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호

창간특집 | 트럼프 ‘전쟁 준비설' 실체 |

11월 방중 이후 D-데이 시진핑 묵인 얻으면 결행?

  • 김희상|전 노무현 정부 대통령국방보좌관 khsang45@naver.com

    입력2017-10-29 1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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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임테이블 위에서 전쟁 대비해 착착 움직여
    • 한국에 냉담…한미동맹 의심
    • 한국 제치고 북한 친다?
    핵·미사일 개발은 북한에도 ‘양날의 칼’이다. 자기 칼에 자기가 베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완성단계에 들면서 한국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중국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무릇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되고 기회를 버려두면 위기로 되돌아오는 법이다. 한국은 북한 핵 개발이라는 분명한 ‘위협’에 애써 눈감았고, 북한이 그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에 빠지면 온갖 방법으로 북한을 도와주면서 무려 20여 년을 허송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 위협의 실체, 도대체 북한은 왜 핵을 만들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2003년 존 볼튼 당시 미 국무차관이 필자에게 “북한이 핵을 가지면 일본과 한국, 대만도 갖게 될 테니 중국이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나는 “단연코 아닐 것”이라고 답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은 이미 핵 강국인데 새삼 핵을 만들어 세계의 눈총을 받을 이유가 없다. 한국은 핵을 가질 입장에 있지 않다. 대만이 북한을 따라 핵을 개발하기 시작하면 대만은 고립되고 중국은 대만을 공격할 명분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존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국제적 말썽을 일으키는 것도 중국에는 즐거운 일일 수 있다. 북한이 핵 개발로 말썽을 부리는 덕분에 중국은 국제외교의 중심에 서고 있다. 중국은 지금 행복하다. 무엇 때문에 북한의 핵 개발 차단에 적극적이겠는가?”



    볼튼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나는 흐름도를 그리면서 “통일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볼튼은 이 흐름도를 접어 들고 가면서 “나도 동감인데 그래도 워싱턴에는 중국에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부시 정부와 오바마 정부를 넘어 트럼프 정부도 중국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긴 하다.

    2009년 6월 베이징 대학에서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이 모여 정세 토론을 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 핵이 중국에 좋을 수는 있어도 나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아마 이것이 중국의 솔직한 속내일 것이다. 2010년 2월 워싱턴 외교정책분석연구소(IFPA)에서는 중국 대표단이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을 핵 국가로 봐야 한다”며 오히려 한미동맹을 문제 삼았다.


    다리 아래 배들이 바빠지는 식

    중국은 북한 핵 문제만 나오면 6자회담을 거론한다. 그러나 “6자회담은 북한 핵실험 시간 벌기요 식량과 에너지를 얻어내기 위한 사기”라고 꼭 집어 지적한 사람은 바로 저명한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다.

    중국 정부인들 그걸 모를까? 사실 중국이 원유 공급을 차단하고 확실하게 고삐를 죈다면 김정은은 오래 버티기 힘들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결의’가 아무리 강력해도 중국은 북한이 항복할 만큼 강하게 압박하지는 않는다. 압록강 다리 위의 북-중 물동량이 줄어들면 그 아래 강을 오가는 배들이 바빠지는 식이다. 이처럼 북한은 사생결단 식으로 핵을 만들고 정작 결정적 제재수단을 가진 중국은 북한이 살 뒷문을 열어주고 있으니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3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대화’는 물론 ‘6자회담’ 같은 외교·경제적 방식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가장 강력하다는 이번 유엔 안보리 결의 2731호와 2735호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얻기 힘들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도 그와 같은 외교·경제적 압박 방식으로는 북한 핵 폐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제 2020년이면 북한은 핵탄두 75~100개를 갖게 되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완성할 것이라고 한다. 이쯤 되자 한국 사회에선 ‘전술핵 재배치와 자위적 핵개발론’이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다. 미국에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마이크 멀린 미국 전 합참의장이 지난해 9월 언급한 “북한 선제타격”은 이제 미국 대통령과 국방장관 입에서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특히 언필칭 수소탄이라는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계기로 더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나 ‘자위적 핵 개발’은 북한 핵에 대처하는 유용한 방법임이 분명하다. 과거 소련이 SS-20을 배치하자 레이건 대통령이 퍼싱-2 등을 유럽에 배치함으로써 미국의 확장억제를 보장했다.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는 한국에 미국의 확장억제를 보장해주는 효과가 클 것이다.



