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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⑪

이뤄질 수 없는 과거 회귀에 대한 열망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이뤄질 수 없는 과거 회귀에 대한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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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돌아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성긴 서사물이 오히려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무의식적 안타까움과 과거에 대한 집착 그리고 영원한 사랑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고스란히 응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는 ‘INSITE’라는 모임을 조직하고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그랜드호텔을 매년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의외로 영화의 제목을 인터넷 검색창에 쳐보면 수많은 한국 관객 역시 아련한 기억 속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으로 영화를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Somewhere In Time’은 지나간 시간에 대해,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지만 결국 자신의 실수이기에 더 뼈저린, 과거라는 형벌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리처드는 1912년에 당도하기 위해 ‘자기최면’이라는 방법을 쓴다. ‘백 투 더 퓨처’처럼 기계를 사용한다거나 ‘나니아 연대기’처럼 벽장문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리처드의 스승은 시간여행이 간절한 바람과 자기최면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스승의 말을 따라, 리처드는 당대의 물품을 구입하고 1910년대 스타일의 옷과 머리 모양을 하고는 주문을 외운다. 간절하게, 진심으로, 자신이 1910년대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고 주문을 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당신의 세계다”라고. 그 결과 그는 너무도 보고 싶었던 여자를 볼 수 있게 된다.

당연히 과거의 여자 앨리스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묘한 매력으로 그에게 빠져든다. 매니저의 방해 공작에도 앨리스는 리처드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는 너무도 흥분한 나머지 그녀와의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단 하룻밤의 정사, 그에게 가장 행복한 그날 아침.

그런데 그는 주머니 속에서 자신이 왔던 곳, 1979년의 동전을 발견하고 곧장 현재로 소환되고 만다. 그렇게 그는 행복의 절정에서 추락하고 만다. 리처드는 너무나도 간절히 되돌아가려고 애쓴다. 최면을 걸고, 걸지만 이번엔 쉽사리 과거로 갈 수 없다. 결국, 남자는 일주일 만에 사체로 발견된다. 간절히 원했지만, 그는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다.



사실 영화 속에서 리처드는 과거를 향해 갔지만 그에게는 그 과거가 단 한 번뿐인 삶, 현재의 시간이다. 그러니까 언뜻 보기에 자유롭게 시간을 넘나드는 듯싶지만, 그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회복하지 못한다. 과거로의 여행이 그의 현재적 삶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곱게 늙은 한 할머니가 리처드를 찾아와 회중시계를 전해주는 데서 시작한다. 할머니는 리처드의 첫 공연을 보러 와서 “내게로 돌아와”라고 말한다. 짐작했겠지만, 할머니는 바로 리처드가 떠나버린 후 시간을 견디며 늙어온 앨리스다.

지독한 자기최면

그런데 생각해보면 리처드는 정말이지 행복한 남자다. 그는 행복의 절정을 맛보았지만 행복의 대가를 죽음으로 치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냉혹하다고? 도리도리. 앨리스와 첫날밤을 보낸 이후 리처드에게 남은 것은 먹고 싸고 살아야만 하는 현실이다. 미래에서 온 그에게는 신분증도, 집도, 학력도, 돈도 없다. 매니저에게 의존해온 앨리스 역시 현실적인 생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리처드와 앨리스는 첫날밤을 보낸 이후 어떤 행복한 일을 할까, 계획을 세우다가 헤어지고 만다. 그들에게는 순도 높은 90%의 행복과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가 있을 뿐 현실은 없다. 리처드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고통은 아마 남아 있는 10% 행복을 맛보지 못한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10%의 여분이 곧 90%의 현실과 맞닿아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한다. 사랑 때문에 죽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모두 다 사랑을 사전 속에 담아 두고 무감하게 살아간다.

리처드를 과거로 데리고 간 비법이 자기최면이었다는 사실도 유심히 봐야 한다. 어쩌면 리처드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처럼 현실 같은 꿈을 꿨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도 절실히 원한 나머지 그는 사진 속의 그녀를 현실 같은 꿈에서나마 만났던 것은 아닐까? 한 번쯤 열심히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와 혹은 그녀와 헤어진 후 어느 날, 그녀와 행복했던 하루를 꿈속에서 보내고 눈을 떠 방에 걸린 익숙한 시계를 보며 눈물 흘렸던 그 순간. 간절히 꿈이지 않기를 바랐던 바보 같은 그 순간을 말이다. 과거,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을 걸, 이라는 후회와 함께 꿈속의 그녀는 과거 속에 봉인된다. 바보 같은 실수를 되돌리기 위해 과거로 가고 싶지만 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지독한 자기최면뿐이다. 결국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년 조슈아가 소원을 비는 기계 앞에서 말한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고. 그런데 그 소년 조슈아가 눈을 떠보니 정말 어른이 돼 있다. 가랑이에 털이 숭숭 나고 수염까지 까칠한, 어른이 된 조슈아. 그는 장난감 회사에 취직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사실 그는 열세 살이니 어린이의 마음으로 상상하는 게 결코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페니 마셜 감독의 ‘빅’은 소원을 비는 기계에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가 정말 어른이 된 소년의 이야기다.

12세 관람가 영화 ‘빅’은 사실 아이들의 바람과 어른의 욕망을 동시에 채워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서 지겨운 청소년기나 학창시절을 건너뛰어버리고 싶은 바람을, 그리고 어른들은 지금 이렇게 몸집이 커졌지만 다시 엄마 품에 꼭 안기는 아이로 되돌아가고픈 욕망을 갖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갑자기 줄어든 조슈아가 바닥에 끌리는 양복을 입고 걸어가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 이 작품은 사실 어른들의 욕망을 거꾸로 말해주고 있다.

그토록 빨리 스무 살이 되어서 성인전용 영화를 보고, 술집에 들어가고,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어느 새 그 시간들이 너무나 빨리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는 조슈아처럼 작아진 몸 위에 어른의 옷을 걸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어른이라 부르고, 어른다운 몸짓과 언행을 하라고 말한다. 작아진 몸, 소년으로 돌아가는 조슈아는 어른들의 꿈이자 환상, 그리고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과거 회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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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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