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호

창간기획 | 新전환시대의 5大 화두 |

핵심적이고 모범적으로 최소한만 바꾸자!

교육개혁을 위한 6가지 제안

  • 박부권|동국대 명예교수 bukwonp@dongguk.edu

    입력2017-11-0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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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세상은 항상 변한다. 그 변화 중에는 우리가 의도한 것도 있고, 그러지 않은 것도 있다. 그림 한 폭, 노래 한 곡, 그리고 소설 한 권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한 시대의 정서가 되고, 문화가 되는 경우도 있다. 독일 낭만파 시인 프리드리히 쉬레겔은 괴테의 교육소설 ‘빌헬름 마이스터’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가장 위대한 좌표로서 ‘프랑스 혁명’과 동렬에 놓았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었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교육개혁에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발표돼 20년 넘게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지배해온 ‘5·31 교육개혁’을 대체할 큰 그림을 모색할 것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교육개혁이 사회 각 방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국가의 교육개혁은 핵심적이어야 하고 모범적이어야 하며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

    ‘벌거벗은 욕망’부터 겨냥하라

    모든 인간은 선하고 지혜로운 신의 성품과 마그마같이 들끓는 욕망을 함께 타고난다. 부단한 자기 성찰로 요동치는 욕망의 바다를 잠재우지 않는다면 올바른 세계관의 확립과 세계에 대한 참다운 이해는 불가능하다.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하자마자,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맨발로 뛰어다니며 승객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면 누가 그를 원망했겠는가?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그는 머리 손질을 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일상적인 습관은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새로운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고집스러운 우리의 자아를 버려야 한다.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이념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우리를 묶고 있는 견고한 습관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새로운 상황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은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미래 사회에서는 더더욱 필요하다.

    지금껏 정부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까. 부모가 자녀교육에서 기대하는 것이 인격 도야나 소질 개발이 아니라 세속적 성공이요 출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 시도하고자 하는 교육개혁은 사교육비 감소에 머물러선 안 된다. 그걸 넘어서 학부모의 벌거벗은 욕망을 정조준해야 한다.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분출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각종 금기로 그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우리 교육체제에선 분출 통로는 있지만 그것을 억제하고 차단하는 금기가 없다. 성적 욕구는 도를 넘으면 성희롱, 성적 학대로 규정되어 처벌받는다. 그러나 교육에서는 도를 넘은 욕망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받는다. 학부모들은 교육 욕망의 차단장치를 쉽게 무시한다. 그들은 사교육을 앞세워 시험의 난이도를 조정하라고 하고, 시험범위를 좁히라고 한다.

    지금까지 정치적 대중주의는 학부모들이 추구하는 벌거벗은 욕망의 유혹에 쉽게 굴복해왔다. 이제부터 정부는 정제되지 않은 학부모들의 과도한 요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학부모의 청을 들어 수학능력시험의 난이도를 조정하고 출제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우리 교육체제 전반에, 학생들의 인격 발달에, 그들의 삶 자체에, 그리고 국가사회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냉정하게 짚어야 한다.

    교원단체의 협조 끌어내야

    한국의 청소년들은 언제쯤이나 ‘입시지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8월 10일 서울 용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습실에서 자율학습 중이다.[뉴스1]

    한국의 청소년들은 언제쯤이나 ‘입시지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8월 10일 서울 용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습실에서 자율학습 중이다.[뉴스1]

    교사들이 마음으로 협조하지 않는 개혁은 겉돌기 마련이다. 5·31 교육개혁의 많은 개혁 시도가 그리고 그 후의 정부에서 많은 돈과 인센티브를 주고 시도한 많은 개혁이 정부 지원과 관심이 끊어지면, 그날부터 없던 일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조현초등학교(경기 양평)와 남한산초등학교(경기 광주) 같은 혁신학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뜻있는 교사들이 자발적이고 헌신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학교는 실패하지 않는다. 한 학교의 교육적 성공은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항소심에서도 패소한 후 법외노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대법원의 최종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부와 교원단체들은 우리의 교육 풍토를 일신하겠다는 큰 뜻을 세우고, 핀란드의 교육개혁이 그러했듯이 대승적으로 서로 양보하고 협조해 교육백년대계를 위한 신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탓에 교사들을 개혁의 동반자로 그리고 주체로 세울 수 없었던 5·31 교육개혁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기도 하다.