    전술핵의 활용도

    전술핵은 활용도도 높다. 북한의 기습공격을 억제함은 물론이고 북한의 지상군을 대비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또한 전술핵이 배치된다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함부로 거론되진 않는다. 한미동맹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과연 가능할까? ‘전략적 핵 균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무시하고 쉽게 동의할지 의문이다. 또한 미국으로선 전략적 필요성 못지않게 한미동맹에 대한 확신과 핵무기 관리상의 안전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한국 사회 일각의 ‘사드 배치 반대’ 사태를 지켜봐온 미국은 전술핵 재배치에 쉽게 동의하진 않을 듯하다. 더욱이 현재 한국에선 한미연합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는 ‘전시작전권 조기이양’까지 거론되고 있다.

    설사 미국이 동의한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다. 사드처럼 전술핵을 어디다 배치할까 우왕좌왕하다 자칫 한미관계의 골이 더 파일지 모른다. 전술핵 재배치가 북한 핵·미사일을 정당화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미국의 주장대로 역량만 따진다면 한반도 주변 미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탄도미사일에 의한 역외억제(offshore deterrence)로도 북한 핵에 대응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미흡하긴 하지만 그것을 보완하겠다고 북한 핵·미사일도 함께 허용하는 길을 열어준다면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다. 전술핵을 재배치하더라도 북한 핵·미사일 폐기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자위적 핵 개발’과 관련해, 한국은 의지만 강하다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핵을 핵으로 막는 효용성도 크다. 그러나 이것도 완벽한 대책은 안 된다. 반면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담이 크다. 우리가 핵을 만들면 북한 핵은 저절로 기정사실이 된다. 남과 북이 함께 핵으로 맞부딪치면 북한이 유리하다. 통일은 더 멀어진다. ‘핵을 가진 통일한국’을 환영할 주변국이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한국으로서는 전술핵 재배치나 자위적 핵 개발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우리는 그 외에는 국가적 생명을 보장받을 길이 없다. 적어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경고는 된다.


    주한미군 철수 시 중국에 종속

    대북협상론은 기본적으로 북한 및 중국과 협상해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대신 북한 핵·미사일을 폐기 혹은 현 상태에서 동결하자는 이야기다.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다. 억제는 본래 심리적인 것이다. 당장은 우리가 북한 핵·미사일에 대처하는데도 미국의 ‘확장억제’를 보증하는 ‘주한미군’이라는 존재, 특히 한미연합사가 서울에 존재하는 것 이상의 방법이 없다.

    그런다고 북한이 핵·미사일을 폐기할 리 없지만 중국은 압록강 바로 건너에 있는 반면 동맹 미국은 태평양 건너 멀리 있다. 그래서 주한미군으로 겨우 한반도상의 전략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터다. 이런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설사 북한 핵·미사일이 폐기되더라도 한반도는 저절로 중국의 배타적 영향권하에 들게 될 것이다. 중국이 쌍궤병행(雙軌竝行), 쌍중단(雙中斷)이니 해가며 주한미군 철수를 절절이 희원(希願)해온 이유다. 뜻밖의 승리에 환호작약하는 북·중의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하다.

    현 북한 핵을 용인해주는 타협은 미국 본토만 생각한다면 부담스럽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처지는 다르다. ‘동결’로 북한 핵을 용인하는 것은 한국을 버린다는 뜻이다. 이런 협상은 해결책이 아니라 조종(弔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같은 유력 인사들과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같은 주류 언론이 협상론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의 인식이 그렇게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 월남을 버리고 자신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헨리 키신저도 어른거린다. 

