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제가 그 많은 나무를 정말 다 세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아요. 그때 만든 자료를 보여주고, 캠퍼스 어디에 무슨 나무가 있는지 말해주면 그제야 혀를 내두르지요. 그러고는 하나같이 나무가 도대체 몇 그루냐고 묻습니다. 저는 ‘한 그루도 없다’고 대답하지요.(웃음)”
강 교수는 중국 청(淸)대사를 전공한 사학자다. 동시에 ‘나무병 환자’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나무를 생각하고, 나무를 공부하며, 나무에 대한 글을 쓴다. 그가 “캠퍼스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고 하는 이유는, 나무를 센 뒤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옮겨 심었기 때문이다.
강 교수의 나무 사랑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그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도 “캠퍼스 안의 은행나무를 세어오라”는 숙제를 낸 적이 있다. 사학과 수업에서 웬 나무냐며 당황하는 이들에게 “나무를 세고나면 이유를 알게 될 것이고, 알고나면 천지가 개벽할 것”이라고 했다.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리포트 제출 시기가 다가오자 학생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느껴지더군요. 귀찮고 쓸모없는 일 같아 하기 싫은데, 그렇다고 학점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막판까지 버티다 허겁지겁 만들어 온 보고서를 보니 세어 온 나무 개수가 다 달랐어요.”
나무 세는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었다. 강 교수에 따르면 나무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눈으로만 세는 이에게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멀찍이 떨어져 숲을 보세요. 이 나무가 저 나무 같고, 저 나무가 이 나무 같지요. 그렇게 수를 세려 하니 헛갈릴 수밖에요. 그럴 때는 나무 가까이로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합니다. 껍질을 만지고 향기를 맡는 거예요. 그러면 내 눈 앞의 나무와 그 옆의 나무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세상 모든 나무는 각각 오직 하나뿐인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그는 그렇게 나무를 셌다.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 나무도 한 그루 한 그루 새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진지한 손길로 쓰다듬고, 가지 모양과 잎새를 살폈다. 그 순간 메타세쿼이아 숲이 사라지면서, 각각의 나무가 서로 다른 얼굴을 한 채 그에게 왔다. 강 교수가 캠퍼스 안에 있는 나무를 다 세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그 덕분에 그는 모든 나무를 온전히 마음속에 옮겨 심을 수 있었다.
강 교수는 “나무를 세면 생명을 사랑하게 되고 세상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눈이 뜨인다”고 했다.
“인간은 숲에서 태어났지요.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바로 그 숲을 사라지게 하는 과정이었어요. 숲의 소멸은 지금 인류 문명에 큰 위기를 가져오고 있고요. 나무를 보고 그 생명력에 감탄하다보면, 자연히 인간과 역사와 철학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강 교수는 이런 방식이 우리 선조들의 오랜 공부법이라고 했다.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 즉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物)을 통해 이치를 깨닫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이치를 깨닫기 위해 어떤 ‘물’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논어’ 자장편에서 찾을 수 있다. ‘배우길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그 안에 인(仁)이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는 구절이 그것이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까이 생각한다’는 뜻의 ‘근사(近思)’예요. 성리학자들은 이것을 학문의 기본으로 삼았지요. 송나라 주희와 여조겸이 편찬한 ‘근사록’은 당시 선비들의 애독서였고요.”
그는 이런 성리학의 공부 방식을 현대에 되살리고 싶다고 말한다. 학생들에게 나무를 세라고 한 건, 학교를 오가며 수없이 마주치는 캠퍼스 안의 나무야말로 ‘가까이 생각하기에’ 좋은 대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강 교수 자신도 나무를 가까이 생각하고(近思) 나무에 대해 절실하게 물으며(切問) 학문을 세웠다. 그가 ‘청대 안휘성 휘주부의 숲과 생태환경 변화’ 같은 논문을 쓰고,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중국을 낳은 뽕나무’ 등의 책을 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