    교육부의 대학평가 멈추자

    교육부는 지난 2015년부터 교육의 질을 높이고 입학자원 급감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3년마다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이 평가지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가 등록금의 ‘교육비 환원율’ ‘학생 충원율’ 그리고 ‘졸업생 취업률’이었다. 그런데 이 지표들의 비중이 유사한 목적으로 2014년에 실시한 평가지표의 절반 이하로 낮아진다. 교육부가 대학의 저항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입학생이 줄어듦에 따라 부실한 대학을 과감하게 퇴출시키자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었는데 용두사미가 된 것이다. 교육부가 앞으로 시도하는 유사한 사업도 십중팔구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평가로 재정지원 여부를 결정하면 대학은 평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평가지표가 대학의 일상을 지배하게 되고 대학은 점점 자율성을 잃게 된다. 대학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평가가 지식의 발전 속도가 빠른 자연과학 분야의 평가를 모델로 삼은 것도 문제다. 이런 평가가 앞으로 계속된다면, 오랜 기간에 걸쳐 숙성되고 깊은 사색이 필요한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점점 불모지로 변할 것이다.

    대학 발전을 위한 접근 방법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구조조정이 교육부의 목적이라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대학에 한해 정원 축소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그로 인한 예산감소분을 직접 지원하면 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대학에는 전적으로 자율을 주고 영리·비리 대학에 국한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방법도 있다. 대학은 철부지 어린이가 아니다. 정부는 대학의 자율 능력을 믿어야 한다.

    국정교과서부터 모범을

    교육부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 제도 1년 연기를 발표한 8월 31일 오후 경기 안양시 동안구 학원가로 향하는 학생들. [뉴스1]

    교육부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절대평가 제도 1년 연기를 발표한 8월 31일 오후 경기 안양시 동안구 학원가로 향하는 학생들. [뉴스1]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서 자신이 물에 담근 몸의 부피만큼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 이처럼 모든 깨달음에는 말할 수 없는 희열과 감동이 따른다. 교과서는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배움을 통해 이 깨달음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과서는 아이들의 세계에 다가가지 못한 채, 아이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절제되지 않은 집필자와 기획자들의 이념,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이론과 용어들, 사려 깊지 못한 구성과 편성으로, 오히려 아이들을 배움에서 달아나게 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교육에서 최초로 접하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교과서를 보자. 우리나라는 “나, 너, 우리”라는 다분히 추상적인 개념을 가르치고, 곧장 한글 자모 익히기로 들어가지만, 일본의 교과서 첫째 단원은 아무런 글자 없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노는 것을 관찰하게 하고, 둘째 단원은 아동의 감각 발달 순서를 따라 소리 내보고 갖가지 소리를 들어보게 한다. 프랑스는 단원의 소재를 아동들의 몸이나 책가방, 가족 등에서 따오고, 단원 전체를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해 흥미를 높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국어의 기술적인 부분, 철자를 익히고,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강조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용이 아동의 일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검인정 제도하에서 국정교과서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모범적인 교과서를 만들어 우리 수업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모범적인 국정교과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배움의 기쁨 속으로 빠져들게 해야 하고, 교리문답식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식 토론수업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깊이 있게 세계를 관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시험은 논술형으로

    객관식·선다형 시험은 수험자 수가 아무리 많아도 동시에 실시할 수 있고, 전산으로 신속하게 채점할 수 있으며, 비용이 적게 들고, 무엇보다도 투명성·공정성·객관성을 보장해 준다. 그러나 객관식·선다형 시험은 교사로 하여금 시험 치는 요령만을 가르치게 하고,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아예 가르치지 않으며, 시험 성적만을 강조하고, 학생의 관심과 흥미는 도외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객관식·선다형 시험은 대충대충 하는 인격을 기른다. 확실히 이해하지 못해도 추측으로도 답을 맞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관식 논술형에서는 대충 알아서는 답을 쓸 수 없다. 그리고 논술형은 답뿐만 아니라 답에 이르는 과정을 함께 보기 때문에 학생들의 사고 궤적을 추적할 수 있다.

    이제 학생 인구는 과거 40년 사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우리 경제 형편이 비용을 문제 삼을 정도로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논술형 시험은 채점자인 교사의 엄청난 수고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인공지능을 개발하면, 논술형 시험채점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이다. 그렇게 되면 논술형도 공정성, 객관성, 투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목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KAIST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학 1,2학년까지는 과학고 출신 학생들이 일반고 출신 학생보다 성적이 좋지만 3, 4학년으로 올라가면 그것이 역전된다. 이는 과학고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뛰어난 과학인재를 양성해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똑같은 의심을 외고와 영재고에 대해서도 품을 수 있다.

    영재와 범재를 구분해 가르치는 것은 전근대적 계급사회의 발상이다. 교육은 교사의 수업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학생들 상호 간의 교류를 통해서도 일어난다. 그러므로 학생 하나하나는 교육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교육의 중요한 자원이다. 이것이 특목고를 일반고에 통합해 학생들을 함께 섞어 가르쳐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단 이 경우 일반고는 우수한 학생도 특목고 이상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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