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2년이면 낙동강이 지나는 경남 김해시 생림면 일대는 조감도(사진)처럼 달라진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4대강 사업은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점만 가지고도 사업을 계속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적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11월부터 본격적인 예산심사에 들어가는데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놔둔 채 예산심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정조사특위를 구성해 문제점에 대한 명확한 정리와 의혹 해소가 전제됐을 때 예산심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원내대표는 11일 원내대표단-정책위-상임위 간사단 연석회의에서도 “국정감사 후 바로 국조특위를 구성, 4대강 문제에 대해 정리해야만 예산심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법에 정해진 기간 내에 예산 심의가 종결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악의 축’‘국가적 재앙’이란 표현까지 들먹이며 ‘전체 예산심사 보이콧’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4대강 사업 논쟁이 올해 예산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최대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여권의 입장은 어떨까. 민주당과 달리 한나라당 일선에서는 아직 4대강 사업 예산을 지키기 위한 조직적인 응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최대 수혜자인 영남권 출신 의원들을 제외하곤 몸을 던져 전투에 나서기를 꺼리는 모습이다. 그만큼 민주당의 공세가 드센 탓도 있지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4대강 예산 때문에 자신의 선거구 현안사업이 밀렸다는 지적이 지역여론을 탈 경우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수 있는 까닭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보호막이 너무 얇다. 여론전에서 밀리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반면, 예산전쟁 컨트롤 타워인 여권 핵심부와 당 지도부의 4대강 예산 관철 의지는 뜨겁다. 마치 사업 첫해 예산 뒷받침을 통해 4대강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것에 정권의 명운(命運)이 좌우될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대통령이 정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직접 4대강 예산 문제를 언급한 것은 “한나라당이 책임지고 4대강 예산을 처리하라”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청와대 회동 후 김성조 정책위의장은 당의 공식 회의석상에서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일부 당내 인사를 겨냥,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적, 상징적인 사업이고 사업의 성공 여부가 정권 재창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강을 잡는 발언을 했다. 9월16일 예결위 여당 측 간사로 임명된 김광림 의원은 “여당의 입장을 야당에 잘 설명해 4대강 살리기 사업 예산 처리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4대강 예산 지킴이를 자임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10월8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올 하반기에 가장 집중해야 할 국정과제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민생안정에 우선 많은 관심을 가지고 4대강 살리기와 녹색성장 등 미래대비 투자 등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한반도 대운하’의 전도사로 불렸던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10월5일 인천 아라뱃길(경인운하) 건설현장을 방문한 것을 두고도 ‘4대강 사업 속도 내기 독려’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았다. 그는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 이 문제를 꼬집자 “내가 물가에만 가면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연관짓는 바람에 물 근처에도 못 간다”고 했지만 여전히 ‘물길 잇기’에 대한 의욕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의정활동 한 해 농사 예산안 심사
정운찬 국무총리의 4대강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정 총리는 9월21일 인사청문회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 “지난 50년 동안 산림녹화를 열심히 하지 않았느냐. 그 맥락에서 이제는 강도 좀 정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강을 정비하는 아이디어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과거엔 “4대강 사업은 토목건설을 중심으로 예전 방식을 답습한 정책”이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선 정 총리가 청와대 모 인사로부터 총리직 제의를 받았을 때 ‘4대강 사업 찬성’을 약속(?)했다는 소문마저 정가에 나돈다. 청와대 인사가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반드시 추진할 생각이다. 세종시도 축소하고 싶어한다”며 이 두 가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지를 물었고, 정 총리가 이를 수락했다는 풍문이다.
결국 야당의 결사 저지 결의와 여권 수뇌부의 관철 의지가 충돌할 것이 뻔한 만큼 4대강 사업이 올가을 예산정국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여야가 전쟁을 치러야 할 대목은 4대강 관련 예산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예산이 뜨거운 감자다. 여기다 4대강 부분을 제외한 SOC 예산과 보건·복지, 국방 예산 등도 쟁점으로 부상해 있다. 보건·복지 예산은 8% 이상 대폭 늘린 데 비해 SOC 예산은 소폭 증가에 그쳐 각 지역의 반발이 심하다. 여기에 하극상 논란을 일으켰던 국방 예산의 경우 전년 대비 3.8% 늘었지만 당초 국방부 안에 비하면 크게 줄었다. 다만 이런 예산들은 여야 사이에 4대강 예산을 놓고 전체 예산안 심사 보이콧 논란이 일어날 경우 그냥 묻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4대강 예산을 빌미로 예산 심사를 외면하는 일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짧은 기간에 291조8000억원을 놓고 심사를 벌여야 하는 만큼 국정조사만을 요구하면서 전반적인 예산안 심사를 내팽개쳐서는 여론의 역풍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같은 이유로 민주당 개별 의원이 지도부의 정치투쟁에 반기를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의원에게 예산안 심사는 국정감사와 함께 한 해 농사 수확의 의미가 있다. 어찌 보면 지역구 출신 의원들은 1년 내내 예산 따오기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구 관련 예산 확보는 의정활동 최대의 업적이 되며, 매년 발간하는 의정보고서의 핵심 내용으로 들어간다.
새해 예산안 확정 절차
사실 의원들의 지역 예산 확보 로비는 정부의 예산안 편성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먼저 예산안 편성과정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한 해 동안의 나라 살림살이 규모와 사용처를 꼼꼼하게 따져 예산안을 확정하는 절차는 상당히 복잡하다. 이번에 편성된 정부안만 해도 이미 수차에 걸쳐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보탤 것은 보태고, 고칠 것은 고치면서 다듬어진 내용이다. 예산안 확정 절차는 크게 정부안 편성과 국회 심사 과정으로 나누어진다. 정부안의 경우 매년 초부터 각 지자체와 일선기관이 다음해에 필요한 예산을 해당부처에 신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당부처는 이를 선별 취합해 기획재정부로 넘긴다. 그러면 기획재정부가 총괄 조정해 국무회의 심의·의결 절차를 밟아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뒤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올해 그렇게 해서 확정된 정부안이 291조8000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