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잘나가고 있다. 지지율이 50%를 넘어섰다고 한다. 밖에서는 ‘빅 맨(대단한 사람)’이란 찬사도 들었다. 그런 만큼 자신감이 충만하다. 이 대통령은 내년 G20 정상회의를 한국에 유치하게 된 것은 “남이 짜놓은 국제질서의 틀 속에서 수동적인 역할에 만족했던 우리가 새로운 틀과 판을 짜는 나라가 된 것”이라며 기염을 토했다. 대통령의 인식은 “이제 변방적 사고에서 벗어나 중심적 사고로 나라의 격(格)을 높여야 한다”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랜드 바겐(북핵 일괄타결론)’으로 남북문제도 주도하겠다고 한다. 친(親)서민 중도실용주의로 국정의 주도권을 쥐었으니 지리멸렬한 야당은 적수가 못된다. 반(反)MB 연합의 구심이라 할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가고 없다. 언론환경도 괜찮다. 이래저래 ‘해피 MB’다.
대통령 지지율이 높아진 것은 좋은 일이다. ‘부자를 위한 정부’에서 ‘서민을 위한 정부’로 바뀌려는 노력이 대통령 지지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면 이 또한 고무적이다. 몇몇 여론조사 결과는 정책전환의 효과가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하지만 기대심리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보금자리 주택과 미소금융(소액서민금융), 대학생 등록금 후불제 등은 야당이 비판하는 것처럼 단지 ‘쇼’는 아니지 않은가.
이 대통령은 미소금융에 대해 “스스로 일어서려는 서민에게 낮은 금리로 자금을 대출해주어서 자활의지를 뒷받침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추진하는 중도실용 서민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재원은 휴면예금과 금융권의 출연금 1조원,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 1조원을 합친 2조원이고, 대기업의 1조원 출연은 대기업이 영세상공인들에게 직접 금융지원을 하는 첫 사례로서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기업 프렌들리’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접목한 것이란 얘기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재벌의 손목을 비틀어 수천억원씩 내놓게 하는 관치금융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 목적에 비추어 ‘관치에 의한 포퓰리즘 정치’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 대통령은 보금자리 주택사업과 관련해 “서민을 위해서, 집 없는 사람을 위해서 주는 서민주택을 투기에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회의 공적”이라고 말했다. 투기꾼은 ‘공공의 적’이라니! 서민들이 듣기에 속 시원할 얘기다. ‘등록금 반값’ 공약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등록금 후불제(취업 후 학자금상환제) 또한 서민의 학자금 부담을 덜어줄 것은 분명하다.
물론 몇 가지 정책의 예로 감세와 규제완화, 법질서 확립을 통해 성장을 꾀하는 ‘MB노믹스’의 본질이 변화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은 정운찬 총리의 첫 주례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요즘 친서민 정책을 편다고 하니 혹시 시장경제의 원칙을 훼손하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오해가 있는데, 시장경제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한 ‘시장경제의 원칙’이 ‘MB노믹스의 원칙’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가 감세와 4대강 사업 등을 고집하는 것에 미루어보면 그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꿩 잡는 게 매라고 친서민 중도실용을 앞세운 ‘생활정치’의 약발이 대단한 것으로 입증된 이상 옛 방식으로 되돌아갈 리는 없다. 케인스주의자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 자리에 앉힌 이유도 거기에 있을 터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그 진정성과 구체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정책조합의 모순(예컨대 감세와 복지지출 증대)에 따른 내적 혼란과 정치공학적 포장(예컨대 야당이 말하는 쇼)에 대한 국민 불신 등으로 중도실용은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아니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자민당 체제를 ‘선거혁명’으로 무너뜨린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도의와 절도를 잃어버린 금융자본주의, 시장원리주의에 어떻게 브레이크를 걸고 국민경제와 국민생활을 지켜나갈 것인가?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제기된 과제다”라고 말했다. 시장경제와 사회적 공정·평등의 균형을 잡는 것이 그가 주창한 ‘우애 혁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총리로 취임한 그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빈부 양극화의 ‘격차 사회’를 자신의 신념대로 좁혀나갈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하토야마 총리가 시장과 성장 중심의 레이거노믹스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만은 명백하다. 그에 비해 중도실용 이후 ‘MB노믹스’가 어떻게 수정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대통령의 친서민 중도실용이 폭넓게 체감되지 못하는 근본이유다.
더구나 중도실용에 대한 신뢰는 단순히 경제정책만으로 가늠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 사회 문화 등 사회공동체를 구성하는 각 분야에서 중도실용의 가치가 하나의 맥으로 작동할 때 신뢰가 형성된다. 그런 총체적 신뢰가 집적될 때만이 친서민 중도실용에 대한 믿음도 확보될 수 있다. ‘정치 사회 문화 따로, 경제 따로’는 성립될 수 없다. 경제를 살려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국민통합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경제도 살릴 수 있는 이치다. 이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다음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향해 나가야 한다. 새로운 민주주의는 대립과 투쟁보다는 관용과 타협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용과 타협이야말로 중도실용의 바탕이라는 점에서 매우 좋은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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