    ‘군사적 공격’은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일정부분 억제 효과를 낸다. 북한도 미국의 군사공격을 가장 겁내기 때문이다.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때 북한 정권은 미국 군사공격을 겁내면서도 중국이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도 도와줄 것이니 미국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탈퇴했다. 미국에서 선제타격론이 나오던 2016년 10월 한 북한 고위관계자는 내게 “미국의 유력 대선 후보 캠프에 ‘선제타격하면 전쟁 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겁이라도 먹게 해야”

    RAND 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박사 같은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처럼 자국을 위협하는 나라에 대해선 폭격을 감행해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아니면 ‘자칫하면 혼이 나겠구나’하고 겁이라도 먹게 해야 한다. 그 외에는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은 말은 쉽지만 부담이 커 ‘실현 가능성’이 문제가 된다. 북한의 핵 능력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중국도 G2로 커졌고 이래저래 타격 여건은 매우 어려워져 있다.

    우리 정부가 “한국의 동의 없는 군사공격은 안 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해는 되지만 북한 핵으로 인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에서 지혜로운 말이 아니다. 평화야 더없이 소중하지만 노예적 평화가 아닌 참된 평화는 구걸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지키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는 필요하다면 전쟁을 해서라도 국가와 국민의 생명·재산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한국이 막아서는 모양새여서 좋지 못하다.

    실현성 차원에서는 군사공격보다는 정권교체론이 좀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북한 체제 붕괴론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김정은 체제가 허약한 상태인데도 그대로 두고 보는 한국의 내심이 궁금하다는 내외 정보 관계자들도 있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확실한 북핵 폐기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엔 의문이 있다. 후속하는 체제가 핵을 폐기한다는 보장이 없다. 

    ‘키신저의 키신저’로 불린 윈스턴 로드 전 미 국무차관보는 2016년 3월 “한반도 통일만이 북핵 폐기의 가능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단언했다. 대니얼 블루멘털 미국기업연구소(AEI) 아시아 연구국장은 9월 “아예 거물급 한반도 통일전담 특사를 임명해 적극 추진하자”고 했다. 존 볼튼 전 미 국무차관도 최근 곳곳에서 “북한 해체와 한반도 통일만이 북한 핵 폐기의 유일한 해법이다. 만약 중국이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군사적 옵션밖에 없다”고 말한다. 2007년 2월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의 2차보고서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많은 전문가와 기관도 여기에 공감한다.


    후진타오의 ‘안동도호부’ 이야기

    이렇게 보면 그동안의 북핵 정책은 6자회담 같은 정책수단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정책목표를 잘못 선정했음에 틀림없다. 북한에 저런 체제가 존재하는 한 핵·미사일을 폐기할 리 없을 텐데 그 체제는 그대로 두고 핵·미사일 폐기에만 매달렸으니 가능할 리 없었던 것이다. 이젠 서둘러야 한다. 북한의 개발 속도가 빠른 데다 북한을 후원하는 중국도 팽창주의를 노골화하기 때문이다. 

    미국기업연구소 닉 에버스타트는 “한국은 중국이 더 커지기 전에 통일해야지 아니면 너무 늦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국은 요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사실상 방조면서 한국의 사드 배치만 핍박한다. 신임 주중 한국대사는 “중국은 침략적 DNA가 없다”고 했지만 중국을 누구보다도 깊이 아는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국대사는 2007년 1월 미 의회에서 “중국 지도층이 북한의 반 정도를 자기 땅으로 생각하고 있고 동북공정(東北工程)과 백두산 주변의 대군(大軍)이 그와 무관치 않다’고 증언했다.

    울산의 한 기업 CEO는 “후진타오(胡錦濤)가 주석이 되기 전 그를 5, 6회 만났다. 그가 만날 때마다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중국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세운 기관) 이야기를 하더라. 평양 주변 유적에 대해 중국인들이 와서 살다가 남긴 유산으로 알더라’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한국에 기횐데…”

    지금의 중국지도부도 대동소이하다. 지난해 9월 항주(杭州)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남중국해 문제로 다투다가 “한반도 사드 배치는 중국의 안보이익에 배치되니 철회하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과 남태평양은 중국의 세력권이니 미국은 빠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천안함 사태 당시 중국은 미국 항공모함 전단의 서해 진입을 한사코 막았다. 중국이 서해를 내해화(內海化)하는 것이고 서해가 중국의 내해가 되면 한반도 중국화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왕융(王勇) 베이징대 교수는 사드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중국의 안전지대’로 표현한다. 장차 중국의 목소리가 미국보다 더 커지고 중국의 항모가 동·서해를 횡행하는 가운데 북한 핵이 기정사실화하면 한국의 운명은 불문가지다. 

