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옥죄기’ 아닌 시장 활력 위한 개혁 필요
- 대출 규제는 은행돈 대기업 집중 만들 뿐
- 획일적·급진적 정책은 필연적으로 부작용 발생
- 외환위기 대비책 보이지 않아
정무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이진복(60) 위원장은 3선의 중진의원으로, 국회에서 대표적인 ‘서민경제 전문가’로 통한다. 초선이던 2009년 4%에 달하던 중소상공인에 대한 카드수수료를 대형 가맹점 수준인 2%이하로 인하할 수 있도록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을 도우며 정치에 입문한 그는 보수정당 소속이지만 진보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추석 연휴 다음 날인 10월 10일 국회 정무위원장실에서 그를 만나 문재인 정부의 민생경제 정책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적폐청산’과 ‘배려’
▼금융과 공정거래 등 서민 삶과 직접 연관되는 분야를 다루는 상임위인 만큼 책임감이 남다를 것 같다.“경제, 특히 금융산업은 변화 흐름이 무척 빠르다 보니, 늘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항상 관련 서적을 챙겨 보는 것은 물론 전문가들과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두 번씩 모여 3시간 이상씩 토론하며 배우고 있다.”
▼상임위원장이란 자리가 욕먹기 쉬운 자리인데, 평가가 좋더라.
“정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는 것도 정치인들부터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공멸할 수밖에 없다. 배려의 정치만 이뤄져도 우리 민주주의는 크게 발전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야권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보는 듯하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분명 다르다. ‘틀린 것’은 수정해야 하지만 ‘다른 것’은 조율하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다른 것’이 곧 ‘틀린 것’이고 적폐이기 때문에 청산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일본인으로 꼽은 우에스기 요잔이란 사람이 있다. 막부시대 때 망해가는 번(藩·지방정부)을 살려낸 지도자로, ‘불씨’란 소설에 잘 나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개혁과 우에스기 요잔의 개혁은 차이가 확연하다. 어떤 개혁이든 반대편 사람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들과 함께 가는 게 진정한 개혁이다.”
이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권에 대한 처벌에만 몰두할 뿐, 정작 가장 중요한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갈 새로운 미래 전략과 비전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서민경제 위기를 비롯해 세계 경기침체 등 금융과 경제와 관련한 시급한 사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망신주기’식 증인 신청
▼언제부터인가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대기업 총수들을 증인으로 불러 망신주기를 하는 게 연례행사가 됐다. 이틀 후부터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는데, 정무위원회에서도 여러 의원이 대기업 총수들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기본적으로 대기업 총수를 국감에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이번 국감에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이미 국회의원들이 증인으로 신청하지 않았나.
“총수가 아닌 실무 경영인을 부르는 것으로 합의했다. 현대차 리콜 문제를 다루는데 왜 정의선 현대기아차 부회장을 불러야 하나. 실무 경영인은 실권이 없다고 하는데, 일단 불러서 물어보고, 본인이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하면, 그때 총수를 부르는 것으로 의원들을 설득했다. 또 군산조선소 재가동 여부를 현대중공업에서 이미 수차례 입장을 밝혔는데 국감장에 또 부르겠다는 것은 기업의 고통을 외면하는 처사가 아닌지 걱정된다. 정치인을 위해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기존 순환출자 고리 해소 등 ‘재벌 개혁’ 이슈도 정무위 소관이다.
“재벌은 이미 우리 경제에서 무시해선 안 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걸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따지고 앞으로 상생경영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일을 하겠다면 전적으로 도울 생각이다. 기업을 옥죄기 위한 재벌개혁이기보다는 시장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투명한 경쟁을 촉진해 국민이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는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정거래위원장에 김상조 교수가 임명되면서 대대적인 재벌개혁이 예고되고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과거엔 무조건 재벌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최근엔 톤이 많이 달라졌다. 재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시민운동을 할 때 관습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인 생각이 나와 비슷한 것 같더라. 나도 김상조 위원장이 하려는 상생경영, 재벌개혁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획일적으로 급하게 하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그에게 충고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전속고발권 폐지를 내세웠지만,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발표에서는 ‘제도 개선’으로 입장을 바꿨다. 김상조 위원장은 취임 직후 폐지 입장을 밝혔다가 지금은 TF를 통한 폐지 검토로 바뀌었다. 이렇게 정부가 우왕좌왕하니까 혼란이 가중되어 기업들이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정책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당장 없애면 중소·중견기업의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우선 대기업을 중심으로 없애고,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선 시간을 두고 없애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전속고발권은 담합·독점 등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찰고발 권한을 공정거래위원회에만 인정하는 제도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기업의 위법 행위로 피해를 본 자는 누구든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가 기업의 부당한 행위를 감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과, 무분별한 고발, 악의적 고발의 남발로 선량한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금융산업 육성 정책 전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발표한 올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순위는 63개국 중 29위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2008년 31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다. 특히 규제로 인한 경영활동 저해 항목에선 최하위권인 57위이고, 기업의 생산성은 순위가 오르긴 했으나 32위에 불과하다.▼11월이면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지 꼭 20년이 된다.
“그때보다 더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우리 경제 체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20년 전엔 몰라서 당했다면 지금은 알면서도 대비를 안 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지금 세계적으로 양적축소 흐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기 때문에 거둬들여야 한다는 거다. 우리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양적축소를 하면 달러화가 강세를 보여 우리나라에 투자한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외환위기 상황에 대비해 중국과의 갱신은 물론 일본, 미국과 재협상을 하는 등 빨리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외환위기 직전 상황을 보는 것 같아 걱정이다.”
