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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정대세, 정동영 & 노무현

정대세, 정동영 &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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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후보였던 정치인과 전직 대통령에 앞서 축구선수 얘기부터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 축구선수의 이름은 정대세다. 북한 축구대표팀의 공격수다. 그의 별명은 ‘인민 루니’다.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처럼 저돌적인 공격 본능을 지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위의 3명 중 ‘말다운 말’로 치자면 그가 단연 으뜸이다.

4월1일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정대세는 거의 골을 넣을 뻔했다. 후반 초 정대세는 한국 수비수 둘을 따돌리고 헤딩슛을 했다. 공이 골라인을 넘기 직전 한국팀 문지기 이운재가 필사적으로 쳐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공이 골라인을 이미 넘어선 것 같기도 했다. 북한 측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한 것은 당연할 수 있다. 우리라도 그랬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 측의 불만 표시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데 있다. 북한축구협회는 “경기 전날 2명의 문지기와 공격수 정대세 선수가 구토, 설사를 하면서 심한 머리아픔으로 침상에서 일어설 수 없는 사태가 빚어졌다. 의심할 바 없이 그 어떤 불량식품에 의한 고의적인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대세의 헤딩슛에 대해서는 심판이 “공이 상대편 골문선을 넘었지만 득점이 아니라고 혹심한 편심(편파 심판) 행위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결론은 “남한 정부의 반(反)공화국 대결 책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해명까지 다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축구 경기를 두고 ‘반북 대결 책동의 산물’이라는 데야 무슨 대꾸를 하겠는가. 말이란 말 같을 때에야 말이 되는 법이니까.

그들의 말 같지 않은 말에 비한다면 정대세의 말은 말다운 말이다. 정대세는 “한국은 정말 강한 팀이었다”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간 뒤 한국 신문에 기고한 글에 “제 헤딩슛은 골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현장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 않은 이상 확실한 건 누구도 얘기할 수 없습니다. 한국팀 골키퍼 이운재 선수가 역시 굉장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생각도 듭니다”라고 썼다. 경기 전날 설사와 구토를 한 데 대해서는, 해외원정이 계속되면 몸 컨디션이 나빠지는 건 흔히 있는 일이라며 “근육 단련은 빈틈없이 했으나 앞으론 강인한 내장을 만드는 트레이닝도 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군요”라고 했다.(한겨레신문 2009년 4월9일자)



1984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난 정대세는 ‘이중 국적자’다. 대한민국 국적도 갖고 있고, 북한 국적도 갖고 있다. 그의 조부모는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정대세는 조선학교에 다녔다. 그는 2006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북한이 일본에 패하는 걸 보고 북한대표팀에서 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때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려 했지만 한국 정부가 북한을 정식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국적 포기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중 국적자’가 된 사연이다.

정대세는 일본 프로축구팀인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뛰고 있다. 그가 북한축구대표팀 선수이면서도 북한축구 관계자들과는 달리 열린 마음으로 말다운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닫힌 체제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닫혀 있을 수밖에 없다. 김정일 평양정권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든, 로켓을 발사하든 그들이 닫힌 체제에 갇혀 있는 한 ‘정대세의 조국’은 영영 슬픈 조국이지 않겠는가.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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