    한국은 싫든 좋든 미국의 힘이 그나마 강력하게 살아있는 동안 통일을 서두르는 것이 최선이다. 일본과도 손을 단단히 잡고 여기에 미국의 확고한 뒷받침을 받아내는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할 상황이다. 그래야 통일 후에도 항구적 번영을 이어갈 수 있다.

    북한 핵·미사일 해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유례없이 강하다. 한국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을 이루어내려면 어차피 우리 힘만으로는 어렵다. 그런데 중국은 북한의 혈맹이라고 하고 있고 유엔은 한계가 명확하다. 동맹국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진심이라면 한국은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지난해 8월 미국 대선이 진행 중일 때 미국 정보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는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에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트럼프 캠프는 북한을 ‘노예국가’로 규정했다. 트럼프의 화려한 수사가 만만치 않은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게임 체인저’라는 북한의 핵과 ICBM도 대략 내년이면 완성될 것으로 비친다. 더는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독일을 통일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시대 흐름 속에 언뜻 비치는 기회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어야 한다”고 했다. 싫든 좋든 지금 우리가 바로 그래야 할 때다. 2009년 골드먼삭스, 2010년 하버드 니얼 퍼거슨, 2012년 IMEMO 바실리 미혜예프는 북한 핵 폐기가 불가능하다면서도 지금이 한반도 통일의 기회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명백하다. 차제에 우리 목표를 ‘한반도 통일’로 명확히 하고 핵·미사일 대책을 비롯한 대북정책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 찰떡공조’이고 ‘싫든 좋든 미국과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범상하게 그냥 함께 가는 정도로는 안 된다. 통일을 내다보는 전략적 차원에서 한미가 함께 총체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도록 문자 그대로 ‘혈맹 한미동맹’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는 범지구적인 자유와 야만의 블록 대결이 진행 중인데 한국이 전초국가여서 한국의 운명이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전략 목표를 ‘한반도 통일’로 맞추게 해야 한다.


    “미국 발목 잡아”

    그러나 어쩐지 한국은 굳이 정반대로 걷는 듯하다. 미국이 진작부터 ‘한국이 미중 어느 편에 설지 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며 주시해온 ‘사드 배치’는 아직도 중국 눈치를 보는지 ‘임시’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개성공단 재개’ ‘전작권 환수’같이 미국의 신경만 자극하는 소리가 여전히 높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와 함께 ‘예방공격’까지 거론하는데 한국은 대화와 평화를 앞세우면서 “한국의 동의 없는 군사공격은 안 된다”고 한다. 대통령특보는 “한미동맹이 깨지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막말까지 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의 입장도 이해되지만 ‘군사공격’으로 협박하는 것은 유리한 협상을 위해서도 활용해온 전통적 수단의 하나다. 한국은 1994년 미국의 영변 핵시설 군사공격을 무산시켰다. 특히 ‘햇볕정책 시대’에는 미국에서 군사제재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항상 “절대로 안 된다”며 가로막고 심지어 미국은 “안 할 것”이라고 다짐까지 해줬다. 북한에 안심하고 핵 잘 만들라는 격려쯤으로 들렸을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사석에선 “한국이 그렇게 미국의 발목을 잡은 결과가 오늘의 이 북한 핵과 ICBM 사태 아니냐”고 따진다. 지금의 한국 정부도 그런 미국엔 ‘군사공격은 안 된다’면서 ‘대화와 평화적 해결’만 고집하는 것으로 비치는 듯하다.

    이젠 한국이 ‘군사공격은 안 된다’고 해도 미국은 이를 예전보다 덜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미국 측 전문가들은 북한 핵·미사일에 대해 “과거엔 ‘동맹국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미국에도 위협’인 ‘간접 위협’이었지만 이제는 ‘미국에 대한 직접 위협’으로 차원이 달라졌다”고 강조한다. 미국에도 긴급한 안보문제가 됐다는 뜻이다.