▼문재인 정부의 금융산업 정책은 어떻다고 보는가.
“금융산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경제사절단에 금융권 인사가 한 명도 없었다. 역대 정부에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 금융권에서는 ‘금융홀대론’은 물론이고, 인사에 관해서도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진짜 문제는 현 정권이 금융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지금까지 일자리, 가계부채, 수수료, 빚 탕감 등 서민 지원에만 중점을 뒀을 뿐 금융산업 육성에 관한 정책이 전무하다. 금융을 단순한 지원 도구로만 볼 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독자 산업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
▼인터넷은행과 관련해 은산분리(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 현행 은행법은 비금융 주력사의 은행 주식 보유 한도를 4%로 제한) 규정 완화 여부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전까진 ‘은산분리 완화 절대 불가’ 방침이었지만, 취임 후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강조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인터넷은행은 (사금고화) 우려가 작고 금융혁신과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차원에서 예외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몇몇 의원이 계속 반발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당정회의를 통해 결론을 내서 오라고 강력하게 주문했다.”
▼인터넷은행 K뱅크와 관련해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KT, 우리은행, NH투자증권은 공동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어 은행법상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주주인 동일인으로 봐야 한다’며 ‘KT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인 만큼 4% 초과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보기에 견해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금융감독위원회가 그것도 판단 못하고 허가를 내줬겠나. 그리고 시중에서는 누군가 KT를 흔들어 현 경영진을 쫓아내고 자신들이 원하는 인물을 앉히려는 꼼수로밖에 안 보인다고 하는 소리도 있다는 것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지자체가 최저임금 결정
“앞에서 말했듯 획일적이고 급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해결점을 찾아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딱 잘라버리는 식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렇게 하면 필연적으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든다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 해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고 발표했지만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 해결될 수가 없는 일이다. 정규직화하면 오히려 지금 일하는 근로자들을 내쫓는 일이 발생한다. 정규직이 된다는 것은 공무원이 된다는 것인데, 지병이 있으면 공무원 임용 자체가 안 된다. 지금 지병이 있는 분들은 다 쫓겨난다. 또 지금 일하는 분들 대부분 나이가 많다. 지금은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데, 공무원이 되면 65세 정년이라 더 빨리 그만둬야 한다. 이처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일률적으로 정할 문제가 아니다.”
▼최저임금도 논란이 많다.
“이번 추석에 지역구인 부산 동래구 상가를 돌아봤는데 상인 모두 입이 댓발은 나와 있었다. 3개 층을 운영하는 유명 일식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10명이 넘는 직원을 다 내보내고 아들 부부와 함께 넷이서 1개 층만 영업하고 있었다. 김영란법으로 타격을 받은 데다 최저임금까지 급등해 더는 운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실직자를 양산해내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부에서 재정을 투입해 최저임금 인상분을 지원하겠다고 대책을 발표했다.
“최저임금을 일괄적으로 올리면 600만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이 어려워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일률적으로 올린 게 더 한심하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 이뤄지기 전에 망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책임질 건가.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인도네시아도 최저임금을 지역마다 다르게 한다. 지자체가 결정한다. 우리도 이렇게 업종별, 지역별로 다르게 해야 한다. 서울과 지방의 생활비는 당연히 다르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최저임금제로 전환해야 한다.”
▼최근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논란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정무위 소관 아닌가.
“잘못된 관행은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프랜차이즈 본사는 무조건 나쁘고, 가맹점은 피해자라는 잘못된 이분법적 논리를 갖고 있는 듯하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파리바게트에 대해 제빵사를 전부 본사에서 채용해야 한다고 했는데, 눈감고 코끼리를 더듬는 격이다. 이 결정으로 인해 오히려 제빵사들이 직장을 잃을 수 있다고, 가맹점주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체 누구 좋으라고 한 일인지 모르겠다.”
저소득층 대출 절벽
▼8·2 부동산 대책 이후에도 부동산 투기 규제와 증가하는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신DTI(총부채상환비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DTI를 낮추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요자에겐 문을 열어줘야 한다. 30~40대 가장들의 ‘내집 마련’ 욕구를 획일적 규제로 가로막는 게 좋은 정책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투기자가 아닌 실수요자, 조건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대출 규제를 풀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부동산을 규제대상, 투기꾼들의 집합체로만 바라보고 지금처럼 대출을 옥죈 결과가 어땠는지 잊은 모양이다. 면밀한 고민 없이 지금처럼 부동산을 투기로만 보고 정책을 편다면 그때와 똑같은 결과가 나올 뿐이다.”
▼14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는 심각한 수준 아닌가.
“가계부채 문제는 대출을 까다롭게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단순히 금융거래 쪽에서만 규제해서는 답이 없다. 오히려 저소득층의 대출 절벽을 불러와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이나 사채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일률적 대출 규제는 은행에도 문제가 된다. 그동안 은행은 대출로 돈을 벌었다. 이걸 못하게 하면 어디서 돈을 벌 것인가. 경기가 불확실하니까 중소기업엔 투자를 못한다. 부동산 투자를 하자니 정부 눈치가 보인다. 전문가가 없으니 해외 투자는 하기 힘들다. 결국 가장 확실한 대기업에 더 싼 이자로 빌려줄 것이다. 가진 자만 더 가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사회 다양성을 감안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