 주변 경관과의 조화엔 침묵한다. ‘세계 일류’ 삼성(용산 국제업무지구 참여)이 이 정도의 도시감각밖에 없는지 실망스럽다. 설계를 다시 내놓는다고 한다. 이 회사는 최근 자사의 아파트 브랜드로 반포 한강변에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세워놓았다. 굴뚝 모양의 초고층 빌딩에 저층 부속건물들로 구성된 제2롯데월드는 재벌 오너의 ‘마초주의’ 노욕(老慾)을 충족시켜주는 것 외에 어떠한 공익적 조형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제2롯데월드는 ‘마초주의’ 노욕

한두 곳도 아닌 네 곳이 모두 그렇다는 게 큰 문제다. 한 일간지는 3월4일 “한국이 세계 초고층 시장의 맹주로 떠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의 견해는 다르다. 원칙을 모르면 예측을 할 수 없다. 다 지어놓고 실제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상암, 용산, 뚝섬, 잠실의 100층대 초고층 건물들은 서울시내 동서 한강 구간을 비슷한 등간(等間) 거리로 4등분해 거대한 빼빼로 과자처럼, 혹은 거대한 전봇대처럼 늘어서서 솟아 있는 형상이 된다. ‘서울 근대화’의 혹독한 유물인 ‘판상형 아파트 경관’의 ‘21세기판’이다.

국가기관이 ‘세계 일류도시 건설’을 외칠 뿐 변화의 원칙을 확고하게 세워두었는지 의문이다. 서울시내 지도를 펴 들고 종합적으로 검토해봤다는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다. 공간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각각의 사업에 끌려 다닌다는 인상이다.

영국 ‘더 타임스’의 앤드루 새먼 서울특파원은 최근 모 일간지에 “서울의 도시경관이 최악”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다. “색채 모양 크기 등 디자인적 측면에서 한국 건축가들의 국내 작품은 끔찍할 정도다. 왜 지역 정부는 구획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재개발을 허가해 이런 미(美)적인 참사가 지속되도록 놓아둘까.” 서울은 지금 ‘근대화’에서 ‘글로벌화’로 진입하려는 전환점에 서 있다. 초고층 건립, 한강 르네상스, 신도시 운영계획 시행 등에 따라 서울시내 수십여 군데 금싸라기 땅이 앞으로 본격 개발된다. 국민의 세금과 기업의 자금 수십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서울 개조를 기획하는 국가기관은 솔직한 평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은 계속 “1980년대의 어딘가를 표류(새먼)”하고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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