    미국은 2003년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을 거라는 의구심만으로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런 미국이 ‘미국을 선제타격하겠다’는 말로 태평양을 넘어 워싱턴을 거의 패닉 상태로 몰아가는 ‘북한 핵·미사일’을 언제까지 두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침략과 파멸로의 초대장

    그런데 미국이 ‘외교적 경제적 제재나 압박으로는 북한 핵·미사일을 해결할 가능성이 없고 남은 방법은 군사공격 또는 김정은과의 타협뿐’이라고 판단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미국에서 전례 없이 ‘예방전쟁’ 논의까지 나온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굳이 미국과 다른 길을 가겠다고 고집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원래 작전 준비와 사후처리 등 원만한 작전을 고려하면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에 한국의 적극적 협력이 필수다. 그런 한국이 협력은커녕 딱 잘라 거절하고 막아서면 미국에는 어떻게 들릴까? ‘미·북 평화협정’ 같은 것으로 북한 및 중국과 적당히 타협하라는 것이 된다. 

    그러나 한국 처지에서 ‘미·북 평화협정’은 반드시 피해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에 휩쓸려 들어가 제2의 티베트가 되거나 끝내는 김정은 밑으로 내던져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도 이런 ‘미·북 평화협상’이나 ‘북핵 동결론’을 이번에도 한국이 먼저 너무 쉽게 거론한다.

    명심할 것은 모름지기 평화협정 같은 종이가 평화를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1973년 파리평화협정이 그랬듯 그런 것은 침략과 파멸로 이끄는 초대장이 된 경우가 많다. 인류 역사에는 배반당한 평화협정의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다.

    한국이 끝끝내 막아설 경우 미국이 고려할 수 있는 끔찍한 조치는 또 있다. 지금도 ‘북한 급변사태’를 함께 의논하고 있는 중국과의 협력이다. 어떤 형태로든 중국이 개입할 계기를 만들어준다면, 통일은커녕 미래를 잃는 치명적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랜드 폴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9월 “북한 핵을 포기시키는 대신 평화유지군 차원에서 중국군을 북한에 주둔시키자”고 주장했다. 진위가 불분명하지만, ‘뉴스위크’ 일본판은 “틸러슨-시진핑 회담에서 북한을 붕괴시키고 한반도를 분할통치하는 비밀 협상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미중 앞에는 주한미군 철수건 뭐건 신성불가침 영역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한국은 더 늦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동맹의 가치를 각인시켜야 하고 한국은 반드시 미국과 함께 갈 것이라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진 이렇게 전개되지 않고 있다. 한국이 ‘한국의 승인 없는 군사공격은 안 된다’고 하자 벨(B.B. Bell)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미국이 주한미군 외의 미군 전력으로 공격한다면 한국의 허가가 필요 없다. 미국은 한국 외에도 일본, 호주, 영국 등 동맹국이 많다”고 반발했다. 


    어이없는 ‘전작권 환수’ 추진

    만약 이도 저도 아니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해결 불가능하다. 나도 모르겠다”고 실패를 자인(自認)하고 뒤로 물러서면 어떻게 될까? 이는 결국 북 핵·미사일이 기정사실화되는 점에서 ‘미·북 평화협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미국 측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94년에 미국이 영변을 공격했으면 별다른 한국 측 피해 없이 북한 핵을 제거할 수 있었다. 2006년 북한 1차 핵실험 때 때렸어도 큰 피해를 우려할 필요는 없었다. 있을지 모르는 작은 피해를 겁내 이번 기회마저 놓치고 또 10년이 지나면 한국은 그냥 항복하든지, 아니면 한반도 전체가 파괴되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북한 핵·미사일을 제거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미국이 한국을 보는 눈길이 예전 같지 않다. 한국 언론사 주미 특파원들은 “트럼프 정부는 한미동맹을 의심하고 있다”며 불안해한다. 3월 서울을 다녀가던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대놓고 “일본은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고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의 하나”라고 했다.

    한 미국 인사는 “트럼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문제 삼는다고 한국이 섭섭해하지만 이것도 실은 한국이 대북제재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한국이 끝끝내 이렇게 하면 FTA를 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수십만 병력을 하루아침에 철수시켰고 태평양 최고 전략적 요충지인 필리핀 수비크 만도 훌훌 버리고 떠난 적이 있다. 

