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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자주파 vs 동맹우선파 內鬪 양상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친중·자주파 vs 동맹우선파 內鬪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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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동북아 정세에서 안정과 평화 보장의 질서를 형성하는 데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 후 내놓은 ‘한반도 운전석론’을 떠오르게 하는 이 발언은 2005년 3월 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발언을 통해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기했으나 실행하지는 못했다.

노동 대 자본, 민족 대 외세는 문재인 정부에 포진한 86세대가 1980년대부터 가진 프레임이다. ‘동북아 균형자론’ ‘한반도 운전석론’ 이면에는 민족 대 외세 프레임이 스며들어 있다. 여기서 외세는 미국이다.

12년 전 노 전 대통령 발언이 일으킨 파장은 컸다. 한미동맹 이탈을 시사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노무현 정부의 이른바 ‘자주파’가 추진한 것이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도 당시 자주파로 분류됐다.
 
“균형자 외교라는 말이 나오면서 파장이 일자 곧바로 철회됐다. 균형자론이 외교정책에 실제로 반영되지는 않았다. 말이 나왔다 들어간 것일 뿐이지 전략이나 정책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 회고다. 2005년 6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 속에서 역할을 모색한 것”이라고 물러섰다. 정상회담 직전에는 “동북아 최종 균형자는 미국”이라면서 균형자론을 철회했다.



노무현 정부 때 ‘동맹파’와 ‘자주파’는 이라크 추가 파병,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협상, 전시작전권 전환 등을 두고 내투(內鬪)를 벌였다. 동맹파 자주파라는 낱말은 언론에서 만들어낸 표현으로 내부에서 정책 다툼이 있었다는 뜻이지 파벌로 나뉘어 대결했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 나리들 비위 맞추나?”

노무현 정부 초·중반에는 “반미(反美)면 어떠냐” 식의 한미동맹을 뒤흔드는 발언이 나왔으나 임기 중·후반에 들어서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시작하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등 정책에서 구체적 변화가 일어났다. 윤 전 장관은 이렇게 회고한다.

“정치 지도자에겐 ‘러닝 프로세스’라는 게 있다. 당선 초기에 표방한 목표, 이념, 이상 같은 것이 현실에 적응, 융합하는 과정을 말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엔 선거 캠페인 등에서 내세운 외교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나 현실 정치를 경험하면서 정책이 현실화되고 세련돼가는 과정을 거친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정책이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동맹우선파’와 ‘자주파 시즌2’ 간에 견해 다툼이 벌어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부처 관계자는 “거칠게 분류하면 친중·자주파와 동맹우선파로 견해가 나뉘어 있다”면서 “문정인 특보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대립이 견해 차이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평가했다.

문정인 특보, 서훈 국정원장, 임종석 비서실장 등이 자주·친중 성향으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등이 한미동맹 우선 성향으로 분류된다. 막후에서 이해찬 전 총리도 문정인 특보 쪽 견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서 원장은 상대적으로 균형감을 가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中에 어깃장 놓은 韓美공동성명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0월 12일 국회에서 소설가 한강 씨의 뉴욕타임스(NYT) 기고문과 관련해 “작가로서 개인적인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표현과 역사 인식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가 입길에 올랐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은 10월 12일 페이스북에 “윤병세 장관이 돌아온 줄 알았다”면서 이렇게 썼다. “공직자도 아닌 작가가 미국 신문에 기고한 글조차도 ‘미국 나으리들’의 비위를 거스를까 그렇게 걱정이 되시나요? 아니면 송영무 장관처럼 조중동과 자유당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무엇을 따지고 들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라고 기분을 맞춰주기로 하신 건가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9월 18일 국회에서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느낌이지 안보 특보로 생각되지는 않아 개탄스럽다”고 문정인 특보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현직 장관이 대통령 특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청와대가 엄중 경고한 후 송 장관이 사과했으나 국방장관과 대통령특보는 이후에도 정책 방향이 다른 얘기를 제가끔 내놓고 있다.

문정인 특보는 언론 인터뷰에 잇따라 나와 거침없이 발언한다. “(청와대) 안보실 사람들은 (내 발언이) 조금 부담스럽겠지만 많은 청와대 사람이 내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한미동맹이 깨지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등의 발언이 그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핵심 지지층 중 일부는 문정인 특보의 발언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무기 팔아먹는 장사꾼 트럼프는 전쟁 못한다”(10월 10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 같은 견해를 SNS에서 공유한다. 문 특보는 외교·안보에 관한 ‘촛불 민심’을 자신이 대변한다고 본다.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6개항의 공동성명 중 두 대목을 보자. 정의용 안보실장과 강경화 장관이 미국 측과 내용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진다.

