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호

〈20대 리포트〉 이색테마기획: 빌딩

고색창연, ‘빈티지’로 부활하다

낡은 옥상의 변신

  • 조유미|고려대 노어노문학과 4학년 tomato_ming@naver.com

    입력2017-10-2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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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천의 옥상이라 좋다”
    • “낡고 허름해서 더 좋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신흥시장 안쪽 굽이진 골목으로 150m 들어가면 간판도 없는 ‘빈티지(vintage·차별화된 낡은 것으로 구성되는 정서적 이미지) 카페’가 나온다.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가 발 한 짝 디디기 힘든 좁고 가파른 층계 30여 단을 올랐다. 그러자 탁 트인 옥상이다.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아닌 오후 3시인데도 사람이 빼곡하다. 해방촌의 낡은 빌딩을 개조해 만든 옥상 카페 ‘O’다.

    2년 전 문을 연 이곳은 인테리어에 별로 공을 들이지 않았다. 붉은 벽돌에 회백색 콘크리트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벽에 붙은 녹슨 붉은색 가스관도 그대로다. 심지어 바닥엔 철근 4개가 솟아 있다.

    손님들은 철거하다 만 녹슨 난간 철판에 음료를 놓고 전망을 구경한다. 이 카페 종업원(여·32)은 “4년 넘게 비어 있던 낡은 빌딩을 철근만 치우고 카페로 개조했다.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고 한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고객들이 노천의 옥상이라 더 찾는다. 요즘은 항상 만석”이라고 말했다.



    “낡음을 소비”

    도심 낡은 빌딩 옥상이 낭만적인 빈티지 카페나 술집으로 탈바꿈 중이다. 보통 카페는 세련되고 특색 있는 인테리어로 꾸며놓는다. 그러나 옥상 빈티지 카페는 ‘낡음’ 자체를 내세우고 이 낡음을 소비하게 한다. 이런 옥상 카페를 대표하는 특징은 건물 자체가 오래됐고 내부 소품도 낡았다는 점이다. 주변 건물도 높지 않아 한적한 느낌을 준다. 



    이태원 옥상 카페 ‘M’은 3층 일반 주택을 카페로 개조했는데 옥상을 특화했다. 한적한 경리단길이 한눈에 들어오고, 주변 건물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철제 층계를 오르면 곳곳이 갈라져 허연 균열이 보이는 옥상 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하양 검정 파랑으로 칠한 드럼통 7개가 테이블을 대신한다. 그 옆엔 고속버스에서 떼 온 듯한 허름한 의자와 낚시터 간이의자가 놓여 있다. 의자가 부족할 때 손님들은 겹겹이 쌓인 나무판자를 끌어다 의자 대용으로 쓴다.

    이 카페 직원 이모(여·22) 씨는 “옛날 자기 집 옥상에 올라와 쉬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기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 골목에 있어 찾기 어려운 데도 많이들 온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 주변에서 빈티지 스타일의 옥상 술집 ‘S’도 문을 열었다. 전통시장이지만 저녁시간만 되면 이곳은 젊은이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하다. 과일을 파는 ‘K농산’과 인삼가게인 ‘K인삼’ 사이 층계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쿵쿵 울리는 일렉트로닉 음악 소리가 들린다. 손님들은 여기서 칵테일, 수제 맥주, 음식을 구매해 3층 옥상에 올라간다. 

    300여 평, 교실 4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옥상엔 초록색 인공 잔디가 깔려 있다. 몇몇 손님은 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편하게 눕기도 한다. 2단, 3단으로 쌓인 맥주병 박스가 테이블 구실을 한다. 난간 너머로 건어물 상가 등 전통시장이 보인다. 손님 김지원(21) 씨는 “해 지기 전 오면 가끔 ‘사과 5개 5000원’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정서가 좋다”고 말했다.



    “알전구 빛도 매력적”

    낡은 건물 옥상 빈티지 카페를 즐기는 손님들은 이곳에서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에 이끌린다고 말한다. ‘O’를 찾은 손님 최모(여·27) 씨는 “밤에 켜지는 주황색 알전구 빛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꾸민 인테리어보다 투박한 모습에서 안정감을 찾는다는 것이다.

    ‘S’에서 수제 맥주를 파는 김홍빈(35) 씨는 “근대화 시기를 연상시키는 낡은 건물 옥상과 세련된 현대음악이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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