    하필 이런 때에 한국이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까지 거론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전작권 조기 환수는 ‘한미연합 전력의 작전지휘를 누가 하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로 이어져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엄청난 사안이다. ‘한미동맹만 튼튼하면 된다’고 하지만 한미동맹의 핵심 연결고리인 한미연합사가 없어지는데 동맹이 그대로일 리 없다. 사실 한미동맹이 칼집이고 오히려 한미연합사가 칼날이다. 한미연합사 없는 한미동맹은 한 장의 종이쪽지에 불과할 수 있다.

    몇몇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은 “전작권 전환해도 미래사령부(가칭)’로 연합사 체제는 유지하고 사령관만 우리가 맡겠다는데 무슨 문제냐? 미국은 미군을 외국인 지휘하에 두지 않는다는 ‘퍼싱 원칙’까지 허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5년 찰스 캠벨 전 미8군 사령관은 “한국은 미 4성 장군이 한국방위를 담당한다는 것의 의미를 너무 모른다”고 했다. 한미연합사가 갖는 ‘전략적 억제력’과 ‘강력한 한미연합전략태세 구축’은 모두 연합사 사령관이 ‘미군 4성(星) 통합전투사령관’이기에 가능하다. 한국군인이 사령관인 연합사를 지금의 연합사와 같다고 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과연 한국인 연합사 사령관이 유사시 즉각적으로 미군 전략자산을 한반도로 전개시키고 미국의 핵우산을 적시에 활용하는 업무에 관여할 수 있을까? 한국군은 월남군 사령관의 지휘하에 작전해야 했다면 월남전에 참전했겠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한국군 연합사 사령관 체제에 합의했다 해도 막상 이렇게 바뀌고 나면 당장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전력의 참전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미국이 ‘퍼싱 원칙’을 허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의미 있는 군사력은 파병하지 않겠다’는 뜻일 가능성이 더 높다.


    “전쟁 불가”의 역풍?

    한국은 요즘같이 긴박한 상황에서 사드 배치를 이 핑계 저 핑계로 계속 미적거린다. 전작권을 조기 환수해 연합사를 서둘러 해체하려 한다.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이는 “한미동맹 깨져도 전쟁은 안 된다”면서 한국의 대미 군사협력을 가로막고 있다. 동맹이란 기본적으로 상호 지원관계다. 한국이 미국의 주요 작전에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면 미국은 한국이 한미동맹을 깨려 한다고 오해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트럼프는 “한반도가 실은 중국 땅이었다”는 시진핑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어도 사후처리 과정에서 한국에 돌아갈 몫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한국이 “한국의 승인 없는 전쟁은 안 된다”고 단언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북한의 완전한 파괴”를 언급했다. 매티스 국방장관은 “군사적 옵션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초강대국이어도 바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다.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을 대비해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의 별다른 도발이 없을 때도 미국의 전략자산들은 수시로 한반도를 훑고 지나가고 미 항모전단과 동맹국 전력이 한반도 주변을 순회한다. 미국은 어떤 타임테이블 위에서 착착 움직이는 듯하다. 미국의 의지가 만만치 않다는 증거의 하나인 셈이다.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이런 점에서 관심거리다. 만약 미국이 대북 군사공격을 감행한다면 D-데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다음일 것이다. 사실 미국도 중국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면 군사공격이 난감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점에 트럼프와 시진핑이 만나면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를 협의할 것이고 그 결과는 우리 미래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의 작전이건 한국과 협조하지 않은 미국만의 일방적 북한 공격은 한국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클 수 있다. 정말로 미국이 주한미군 외 전력(戰力)으로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국이 막을 수는 있을까? 막을 명분도 방법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김춘추나 김유신이라면…

    그렇다면 무조건 전쟁은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튼튼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한국과의 더욱 긴밀한 사전 협의와 협력을 강조’하는 정도가 적합했을 것이다. 그렇게 함께 가야 통일의 기회를 찾아낼 수 있고 잘못되더라도 적어도 ‘코리아 패싱’으로 생존이 위협받는 일을 피할 수 있다. 김춘추나 김유신이었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혹자는 “그래도 전쟁은 안 된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군사공격이라고 해서 무조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도 북한을 타격할 수 있다”고 했듯이 반드시 참혹한 피해가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작전을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김희상
    ● 1945년 경남 거창 출생
    ● 육군사관학교 24기, 성균관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前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
    ● 前 육군 중장
    ● 現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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