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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戀人」 김현경이 고른 「김수영의 詩」

  • 글·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사진·김도균 객원기자

「김수영의 戀人」 김현경이 고른 「김수영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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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익을 때

「김수영의 戀人」 김현경이 고른  「김수영의 詩」

컬렉터로 활동하는 김현경의 자택에는 미술작품이 가득하다.

「김수영의 戀人」 김현경이 고른  「김수영의 詩」

컬렉터로 활동하는 김현경의 자택에는 미술작품이 가득하다.

「김수영의 戀人」 김현경이 고른  「김수영의 詩」

컬렉터로 활동하는 김현경의 자택에는 미술작품이 가득하다.

「김수영의 戀人」 김현경이 고른  「김수영의 詩」

컬렉터로 활동하는 김현경의 자택에는 미술작품이 가득하다.

용인시 마북동 아파트에는 동서양 미술품이 가득하다. “컬렉터로 지금껏 활동한다”면서 그가 웃는다. 닭 육수에 닭고기 찢은 것과 불린 쌀을 함께 넣어 끓인 닭죽이 담백하다.

1950년대 후반 김수영, 김현경은 구수동에서 양계(養鷄)로 밥을 벌었다. 닭을 키워 호구하던 때가 부부로 살면서 가장 행복하던 시절이라고 김현경은 회고한다.

“구수동에 살림을 차린 후 시를 왕성하게 썼습니다. 구공탄 아궁이에서 밥이 익을 때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를 다 쓴 거죠. 밥이 탈까봐 솥을 내려놓고 방에 들어가 원고지에 시를 옮겨 적곤 했죠.”

김수영은 까다로웠다. 시를 넘기곤 방바닥에 가부좌 틀고 앉았다. 한 자라도 틀리면 “다시 써!”라고 외쳤다. 옮겨 적기를 끝내면 잡지사에 한 부를 보내고 다른 한 부는 보관했다. 김수영 사후 유고(遺稿)에 번호를 매겨 정리한 것도 김현경이다.

김현경과 김수영은 1942년 문학을 논하는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었다. 1949년 동거를 시작해 1950년 결혼했다. 두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1968년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여름 아침의 시골은 가족과 같다
햇살을 모자같이 이고 앉은 사람들이 밭을 고르고
우리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
원활하게 굽은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나는 지금 간밤의 쓰디쓴 후각과 청각과 미각과 통각(統覺)마저 잊어버리려고 한다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은
어느 틈에 저렇게 검어졌는지 모르나
차차 시골 동리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
뜨거워질 햇살이 산 위를 걸어내려온다
가장 아름다운 이기적인 시간 위에서
나는 나의 검게 타야 할 정신을 생각하며
구별을 용서하지 않는
밭고랑 사이를 무겁게 걸어간다

고뇌여
강물은 도도하게 흘러내려가는데
천국도 지옥도 너무나 가까운 곳

사람들이여
차라리 숙련이 없는 영혼이 되어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하고 고물개질을 하자

여름 아침에는
자비로운 하늘이 무수한 우리들의 사진을 찍으리라
단 한 장의 사진을 찍으리라

-김수영, ‘이른 아침’(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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