‘양 정상은 역내 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미·일 3국 협력을 증진시켜나가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양 정상은 3국 안보 및 방위협력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억지력과 방위력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양 정상은 기존의 양자 및 3자 메커니즘을 활용함으로써 이러한 협력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기로 했다.(이하 생략)’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게 한·미·일 군사 공조다. 베이징은 한미동맹, 미일동맹으로 이뤄진 한·미·일 공조에서 약한 고리인 한국을 떼어내려고 노력해왔다. 공동성명 중 3자 메커니즘과 관련한 내용은 미국,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줄 것으로 기대하는 중국에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규범에 기초한 질서를 지지하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공조해나갈 것을 확인했다.’

공동선언문 중 이 대목도 중국이 발끈할 내용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규범에 기초한 질서’는 남중국해라고 쓰진 않았으나 항행의 자유를 비롯한 미국의 견해를 지지한 것이다.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남중국해에서 갈등이 빚어질 때 한국이 미국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명시한 격이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경제통상통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러닝 프로세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미 FTA가 참 좋은 건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고 노 전 대통령이 묻자 정 안보실장이 “대통령께서 설명을 최고로 잘하신다. 지금까지 잘하셨다”고 답한 일화가 전해진다.


핀란드式 생존 전략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담긴 위와 같은 내용은 문정인 특보의 견해 및 현실 인식과는 차이가 큰 합의다. 문 특보가 2014년 6월 9일자 중앙일보에 ‘핀란드화라는 이름의 유령’ 제하로 쓴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우선 북한이 중국 경제에 예속되고, 중장기적으로는 한국마저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작가 복거일은 중국의 그림자가 커질수록 소련의 속국으로 전락해야 했던 예전 핀란드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핀란드화’란 무엇인가. 하나는 약소국이 인접 강대국에 예속되어 묵종적 자세를 취하는 것, 다른 하나는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약소국이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택하는 중립 노선이다. ‘핀란드화’를 단순히 강대국에 대한 약소국의 일방적 예속으로 규정하는 시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변화하는 대외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한 약소국의 생존전략으로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중국의 부상을 마주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운명은 강대국의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단합과 대응전략에 달려 있다는 것이야말로 냉전기 핀란드의 생존전략이 한국에 주는 값진 교훈일 것이다.’

‘핀란드화(finlandization·핀란다이제이션)’는 1960년대 서독에서 생겨난 말로 냉전 시기 소련과 핀란드의 관계를 빗댄 표현이다. 한 나라가 자주독립을 유지하며 대외정책에서 이웃한 대국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핀란드식 중립 노선은 노무현 정부 때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맥이 닿는다. 핀란드화라는 낱말에는 소국이 대국의 영향력에 부응하는 부정적 의미가 담겼으나 문 특보는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한 약소국의 생존전략으로 규정한다.



자주-외세 프레임과 親中

3월 1일 ‘신동아’와 만난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미국 공화당 싱크탱크) 설립자 에드윈 퓰너 박사의 핀란드화 모델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선임고문을 지냈다.

“핀란드화와 관련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한국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다. 자신들의 이익, 한국의 국익, 한국인의 미래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좋다고 믿는가. 아니면 한국인이 한국과 미국이 60년 넘게 공유한 비전이 옳다고 믿는가. 내 생각에는 이 질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미국과 공유한 비전이 옳다고 여긴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중립적 위치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과는 기꺼이 토론할 용의가 있다. 자유와 비(非)자유 사이에는 중립이 존재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이라는 것은 한국과 중국이 오래전의 조공(朝貢) 관계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한국인은 한국이 중국에 사대(事大)하는 나라가 되기를 원하나. 그것은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14억 인구의 중국에 한국은 작은 지방일 뿐이다.”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은 쌍잠정(雙暫停·북한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한미 연합훈련을 일시적으로 동시에 중단하는 것)과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을 병행해 추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쌍잠정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평양의 견해를 받아들인 것이다. 중국은 쌍잠정, 쌍궤병행 원칙을 러시아와도 합의했다. “북한은 핵 및 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한국과 미국은 군사훈련을 축소하거나 중단해야 한다”는 문 특보 주장은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과 같다.

외교안보 분야 국책연구기관 한 인사는 “특보라는 비상임 직책을 맡으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문정인 특보가 촛불 민심에 호소하면서 정책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바꾸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9월 27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문정인 특보나 서훈 국정원장에게 맡겼다면 양상이 상당히 달랐을 것”이라면서 “북·미 사이에서 우리의 역할 공간을 찾으려면 중국이란 우회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직 안보부처 고위 인사는 “1980년대 반미 운동 프레임을 고수하는 이들은 반미친중적 사고를 갖기 쉽다”면서 “미국의 오만불손하고 이기적인 대북정책 탓에 한국이 피해를 본다는 현실 인식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9월 10일 페이스북에 “북한 위협에 맞서기 위해 굴욕을 감내하면서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것” “미국이 짖으라고 하는 대로 짖어주고 있는 것” 등의 내용이 담긴 한 언론인의 글을 공유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행보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분석해놓았다. 대통령을 그동안 신뢰해왔다면 ‘지금 왜 저런 행보를 할까’ 한 번만 더 생각해보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 중 자주-외세 프레임이 강한 이들은 ‘문근혜’ ‘도로 박근혜’ 식으로 대외정책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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